평생 짝사랑 / 박선애
퇴근하고 가면 저녁 식사 시간이 끝날 무렵이다. 어머니 양치하는 것 돕고, 손수건 빨고, 병을 닦아 물을 떠다 놓는 데 몇 분 안 걸린다. 방은 텔레비전 소리가 시끄러워 대화하기가 어렵다. 보행기를 의지해야만 걷는 어머니를 앞세우고 밖으로 나간다. 벽과 화단을 따라 쭉 이어서 앉을 자리가 있고 모퉁이 세 곳에는 햇볕 가릴 지붕 아래 긴 나무 의자가 ㅁ자로 놓였다. 해가 지고 나서도 블록을 깐 바닥에서는 열기가 올라 오지만 뒷산에서 오는 바람이 제법 살랑거린다. 저녁을 먹으면 답답한 병실을 떠나 테라스 정원으로 몰려든다.
거기에서 조도 아짐을 처음 보았다. 우리 어머니보다 딱 열 살이 적은 데도 덩치가 크고 풍파를 겪은 흔적이 얼굴에 그대로 남아 별로 차이 나 보이지도 않았다. 큰 목소리로 아무에게나 말을 붙이고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아 선뜻 마음이 안 갔다. 고향이 같다고 반가워하는데, 조도는 멀리 떨어져 있어 한두 번 가 봤을 뿐이라 친근하지도 않았다. 가볍게 인사만 하고 다녔다. 먼저 친해진 사람은 순금 아짐이었다. 어머니 옆자리 순금 아짐은 방에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전에 한방에 있다가 거동이 어려워져서 간호사실 가까운 곳으로 옮긴 할머니한테 가 말벗을 해 드리거나 로비 휴게실에서 건강 상태가 그만그만한 사람들과 논다. 그늘이 지면 테라스 정원으로 나간다. 거기에는 운동하려고 보행기를 의지해 걷는 사람들이 많다. 또 지붕 아래 의자에 둘레둘레 앉아서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낸다. 어느 날 조도 아짐이 얼마나 노래를 잘하는지, 가수 났다고 나에게 말했다. 저녁마다 노래 부르며 논다고 자랑한다.
어머니와 테라스 정원 의자에 앉아 있는데, “언니네 딸이여?” 하며 가까이 온다. 그 사이 어머니와도 친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짐 노래 잘한다고 하대요.” 가타부타 말도 없이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노래로 인사를 대신한다. 참말로 구성지게 잘 부른다. “아짐, 노래 잘해서 인기 좋았겠어요.” “인기는 무슨 인기,” 하더니 이어서, “내가 내가 대 건달을 만나서, 일도 안 하제, 부쳐 먹을 땅 한 뙈기 없제, 이 몸이 하루하루 벌어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고, 그래서 우리 자식들은 갈치도(가르치지도) 못했어.” 운율을 잘 살려서 노래 부르듯이 자기소개한다.
그 후로는 어머니 방으로 가끔 놀러 왔다. 할아버지가 설사를 자주 한다고 정로환을 사다 주라고 했다. 아프면 간호사한테 알려 제대로 치료 받는 게 맞다고 해도, 그때마다 말하기도 미안하고 집에서 하던 대로 이 약을 먹으면 잘 듣는다고 했다. 세 병을 사 오라고 해서 내가 약도 유통 기한이 있다고, 다음에 또 사다 주겠다고 달래서 두 병으로 줄였다. 며칠 후에는 알로에 주스를 주문했다. “뭐 할라고 그런 것을 그렇게 많이 사는가?” 하는 우리 어머니의 물음에 “언니 언니, 이 년이 멍청해서 내 입에는 못 넣어도 서방 멕일라고 그러네.” 또 가락에 맞게 대답한다. 옆에 있던 금순 아짐이 “짝사랑하구만.” 한다. “맞어, 내가 평생 짝사랑하고 살았어.” 해서 모두 웃었다. 요양 병원도 이렇게 웃을 일 있는, 사람 사는 곳이다.
조도 아짐은 골다공증이 심해서 넘어지지도 않고 일상생활 하다가 뼈가 부러졌단다. 병원에서 치료받고 나니 자식들이 집 대신 여기로 데려다주었다. 혼자 있으니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해 기운 없어 넘어져 다친 할아버지도 모셔왔다. 우리 어머니가 있는 2층에 있는 2인실 두 칸에는 부부가 와 있다. 1호는 90대, 2호는 70대 부부다. 두 방 다 남편이 연금 받는 전직 교사다. 조도 아짐네는 5층의 5인실 여자 방, 남자 방에 떨어져 지낸다. 가난해서 자식 교육도 제대로 못 시켰다고 하니, 저축해 놓은 노후 자금이 있을 것 같지 않다. 두 분이나 되니 병원비가 만만치 않을 텐데, 남의 일이지만 걱정스럽다. “하루 벌어 먹고살아도 어쩌것어? 쬐끔씩 걷어서 노인 연금에 보태서 내. 하나라도 어서 죽어야제.” 하며 자식들 못 할 일 시킨다고 한탄한다.
보행기에 상체를 기대지 않고는 자기 몸도 가누기 어려운데 쫓아다니며 할아버지를 챙기느라 고생한다고 어머니는 안쓰러워한다. 어느 집이나 노인들이 너무 오래 살아서 큰일이라고 덧붙인다. 할아버지는 병원에 갇혀 있는 것이 답답하다고 집에 가자고 조른다. 그게 안 통하니까 새벽에 옷 갈아입고 탈출하다 직원에게 걸려 돌아왔다. “아무 것도 모르는 작자가 집에 가서 보건소에서 약 타다 먹으면서 살면 된다고 하는데, 내가 밥을 어떻게 해 먹것는가?” 어머니한테 하소연한다.
우리 어머니는 평생 ‘내 강아지’는커녕, “내 새끼, 내 딸”도 못하고 이름을 부른다. 조도 아짐은 나를 보면 “우리 딸 왔어?” 하고 반가워한다. 어느 날은 전날 심부름 시킨 물건을 찾으러 와서 “우리 가이나 기다릴까 봐서 빨리 왔다.”고 해서 당황했다. 우리 어머니 귀가 어두워져서 다행이다. 가이나쯤이면 욕이라 여기는 어머니가 들었으면 조도 아짐을 싫어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친근하게 대해 주시니 좋다. 필요한 것 있으면 어려워 말고 나에게 심부름 시키라고 했더니 할아버지 간식거리를 몇 번 부탁했다. 말아서 노랑 고무줄로 묶은 빈약한 다발에서 돈을 빼 주면 짠하다. 할아버지가 주는 대로 잘 드셔서 과자든 음료수든 사 주기 바쁘다고 했다.
요즘은 저녁 먹고 나면 금방 어두워지고 추워서 테라스 정원이 텅 비었다. 조도 아짐도 저녁에는 5층에서 안 내려온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줄 알고 탔더니 5층까지 올라간다. 간 김에 아짐이라도 보고 가면 좋겠다. 조용하고 쓸쓸한 로비 텔레비전 앞 소파에 두 분만 있는 것이 보인다. 멀찍이 떨어져 앉아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모습이 처량하다. 평생 짝사랑한다더니 서로 무심해 보인다. 깜짝 놀라며 반가워한다. 아짐보다 여섯 살 많다는 할아버지가 더 곱상하다. 아짐이 2층에 있는 진도 언니 딸이라고 소개를 해도 못 알아듣는다. 다정하게 딱 붙어 앉아 있지도 않으면서 각자 방으로 가지 못하는 마음이 70년 가까이 쌓아온 사랑일까? 돌아가려는 내게 아짐이 큰 소리로 말한다. “낼 올 때 할아버지 먹게 홍시 만 원어치 사다 줘.” 평생 짝사랑하는 것 맞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