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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옥의 시문집]
남녀관계에 관한 민요를 한시로 옮겼다. '삼난'(三難)이라는 제목의 서문에서 조선 사람은 중국풍의 국풍·악부(樂府)·사곡(詞曲)이 아닌 이언을 지어야 한다고 하며, 천지 만물을 살피려면 남녀 간의 사랑을 다뤄야 핵심에 이른다고 했다.
또한 사물을 열거할 때 중국 전래의 명칭이 아니라 향명(鄕名)을 택한 이유를 밝혔다.
서울의 도회적 분위기를 배경으로 하고 서민사회 여인들의 생활감정을 제재로 삼은 〈아조 雅調〉 17수, 〈염조 艶調〉 18수, 〈탕조 宕調〉 15수, 〈비조 悲調〉 16수, 4편의 연작 등 총 66수가 실려 있다.
아조는 예사롭고,
염조는 아름답고,
탕조는 질탕하고,
비조는 원망스러운 곡이라고 했다.
내용은 혼례청에서 갖는 부부애의 소망, 고된 시집살이로 인한 수면 부족, 남편을 독점하려는 데서 비롯되는 질투, 고부간의 갈등과 저항심리, 관능적 감각의 발산 등 여인들의 미묘한 심적 갈등을 나타냈다.
민요 본래의 흥취를 살리기 위해 때로는 전통적인 한시의 문체를 파괴하고 우리말의 어휘와 어법을 대담하게 살리는 파격적인 시도를 했다.
조선 후기 민족 문학의 성립이라는 맥락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작품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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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인 연안 이옥 지음
[첫 번째 어려움]
어떤 사람이 내게 묻기를,
“그대는 이언을 무엇 때문에 지었는가? 그대는 어째서 국풍이나 악부 혹은 사곡을 짓지 않고서 하필이면 이언을 짓는 것인가?”
나는 대답하였다.
“이것은 내가 지은 것이 아니라 주관하는 자가 있어서 시킨 것인데, 내가 어찌 국풍이나 악부, 사곡은 지으면서 나의 이언을 짓지 않겠는가? 국풍이 국풍됨을 보았고 악부가 악부됨을 보았으며, 사곡이 국풍이나 악부가 되지 못하고 사곡이 됨을 보았으니 곧 내가 이언을 지음도 가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가 말하기를
“저 국풍과 악부와 사곡과 더불어 그대가 지은 이언이라는 것도 모두 작가가 짓는 것이 아니란 말인가?”
나는 대답하였다.
“작가가 어찌 감히 짓겠는가? 작가의 짓는 바가 되는 까닭이 있어 짓는 것이다. 이는 누구인가? 천지 만물일 따름이다. 천지 만물에는 천지 만물의 성질이 있고, 천지 만물의 형상이 있으며, 천지 만물의 색이 있으며, 천지 만물의 소리가 있으니 총체적으로 살펴보면 천지 만물은 하나의 천지 만물이지만 분석적으로 살펴 말하자면 천지 만물은 각각의 천지 만물이다.
바람받이 숲에 꽃이 떨어지고 비가 내려서 어지러이 쌓여있어도 분변하여 살펴보면 곧 붉음은 붉음이고 흼은 흼이다. 마찬가지로 천상의 커다란 음악 소리와 천둥소리, 배가 굉음을 내며 움직일 때, 살펴서 들어보면 곧 현악기는 현악기의 음률이, 관악기는 관악기의 음률이 나와 각각의 색이 그 색을 띠고 각각의 소리가 그 소리를 내어 한 부분으로 시를 온전히 하니, 자연 속에서 원고가 나오는 것일 뿐이다. 이는 또한 팔괘를 긋고 서계를 만들기 이전의 일이었으니 이는 진실로 국풍, 악부, 사곡이 감히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는 바이면서 또한 감히 서로 습답하지 못하는 것이다.
천지 만물은 작가에게 있어서 꿈에 의탁하여 그 모습을 드러내고 악기를 타서 정을 통하게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천지 만물이 사람에게 가탁하여 장차 시가 되는 것이니 유유히 흘러 귀와 눈을 쫓아 들어가서는 단전 위에서 머물다가 속속 입과 손끝을 따라 나오는 것이니 사람에게 간섭되지 않는다. 만약 석가모니가 우연히 공작의 입속을 따라 배로 들어가서 잠시만에 나는 석가모니가 석가모니 본래의 석가모니인가? 아니면 공작의 석가모니인가에 대해서 아직 모르겠다. 이런 까닭으로 작가는 천지 만물의 한 형상을 가진 역관이며 또한 천지 만물의 용안이다.
오늘날 무릇 통역사가 외국인의 말을 통역함에 ‘나하추’는 곧 북번의 말이 되고, ‘마태오리치’는 곧 서양의 말이 되니, 감히 그 소리가 지닌 관습을 따르지 않고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 무릇 그림을 그리는 이가 사람의 형상을 그림에 있어서, 맹상군을 그린다면 곧 키가 작은 상을 그릴 것이고, 거무패를 그린다면 곧 호리호리한 상으로 그리는 것이지 감히 그 형상의 무리로 하여 변하는 바가 아닌 것이건만, 어찌 이에서 다르겠는가? 대개 일찍이 논하건대 만물은 만 가지 물건이니 진실로 하나라고 할 수 없다.
한 하늘의 하늘도 또한 하루도 서로 같았던 하늘이 없었다. 하나의 땅인 땅도 또한 한 곳도 서로 닮은 곳이 없다. 마치 천만인이 각자의 고유한 천만 건의 성과 명을 지니고 있으며, 일 년 삼백 일이라면 절로 삼백 가지의 일됨이 있으니 오직 이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역대로 하․은․주․한․진․송․제․양․진․수․당․송․원은 한 시대도 어느 시대와 같지 않았고 각 시대별 그 시대의 고유한 시가 있었다.
여러 나라이었던 주․소․패․용․위․정․제․위․당․진․진은 한 나라도 다른 나라와 같지 않았으며, 각각의 고유한 일국의 시가 있었다. 삼십 년이면 세상이 변하여 백리 안에서도 풍속이 같지 않건만 어찌 대청건륭연간에 태어나 조선 한양성에 살면서도 이내 어찌 짧은 목을 펴서 길게 하고, 가는 눈을 부릅떠 크게 하고는 망령되이 국풍과 악부와 사곡의 지음을 말하려는 것인가?
나는 이미 내 눈으로 이와 같음을 보았거니와, 이와 같을진댄 이는 곧 진실로 내가 짓는 것이 아닌 것이다. 오직 저 장수하는 천지 만물은 건륭연간에 혹 하루라도 존재하지 않던 날이 없었다. 오직 저 다정한 천지 만물은 한양성 아래에 혹 한 곳이라도 따르지 않은 곳이 없었다. 또한 나의 귀, 나의 눈, 나의 입, 나의 손이 내 용렬한 안목으로 보아도 혹 하나의 물건이라도 고인들에게는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으니 다행스럽고도 다행스럽도다. 이는 또한 내가 지은 것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내가 다만 이언으로 짓고 감히 ‘도요’, ‘갈담장’을 짓지 않고 악부시인 ‘주로’와 ‘사비옹’을 감히 짓지 않는 까닭이다. 아울러, 더불어
“촛불 그림자 흔들리니 붉은 나비 꽃을 연모하네.”
라는 싯구 역시 감히 지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어찌 내가 지은 것이겠는가, 가히 부끄럽게 여기는 바의 것은 천지 만물이 나에게 배회를 한 바의 것인데, 고인이 천지를 배회하는 바에 크게 미치지 못했으니 곧 이는 나의 죄이다. 그리고 또한 이언의 여러 조가 감히 국풍과 악부와 사곡을 말하지 않는 까닭은 천지 만물에 감사함으로써 기존의 ‘이’와 또 ‘언’으로 말하는 것이다.”
나비가 날아서 학이 날개짓 하는 곳을 지나다가 그 춥고 또한 파리한 모습을 보고는 묻기를
“자네는 어째서 매화의 백색과 모란의 붉은색 그리고 복숭아와 오얏의 반 붉은색과 반 백색이 되지 못하고 하필이면 이런 황색이 되었는가?”
학이 날개짓하며 말하기를
“상황에 따른 것이지, 어찌 내가 주관한 것이겠는가? 상황이 곧 그러한 것이지, 상황을 내가 어찌하겠는가? 자네 역시 어찌 나의 나비가 되겠는가?”
<漢字原本>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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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어려움]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그대가 말하는 천지 만물은 그대에게 들어가고 그대에게로 나와서 그대의 이언을 만드는데 곧 어째서 그대의 천지 만물이 유독 한 개 혹은 두 개에 그치는 것인가? 어째서 그대의 이언은 다만 붉은 연지나 치마 혹은 비녀와 같은 여성들의 일에만 미치고 있는가? 옛사람이 예가 아니면 듣지를 말고, 예가 아니면 보지를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라고 하였거늘 또한 이렇듯 태연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벌떡 일어나 얼굴을 고치고 무릎 꿇고 앉아 사죄하며 말하기를,
“선생님께서 가르치신 뜻을 제자가 잊었습니다. 서둘러 불사르기를 원하셨으나 제자가 몰래 선생님에게 청할 것이 있는데, 다행히 선생님께 마침내 가르치심에 감히 묻겠습니다.”
“시전은 무엇입니까?”
답하기를
“경전이다.”
“누가 지었습니까?”
“당시의 시인이다.”
“누가 모은 것입니까?”
“공자이다.”
“누가 주를 달았습니까?”
“집주는 주자가 하였고 전주는 한나라의 유학자들이 하였다.”
“그 대강의 뜻은 무엇입니까”
“생각에 사특함이 없음이다.”
“그 효용은 무엇입니까?”
“백성을 교화하여 선을 이룸이다.”
“주남과 소남은 무엇입니까?”
“국풍이다.”
“말하는 바는 대체로 무엇입니까?”
“거의가 여자들의 일이다.”
“무릇 몇 편이나 됩니까?”
“주남 11편과 소남 14편이다.”
“그 가운데 여자들의 일을 말하지 않는 것은 몇 편입니까?”
“‘토저’와 ‘감당’ 등 모두 5편일 따름이다.”
“그렇단 말인가! 이상합니다. 천지 만물이 다만 분을 바르고 치마 입고 비녀 는 여성들에게만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자고로 옛날부터 있었던 것입니까? 어째서 옛날의 시인들은 꺼리지 않았습니까? 예가 아니면 보지를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를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라고 그러지 않았던가요? 여보시오! 내 그대에게 그에 대한 말을 듣고 싶습니다. 이에 대해 하실 말씀이 있는지요?”
“무릇 천지 만물을 관찰함에 사람을 관찰하는 것보다 큰 것이 없으며, 사람을 관찰함에는 정보다 묘한 것이 없으며, 정을 관찰함에 있어서는 남자와 여자의 정을 관찰하는 것보다 진실된 것이 없다. 이 세상이 있으면 이 귀가 있고, 이 몸이 있고, 이 일이 있고, 이 일이 있으면 다시 이 정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보면 그 마음의 사악함과 올바름을 알 수 있고, 사람의 어짊과 그렇지 못함을 알 수 있으며, 그 일의 득과 실을 알 수 있고, 그 풍속의 사치스러움과 검소함을 알 수 있고, 그 토양의 후덕함과 척박함을 알 수 있으며, 그 집안의 흥함과 쇠함을 알 수 있고, 그 나라의 다스려짐과 어지러움을 알 수 있고, 그 세상의 오염됨과 융성함을 가히 알 수 있는 것이다. 대개 사람이 정에 있어서는 혹 기쁘지 않으면서도 거짓으로 기쁜 체 하거나 혹은 성나지 않았으면서도 성난 체 하기도 하거나 혹은 슬프지 않으면서도 슬픈 체 하기도 한다. 즐겁지 않고, 슬프지 않고, 미워하지 않고, 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때로는 거짓됨이 있어 즐겁고, 슬프고, 밉고, 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어느 것이 진실이고 어느 것이 거짓인가? 모든 그러한 정의 진실을 관찰함으로써는 얻을 수 없으나 유독 남녀의 정을 통해서는 얻을 수 있는 것이니, 곧 인생은 오로지 그러한 일이며 또한 하늘의 도리요 자연의 이치인 것이다.
그러므로 혼례 때 푸른 술잔과 붉은 화촉을 켜고 혼인하여 서로 묻고 인사 나누는 것도 또한 진실된 정이요, 향기로운 규방에서 상자에 수를 놓는 것이나 이리마냥 싸우고 다투며 성내고 성내는 것도 또한 진실된 것이요, 담황색 주렴의 백모란 같은 눈물을 흘리며 꿈속에서나마 사모하기를 바라는 것 또한 진실된 정이요, 푸른 누각과 버드나무 저작거리에서 웃으며 아름답게 노래하는 것 또한 진실된 정이요, 원앙금침과 비취 이불의 명주실 붉음에 의지함도 또한 진실된 정이다. 오직 이 한 종류의 진실된 남녀지정이야말로 진실되지 아니한 곳이 없으니, 그 단정함과 장엄함과 정숙함을 하나로 온전하게끔 하면 다행스럽게 그 올바름을 얻을 수 있음이니 이 역시 참되고 오롯한 정이다.
그러나 방만하고 편협하고 게으르게끔 하면 불행하게도 그 올바름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 또한 진실로 오롯한 정이다. 오직 그 진실됨이기 때문에 그런 까닭에 그 올바름을 잃은 것 또한 경계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오직 그 진실됨으로 가히 본받을 수 있으며 진실됨으로 가히 경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마음, 그 사람, 그 풍속, 그 토양, 그 집안, 그 국가, 그 세상의 정은 또한 이에 따라 볼 수 있는 것이 천지 만물이 이에서 보면 남녀의 정을 관찰하는 것보다 더 진실 된 것은 없다.
남녀지정을 다루고 있는 작품은 ‘주남’과 ‘소남’의 25편 가운데 20편인 까닭이요, 또한 ‘위풍’ 39편 가운데 37편이 있는 까닭이요, ‘정풍’의 21편 가운데 16편으로 많은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의 시인들이 예가 아님에도 듣고 보고 말하며 꺼리지 않았던 까닭인 것이며 또한 나의 위대하시고 지극한 성인이신 공자님께서 모은 까닭이며 ‘모씨’와 ‘정현’이나 ‘주자’, 그리고 여러 순박한 유학자들이 전주하고 집주하였던 까닭인 것이다. 또한 그대가 이른바 ‘사무사’라 하는 것과 ‘교민성선’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대가 어찌 알겠는가? 무릇 예가 아님에도 들리는 것인데 장차 예가 아니니 듣지 말라 하고, 예가 아님에도 보이는 것을 장차 예가 아니면 보지 말라고 하며, 예가 아님에도 말하는 것을 장차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라 라고 하는가? 하물며 보고 듣고 말하는 것이 모두 다 예가 아니라고는 할 수 없는 까닭이다.
이런 이유로 내가 곧 말한다면 시의 정풍이나 음풍은 시가 아니다. 이는 곧 춘추-역사-이다. 세상에서 음사라고 일컬어지는 ‘금병매’나 ‘육포단’과 같은 부류도 또한 모두 음사가 아니다. 본디 그 작자의 마음이 곧 비록 정풍과 음풍을 말한다고 할지라도 역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또한 할 말이 있는가? 여자는 성품이 치우쳐 있어서 그 환희며, 그 우수며, 그 원망이며, 그 학랑은 진실로 모두 정이 움직여 흘러 다님이니, 마치 혀끝에 바늘을 감추고 눈썹 사이에서 도끼가 노는 것과 같음이 있으니 곧 사람의 시경에 합치되는 것으로는 여자같이 묘한 것이 없다. 부인네들은 더욱 그러하여서, 그 태도와 그 언어와 그 복식과 그 거처하며 또한 모두가 발끝에서 머리끝까지가 마치 잠을 자다가 꾀꼬리 소리를 듣고 취한 후에 복숭아나무를 감상하는 것과 같음이 있으니, 곧 사람이 시의 재료를 갖춘 것으로는 부인네들보다 풍부한 것이 없다.
안타깝도다! 비록 그 묘함과 또한 풍부하다 할지라도, 하여금 온당한 것으로 하게끔 한다면 마치 봉황의 연못을 빙빙 날아다니며 노닐며 생황으로부터 나와서 커다란 종에 드는 셈이니 곧 어느 겨를에 이에 이르겠는가? 또한 마치 푸른 산에 오래도록 깃들여 살면서 잔나비와 술을 따르고 학에 화답함과 같으니 곧 어찌 족히 이에 미치겠는가?
또한 마치 마음을 다스리는 굴에 빠져들어 풍월을 희롱하며 읊는 것과 같으니 곧 어찌 달가움이 이에 미치겠으며, 또한 몸이 누룩과 먹에게 달아나 꽃과 버드나무를 즐기며 노래함과 같으니 곧 또한 어찌 능히 이에 미치겠는가? 지금이야 이 또한 그렇지 아니하고 저도 이도 그렇지 못하다. 그러나 그 시를 묻는다면 곧 꽃기운이 태평하고 빛나며 곤곤한 좋은 세상이요, 그 땅을 묻는다면, 곧 비단으로 수를 놓아 장안이 분분하고 어지러운 커다란 도회지요, 그 사람을 묻는다면, 곧 잠잠하고 민민한 한가로운 생애이지요.
낮에 나가 거리를 돌아다니면 곧 만나는 사람들이 남자가 아니면 여자이고 밤이 되어 집에 돌아와 책상을 대하고 보면 곧 펼쳐져 있는 것이 오직 책 몇 권이다. 그 마음이 근질근질함은 마치 수천 수백 마리의 이들이 내 몸의 간장 끝을 죄다 달리고 있는 것만 같으니 나 역시 위와 장이 뒤집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이가 나온 이후에야 이미 글이 지어졌으니, 곧 천지 만물의 사이에 그 묘함과 또한 풍부함을 버리고서 정의 진실됨이라는 것을 내가 어디에서 다시 찾겠는가?
어린 사람들이여! 그대는 들리는가? 들리지 않는가? 뜻하는 것은 국풍의 시인인 것이요, 국풍을 지을 때에 있는 것이다. 그 재주와 식견은 실로 나보다 만만배는 어질도다. 그럼으로써 그것을 만든 까닭으로써의 뜻은 곧 아마도 나와 더불어 서로 아주 멀지만은 않을 것임을 말하고자 함이다.
<原本>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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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어려움]
어떤 사람이, ‘이언 가운데 옷이나 음식, 그릇 등으로 사용된 것은 무릇 이름이 있는 것이건 이름이 없는 것이건 본래의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으니 허망할 따름이다. 뜻을 전달함에 향명과 부합하는 문자를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기만하는 것이며, 시골에만 갇혀 사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이는 그러하다. 그런즉 내가 이러한 조목을 범한 것은 오래되었다. 내가 나의 방에 있어서는 ‘악양루’나 ‘취옹정’이라 하지 않고서, 내가 지은 내 방의 이름으로 내 방을 부른다. 나는 15세에 관을 쓰고 비로서 ‘명’과 ‘자’를 두었는데, 나는 고인의 이름으로 나를 명하지 않았고, 고인의 자로 나의 자를 하지 않았다. 내 이름이 내 이름이고, 나의 자가 내 자이니 곧 이 조목을 범했으니 그 역시 오래되었음이라. 어찌 다만 나뿐이겠는가? 그대도 역시 그러하니, 그대는 어째서 황제의 성인 ‘희’씨나 진의 왕인 사씨, 당의 최씨나 노씨를 그대의 성으로 삼지 않고 어찌 감히 그대의 성을 갖는 것인가?”
그러자, 그 사람이 크게 비웃으며 말하기를,
“나는 사물의 이름을 말했는데, 그대는 도리어 사람을 윽박지르는 것인가?”
내가 말했다.
“사물의 이름을 말하는 것이라면 사물의 이름을 말하는 것은 매우 많다. 눈앞에 있는 물건의 이름을 청하여 말하는 것이라면, 저 풀로 짜서 깔도록 한 것은 옛날 사람이나 중국 사람은 곧 ‘석’이라 할 것이고, 나와 그대는 곧 ‘돗자리’이라 할 것이며, 저 나무를 시렁으로 하여 기름잔을 받쳐 놓은 것을 우리나라 사람들과 중국 사람들은 곧 ‘등경’이라 말하지만, 나와 더불어 그대는 곧 ‘광명’이라 말한다. 저 털을 묶어서 뾰족하게 한 것을 저들은 곧 ‘필’이라 하지만 나는 곧 ‘붓’이라 말하고, 저 닥나무를 찧어 희게 한 것을 저들은 곧 ‘지’라고 하지만 나는 곧 ‘종이’라고 한다.
저들은 저들이 이름 지은 것으로 하고, 나는 내가 이름 지은 것으로 이름하는 것이니, 나는 저들이 이름 지은 바가 과연 그 이름이 되는 것인지 내가 이름 지은 바가 과연 그 이름이 되는 것인지 아직 모르겠다. 그들이 말하는 ‘석’, ‘등경’이라는 것은 이미 반고 씨가 즉위하여 초기에 임금께서 이름을 달리 주신 것이 아니니 또한 본래의 이름이 아닌 것이다.
내가 ‘붓’이나 ‘종이’라고 말하는 것도 또한 저 나무와 털이 생길 때부터 대대로 물려받은 이름이 아니니, 곧 역시 그 이름이 아님이다. 그 이름 아닌 것이 됨은 곧 마찬가지인 셈이니 저들은 마땅히 저들이 이름한 바의 것을 이름하고 나는 마땅히 내가 이름 한 바의 것을 이름 함이니, 내 어찌 하필이면 내가 이름 지은 것을 버리고서 저들이 이름 지은 것을 따르겠는가?
옛날에 한 태수가 있었는데, 태수는 관리에게 저자에서 제수품을 사오라고 시켰다. 관리가 장부를 살피며 다 샀는데, 다만 하나 ‘법유’라는 것이 있었는데 어떤 물건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에 기름을 파는 이에게 시험 삼아 물었더니 기름 파는 이가 말하기를
“나는 다만 ‘참기름’과 ‘등유’만을 팔 따름입니다‘라고 하면서 얼른 ‘법유’란 이름의 것은 없습니다”
고 하였다. 관리는 어쩔 수 없이 구하지 못하고 돌아왔으니 필경 법유가 등유 됨을 몰랐던 것이다. 이는 태수의 잘못이지 관리나 기름상의 잘못이 아닌 것이다. 또 서울에 사는 어떤 사람이 친한 시골 친구를 초대하며 말하기를
“바야흐로 지금 서울의 온갖 곳에 ‘청포’라는 것이 널려 있으니, 서울에 오면 그것으로 친구에게 실컷 대접하겠네”
하여 친구는 그것을 기이한 떡일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튿날이 지나서 서울 친구를 찾아갔더니, 그 집 주인이 많은 ‘녹두부’를 차리고는 대접하였다. ‘녹두부’는 세상의 이른바 ‘묵’이라는 것이었다. 시골 친구는 돌아와 성을 내며 아내에게 말하기를,
“오늘 모가가 나를 속였다. ‘청포’라는 것을 나는 비록 어떻게 생긴 떡인지 알지 못했지만 그는 이미 내가 가는 것을 허락한 까닭에 갔는데, 내가 다다르자 다만 묵만을 대접하면서 ‘청포’는 차리지 않았다”
며 오랫동안 오히려 화만 내며 끝까지 청포가 묵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하니, 곧 이는 서울 사람의 잘못이지 시골 친구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시인들 가운데 기름을 사지 않고 청포를 먹지 않는 사람이 그 몇 사람이 되는가? 시냇가에 푸른 깃이 매우 상서로운 새가 있어 그 이름을 ‘철작’이라고 하니, 이내 말하기를
“긴 대나무 우거진 촌가에 비취새가 우는구나”
라고 하면 곧 월나라의 공물인데 어찌 조선국의 촌가가 되겠는가? 골짜기 안에는 새가 있어 밤이 되면 반드시 슬프게 우는데 그 이름하여 말하기를 ‘접동’이라 하니, 이내 말하기를
“이 땅의 두견새 소리 차마 들을 수 없구나”
라 하니 곧 파촉의 혼백이 어찌 조선국의 땅이 되겠는가? 비슷해도 모두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나라 사람들이 복식과 기명에 있어서 무릇 몇 가지 물건이라도 그 부르는 바의 명칭으로 이름하니, 세 살 먹은 어린아이도 오히려 깨닫는다. 그러나 그 나머지는 붓을 잡고 종이를 마주하여 몇 자와 몇 건을 기록하고자 하면 곧 이미 좌우를 둘러보면서 곁에 있는 사람에게 물으니 어떤 사물의 마땅한 어떤 이름을 모르는 것이니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안타깝도다! 내가 그 뜻을 알 수 있으니 저들이 향명이라고 여기는 것은 시골에서의 이름이니, 내가 다만 입으로 부를 수는 있지만, 붓으로 쓸 수는 없음을 갖추어 말함이니, 나는 아직도 알 수 없다. 신라가 나라를 세우고 부름에 있어서, 어째서 ‘경’이라고 하지 않고서 ‘서나벌’이라고 했는지? 왕의 이름을 부름에 있어서도 어째서 ‘치문’이라 하지 않고서 ‘니사금’이라 하였는가? 또 그 성을 칭함에 있어서도 어째서 ‘포’라고 말하지 않고 ‘박’이라고 했단 말인가? 어찌 김부식은 그것을 잃어버리고서 쓸 줄은 몰랐었단 말인가!
또한 한나라 때의 군가나 비속하다는 『금병매』가 그 가사와 곡조를 평이하고 순조롭게 하며, 그 말을 아름답게 하여 어찌 후세의 다른 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쉽게 깨우칠 수 있게끔 함이 아니겠는가? 어찌 매와 마가 속임을 좋아하겠으며, 봉주에 시골의 폐쇄성이 있어서 그러하겠는가?
안타깝도다! 그 사물들을 명명하게 한 까닭으로 모두 ‘석’이니 ‘등’이니 ‘필’이니 ‘지’니 하며 필히 마땅한 그 사물인지라, 곧 나 또한 마땅히 포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남을 쫓아서 마치 이기는 데만 힘쓰는 사람처럼 오로지 향명만을 강요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푸른 깃을 가리켜 ‘비취’라고 한다거나, 처량한 울음소리를 듣고서 ‘두견새’라고 한다면 이는 곧 나의 손이 둔해지고 내 혀가 말을 더듬게 된 상황일지라도, 언문으로 된 시를 지을 것이며, 반드시 법유와 청포를 사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어찌하겠는가? 향명을 만들지 못함을 가히 한탄하는 바이다. 창제 주황이 이미 나를 위하여 별도로 글을 만들어 준 것도 아니요, 단군 선인과 기자왕 또한 일찍이 글로써 말을 가르치지 아니하였으니 곧 마음에 들지 않는 우리말에도 혹 문자는 있으되 아직 이름이 없는 것이라면, 그것으로 이름을 지을 수 있는 것이니, 곧 내 어찌 외람되게 이를 만들지 않겠는가? 이는 내가 반드시 우리말로 하고자 하는 까닭이다.
나는 이미 촌스러운데 내 어찌 기만하겠는가? 또한 내가 이미 교활하여 그대도 이미 나를 교활하다고 말하였으니 곧 내가 청컨대, 교활함을 피하지 말고서 크게 한번 말씀해 보시오. 언제나 『강희자전』을 보면, ‘륵’ 자를 싣고서, ‘조선 종실의 이름이다’고 말한다. 또 ‘답’ 자가 있는데, ‘고려인들이 물로 메운 밭을 지칭하는 것이다’고 말하고 있다. 더욱이, 『장주악부』에서는 거의가 우리나라의 속어를 칭하고 있는데, 그대가 어찌 알겠는가? 훗날, 중원 땅에 내가 이름 지은 사물의 명칭에 대한 기록을 두루 채집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가 집주하기를 ‘이는 조선의 동금자가 말한 것이다’고 할 것이다. 우습도다!
<原本> 생략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