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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년 만에 개방 무등산(인왕봉 1,187m)
2023-10-23(넷째 월요일)
57년 만에 다 열렸다 무등산(無等山) 인왕봉 정상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 화순군, 담양군의 경계에 있는 산.
영산강(榮山江)의 발원지로 작설차(雀舌茶)와 수박으로 유명하다.
높이는 1,187미터이다.
갈때 교통편 : 무궁화 서대전역(06:13분) → 광주(08:50분)
버스 : 광주역(동)에서 1187번을 타고, 종점인 무등산(원효사) 하차.
올 때 교통편 : ITX 광주역(18:46분) → 서대전역(21:00분)
버스 : 증심사 02번 급행 좌석버스로 광주 역하 차.
산행코스 : 원효사주차장 → 무등산옛길 → 제철유적지 → 목교 → 서석대 → 인왕봉 →
서석대 → 입석대 → 장불재 → 중봉 → 중머리재 → 당산나무 →
증심사 → 증심교 → 증심탐방지원센터.
※ 트랭글을 깜빡 잊고 목교에서 실행시킴.
산행거리 소요시간 : 약 12km / 약 6시간
사진 청마(靑馬)
광주광역시 무등산이 사고를 쳤다. 서석대까지만 오갔던 무등산에 무려 57년 만에 인왕봉과 지왕봉이 열린 것이다.
광주의 진산이자 호남정맥의 중심인 무등산은 우리나라 21번째 국립공원이다. 해발 1187m. 광주의 정기를 품은 탓에 일찍이 광주의 옛 이름(무진주(武珍州)·무주(武州))처럼 무진악(武珍岳) 또는 무악(武岳)으로 불린 명산이다. 산 정상은 천왕봉·지왕봉·인왕봉 등 3개의 암봉으로 이뤄져 있다. 산 마니아들은 '정상 3대'라고 부른다. 정상을 중심으로 여러 곳에 규봉, 입석대, 서석대 등의 이름난 기암괴석이 포진한다. 터가 좋기에 사찰도 많다. 증심사, 원효사, 약사사 등 유명 사찰이 자리 잡고 있다.
57년간 암봉 3개 중 유일하게 밟을 수 있던 곳이 천왕봉이다. 나머지 지왕봉과 인왕봉은 2011년부터 연 1~2회 정도만 지정된 군사도로로만 오를 수 있었던 상황. 하지만 이게 뚫린 게 올해 9월 23일부터다. 광주의 진산인 무등산은 가을이면 단풍이 물들고 장불재, 백마능선의 억새풀이 필 때가 골든타임이다. 때마침 단풍과 억새를 즐기는 시기인 올 10월부터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셈이다.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는 서석대와 입석대 주상절리다. 철원과 제주도에서 볼 수 있었던 화산암의 멋진 주상절리를 무등산 중턱에서 본다니. 세계유네스코 지질공원으로 2018년 4월 공식 등재된 것도 신기하리만큼 우뚝 솟아 있는 특이한 지형 덕이다.
지리학자조차 독특한 지형과 자연경관을 이루고 있어 마치 하늘로 치솟는 돌기둥은 바다에 있는 주상절리를 산 정상에 옮겨 놓은 것처럼 신기하고 장엄하다고 입을 모은다. 심지어 무등산 주장절리는 독특함까지 지닌다. 수직절리와 수평절리의 발달이 현저한데 특히 수직절리의 발달이 특별하다는 것.
무등산 인왕봉과 지왕봉에 오르려면 서석대를 꼭 거쳐간다(다른 구간은 미오픈). 서석대까지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다. 자신에게 맞는 코스를 입맛대로 선택하면 된다. 자세한 루트는 무등산국립공원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무등산 원효사를 들어가는 버스는 1187번 한노선뿐
무등산 천왕봉 높이와 동일한 1187번 버스뿐이다..
광주역(동)에서 원효사 주차장까지
약 50여분걸려 도착을 하고, 광주역 전부터 버스는 이미 만석을 이루고..
버스에서 내려 무등산쉼터에서 산행준비를 한다
원효사(元曉寺)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다. 신라 지증왕 또는 법흥왕 때 창건되었다는 설과 문무왕대에 원효국사가 이전부터 있던 암자를 개축한 뒤 머무르면서 원효사·원효암·원효당이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다. 또한 고려 충숙왕 때 화엄종의 한 승려가 이곳에 절을 짓고 원효대사의 이름을 따서 원효암이라 했다고도 한다.
그 뒤 정유재란으로 완전히 소실되었던 것을 1609년(광해군 1) 증심사(證心寺)를 중창한 석경(釋經)이 건물들을 다시 세우고 천왕문을 건립했다. 1636년(인조 14)에는 신원(信元) 대사가 중수했고, 이듬해 9월에는 왕견(王堅) 대사가 32불을 조성하여 안치했다. 1685년(숙종 11)에는 신옥(信玉)과 정식(淨式)이 지붕을 고쳤으며, 1789년(정조 13)에는 회운(會雲)이 선방(禪房)을 중창한 후 1802년(순조 2)에 법당을 다시 지었다. 1831년과 1847년(헌종 13)에는 내원(乃圓)과 의관(義寬)이 각각 중수했으며 1927년에는 원담(圓潭) 대사가 계속 중수하여 대가람을 이루었다.
6·25 전쟁으로 완전히 소실되었으나 1954~60년에 걸쳐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명부전·칠성각·요사채 등이 있다. 1980년 5월 대웅전 중창불사(重創佛事) 때 금동불상을 비롯하여 소조불상군·토기·와당·철불두상·고려자기 등 시대가 다른 각종 유물이 140여 점 출토되었다. 또한 절 주변에는 고려시대 부도(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호)를 비롯하여 조선 중기의 회운당부도와 원효대사부도 등이 있다.
무등산은 열손가락안에 꼽힐 정도로 다녀봤는데,
원효사는 한번도 들려 본적이없다. 그만큼 마음이 들떠 있어서 그런것 같다.
다음에는 꼭 원효사를 둘러볼것이다.
일주문만 담아보고,
쉼터 마당앞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소방차가 올라가는 것을 봤는데
목교에서 내려가는것을 다시 본 소방차다.
이곳 무등산 옛길을 따라 올라간다
금곡동제철유적(金谷洞製鐵遺蹟)
‘금곡(金谷)’이라는 지명이 ‘쇳골’을 의미하고 있으며, 유적 주위에 건물지의 기단부와 수많은 철재(鐵滓)가 남아 있어 일찍부터 유적의 존재 가능성이 알려져 왔었다. 이 유적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덕령(金德齡)의 의병활동과 관련된 무기제조창으로 알려졌다. 1992년국립광주박물관과 한신대학교박물관에 의해 조사되어, 조선시대의 제철방식과 철기제조기술에 관한 여러 가지 자료를 제공해주었다. 유적은 무등산 정상에서 서북쪽으로 뻗은 능선의 북사면으로 해발 약 475m의 고지에 위치한다. 이 일대는 산화철(酸化鐵)이 농집되어 있는 미문상화강암이 관입암으로 넓게 분포하고 있어, 이 암석을 모암으로 해서 생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토양 내의 사철을 충분히 채취할 수 있는 지역이다. 또한 무등산 내에서 제철연료용의 목탄도 풍부하게 확보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제철로 지점의 발굴에서는 출토된 대형 노벽편(爐壁片)의 계측을 통해 절두원추형(截頭圓錐形)인 제철로의 형태를 밝힐 수 있었다. 노(爐)의 직경은 저부 50cm, 상부 35cm로 추정되었다. 송풍시설은 1개였던 것으로 보이며, 단면 방형 또는 원형의 송풍관이 2개였고, 그 삽입간격이 3∼4cm였다. 또한 제철폐기물이 퇴적된 층위 위에서 정련로와 단조시설(단조로와 단조대석)이 발견되었고, 노저재(爐底滓)와 단조박편(鍛造剝片)들이 검출되어 단조철기의 제작도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한 작업장 내에서 제철, 정련, 단조철기제작이라는 일련의 공정을 보여주는 유구가 일괄 확인되어 15∼16세기 제철 및 철기제조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준 것이다. 유물 중에는 노벽편(爐壁片)과 유출재(流出滓), 노저재(爐底滓) 등 제철시설과 관련된 것 외에도 철촉(鐵鏃), 추형철기(錐形鐵器), 장식못 등 철제유물과 도자기류·기와류가 다수 출토되었다.
추락주의라는 표지판에서 조망바위에서 바라보는
중봉과 TV송신소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바위에 서면 천왕봉과 서석대가 한눈에 들어오고
장불재에 있는 송신탑
조망바위에서 올려다본 인왕봉
올려다본 서석대 주상절리
내려다본 중봉 억새길 TV송신탑
주상절리는 용암이 식을 때 수축되어 생기는 절리 중에 단면의 형태가 오각형이나 육각형의 기둥모양이다. 무등산은 백악기에 화산활동으로 솟은 용암이 식으면서 만들어진 살아있는 자연사 박물관이다. 아래편에서부터 공룡의 등뼈를 닮은 다양한 주상절리대를 만날 수 있다. 서석대는 육지에서 가장 큰 주상절리대로 길옆의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높이 30m, 너비 1∼2m의 돌기둥이 병풍처럼 길게 늘어서있어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노을이 질 때 수정처럼 강한 빛을 낸다고 해 '서석의 수정병풍'이라 불리기도 한다.
천왕봉 일대는 군부대가 주둔하는데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허용된 구간 외에는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광주의 기상 이곳에서 발원되다"라고 쓰여 있는 서석대(천연기념물 제465호) 표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기고 주변을 둘러본다. 높이 1100m의 서석대는 사방이 탁 트여 조망이 좋다.
염치불구하고 사진을 부탁해 한장 담는다..
57년 만에 개방된 인왕봉을 담아본다
그동안 철조망이
쳐져있어 들어가지도 못했었는데, 녹슬은 철조망도 담아보고..
여기서 인원 제한을 하는 곳이다.
아마 300명이 넘으면 이곳 통제소에서 못들어가게 막는가보다.
인왕봉으로
오르며 바라본 서석대 정상이 멀리 보인다
아마 오늘 소방훈련을 하는 날인가보다.
산을 오르는 내내 헬기소리가 나더니 119헬기다
서석대 정상
부근에는 햇볕에 억새가 눈이부시다
난생 처음 인왕봉에 올랐다
아직 정상석은 없고, 어느분이 정성껏 만들은 임시 정상석 역활을 하고있다.
부대 방향으로는 높은 장벽을 새우고,
장벽에는 옛 사진들을 부착해놓았다
소방헬기가 왔다갔다 하고있고, ㅎㅎ
인왕봉정상 모습 ↓
인왕봉을 밟아보고,
다시 서석대정상에서 사진을 여러컷 담았는데, 사진이 다 엉망이라 다버리고 그중 하나건져 올려본다
장불재와 통신탑
서석대에서 자연 돌길을 따라 내려가면 높이 10m의 주상절리대가 옆으로 길게 누운 승천암까지 사방으로 시야가 트인다. 이무기와 사슴, 스님에 얽힌 전설이 전해오는 승천암에서 앞을 바라보면 백마의 잔등 모양 지형 위 억새의 모습이 백마의 갈기를 닮았다는 백마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규모가 작은 주상절리대를 구경하고 아래로 내려가면 입석대가 가까운 곳에 있다.
무등산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입석대가 만든 풍경이다. 해발 950m 지점에 위치한 입석대는 높이 20∼30m, 너비 1.5m 안팎의 돌기둥 40여개로 이뤄진 주상절리대다. 마치 웅장한 그리스 신전처럼 석수장이가 큰 돌을 다듬어 포개놓은 모습이다. 이곳은 가뭄이나 질병이 심할 때 지방 관리들이 하늘의 도움을 얻기 위해서 제를 지내던 제천단이었다.
입석대에서 KBS와 KT의 기지국이 있는
장불재로 내려선 후 점심(김밥)을 먹는다.
백마능선의 낙타봉이 봉긋하게 보인다
장불재에서
바라본 서석대와 입석대 모습
광주역에는 먹거리집이 없어서 버스타는 곳을 알아놓고 광주역 옆에서 김밥을 사서 이곳에서 먹었는데,
원효사 쉼터에 먹거리가 많고, 김밥도 판매를 한다. 다음에 오면 여기서 준비를 해서 올라가야겠다.
오랜만에 중봉을 만나러 ..
중봉 억새길이 멋지다
조금전에 올랐던 인왕봉도 담아본다
중봉 정상석도 보이구..
조망을 즐기는 분을
배경이 넘 좋아서 담아봅니다
중머리재도 보이고
증심사(證心寺)
현존하는 당우로는 1989년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오백전(五百殿)과 대웅전 · 지장전(地藏殿) · 비로전(毘盧殿) · 적묵당(寂默堂) · 종각 · 일주문 · 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오백 전을 제외한 건물들은 최근에 지어진 것이다.
오백 전은 대웅전 뒤에 있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조선 초기에 지어진 강진 무위사(無爲寺)의 극락전과 같은 계통의 건축양식을 보이고 있다. 전내의 오백나한상은 1443년의 중창 때 김발이 조성한 것이라고 전해 오는데, 전국적으로 보기 드문 불상이다. 오백전 옆에는 높이 205㎝의 석불 1구가 있는데, 고려시대(10세기경) 작품으로 추정되는 석조보살입상으로 1989년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비로전 안에 안치된 높이 90㎝ 정도의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은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 철불은 본래 광산군 서방면 동계리에 있던 것을 1934년에 옮겨온 것이다.
이밖에도 문화재로는 증심사 창건 때 만들었다는 1972년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삼층석탑, 고려 초기의 석탑으로 1933년의 보수 때 탑 내에서 금동석가여래입상과 금동보살 입상 등이 나왔던 오 층 석탑, 조선 중기의 것으로 보이는 칠 층 석탑 등이 있다. 특히, 오 층 석탑에서 발견된 금동석가여래입상과 석조보살입상은 국보로 지정되었으나 한국전쟁 때 분실되어 전하지 않는다.
이 절 입구의 왼쪽 산록에는 약 3만여 평의 차밭이 있다. 이 차밭은 원래 증심사에서 공양을 위하여 가꾸어왔던 것이나,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이 경영하였고 광복 후에는 허백련(許百鍊)이 인수하여 고유의 차를 재배하였다. 1984년 절 주변이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무등산 최대의 사찰인 증심사는 송광사의 말사로 신라 때의 고승 철감선사 도윤이 세운 사찰이다. 경내에는 대웅전과 적묵당, 비로전, 오백전 등의 당우와 철조비로사나불좌상(보물 제131호), 3층·5층·7층 석탑 등이 있다.
화장실에 들려 땀으로
범벅이가된 모습을 깔끔하게 가다듬고 하산을 한다
무등산은 무돌뫼(무진악), 무당산, 무덤산, 무정산, 서석산 등의 별칭을 갖고 있다. 무진악이란 무돌의 이 두음으로 신라 때부터 쓰인 명칭이다. 무돌의 뜻은 무지개를 뿜는 돌이란 뜻이다. 무등산이란 명칭은 서석산과 함께 고려 때부터 불린 이름으로, 비할 데 없이 높은 산 또는 등급을 매길 수 없는 산이란 뜻이다. 무등산에는 수많은 볼거리가 많이 있는데, 어떤 것은 멀리서도 바라볼 수 있도록 우뚝 솟아있는 것도 있지만, 어떤 것은 가까이 가서야 볼 수 있는 것도 있다. 무등산은 오르기에 가파르지 않다. 그래서 휴일이면 무등산의 경승을 즐기려는 인파가 끊이지 않으며 남녀노소 누구나 간편한 옷차림으로 산을 찾는다. 볼만한 풍경이 있는 구경거리는 서석대, 입석대, 세인봉, 규봉, 원효계곡, 용추계곡, 지공너덜, 덕산너덜 등이 있다. 전망을 즐기려면 중머리재, 장불재, 동화사터, 장원봉 등이 있다. 이 중 화순 쪽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입석대, 규봉, 지공너덜, 장불재, 백마능선, 규봉암에서의 동복호 조망 등이 있다.
* 무등산의 구성
1) 새인봉 임금의 옥새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인괘봉이라고도 한다. 또 천제 등을 향해 엎드려 있으므로 사인을 닮았다 하여 사인암이라고도 한다.
2) 서석대 동쪽에서 서쪽을 향해 줄지어 서 있다. 저녁노을이 들 때 햇살에 반사되어 수정처럼 빛나기 때문에 서석을 수정병풍이라고도 했다고 전한다. 무등산을 서석산이라 부른 것은 이 서석대의 돌 경치에서 연유한 것이다. 서석대의 병풍바위는 맑은 날 광주 시가지에서도 그 수려함을 바라볼 수 있다.
3) 입석대 석축으로 된 단을 오르면, 5~6 각형 또는 7~8 각형으로 된 돌기둥이 반달같이 둘러서 있는데 이를 입석대라 부른다. 이런 절경은 다른 산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랜 세월의 풍상을 겪어 온 입석대는 석수장이가 먹줄을 퉁겨 세운 듯, 하늘에 닿을세라 조심스럽게 늘어서 있는 모습이 우람하기만 하다. 옛날에는 이곳에 입석암이 있었고 주변에는 불사의사, 염불암 등의 암자들이 있었다.
4) 규봉 규봉을 보지 않고 무등산을 보았다고 말하지 말라 할 정도로, 한 폭의 한국화를 대하듯, 신들이 옥을 깎아 놓은 듯 무등산에서 가장 절경이 빼어난 곳 이 바로 이곳이다. 여기서 멀리 바라보면 동복댐의 물이 손에 잡힐 듯 눈에 선하다. 원래 규봉이란 절 입구에 우뚝 솟은 세 개의 돌기둥이 마치 임금 앞에 나갈 때 신하가 들고 있는 홀 같이 생겨서 이를 한자로 취하여 규봉이라 한 것이다. 이 바위를 또 삼존석이라 부르는데 여래존 석, 관음존 석, 미륵존석으로 불리며 도선국사가 명명했다고 전한다. 또 규봉 십 대가 있는데 광석대, 송하대, 풍혈대, 장추대, 청학대, 송광대, 능엄대, 법화대, 설법대, 은신대 등이 그것이다. 규봉에는 두 바위 사이로 길이 나 있는데,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어 문바위라 한다. 이곳에는 김덕령장군이 문바위에서 화순 동 면 청궁마을 살바 위까지 화살을 쏘고 백마가 먼저 도착하는지를 시험하였다가 화살을 찾지 못하고 백마가 늦었다 하여 백마의 목을 치니 그제야 화살이 날아와 바위에 꽂혔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무등의 단풍은 규봉의 것을 제일로 친다.
5) 지공너덜 장불재에서 규봉 쪽으로 가다 보면 바위무리 바다를 만날 수 있다. 이 너덜경은 지공대사가 법력으로 수많은 돌들을 깔아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무등산의 대표적인 너덜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는 천연석굴 은신대가 있는데 보조국사가 좌선수도 했다 하여 보조석굴이라고도 한다.
6) 장불재 광주시와 화순군의 경계가 되는 능선 고개로 해발 990m의 고갯길이다. 규봉과 입석대, 서석대로 가는 유일한 등산로이다. 이전에 동복, 이서 사람들이 광주를 오갈 때 지나던 고갯마루이다. 정상을 향해 왼편에 서석대, 오른편이 입석대이고, 이서면 쪽으로 능선을 따라 돌면 지공너덜과 규봉에 다다른다.
7) 백마능선 장불재에서 방송시설이 있는 쪽으로 펼쳐진 능선인데 가을이면 억새의 흰 손이 바람에 흩날릴 때, 마치 백마의 갈기처럼 보인다. 장불재에서 이어지는 고산초원지대이기도 하다.
8) 중머리재 증심사에서 지정 등산로를 따라 동쪽으로 약 3㎞ 올라가면 대피소가 있다. 이곳에서부터 가파른 고갯길이 나오는데 이곳이 중머리재이다. 산 위에 올라가서 편안한 능선이 이어져 있어 사람들이 휴식하기에 적당하다. 이곳을 통하여 더 올라가면 중불재로 가고 이어 입석대, 규봉을 갈 수 있다.
무등산으로 가는 버스
증심사 - 광주역 (02번)
광주역에서 탈 때
광주역(동) - 원효사 (1187번)
보시느라 수고하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