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미생물) 05. 미생물이 하는 일
인간 미생물군 유전체 프로젝트는 전 세계의 많은 실험실에서 행해지는 여러 연구와 더불어 우리의 건강과 행복이 몸속의 미생물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미생물과 몸을 공유함으로써 이득을 보는 것은 인간도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따라서 인심을 써서 미생물에게 거주를 허락하는 수준으로는 충분치 않다. 적극적으로 보살피고 독려해야 한다. 이러한 의식의 변화가 DNA 염기서열 분석 기술 및 무균 쥐 연구와 힘을 합쳐 과학계에 혁명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인체는 안팎으로 지구처럼 다양한 풍경을 가진 미생물 서식지를 형성한다. 지구 생태계가 온갖 식물과 동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미생물 또한 매우 다양하다. 인간의 몸은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아주 정교한 관(tube) 또는 파이프에 비유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몸의 한쪽 끝에서 들어간 음식물이 관을 통과해 다른 쪽 끝으로 나오는 구조라는 말이다. 관의 구조를 생각하면 관의 안쪽 역시 바깥이나 다름없다. 관 안쪽의 표면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외부 환경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피부는 여러 겹의 보호막을 형성해 바깥 미생물의 침입이나 해로운 물질로부터 신체를 보호한다. 마찬가지로 몸을 관통하는 소화관의 세포 역시 바깥으로부터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 관 형태의 인체 구조상 우리의 진정한 ‘속(inside)’은 소화관이 아니라 피부와 소화관으로 둘러싸인 세포 조직과 기관, 근육과 뼈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인간의 표면을 이루는 것은 피부만이 아니다. 고랑과 주름이 나타나는 굽고 꼬인 내부의 관 역시 인체의 겉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보면 폐나 질(vagina), 요로조차도 모두 외부에 노출된 몸의 표면이다. 그런데 안이든 바깥이든 이 모든 표면을 미생물이 차지하고 있다. 미생물의 영역을 부동산에 비유한다면 각각의 땅은 가치가 천차만별이다. 소장이나 대장처럼 영양분이 풍부한 노른자 땅에는 인구밀도가 높은 도심이 형성되는 반면, 시골이나 척박한 환경에 해당하는 폐나 위와 같은 지역은 거주자가 많지 않다. 인간 미생물군 유전체 프로젝트는 인체의 안팎을 이루는 표면 중에서 18개 부위를 선정해 수백 명의 지원자의 미생물을 채취, 분석하여 각각의 특성을 규명해보고자 시작되었다.
18, 19세기는 탐험가들이 수집하여 포름알데하이드 용액으로 처리한 뒤 장식장에 진열해놓은 수많은 새와 포유류 박제들로 상징되는 신종(新種) 발견의 황금시대였다. 인간 미생물군 유전체 프로젝트 첫 5년간 분자생물학자들은 18, 19세기가 남긴 생명공학적 반향(反響)을 보았다. 인체는 과학계에 완전히 새로운 미생물 신종과 변종의 보고(寶庫)였다. 게다가 이 새로운 미생물은 기껏해야 한두 명의 지원자 몸에서 발견된 것들이다. 인간이 지니는 미생물 세트는 모두에게 똑같이 복제되어 장착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공통으로 발견되는 박테리아는 거의 없다. 결국, 개인은 지문만큼이나 고유한 미생물 집단을 소유한다는 말이다.
우리 몸속 거주자들의 구체적 신상명세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분류체계의 상위 레벨에서 보면 모두 비슷한 미생물을 보유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내 대장에 서식하는 박테리아는 내 손에 사는 박테리아보다는 내 친구의 대장에 사는 박테리아와 더 비슷할 것이다. 게다가 사람마다 고유한 미생물 조성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수행하는 기능은 대체로 구별하기 어렵다. 내가 가진 박테리아 A가 내 친구의 박테리아 B와 종은 다르지만 수행하는 일은 같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팔뚝의 건조하고 차가운 대평원에서 사타구니의 습하고 따뜻한 숲을 거쳐 산소가 부족한 위(胃) 속의 척박한 산성 황무지까지, 인체의 각 부위는 완전히 다른 생태 환경을 형성하며 주어진 환경에 최고로 적합하게 진화한 미생물들의 터전이 되어왔다. 심지어 한 부위에서조차 그 위치에 따라 서식하는 종이 다르다.
예를 들어 총 2㎡에 이르는 사람의 피부는 아메리카 대륙의 지형만큼이나 다양한 생태계를 축소한 형태로 보여준다. 따라서 얼굴이나 등처럼 피지가 풍부한 지역을 차지한 놈들은 팔꿈치처럼 건조하고 거친 환경에 사는 놈들과는 판이하다. 이는 마치 파나마의 열대우림과 그랜드캐니언의 반사막지대가 완벽하게 다른 생태계를 지닌 것과 같다. 얼굴이나 등에는 프로피오니박테륨(Propionibacterium) 속에 속하는 종이 주로 사는데 이들은 촘촘하게 배열된 땀구멍에서 방출된 지방을 먹고 산다. 팔꿈치나 팔뚝에는 훨씬 다양한 종들이 거주한다. 배꼽과 겨드랑이, 사타구니같이 습한 지역에는 코리네박테륨(Corynebacterium)과 포도상구균(Staphylococcus)에 속한 종들이 사는데 이들은 습도가 높은 곳을 좋아하며 땀 속에 들어 있는 질소를 먹고 산다.
이렇게 미생물들이 형성하는 제2의 피부는 인간의 피부 세포와 더불어 인체의 진정한 내부를 지키기 위해 이중 보호막을 형성하고, 피부 세포가 만들어 놓은 외부와의 차단막을 더욱더 튼튼하게 한다. 사악한 의도를 가지고 침투한 외부 박테리아들은 철통같은 국경도시의 방어를 뚫고 상륙의 발판을 마련하려고 애쓰지만, 그들의 시도는 피부 미생물이 뿜어내는 화학 무기의 맹공격에 맞닥뜨리게 된다.
입안의 연한 피부조직은 특히나 외부 박테리아의 침투에 취약하다. 음식물 속에 몰래 숨어서 잠입하거나 공기 중에 떠다니며 기회만 엿보는 침입자들로 늘 북적거리기 때문이다. 인간 미생물군 유전체 프로젝트 연구원들은 지원자들의 입안에서 샘플을 채취할 때 한 군데서만 채취하지 않고 조금씩 다른 부위에서 총 아홉 개의 샘플을 채취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아홉 개의 집단은 서로 겨우 몇 cm 떨어졌지만, 확연히 다른 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분석 결과 입속의 미생물은 대부분 연쇄상구균(Streptococcus)에 속하는 박테리아 종과 그 밖의 몇몇 다른 그룹으로 이루어진 총 800종의 박테리아로 구성되어 있었다.
연쇄상구균은 세균성 인두염으로부터 괴사성 근막염까지 다양한 질병을 일으키는 박테리아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악명 높은 몇 종을 제외하면 연쇄상구균속의 많은 종은 착한 박테리아다. 이들은 몸으로 들어가는 이 취약한 관문을 지키며 몹쓸 침입자들을 몰아내는 역할을 한다. 샘플을 채취한 구역 사이의 미세한 거리 차이가 우리에게는 별 의미 없는 작은 숫자에 불과하지만, 미생물들에게는 마치 북스코틀랜드의 평야와 남프랑스의 산악지대만큼이나 다른 지형과 기후를 가진 땅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렇다면 입에서 콧구멍까지의 기후 변화를 상상해 보자. 끈적거리는 침이 고인 울퉁불퉁한 암반 지대가 점액과 먼지로 뒤덮인 코털의 숲으로 바뀌는 것을 떠올릴 수 있다. 폐로 들어가는 입구인 콧구멍에는 프로피오니박테륨, 포도상구균, 코리네박테륨, 모락셀라(Moraxella) 같은 큰 분류균을 포함하여 약 900종에 달하는 다양한 박테리아 종이 살고 있다.
목을 통과하여 위(胃)로 내려가면 위쪽에서 보여주었던 종 다양성은 급격히 감소한다. 산도 높은 척박한 위의 환경은 음식물과 함께 쏟아져 내려온 미생물 대부분을 제거한다. 다만 어떤 사람들의 위장에 상주하는 종이 하나 있는데 바로 인체에 축복과 저주를 동시에 가져온 헬리코박터 파일로리(Helicobacter pylori)다. 이제 위를 떠나 미생물의 밀도와 다양성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소장에서 음식물은 소화효소에 의해 빠르게 분해되어 혈관으로 흡수된다. 물론 여기에도 미생물은 있다. 이 7m에 달하는 긴 소화관이 시작하는 지점에서 1mm당 1만 마리로 출발한 미생물은 관이 끝나는 지점에서 1mm당 1,000만 마리로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난다. 바로 여기서부터 대장이 시작된다.
충수가 제공하는 미생물 보호구역의 바깥에는 인구가 바글거리는 미생물 대도시가 나타난다. 이곳이 미생물을 따라 떠나는 인체 여행의 백미인 맹장이다. 충수가 붙어 있는 테니스공 모양의 이 기관은 적어도 4,000개 이상의 종으로 구성된 수십 조(兆)의 박테리아가 사는 미생물 라이프의 메카다. 소장을 통과하며 소화되고 남은 음식물이 이 대장 박테리아들에 의해 최대로 활용된다. 소장에서 소화하지 못해 내려보낸 질긴 섬유질은 소화의 제2라운드에서 미생물들에 의해 철저하게 분해될 것이다.
대장 길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결장은 우리 몸통의 오른쪽에서 시작하여 위쪽으로 올라가 갈비뼈 아래를 가로지른 뒤 몸통의 왼쪽 지점에서 다시 아래로 내려간다. 그 과정에서 결장은 1조, 풀어 쓰면 1,000,000,000,000마리의 미생물들에게 살 집을 제공한다. 이곳에서 그들은 우리가 먹은 음식물을 에너지로 바꾸고 그 과정에서 배출되는 노폐물을 결장 내벽의 세포가 흡수하게 한다. 인체를 이루는 세포 대부분은 혈액으로 운반되는 당(糖)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결장 세포의 주된 에너지원은 바로 이 미생물의 노폐물이다. 따라서 미생물이 없으면 결장 세포들은 시들어 죽을 것이다. 반대로 습지처럼 따뜻하고 축축하며 부분적으로 산소가 전혀 없는 결장의 환경은 미생물 거주자에게 매일매일의 끼니를 해결해줄 뿐만 아니라 기근이 찾아와도 걱정이 없는 영양분 풍부한 점액질층을 제공한다.
인간 미생물군 유전체 프로젝트에 사용할 장내 미생물 샘플을 채취하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지원자들의 장을 절개해야 하지만, 좀 더 현실적인 방법은 대변에서 발견되는 미생물의 DNA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것이다. 우리가 먹은 음식물은 장을 통과하면서 인체의 소화기관과 미생물에 의해 대부분 소화되고 흡수되어 최종적으로 소량만이 남아 몸 밖으로 배출된다. 대변은 사실 우리가 먹은 음식물 찌꺼기라기보다는 대부분이 박테리아다. 대변 습윤 질량의 약 75%가 살아있거나 죽은 박테리아이며 식물성 섬유질은 약 17%를 차지한다.
사람의 장에는 언제나 1.5kg 정도의 박테리아가 들어있는데 이는 간(肝)과 거의 비슷한 무게다. 박테리아 한 개체의 수명은 겨우 며칠, 또는 몇 주에 불과하다. 대변에서 발견되는 4,000종의 박테리아는 다른 신체 부위에 사는 박테리아를 모두 합친 것보다 인체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려준다. 장에 사는 박테리아, 즉 장내 미생물은 인간의 건강 상태나 식이 상태를 알려주는 표징이 된다. 또한, 사회 집단의 전반적인 건강 상태나 사회 구성원 개인의 건강에 대한 지표로도 이용될 수 있다. 지금까지 대변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된 박테리아 분류군은 의간균(Bacteroides)이다. 하지만 장 속의 박테리아는 사람이 먹는 것을 똑같이 섭취하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그 구성은 천차만별이다.
물론 우리가 소화하고 남은 찌꺼기를 이용한다고는 하지만, 장내 미생물은 단순히 먹다 남은 것을 먹는 하이에나 같은 청소 동물이 아니다. 진화를 통해 획득하기엔 오랜 시간이 걸리는 기능이 미생물을 통해 아웃소싱(outsourcing)된다는 측면에서, 인간 역시 미생물을 이용한다. 뇌 기능에 필수적인 비타민 B12의 경우 클렙시엘라(Klebsiella)가 대신해서 합성해주는데 우리가 무엇 하러 힘들여 이를 합성하는 유전자를 가질 필요가 있겠는가? 그리고 의간균이 있는데 왜 굳이 장벽을 형성하는 유전자가 따로 필요하겠는가. 미생물의 유전자를 이용하는 것은 새로운 유전자를 진화시키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고 쉬운 방법이다. 그러나 곧 알게 되겠지만 미생물의 역할은 비타민 합성 수준 그 이상이다.
앨러나 콜렌(저), 조은영(역). 미생물의 과학, 10% HUMAN. 시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