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간장 / 송종숙
그때까지 나는 씨간장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씨암탉, 씨감자같이 ‘씨’자를 어두에 붙인 낱말들이 많지만. 무심코 TV 채널을 돌리다 씨간장의 존재를 알게 됐다. 그날 방송에 특별출연한 종갓집 여인 덕이었다. 그녀는 명문가 종부답게 조신한 말씨로 씨간장을 소개해주었다. 그녀는 서슴없이 저고리의 긴소매를 걷어붙이더니 손수 가져온 장항아리 속에 성큼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그 속에서 웬 얼음덩어리같이 보이는 거무스름한 자색의 조각을 조심스럽게 건져냈다. 얼핏 보면 꼭 커다란 연수정원석 같아 보이는데, 자디잔 유리 부스러기가 엉겨 붙은 형상이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어느 집이나 대대로 묵혀온 오래된 간장이 있다면 그것이 그 집의 씨간장이라고 했다. 또 그 간장독 바닥에 엉겨 붙은 소금 덩어리는 씨간장의 결정체로 그건 소금버캐라고 부른다 했다. 씨간장을 비로소 알게 됐지만 나는 그 소금버캐를 보며 뭔가 연상되기도 했다. 소금버캐는 장독 속에서 오랜 세월 켜켜이 쌓여 소금 산이 되었는데 그 모양이 마치 한 많은 여인의 가슴 속에 품은 응어리 같지 않나 싶었다.
으응, 그거구나!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비록 유서 깊은 대단한 집안은 아니지만, 우리 집 뒤뜰 장독 안에도 제법 소금덩이가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매년 장을 담그다보면 묵은장이 생기기 마련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독 안에 바다 속 암초처럼 삐쭉삐쭉 돋아난 게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씨간장’과 ‘소금버캐’로 부른다는 사실을 몰랐을 뿐이다. 그러기는커녕, 남몰래 그 소금덩이를 퍼내어 슬그머니 수채 구멍에 쏟아버린 적도 있었다. 혹시 내가 간장을 너무 짜게 담지 않았나, 하고 남들이 볼 새라 슬쩍 내버렸던 것이다.
방송에 나온 종갓집의 장맛은 어떤 맛일까, 나는 그 자부심의 정체가 괜히 궁금해졌다. 아쉬운 대로 우리 집 장독의 소금버캐를 꺼내서 처음으로 혀끝에 살짝 찍어 맛봤다. 흐음! 맛이 조금 다른 것 같았다. 분명, 갓 담근 청장이나 웬만큼 익은 진장 맛이 아닌 것 같았다. 선입관인지, 내 둔한 혀끝에도 어딘가 미감이 깔끔하면서 고급스러웠다. 그냥 단순한 짠맛이 아니고 뒷맛에 달큼하고 은근한 미련이 담겨있는 깊은 맛이었다.
그날 이후, 내 나름대로 간장에 대한 인식이 좀 달라졌나 싶다. 이따금 나는 일없이 방송에 나왔던 그 종갓집처럼 고풍스러운 어느 고가의 장독대를 상상해보기도 했다. 틀림없이 그 나직한 돌담 안, 장독대 뒤편, 키 큰 항아리에는 언제나 묵은 간장이 새카맣게 남실대고 있을 것이다. 장독대 주변에선 필시 골방 냄새 비슷한 묵은내가 날 것이고. 고향을 기억나게 하는 냄새이리라. 검푸른 이끼 입은 기왓골에도 한 맺힌 여인네의 남모를 애환이 서려있음 직도하다. 어느 시대이건 여인들에게 장독대는 그녀들의 삶의 무대가 아니던가.
지나간 봉건시대는 여인들에게 참으로 고달프고 힘든 세월이었다 한다. 그러나 그토록 맵고도 독한 시집살이 법도 속에서도 시어머니나 며느리를 단단하게 지켜냈던 것은 씨간장을 도맡은 그들이 남모르게 간직한 자긍심과 막중한 사명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씨간장은 그들의 가슴 아픈 세월과 그토록 오래 닦은 공덕으로 순화된 맛이 됐을 것이다.
씨간장 방송을 본지도 한참 세월이 흘러버렸다. 그동안 나는 우리 집 씨간장에 대해서 조금 더 관심이 가게 된 편이다. 이따금 뒤꼍으로 돌아가서 전보다 자주 장독 뚜껑을 열어보게 된다. 햇볕 밝은 날은 장독 안에서 까만 간장 거울이 고즈넉하게 내 얼굴을 맞이해준다. 익숙하고 친근한 냄새로 훅, 끼쳐온다. 짭짜름하고 달큼하다. 잠시 옛 어르신들과의 교감도 된다. 검고 깊은 간장 속에서 은밀한 묵언을 전수받는 느낌이다. 그동안 나는 대대로 물려받은 자기 보물도 몰라보고 수입품이니 무슨 메이커니 하는 당찮은 허우대만 우러러본 것이다.
지금은 글로벌 시대이고 모든 정보가 인터넷에 공개되고 있다. 국적 없는 퓨전 음식들도 판치고 있다. 씨간장처럼 자기 정체성을 지키며 장독대에 눌러앉은 존재가 얼마나 될까? 모든 가치가 표류하는 세상에서 순수하게 한길을 지키고 계승하는 것은 참으로 외롭고 고달픈 일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랜 세월 대를 이어가며 집안을 이끌고 가문을 지켜가는 주부의 몫 역시 씨간장이라 할 수 있겠다.
사람들은 대부분 새로운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오래된 친구가 더 미덥고 진귀한 술도 묵을수록 향이 깊다고 한다. 씨간장도 묵은장이다. 장독대의 터줏대감이고 맛이 그윽이 깊어서 음식 맛에 격을 입혀준다. 그렇다고 묵은 맛을 누구나 좋아하는 건 아니다. 취향 때문이다. 아이들은 짜고 진한 씨간장 맛보다 슴슴하고 달달한 양조간장을 좋아한다. 그러나 나이 든 우리 세대는 묵은 맛이 간 맞다. 삶의 고락에 찌든 그 맛이라. 식구들 체취처럼 익숙하고 자연스런, 조상의 숨결도 깃든 애틋한 그 맛이 바로 우리가 살아온 인생이다. 씨간장은 그런 맛이 아닐까.
장독대에 독그릇들이 키 순서대로 나란히 늘어서 있다. 그중 뒤편 가운데쯤에 우뚝하고 방방한 씨간장 독이 떡, 버티고 있다. 둥실한 몸매가 태아를 품은 임부처럼 의젓하다. 그 모습이 마치 우리 어머니의 모습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 간장도 생명의 모체이리라. 우리의 건강하고 올바른 식생활을 위해서 그 소중한 입맛을 살리는 간장! 바로 그게 씨간장의 위상일 것이다. 장독대를 바라보니 마음이 흐뭇해진다. 볕이 눈부시니 간장독이나 활짝 열어놔야겠다.
[송종숙] 수필가. 2010년《한국수필》등단.
전북문협 행촌수필 정읍수필
* 수필집 《안아당의 오후》 《보라색이 잘 어울리네요》
송종숙 수필가는 인생 절정의 시기에 서울에서 생활하다가 남편의 퇴임 후, 태(胎) 자리 정읍으로 귀향해 종가의 씨간장을 지키며 살고 계시다.
흘러가는 강물이 거슬러 올라 발원지로 방향을 돌릴 수 없듯, 우리의 인생도 앞으로만 나아간다. 생의 시원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작가가 고향 집에서 느끼는 자연의 은혜는 무궁무진하리라. 수정같이 맑은 공기와 별빛만으로도 넉넉할 고향 생가 '안아당'과 별채 '산정원'에서는 별의 기척도 들리지 않을까? 노부부가 함께 윤이 나도록 매만진 고가(古家)와 정원, 글로 엮어내는 전원에 깃든 삶은 넉넉하고 평화로운 한 폭 진경산수화였다.
장독 두껑을 연 간장거울에 어린 푸른 하늘과 평화로운 얼굴이 아른아른 눈에 선하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