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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
이 홍사
화려하고
고고하고
도도하고
능소화에 대한 수식어였다.
시인인 서린 누나가 나름대로 정리한, 능소화의 설명이다. 시인이 그렇다면 틀림이 없다. 반론의 여지가 없고 이설을 달면 안 된다는 말이다. 아니, 어쩌면 서린 누나가 능소화를 노래한 시어의 한 부분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시를 내가 미처 읽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서린 누나가 카톡으로 보내준 사진을 보고 처음에는 그게 무슨 꽃인지 몰랐다. 워낙 꽃이나 식물에 젬병인지라 꽃이 참 예쁘게 피었다고만 생각했지, 꽃 이름을 모르고 있었다. 지독히 자학하는 문학청년 시절을 보냈지만, 아무래도 그렇게 사물을 흘려 보아서 나는 시인이 되지 못하고 실패한 모양이다. 친구들은 나를 두고 가끔 실패한 시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시인을 동경한다.
누나의 카톡은 참으로 오랜만에 받았다.
아무리 반갑다고 하지만, 카톡으로 전갈이 왔는데 불쑥 전화하는 건 예의에 어긋난다, 카톡으로 보낼 말과 통화로 할 언어는 따로 있다. 그래서 나는 카톡으로 받은 문자는 카톡으로 답장을 한다. 카톡으로 대화하는 느낌과 전화로 통화하는 행위는 와닿는 기분과 풍기는 뉘앙스가 분명히 다르다. 그럴 때 이게 무슨 꽃이냐고 질문으로 답장을 보내면 대화를 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생긴다. 그러면 무슨 꽃이라는 답장과 함께 한 번 더 카톡으로 대화할 구실이 분명히 생긴다는 걸 나는 되바라지게 알고 있다. 조금 더 대화하고 싶은 심정으로 이게 무슨 꽃이냐고 질문형의 카톡을 보냈다. 예상 적중, 답장은 바로 날아왔다.
능소화야, 화려하고 고고하고 도도한,
카톡으로 받은 답장의 전문이었다. 이건 능소화를 설명하는 게 아니라 시인 자신을 설명하고 있는 듯했다. 서린 누나는 그랬다. 화려하고 고고하고 도도했다. 누나는 아침에 일어나 담장을 타고 활짝 핀 능소화를 보고 불현듯, 나를 떠올렸다고 했다. 그게 무슨 이유인지는 설명할 길이 없다고 했다. 다시 말하지만, 누나는 시인이다. 구름을 뒤져서 방울토마토를 따는 시인이다. 그녀, 아니 누나라고 정정하자. 그녀라는 지칭은 시인인 누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누나의 첫 시집 표제작이, 구름을 뒤져 방울토마토를 땄지, 라는 시였다. 나는 아직도 그 시의 몇 구절을 외고 있다. 그 시를 읽으면 입안에서 방울토마토를 굴리다가 깨무는 상큼함을 느끼게 된다.
이건 능소화를 설명하는 게 아니라 누나 자신을 설명하는 거 아니우. 화려하고 고고하고 도도하다니, 이건 누나 자신을 얘기하는 것 같은데?
자음과 모음을 조립해서 그런 문장을 만들어 카톡으로 다시 답장을 날렸다.
ㅎ
웃음 상징하는 자음 하나로 카톡은 마무리되었다.
시인을 못 뵌 지 상당히 오래되었다. 멀리서 사는 게 아니다. 바로 강 건너 장천에 살고 있는데, 촌집을 사서 전원주택으로 꾸며 형님과 살고 있다.
형님과 누나가 산다?
무슨 족보가 그래? 근친상간인가? 무슨 소리, 아니다. 누나의 남편이니 당연히 매형이나 자형이라고 불러야 마땅하지만, 그 형님은 고향 선배다. 시인인 누나 역시 고향 선배이며 학교 선배다. 그러니 형님과도 잘 알고 지내며 누나와도 친하다. 둘은 한 살 차이인데 대구에 유학 가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연애를 걸었던 모양이다. 누나 역시 중학교로 따지면 형님의 일 년 후배다. 어쩌면 중학 시절부터 이미 점을 찍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시절부터 전원주택에 들어간 지금까지 부부라는 이름으로 붙어 다녔다.
누나의 전원주택, 그곳은 누나 시의 산실이다.
시를 보면 감이 온다.
그 시의 출생지가 어디인지. 어느 산 부인과에서 시의 탯줄을 끊었는지. 감이 단박에 온다. 시인의 그 전원주택에는 텃밭이 있고 화단이 있으며 토담도 조금 살려둔 모양이다.
시의 산실, 언제 집구경을 하러 간다고, 간다고 했는데 여태 가지 못했다. 마음만 먹으면 차로 겨우 삼십 분이 걸리는 거리인데 무엇이 바쁜지 한번 가기가 이토록 어렵다. 아무래도 성의가 부족해서 그렇겠지. 아무튼, 전원주택으로 들어가고부터 누나의 시는 날개를 달았다.
카톡을 받은 시간은 저녁 답이었다.
시인은 아침에 능소화를 보고 나를 떠올렸다고 했지만, 카톡은 한참이나 굽다가 저녁 담에 보낸 것이다. 그 시간 나는 규칙적인 생활을 선배를 만나러 가던 참이었다. 오늘 약속 장소는 형곡동의 해물탕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었다. 오늘은 뭘 드시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선배는 바로 해물탕이라고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나는 해물탕이 별로다. 이건 밥반찬으로는 너무 세고 안주로는 너무 약하다. 해물탕은 반찬도 아니고 안주도 아니다. 그래도 선배의 입맛을 존중하느라 약속을 했다. 선배가 선택한 안주에 대해 번번이 딴지를 걸면 규칙적인 생활을 하기 어렵다. 나에게 있어서 규칙적인 생활이란 바로 저녁에 선배와 소주를 마시는 일이다. 많이는 못 마신다. 딱 한 병이다. 한 병을 마시기 위해 선배를 매일 만나러 나온다. 아내가 어디에 나가느냐고 물으면 퉁명스레 한 마디 흘린다.
사람이란 자고로,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지 오래 살지.
그 말을 흘리고 구두를 신는다. 아내는 곱지 않은 시선에 뒤통수가 근질거리지만, 나는 절대로 돌아보는 일이 없다. 집을 나서는 시간은 거의 일정하다. 시내버스 시간을 알기에 꼭 그 시간에 나선다, 그 시간은 옆집 계량공사 한 사장이 가게 문을 닫을 시간이라 꼭 마주친다. 한 사장은 늘 묻는다.
어디 가십니까?
퇴근합니다.
아니, 여기가 집이고 사무실이 여기인데 어디로 퇴근을 한다는 말씀입니까?
좌우간 퇴근합니다.
매일 그 말을 하니 이젠 질문이 달라졌다. 오늘도 퇴근하십니까? 이렇게 질문이 달라졌는데, 내 대답의 각도도 살짝, 변했다. 바람피우러 나갑니다. 오늘도 그 말을 듣고 그 대답을 하고 나왔다. 내가 사는 소도시에는 아직 지하철이 없다. 아직이라는 말은 잘못되었다. 지하철이 생길 도시가 아니다. 공단이 바람 빠진 풍성처럼 쭈그러지고, 인구가 자꾸 빠져나가는 공단 도시인데 지하철은 아마도 백 년 안에는 힘들 것이다. 지하철은 기대하지 말고 그냥 시내버스에 만족하는 것이 정신 건강상 이로울 것이다. 시내버스를 한 번 갈아타고 형곡동 입구에 내려 복개천을 따라 약속 장소로 걷고 있는데 누나의 카톡이 왔다.
그때 나는 이상의 날개를 찬찬히 씹으며 걷고 있었다. 1930년대, 일제의 수탈이 극에 달했고 민초의 생활은 궁핍하기 짝이 없던 시대였다. 그 당시 시대적 배경으로 미루어 보면, 어떻게 그런 문체를 구성할 수가 있었을까? 이상은 정말로 소설 날개의 첫머리에 나오는, 박제(剝製)가 되어 버린 천재였다. 이상의 날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다. 그 소설의 앞에 나오는 몇 문장은 지금도 외고 있다. 스물일곱, 이상은 너무 일찍 죽었다. 그가 좀 더 오래 살았다면 한국의 소설계는 획을 달리 했을 것이다, 이상은 천재였다. 그러나 나는 천재가 아니다. 그래서 이상의 소설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이상의 본명은 김혜경이다. 날개를 쓸 당시의 나이가 고작 스물여섯이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나이에 요절했다.
뭐 그런 생각을 하며 걷다가 카톡을 받았고, 카톡을 받은 다음에는 이상은 머리에서 사라지고 능소화에 대해 생각했다.
능소화의 꽃말은 뭘까?
갑자기 그게 궁금했다.
조금 걷다가 복개천 주차장 옆에 설치된 벤치에 앉았다. 약속 시간이 그리 넉넉한 게 아니다. 선배가 좀 기다리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벤치에 앉아 담배를 물고 느긋하게 핸드폰으로 인터넷에 들어가 능소화의 꽃말을 찾았다.
능소화 꽃말은 여성과 명예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꽃말을 보면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여성이 좋아하는 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 꽃은 분명 서린 누나의 꽃이다. 서린이라는 필명 대신에 능소화라고 불러도 상관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가만! 그게 아니다.
능소화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닉네임으로 많이 쓰고 있다. 내가 아는 능소화도 있다. 대구에서 소설을 쓰는 무명의 여류소설가다. 그녀는 서글서글한 눈매를 가졌고 그녀가 쓰는 소설의 특징이라면 섬세하고 사물을 구체적 묘사한다. 너무 섬세해서 읽는 사람으로서는 좀 지겹기도 하지만, 두 달에 한 번씩 그녀와 대여섯이 모여서 합평을 한다. 그녀가 바로 능소화라는 닉네임을 가졌다. 그녀는 합평 전에 자신이 쓴 소설을 메일로 보내온다. 메일에 보낸 이의 닉네임이 바로 능소화다. 왜 그녀는 능소화라는 닉네임을 쓰고 있을까? 여성으로서 명예를 소중히 생각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능소화가 정열적인 꽃이라서? 모르겠다. 다음 달에 모임이 있다. 그때 가서 잊지 말고 꼭 물어보아야 하겠다. 갑자기 그게 상당히 궁금하다. 그녀는 왜 능소화라는 닉네임을 쓰고 있을까? 그녀의 전화번호는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지만 그런 일로 전화를 하기는 좀 그렇다.
능소화가 어떤 꽃인지 나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카톡으로 보내준 사진을 다시 보아도 마찬가지다. 색깔이 주황색 꽃인데 정확히 이거다 하고 알지 못한다. 흔한 꽃이라니 어디선가 보고 관심 없이 지나쳤겠지만, 다시 보더라도 그게 능소화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그냥 지나칠 것이다.
이런 기회에 꽃이나 식물에는 관심이 없지만, 능소화는 꼭 알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오늘 만나는 선배는 능소화를 알 것이다. 식물에 관심이 많고 집에 난을 엄청나게 많이 키우는 사람이니 능소화쯤은 말로 설명할 수는 없을지라도 실물을 보면 알 것이다. 선배에게 그 꽃에 대해서, 물어보아야 하겠다고 마음먹고 일어섰다.
조금 늦게 도착했는가.
식당에 들어가니 선배가 이미 해물탕을 시켜놓고 불을 피워서 해물탕이 막 끓는 참이었다. 먹음직스럽지 않았다. 이걸 언제까지 다 먹지? 이런 생각이 불쑥 들었다. 밥식이 누님이 없으니, 입이 고생이라는 생각도 들었으며 그 누님이 아련하게 그리워지기까지 했다.
우리의 규칙적인 생활은 늘 밥식이 누님의 식당에서 이루어진다. 약속 장소를 정하는 게 참으로 간단하다. 전화해서, ‘전과 동’이라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는다. 내가 선배에게 전화해도 마찬가지이고, 선배가 내게 전화해도 마찬가지다. 전과 동, 어제와 같다는 말인데, 일곱 시에 밥식이 식당에서 만나자는 우리만의 은어다. 그렇게 약속하면, 밥식이 식당 누님은 우리가 먹을 안주를 만든다. 물론 밥식이 누님에게도 전화를 넣어, 전과 동이라고 하면 일곱 시에 간다는 뜻으로 알고 준비를 한다. 우리가 먹을 안주는 매일 달라진다. 안주를 준비하는, 밥식이 누님은 손맛이 매콤해서 항상 안주가 기대된다. 그런 밥식이 누님이 없으니 입이 고생이다. 약속 장소를 정하는데 고민스러우면서 시간도 더 걸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오늘처럼 안주의 맛이 검증되지 않은 점이 불편하다. 밥식이 누님은 열흘간 터키로 여행을 떠났는데 오늘 밤이나 내일쯤 돌아온다고 했다. 누님이 여행을 떠나기 이틀 전에도 단식체험한다고, 들어가는 바람에 또 문을 닫았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근 보름간 약속 장소를 전과 동이라는 은어를 쓰지 못하고 낯선 집, 맛이 검증되지 않은 집을 찾아다니느라 고생이 아닌 고생을 했다.
끓는 해물탕을 보니 문득 누님이 그립다. 누님이 그리운 게 아니라 누님의 손맛이 그리운 것이다.
내가 앉을 자리에는 이미 내가 정량인 소주 한 병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선배는 항상 막걸리다. 내가 소주를 한 병 먹을 동안 선배는 막걸리를 두 병 마신다. 그게 우리의 규칙적인 생활이다. 술자리가 끝나도록 능소화에 관해서 물어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술자리가 끝나고 나서야 알았다. 같이 술을 마시면 선배는 늘 말을 하는, 발제자의 입장에 서고 나는 묵묵히 듣는 편이다.
오늘의 주제는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마음이 편한 세상이 어디 있겠노?
그런 말로 입을 열기 시작한 선배는 거침없는 설을 풀기 시작했다.
작년인가,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이 일어났다. 해양수산부의 공무원이었던 그는 배에서 근무하다가 실족하여 북한의 영해도 떠밀려 간 것이다. 북괴는 그를 발견하여 총을 쏘고 시신을 불태우는 만행을 벌였지만, 우리 정부는 그 사건에 관한 입장을 발표하지 않고 월북한 공무원이라고 발표를 했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었다.
선배는 그 사건을 두고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이 아니라 공무원 월북 조작 사건이라고 명명했다. 당시의 상황을 미루어 짐작하건대, 공무원 월북 조작 사건이 맞다. 지난 정부에 평화 쇼를 하느라고, 항의라고는 못 하고 얼버무리고 말았는데 세상이 달라지자 진상 규명이라는 이름으로 그 사건이 쟁점화되었다. 온갖 언론 매체에서 그 점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고, 급기야 선배의 입에서도, 해물탕을 먹으면서도 그게 쟁점화되었다. 그러는 통에 듣기만 하던 나는, 능소화에 관해서 묻는다는 걸 깜빡 잊었다.
선배는 그 사건에 이어 또 탈북한 어민 두 명을 북송한 데 대해서 침을 튀겼다. 그것도 국민, 모두가 의아해하며 이해를 못 하는 지난 정부의 작태였다. 선배의 말을 듣고 있으니 나도 은근히 부아가 일었다.
백성을 뭐 개돼지로 아나?
선배가 이야기 중간에 그런 쌍소리를 했는데 충분히 공감한다. 그것도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게 진상조사를 한다니 다행이다. 오늘은 안주보다 오가는 말의 주제가 얼큰했다.
종수에게 전화를 문자 메시지를 받은 건 선배와 규칙적인 생활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난 다음이었다.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었다. 버스를 타고서야 능소화에 관해서 선배에게 묻는다는 걸 잊고 핸드폰으로 능소화를 찾아보던 중이었다. 능소화를 핸드폰 화면의 작은 사진으로는 판독이 불능했다. 어디서 본 꽃인 것도 같고 생소한 꽃인 듯싶기도 했다. 이게 능소화란 말이지? 꽃을 확대해서 보고 느긋하게 종수가 보낸 메시지를 읽었다. 종수가 보낸 문자 메시지의 내용은, 메시지를 보는 즉시 강동병원 장례식장으로 속히 오라는 전갈이었다.
강동병원 장례식장?
무슨 일이지? 어느 친구가 부모상을 당했는가? 또, 밤샘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내 복장은 빈소를 찾기에 결례가 되지 않는, 적당한 복장인가?
그런 의문들이 두서없이 일었다. 우선 내 복장부터 훑어보았다.
검은색 티셔츠에 남색 여름 재킷, 청바지에 갈색 구두를 신었다. 아쉬운 대로 집에 들르지 않고 바로 가더라도 크게 결례가 되는 복장은 아니다.
종수는 고향 동기끼리 모은 계의 총무다. 회원은 열 명 남짓이라 회장이나 감사는 없고 총무가 모든 일을 다 하는 작은 모임이다. 일 년에 두 번, 계에서 돈을 모으면 결국에 돈 때문에 계가 깨진다는 판단 아래, 그날, 그날 정해서 회비를 내고 그날 다 먹고 마시는 모임이라 감사나 회장, 그런 게 필요 없는 모임이다. 종수가 근 십 년째 총무를 하고 있지만, 돈은 계산할 것도 없고, 큰일이 있으면 연락이나 하는 게 총무가 하는 일이다.
회원 간에 큰일을 당하면 부조는 그때. 그때 알아서 총무가 거두어서 단체로 부조한다. 십 년이 넘도록 총무를 하지만 누가 넘겨받을 생각도 없고 종수도 마다하지 않는다. 다른 계에서는 서로 총무를 안 하려고 다투다가 계에서 탈퇴하는 불상사까지 있다고 들었는데 우리 모임은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또 우리 모임의 특징이라면 집성촌에서 자란 탓에 전부가 같은 성씨에 같은 파다. 그러니 모이면 누구는 아저씨뻘이고 누구는 할아버지뻘이 되는 친구도 있다. 그래서 거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아재! 할배! 이런 식으로 항렬의 촌수를 부른다.
그런데 누구 부모가 숟가락은 놓은 거야?
한참 울다가 누가 죽었느냐고 묻는 이도 있다고 했는데 내가 꼭 그 꼴이었다. 정작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었다.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강동병원으로 간다면 시내 대구은행 앞까지 가서 버스를 갈아탈 이유가 없다. 거기까지 가면 택시비만 더 든다. 문자 메시지를 보고 다음 정류장에서 내렸다.
정류장에 내려서 종수에게 전화를 했다. 가더라도 어느 부모가 돌아가셨는지는 알아야지. 종수는 전화를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받았다.
형아가? 빈소에 도착했나?
녀석은 나를 두고 항상 형아라고 부른다. 같은 항렬인데 내가 생일이 열 달 정도 빠르다. 그러니 형이 되는 것이고 이름의 돌림자도 같이 쓴다.
아직이다. 이제 막 택시를 타려고 해.
종수는 대구에서 출발해서 오 분쯤 후에 병원에 도착할 거라고 했다. 누구와 누구는 병원에 도착했다는 전갈을 받았단다.
그런데 어느 어른이 또 숟가락을 놓았어?
그걸 모르고 전화한 거야?
응, 아무한테도 연락을 못 받았어.
내 말에 종수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건 전화지만 알 수가 있었다. 그리곤 잠시 뜸을 들이더니 소영이가 죽었다고 했다. 소영이? 소영이가 누구더라? 내가 그렇게 중얼거렸던가? 종수는, 병수 딸, 병수의 무남독녀 외동딸, 소영이 몰라? 좀 신경질적으로 전화기에 대고 고함을 쳤다. 죽은 이가 누구라는 걸 인지하는 순간 소름이 돋고 전율이 일었다.
그 애가 왜 죽어?
몰라, 하여튼 병원에서 만나서 얘기해.
전화는 그렇게 끊어졌다. 그 애가 왜 죽었을까? 대학을 졸업하고 작년인가 농협에 들어갔다고 병수가 친구들 불러서 술을 한잔 샀는데, 무슨 이런 일이 있지? 장난이었으면 좋겠다. 이런 일로 농담을 할 수가 없겠지만 정말 농담이기를 간절히 빈다. 술은 이미 다 깨서 정신은 말짱했다.
택시는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한참을 서서 기다리다가 한 정류장을 걸어서 시청 후문이 있는 쪽으로 갔다. 그곳에서 간신히 빈 차를 잡았다. 뒷좌석에 앉아서 목적지를 말하고 차창 밖을 이걸 어쩌나 생각하고 있는데 라디오를 작은 소리로 틀어놓고 있던 기사가 말을 걸었다.
이제 세상이 좀 바뀌겠지요?
나는 기사의 말을 잘랐다.
제가 뭘 좀 계산하고 있거든요.
정치 이야기를 할 참이었던 모양이다. 그게 싫어서 나는 택시를 잘 타지 않고 버스를 이용한다. 정치 이야기를 하다가 이견이 생기면 타고 가는 시간이 곤혹스럽기 짝이 없다. 택시를 꼭 타야 할 일이 있으면 정치에 대해서는 말문을 닫는다.
그 애가 왜 죽었을까?
교통사고?
무슨 일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병수는 늦은 나이에 아이를 하나 가졌다. 불임의 연속이라 마음고생을 많이 했던 병수인데 앞으로 살아갈 길이 걱정이다. 병수 아내는 자궁이 약하다고 들었다. 아내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자연 유산을 네 번이나 했다고 들었다. 어쩌다 아기가 들어서도 걱정이었다. 상상임신이 아닐까? 자연 유산이 되면 어떻게 하지? 그런 걱정에 끝에 불공을 드리러 다닌다는 소리를 아내에게 들었고, 인공수정인가, 시험관 아기인가? 그것을 해서 겨우 얻은 게 딸이다. 늦게 낳은 그 딸 하나로 끝이었다. 이제 길이 났으니 하나 더 낳으라는 말에 병수는, 팔자에 하나뿐이라고 하며 애써 미소를 짓곤 했다. 애타는 심정에 어딘가에 가서 점이라도 보았던 모양이다.
그런 병수가 딸을 잃었으니 이젠 무슨 낙으로 사나?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인간은 이렇게 비정하구나, 하는 것은 나에게서 느꼈다. 죽은 아이가 불쌍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살아있는 병수만 걱정하다니, 병수 아내는 나에게 아주머니뻘이 된다. 항렬이 한 단계 위다. 병수 아내는 더 심한 충격을 받겠지. 나 혼자 병원으로 가는 게 아니라 이럴 땐 아내를 불러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병수 아내에게 위로할 사람이 있을까?
그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전화기를 꺼내 아내의 번호를 꾹 눌렀다.
신호가 한참 가고 나서야 아내가 전화를 받았다.
초저녁잠이 많은 아내의 목소리에는 잠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이 시간에 왜?
예상대로다. 초저녁잠을 깨우면 아내의 신경질은 내가 감당하기에 언제나 힘겹다.
여보, 소영이가 죽었대.
뭐라구요? 소영이가 누군데?
아내는 분명히 잠이 덜 깬 것이다.
병수 딸 말이야, 지금 강동병원으로 가고 있는데, 당신 좀 씻고 퍼뜩, 오는 게 좋을 거 같아. 병수 마누라를 누가 위로 해주겠노? 그 아지매 미친다. 어쩌면 따라 죽을지 몰라.
그렇게 말하자 아내는 정신이 들었는가 보다. 상황을 설명하고 나서야 목소리가 고분고분해졌다.
이게 무슨 소린교? 어쩌다가?
나도 몰라! 택시 타고 병원으로 가는 중이야. 무슨 일인지는 몰라. 퍼뜩 좀 와!
아내는 알겠노라고 했고 뒷말을 듣지 않고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은 것도 모르고 나는 소리쳤다. 급하다고 과속하지 말고.
친구 자식이 죽었는데 문상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한 번도 이런 경우를 당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향을 사르데, 절은 하지 않고 묵념만 간단하게 하면 되는가? 잘 모르겠다. 어디 가서 꽃이라도 한 다발 사다가 주면 어떨까? 그러나 이 시간에 꽃가게가 문을 열고 있을까? 아무래도 가면 불편한 자리가 될 것이고 어쩌면 밤샘을 하고 내일이나 모레 장례를 치르는 것까지 보고 와야 할지도 모르겠다.
택시에서 내려 병원 후문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꽃이 피어 있었다. 무슨 꽃인지 모르겠지만 아파트단지 담벼락에 무수히 피어 있었다. 저 꽃이라도 주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미치자 나는 꽃을 꺾었다. 손에 닿는 데로 여러 송이를 꺾어 한 줌을 만들었다. 꽃줄기가 길지 않아 손에 쥐니 꽃만 보인다. 그래도 할 수 없다. 이거라도 주고 위안으로 삼아야지. 그런 생각을 하다가 꽃을 주는 게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위안으로 삼기 위함이 아닌가, 나는 참 이기적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더 깊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빈소에 들어서니 친구들이 벌써 대여섯이 도착해 있었다. 병수는 구석 자리에 퍼질러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저 친구한테 뭐라고 인사를 할까?
준비된 말이 없었다. 녀석에게로 다가가 손으로 어깨를 툭 치고 영정사진 앞으로 다가갔다. 병수가 풀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을 보니 비로소 슬펐다.
검은 리본이 달린 액자 속에는 해맑은 처녀가 웃고 있었다.
이런 게 비극이구나, 내가 느낀 바는 그것이었다. 영정사진 앞에 꽃을 얹어 놓고 향을 한 자루 피웠다. 조심스레 향로에 꽂은 다음 그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있으니 약간의 현기증이 일었다. 이름 모를 현기증.
병수는 퍼질러 앉은 채 게슴츠레한 눈으로 내가 하는 행동거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병수에게 뭐라고 할 말이 없다.
친구들이 앉은 테이블로 다가갔다.
아무래도 내 자리가 거기인 듯했다.
녀석들은 그 흔한 소주도 한 병이 없는 빈 상 앞에 앉아 한숨만 쉬고 있는 분위기였다. 여느 초상집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나가자. 어디 요 앞에 가서 목이나 축이고 오자. 적막을 깨고 좌중의 어느 녀석이 말했다. 모두 내가 오기를 기다렸던 모양이다. 그게 오늘의 행동 지침이었다.
그 말이 하달되자 모두 일어섰다.
장례식장 밖으로 나와 모두 시키지도 않았는데 둘러섰다. 가로등의 사각 지역 컴컴한 곳이었다.
어떻게 된 일이야? 교통사고야?
급하게 묻는 말에 한 녀석이, 날랐다고 힘없는 목소리를 뱉었다.
나르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재차 내가 물었다.
15층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나 봐.
순간 소름이 돋으며 섬찟했다.
왜? 왜 그런 짓을 해? 발칙한 것, 제 엄마 제 아빠가 저를 어떻게 키웠는데?
거기까지 얘기했을 때 가로등 밑에 아내가 들어서는 게 보였다. 아내가 가까이 다가오자 모두 인사라고 한마디씩 던지고 아내보고 들어가 보라고 했다. 아내는 냉큼 들어가지 않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물총 사건이지 뭐!
왜? 연애를, 뭐 잘못 걸은 거요?
이번에는 아내가 물고 늘어졌다.
그 사건에 대해서는 병태가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었다.
죽은 아이가 농협에 근무하면서 유부남을 알게 된 모양이다. 그 유부남과 깊은 관계에 도달했다는 말은 하지 않아도 다 알게 된다. 그게 걸렸던가 보다. 걸리면 사단이다.
누구에게?
한 녀석이 말을 물고 늘어졌다. 질뚝머리 없기는 뻔하지 않은가?
그 새끼 마누라지 누구야?
병태가 좀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였다.
그래서?
누군가 말의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그년이 농협에 와서 머리끄댕이를 잡고 난리를 한바탕 치고 한 가지 사실을 폭로했던가 봐.
그 사실은 바로 농협의 공금을 유용해서 그 자식에게 주었다는 사실이야. 얼만지는 모르지만, 거액이었던 모양이야. 농협이 발칵 뒤집혔겠지. 그게 바로 어제의 일이래. 오늘은 출근을 안 하고 집에 있었나 봐.
아내는 거기까지 듣고, 일단 들어가 볼게요. 그 말을 남기고 안으로 사라졌다.
야! 어디 가서 한잔하자.
대여섯은 구부정한 그림자를 밟고 후문으로 나섰다. 후문을 따라 아파트 뒤로 가면 상가에 술집이나 하다못해 통닭집이라도 있을 거다.
야, 너 아까 그 아이 빈소에 바친 능소화 여기서 꺾었지?
아파트 담장에 만개한 꽃을 가리키며 종수가 내 어깨를 툭, 쳤다.
그 꽃이, 아니 이 꽃이 능소화야?
능소화는 슬픈 꽃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여성 명예가 꽃말인데 아무래도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 슬픔, 나는 꽃이 만개한 담장 앞에 멈추어 섰다. 아무래도 서린 누나에게 카톡을 보내 슬픈 꽃이 능소화라고 말을 해주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런 참담한, 기분으로 한참을 능소화 앞에 서 있었다. 이제는 능소화를 잊지 않을 거다. 능소화를 보면 그 아이가 자꾸 떠오르면 어떻게 하지?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저만큼 멀어진, 스산한 그림자들이 소리쳤다.
야! 안 따라오고 뭐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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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간밤 비바람에 꽃잎이 무더기로 떨어지고
꽃진자리 빗물이 맺혀 뚝뚝 떨어지고
지면서까지 아름다운 꽃 능소화
그 슬픈 사연을 읽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