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자비로운 불길
창조주가 주신 약손
괴로운 기억들은 불사르고
아픈 부위는
가라앉혀 주나보다
아이들을 키우다
철없던 날들이
죄스러워 전화를 하면
어머닌 다 잊으시고
너희들
참 고마왔다
모두 착하게 커 주어서
얼마나 수월하게 길렀던지
하신다
아닌데 아닌데
어머니를 아프게 했는데
어머니는 우리와의 만남을
정리라도 하듯이
착하게 커줘서
고마웠다고 거듭 말씀하신다
세월 앞에 서면
어리석었던 지난 날들이
부끄러운데
어머니는 세월 속에서
고운 우리들만 보고 계신다.
- 유한나, <어머니의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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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여간의 치료를 마치고 지우와 아내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서울에서 지내는 내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며 격려해준 고마운 이들이 떠오릅니다. 그저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서울에서의 일정을 정리하며 내려오는 마지막 날 온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바로 엄마의 팔순을 기념하는 자리였습니다. 조촐하게 가족들만 모여 80 평생 당신의 삶을 녹여내며 가족들의 생을 살찌우셨던 엄마의 희생어린 사랑과 지금껏 자녀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심에 감사하고 축복하고 축하하는 따뜻한 시간이었습니다. 엄마라는 이름만 떠올려도 코끝이 시큰해집니다. 유난히도 우여곡절 많은 생을 살아오신 엄마가 이제는 마음 편히 살아가실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우리를 키워내시느라 엄마는 등이 굽었고, 머리카락은 하얗게 세었고, 주름은 깊어졌으며, 기력은 쇠하였습니다. 기름을 짜내듯 자신의 온 생애를 짜내어 자식들을 먹여 살리시느라 엄마는 한없이 짜그라드셨지요. 엄마의 지금의 모습은 온전한 사랑의 흔적입니다. 엄마는 여전히 엄마인지라 자녀들이 저마다 일가를 이루어 나름의 자리를 잡았음에도 온통 자식들, 손주들 걱정뿐이십니다. 그런 엄마의 얼굴에 오늘 환한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봄의 전령인 매화보다도 더 환하고 아름다운 꽃이 엄마 얼굴에 핀 웃음꽃입니다. 이 웃음꽃이 지지 않기를 빌고 또 빌었습니다.
유한나의 <어머니의 세월>을 음미해봅니다. 어쩜 우리 엄마와 이리도 같을까요? 자식들을 키우시며 얼마나 힘에 부치셨을까 싶지마는 그런 것 다 잊으시고는 “너희들 키우는데 큰 사고 없이 잘 자라주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단다” 하고 말씀하시곤 합니다. 온갖 고생 다 하시며 자식들을 키워낸 건 오롯이 당신의 몫이었건만 엄마는 이것마저 자식들의 공으로 돌려세우십니다. 시인이 고백하듯 “어머니는 세월 속에서 고운 우리들만 보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린 압니다. 당신이 기억하는 우리의 고운 모습은 당신이 남몰래 흘리신 희생의 눈물이 빚어낸 것임을...<2024.3.10.>
첫댓글 💌 세월이 약이어서, 세월이 망각제라서 그런 건 아닐 것입니다. 세상 모든 어머니들은 어떤 비바람, 눈보라 속에서도 햇살과 새봄을 보고 느끼고 바라고 지향하며 자식들을 키우고 돌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