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무량사
무량사 가자시네 이제 스물 몇 살의 기타 소리 같은 남자
무엇이든 약속할 수 있어 무엇이든 깨도 좋을 나이
겨자같이 싱싱한 처녀들의 봄에
십 년도 더 산 늙은 여자에게 무량사 가자시네
거기 가면 비로소 헤아릴 수 있는 게 있다며
늙은 여자 소녀처럼 벚꽃나무를 헤아리네
흰 벚꽃들 지지 마라, 차라리 얼른 져버려라, 아니,
아니 두 발목 다 가볍고 길게 넘어져라
금세 어둡고 추워질 봄밤의 약속을 내 모르랴
무량사 끝내 혼자 가네 좀 짧게 자른 머리를 차창에
기울이며 봄마다 피고 넘어지는 벚꽃과 발목들의 무량
거기 벌써 여러 번 다녀온 늙은 여자 혼자 가네
스물 몇 살의 처녀, 오십도 넘은 남자에게 무량사 가자
가면 헤아릴 수 있는 게 있다 재촉하던 날처럼
김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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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생각과 행동이 오락가락한다. 시간도 오락가락. 그러면서 조금은 어지러운 듯 환상을 만들어낸다. 연한 보랏빛이다.
아, 저 여자. 젊어서 한 차례, 누군가와 충남의 부여 산골에 있는 무량사란 절에 가본 일이 있었나 보다. 남한 제일의 토불(土佛)이 모셔진 절, 절 이름이 무량(無量)인 절.
도대체 무엇이 무량이란 말인가? 시간이 그렇단 말인가? 사랑이 그렇단 말인가? 인생이 그렇단 말인가? 결국은 그 여자 혼자서 무랑사 간다. 끝내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