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열폭풍...금년의 여름은 그렇게
거센 열기가 대지를 달구었다.
이글거리는 도시에서의 일상은 그래서 탈출구를 열지 않으면
가뿐 호흡으로 이내 지쳐버리기 알맞은 환경조건을 만들어 놓았다.
연일 폭우가 한반도를 물바다로 만들더니
곧이어 폭염과 열대야가
더욱 마음의 여유를 사라지게 하고,
무기력하게 마음의 이완을 강요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사람들은 판타지의 꿈을 꾼다.
우리나라의 여름과 왈츠의 빠르고 경쾌한 4분의 3박자
원무곡(圓舞曲)이 어울리기는 한 것일까?
그런 리듬이 그립다면 차라리 봄의 셀레임이나,
늦가을의 햇살에 변해가는 나뭇닢이
대지의 당김에 떨어져 내리는 그 포옹에나 어울릴 것을...
그녀를 만난 서막은 이렇다.
그 때 나는 열네살이었고, 그녀 또한 그랬다.
곤색 교복에 흰색 카라가 눈부셨던 그 시절의 인상은 단발머리에
종종 머리핀의 위치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자리이동을 하고,
여린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며 잘 웃었다는 것,
그녀가 다닌 초등학교 친구들 모임에 초대받아 갔다가
그날로 남자친구로 용인되어버린 말 한마디 또박또박 못하던
수줍던 소년이었던 나는,
그러나 그날 그녀의 집에 가보고는 그녀를 좋아하기로 맘먹었다.
그저 단촐한 앉은뱅이책상만 보고 그랬던 것일까...
나는 난생 처음 연애편지를 써서 그녀의 가방 안에 몰래 넣었다.
연애편지는 아마도 내가 좋아하던 바이런의 시에서 서두를 꺼냈을 것이고,
마지막은 윌리엄 워즈워드의
황금빛 수선화를 찾아 헤매는 사랑을 찾는 마음을 마무리로 차용했을 터이다.
무려 10장이 넘는 장문의 연애편지였으니 나의 문재(文才)는 아마도
그러한 연애편지 속에서 발전한 공로도 적지 않을 것이다.
며칠 뒤 내 가방을 열어보다가 꽃무늬 편지봉투를 발견해내곤
난생 처음 받아본 여학생의 편지에 잠이나 제대로 잘 수 있었던가...
그러나 내가 동갑내기 중에서는
다량의 독서와 수많은 시집에서 얻은 영감을 통해
꽤나 고급스런 글을 써낸다고 믿었는데
그녀의 편지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편지는 전혀 다른 세계를 내포하고 있었다.
비현실의 현실....
그녀의 편지에는 꽃이나 나무, 혹은 수많은 사물들이 화자로 등장했다.
코스모스와 대화를 나누는가 하면, 바람과도 통하고,
종종 집의 공간과도 자신의 정서를 주고받는다.
관찰력이 좋아서 사소한 사물에도 감정이입이 어색하지 않았고,
시선은 또한 산 너머 언덕너머 저쪽 어딘가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 뒤로 나의 글은 그녀의 판타지를 좆고 있었다.
나도 덩달아 수많은 사물들과 대화를 나누었으며,
그녀가 사랑하는 모든 사물들과 가까워지기를 갈망했다.
그러나 끝없이 또 다른 세계를 갈망하는 그녀의 눈빛은
내가 넘어갈 수 없는 피안의 그 어떤 그리움이 묻어 있었다.
후에야 나는 그녀의 그러한 현실일탈성이
그녀의 가정사와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되었지만,
유년의 그러한 비현실의 현실이라는 판타지는
지금도 나를 이끌고 있는 영적 여정의 주요한 모티프이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문예반 활동과 흥사단 서클 활동으로 시간을 보냈고,
수많은 여자후배들 속에서 중학교 때 인연들은 대부분 멀어져 갔다.
중학교적 친구를 교통사고로 잃기도 하고,
그녀가 우리 집에 놀러오기도 하고
나도 여전히 그녀의 집에도 놀러가곤 했지만
나는 점점 사춘기의 판타지에서 탈피해, 유신말기의 창작과 비평 같은
사상과 역사 속에서 무언가를 찾으려 했다.
낭만주의와 판타지는 회색이론 속에서 점점 사람관계도 바뀌어 놓았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대학 1학년 때쯤
그녀와 그녀의 중학교 때 친구 서넛이 설악산으로 여행을 갔다.
(어쨌든 그녀는 그때까지도 나를 주시했던것 같고,
이 대목으로 보아 그녀가 나를 더 좋아했다고 주장해보는 근거다^^)
아마도 모든 장비를 내가 준비하기로 했는데,
석유버너가 고장 나서 밥도 제대로 못해 먹고,
설악동 민박집은 유달리 추워서, 그녀와 친구들을 고생시켰던 같다.
양폭 쯤인가 등산을 마치고 강릉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같은 칸의 대학생들이 그녀에게 접근하면서
함께 포커를 치는 모습에 질투심이 일었던 나는
트럼프를 빼앗아 창밖으로 던지고는 시무룩히 돌아온 기억이 난다.
그날 이후로 마음이 상했던 나는 그렇게 연락을 끊고 소식도 전혀 알지 못한채
세월이 흘렀다.
7월25일...
경주교육문화회관에 도착했다고 전화가 왔다.
낮12시...햇살이 눈부셨다.
27년의 세월이 어색한지 사전에 여러차례 자연스러운 전화통화가 있었음에도
그녀는 서먹해 한다. 아마도 내 모습이 좀 늙었나...
일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경주시내 천마총 옆에
삼포쌈밥집으로 갔다. 서로가 어색해서 밥을 제대로 뜨지도 못했다.
다시 호텔로 돌아와서 커피숍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그때 출판사를 다니다 알게 된 대구 청년과 결혼했다고 한다.
금성출판사의 집안사람이었다는데, 스물넷에 결혼해
아들딸 하나씩을 둔 평범한 생활이었다고 한다.
그도 문학청년이었는데, 엘지그룹에 들어갔다가 부산으로 지방발령을 받아 갔으나
IMF당시 해고되었고, 그리 세상이치에 밝지 못해서 실업생활을 하다가
얼마 후에는 남편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판타지다. 생활의 번민과 여전히 직장일선에 서있어도
대화가 이어지면서 더욱 우리는 정신적 둥지였던 그 시절로 파고들었다.
그날 내가 해야 할 역할 때문에 더 이상 대화가 이어지기 힘들어
다음날 다시 만났다.
그날도 그런데 여유가 없어서 결국 두어시간 만에 헤어져야 했다.
그리곤 행사의 분주함속에서 그녀의 문자메세지에 답을 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나는 그렇게 매몰되었다. (이 상황은 마실이 잘 안다.)
전화도 못 받고 문자도 안 되자 그녀는 내가 전혀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단다.
달이 바뀌고 팔월의 한가운데,
지난주에 부산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
해운대 지나 바다가 고운 칠암에서 회를 먹고
서생가까이 간절곶 등대가 예쁜 카페 카리브에서 차를 마시며
재회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동안 많이 찾았다고 한다.
내가 있었다는 직장마다 수소문도 하고,
방송에도 사연을 보냈다고 했다.
그러다가 결국은 인터넷이 다시 연결해주었으니,
세상 인연은 판타지가 있다고 굳게 믿게 되었다.
차를 마시고 그녀는 바다를 걷자고 한다.
손이라도 잡아볼 수 수 있었지만,
앙코르와트 다녀오면서 사온
향수와 화장품을 선물하는 것으로 수다스럽게 옛날이야기를 이었다.
친구로서는 자연스럽고 좋은데,
밤바다에서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거니는 것은
몬드리안의 추상화처럼 명료한 액션이 되지 못하는 걸까...
송정바닷가에서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이다가
그녀의 딸랑구 전화 와서 엄마관리 모드로 들어간다...
그녀의 딸은 환갑 전에는 엄마 시집가면 안 된다구 그랬다나...
너의 생각은 어떠냐니까....말없이 웃기만 한다....
오히려 내 생각이 어떤지 묻는다.. 나도 웃는다.
웬만하면 나보고 장가를 가지, 무슨 인생의 깊은 소명이 있느냐구 한다...
대답이 궁색해진 나는 어색한 웃음으로
아무튼 그녀의 매니저가 되기로 했다.
서로 하릴없는 존재들이 걸릴 것 없는 유년의 추억과 결합된
순수함의 판타지로 어떤 연애편지를 쓰게 될지는
비현실의 현실을 얼마나 일치시킬지
왈츠의 템포에 몸을 맡겨 돌아가면서,
스스럼없이 생성되는 열정에 기대볼 일이다.
첫댓글 그녀도 매니저가 되어 주기를 혼괘이 수락했다면 잘 된거네.....
잠시동안 어린시절로 돌아가서 방긋이 웃어보았네........그녀와의 데이트 계속 되기를.....다음글도 기대할께요.
1, 칠월의 연애편지,, 2, 지난 여름날의 왈츠,, 3,.......4,......5.......6.........다음편 기다립니다
첫사랑. 부러운 단어.
1, 칠월의 연애편지,, 2, 지난 여름날의 왈츠,, 3,.......4,......5.......6.........다음편 기다립니다(2)
혹시.....다시 만났을 때 넘 기뻐서 숨이 멈출 것 같지는 않았나요~~~~~~~?
신기했죠...^^
어린시절의 사랑이 이어지는 순간이네여~~~행복 하시길~~~영원히^^*
그동안 판타지였던 첫사랑, 그녀와의 연애가 시작되다.
1, 칠월의 연애편지,, 2, 지난 여름날의 왈츠,, 3,.......4,......5.......6.........다음편 기다립니다(3)...매니저(관리)모드를 포함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