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ius Berger, cello - Antoni Wit, cond
Nationales Rundfunk Sinfonieorchester Polen | |
이 곡은 본시 첼로 독주와 관현악 반주로 고대 히브리의 전통적인 선율인 성가 <콜 니드라이>를 변주시킨 환상곡이다. 제목은 '신의 날'이란 뜻인데 이것은 유대 교회에서 속죄의 날에 부르는 찬송가이다. 그러므로 이 곡은 종교적인 정열이 넘쳐 흐르며 동양적인 애수가 깃들어 있고 로맨틱한 정취도 풍기는 작품이다.
제1부 Adagio ma non Troppo
종교적 정열이 담긴 조용하고 비통한 선율로 시작되어 이윽고 유연하고 장엄한 선율이 나타나는데, 첼로의 명상적 음색과 꼭 들어맞는다.
제2부 Un poco piu Animato
장조로 바뀌는데 하프의 아르페지오 반주에 실려 첼로가 밝고 강한 느낌의 선율을 낸다. 그리고 이것이 변주 스타일로 변한 뒤에 곡은 쓸쓸히 끝난다.
Kol Nidrei
'신의 날'을 의미한다. 이 곡은 속죄의 날에 부르는히브리 노래를 특별한 성가를 관현악 반주의 Cello 독주곡으로 변주한 일종의 환상곡인 만큼 신성하고 종교적인 정열이 넘쳐나며, 동양적이고도 쓸쓸한 가락이 매우 절절하다. 전체적으로 유대적인 정서가 짙게 담겨있고, 긴장된 리듬과 풍부하게 흐르는 선율 등 낭만 정신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서정적인 곡이다. 이 곡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느린 단조의 제1부는 종교적인 정열을 담은 조용하고 비통한 선율로 시작하며, 마음에서 우러나는 장엄함으로 첼로 독주가 선창자의 구실을 해낸다. 제2부는 조금 격한 장조로 분위기가 바뀌어 거룩하게 변화된 후렴구로 시작된다. 오케스트라가 하프의 아르페지오 반주를 배경으로 먼저 밝고 강한 느낌의 선율을 연주하고, 관현악 반주 속에서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독주자가 낭만적인 정서 풍부한 음향의 조직을 짜내며 변주 비슷하게 펼친 다음 쓸쓸하게 곡이 끝난다. 첼로는 바이올린보다 훨씬 늦게 독주 악기로 쓰이기 시작했다. 섬세함에서는 바이올린보다 좀 떨어질지 모르나, 풍부한 표현력과 진한 호소력을 지닌 매력 있는 악기이다. 하지만 첼로는 피아노나 바이올린에 비해 음색이나 표현 면에서 오케스트라 속에 가라앉기 쉽고, 첼로의 저음은 전체의 저음 속에 묻혀버리기 십상이다. 브루흐는 이 곡에서 흐느끼는 듯한 낮은 선율이 두드러지도록 오케스트라와 조화를 절묘하게 나타내고 있다.
Julius Berger
독일 출신의 첼리스트 율리우스 베르거(Julius Berger·50)는 한국인 첼리스트 성현정(33)씨와 부부이다. 율리우스베르거가 독일 자르브뤼켄 국립음대 교수로 재직시 성현정(33)씨가 유학을 가서 그의 조교를 지내다 97년 결혼했다. 현재는 첼로 2대로 같이 주고받는 아름다운 선율의 고난도 테크닉이 돋보이며 남편과 함께 연주하고 있다.
작품 배경 및 개요
종교적 내용속에 흐르는 낭만적 정서의 ''하느님의 날''
브루흐는 그가 살았을 때인 19세기에는 기악곡의 작곡자가 아니라 오라토리오나 합창음악이 작곡가로서 알려져 있으며, 또한 뛰어난 지휘자이기도 하여 자기의 작품을 지휘했기 때문데 더욱 절찬을 받고 있다.
브루흐는 19세기라는 낭만주의 시대사조가 바로 감정의 아름다움을 요구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성격이 매우 낭만적이어서 음악은 꿀보다도 달다 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는데, 여기에는 그의 문학에 대한 깊은 이해가 받침되어 있음도 간과할 수 없다. 이러한 낭만적 성격을 가지고 있던 브루흐는 그 당시 낭만주의 음악가들의 격정적이고 열정에 찬 생애와는 달리 높은 인격과 덕망, 강인한 신앙심으로 음악활동을 고집했는데 이러한 그의 생각은 그가 유대인 출신이란 점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신앙심은 어머니로부터 받은 전인교육과 더불어 그의 대부분의 작품에 온화하고 낭만적이면서도 경건한 미의식을 느끼게 하는데 그 중 가장 사랑 받으며 널리 연주되고 있는 곡이 바로 [콜 니드라이]이다.
이곡은 히브라이의 옛성가인 ''하느님의 날''이란 뜻의 [콜 니드라이]란 선율을 변주곡 형식으로 꾸민 환상곡이이지만 이 선율은 지혜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유대교의 가장 귀중한 속죄를 위한 날 저녁에 교회에서 부르게 되는 특별한 성가였으므로 이 곡에는 종교적인 정열이 넘치고 있다. 이 곡엔느 그지없는 동양적 우수화 달콤한 낭만적 서정이 돋보이는데 그것은 아마도 이 곡을 작곡할 당시인 1881년, 브루흐가 43세때로서 이때 브루흐는 간신히 노총각을 면하여 소프라노 투체크와 결혼하기 전년쯤에 작곡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때의 사랑의 감정이 신앙의 깊은 정서에 스몄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내가 사랑하는 소리(10)...속죄의 노래...<콜 니드라이> |
브루흐 콜 니드라이 (신의 날) 작품47
Max Bruch (1838 - 1920)
Adagio ma non troppo - Un poco più anima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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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t Haimovitz, Vc - James Levine, cond
Chicago Symphnoy Orchestra |
이곡은 모두 두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첫째 부분은 4분의 4박자의 느린 단조로 종교적인 정열이 깃든 조용하고도 비통한 선율로 시작되어 이윽고 유창하고도 장엄한 선율이 나타나서 첼로다운 울림을 들려주고 둘째 부분은 장조로 바뀌어 다소 격렬해 지면서 하프가 읊조리는 그윽한 아르페지오를 배경으로 첼로는 밝으면서도 강한 선율을 노래한다. 이것이 변주형식으로 전개된 귀에 전곡이 조용히 끝나게 된다.
원래는 첼로독주곡으로서 콘체르토가 아닌 오케스트라반주로 쓰여진 것이지만 흔히 피아노 반조로 연주되고 있어서 피아노 반주가 원곡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자신의 곡을 자기가 직접 지휘했던 브루흐는 극장을 교회로, 음악을 종교로 받드는 경건한 마음으로 무대에서 그 모습은 마치 수도사와 같았다고 하는데, 특히 이 [콜 니드라이]를 지휘할 때는 그 얼굴이 말할 수 없이 성화되어 성자와도 같이 첼리스트를 비롯한 단원 전체가 감동되어 엄숙한 표정으로 연주했다 한다.
유대인으로서 갖는 시온사상, 즉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민족을 하느님으로부터 선택 받은 민족이라고 생각하는 사상을 갖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드높은 인격과 덕망으로 인간정신 가운데서 참회나 속죄가 가장 뛰어난 것이라 여기며, 인간은 원래가 선하다는 성선설에 입각해 있어, 선민의식으로서의 신앙보다는 코스모폴리탄적인 인류의 선의식으로 만들어진 브루흐의 이 [콜 니드라이]는 오늘날에도 가장 많이 연주되는 첼로곡으로 되어 있다.
Max Bruch 1838-1920
브루흐(Max Bruch1838-1920)는 19세기 후반 서부 독일에서 가장 인정받은 합창 음악 작곡가로서, 생상스보다 세 살 아래이며 차이코프스키보다 두 살이 많다. '콜 니드라이(Kol Nidrei Op.47)'와 '스코틀랜드 환상곡', 세 곡의 바이올린 협주곡(특히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등 현악 작품들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여러 나라의 전래 음악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고 있었으므로. 그 자신이 유다인은 아니었지만, 유다교의 교당에서 속죄의 날 저녁에 부르던 아주 오래되고 널리 알려진 유다교의 성가 중 하나인 '콜 니드레'를 관현악과 하프가 함께하는 첼로를 위한 아다지오'' 의 새로운 짜임새로 다시 창조해 내었다.
'콜 니드라이' 는 '신의 날'을 의미한다. 이 곡은 속죄의 날에 부르는 특별한 성가를 관현악 반주의 첼로 독주곡으로 변주한 일종의 환상곡인 만큼 신성하고 종교적인 정열이 넘쳐나며, 동양적이고도 쓸쓸한 가락이 매우 절절하다. 전체적으로 유다적인 정서가 짙게 담겨있고, 긴장된 리듬과 풍부하게 흐르는 선율 등 낭만 정신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서정적인 곡이다.
이 곡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느린 단조의 제1부는 종교적인 정열을 담은 조용하고 비통한 선율로 시작하며, 마음에서 우러나는 장엄함으로 첼로 독주가 선창자의 구실을 해낸다. 제2부는 조금 격한 장조로 분위기가 바뀌어 거룩하게 변화된 후렴구로 시작된다. 오케스트라가 하프의 아르페지오 반주를 배경으로 먼저 밝고 강한 느낌의 선율을 연주하고, 관현악 반주 속에서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독주자가 낭만적인 정서 풍부한 음향의 조직을 짜내며 변주 비슷하게 펼친 다음 쓸쓸하게 곡이 끝난다.
첼로는 바이올린보다 훨씬 늦게 독주 악기로 쓰이기 시작했다. 섬세함에서는 바이올린보다 좀 떨어질지 모르나, 풍부한 표현력과 진한 호소력을 지닌 매력 있는 악기이다. 하지만 첼로는 피아노나 바이올린에 비해 음색이나 표현 면에서 오케스트라 속에 가라앉기 쉽고, 첼로의 저음은 전체의 저음 속에 묻혀버리기 십상이다. 브루흐는 이곡에서 흐느끼는 듯한 낮은 선율이 두드러지도록 오케스트라와 조화를 절묘하게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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