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에게 흰 고무신은 외출용 신발이었다. 그리고 일을 할때는 검정고무신이었다. 영등시 바닷가에 갈때 싣는 신발은 직접 만든 짚신이었다, 짚신은 미끄럽지 않아 해산물 채취 활동에 안성맞춤 신발이었다.
6,70년대 대부분의 가족들 신발은 검정신발이었다. 공을 찰때는 새끼줄로 동여 메고 공을 차야했다. 검정고무신은 대충 닦고, 흰고무신은 비누칠까지 해서 하얗게 했다. 고무신을 보면 옛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헤진 고무신으로 엿을 사먹고 아이스께키를 바뀌먹었다.
일반 신발가게엔 어머니 발에 맞는 신발은 없었다. 동부 두포 할아버지 가게에 가면 발에 맞는 신발을 구해 주었다고 한다. 어쩌다 형이나 누나들이 운동화를 사다주면 불고 털고 애지중지 했다. 어느날 장형이 필자에게 멋진 농구화 한 켤레를 선물해 주었다.
목사님들의 신발이 흰고무신이었던 때가 있었다. 특히 은현교회 김정명 원로 목사(만성, 선교사은퇴관 평화의집 대표)하면 흰고무신이 생각날 정도로 즐겨 싣었다. 지금도 흰고무신을 즐겨 싣는 이들이 있다. 사진 속의 오토바이 기사의 신발도 추억 속의 흰고무신을 착용했다. 아래 흰고무신은 필자가 아끼는 향수 골동품신발이다. /여수=정우평 목사, 010-2279-8728 【교계소식/25데스크】문서선교후원계좌 우체국 500314-02-264196 정우평 yjjwp@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