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사색] 당신을 추앙합니다!
출처 헤럴드경제 : http://biz.heraldcorp.com/view.php?ud=20221228000406&ACE_SEARCH=1
2022년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미디어마다 올해를 특징짓는 말들이 넘쳐난다. 말은 한 시대의 풍경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올 한 해 전 세계 사람은 구글에서 어떤 단어를 가장 많이 검색했을까? 우크라이나 전쟁보다 더 큰 관심을 끈 단어는 영어단어 맞추기 게임 ‘워들(Wordle)’이다. 일상은 전쟁보다 게임을 택했다. 이 게임은 인플루언서들이 자신의 기록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하며 빠르게 퍼졌는데 미국 NBC ‘투나잇 쇼’의 진행자 지미 펄론이 라이브로 게임을 시도해 성공한 뒤 스튜디오에서 펄쩍펄쩍 뛰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브랜드들도 이에 질세라 이를 적극 활용해 미 국립도서관은 100년 전 크로스워드 퍼즐이 이 게임과 비슷하다며 젊은이들의 방문을 유도하기도 했다.
레딧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조시 워들이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아내를 위해 개발했다는 게임은 올 초 뉴욕타임스가 인수해 무료로 제공되고 있다. 로그인이 필요한 만큼 구독자를 늘리는 데에 톡톡히 한몫했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한국 구글 이용자들은 ‘기후변화’를 가장 많이 검색했고 2위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이태원사고’는 5위를 차지했다.
그런가 하면 옥스퍼드 영어사전이 올해의 단어로 꼽은 ‘고블린 모드(Goblin mode)’도 주목할 만하다. 올해 처음 대중 투표로 뽑은 단어로, ‘사회적 규범이나 기대를 거부하는 방식으로 고의로 방종하고, 게으르고, 뻔뻔하고, 탐욕스러운 행동 유형’을 가리키는 속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일상복귀를 거부하는 사례가 증가하면서 유행했다.
지구촌 저편의 말들이 우리의 일상과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과 달리 국내 교수들이 꼽은 올해의 사자성어 ‘과이불개(過而不改·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확 와 닿는다. 지도층 인사들이 잘못이 드러나도 남 탓을 하며 도무지 고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많은 교수가 이 단어를 꼽았다.
고단한 한 해를 보낸 범속한 우리도 저마다 올해의 단어 하나씩은 꼽을 수 있을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지난봄, 주옥같은 어록을 남기며 우리에게 한껏 웃음을 선사한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명대사 “날 추앙해요”를 꼽고 싶다. 염미정은 말했다. “술 말고 날 추앙해요. 난 한 번도 제대로 채워진 적이 없어요. 한 번은 채워지고 싶어요.”
추앙이 상대에게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말이던가? 아주 짧은 순간 멍하게 만든 이 말을 MZ세대는 재빠르게 검색했다. 케케묵은 벽장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추앙은 우리를 빵 터지게 했고, 한동안 ‘추앙해요’놀이를 즐겼다. 우리는 왜 파시즘에 사이비 냄새마저 풍기는 이 생뚱맞은 말에 매료당한 걸까?
주인공 염미정은 오랫동안 채워지지 않은 소통과 사랑의 빈자리, 이해받지 못하는 말들의 커져가는 구멍을 추앙 정도는 돼야 겨우 메울 수 있을 듯했다. 속에서 수 많은 말이 들끓지만 술로 꾸역꾸역 말을 밀어넣고 입을 닫은 채 살아가는 구씨는 처음엔 그 말이 의미하는 게 무언지 몰랐지만 이내 그 마음을 아는 듯하다. 빈정거리거나 얕잡아보지 않고 그 말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어떤 말은 우리를 새롭게 밀고 나가게 한다. 우리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무조건적이고 맹목적인 응원과 지지를 보낸 적이 있을까? 북극한파와 경기침체, 조용한 해고 등 그 어느 해보다 추운 연말이다.
이윤미 meelee@heraldcorp.com
빛명상
그림자가 따라다닌다는 사실조차 잊고 사는 사람들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 많은 일과 선과 공적을 쌓아야 한다. 마음과 육체가 분리되면서 죽음이란 단계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죽기를 바라거나 원하여 죽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가장 정확한 답이 있다면, 그것은 죽음이라는 것이다. 그 죽음은 우리 안에 있다.
요즈음 얼마나 정서가 메말랐는지 사람들은 항상 붙어다니는 자기의 그림자가 있는지조차도 잊고 정신없이 쫓겨다닌다. 그림자가 없는 사람은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또한 죽음을 의식하고 살아갈 하등의 이유가 없다. 나에게도 그림자가 있는지 없는지를 살펴보라. 그 그림자는 항상 나를 졸졸 따라다닌다. 그 그림자가 지워지는 날이 죽는 날이다.
죽음이란 무엇이던가. 육체와 마음(종교에서는 영혼, 정신, 명)이 분리되는 순간을 말한다. 그래서 마음이 없는 육체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조금 전까지 육체를 끌고 다니던 그 마음은 어디로 갔는가? 자동차가 시내에 굴러다니다가 운전사가 없으면 그 자동차는 정지되고 마는 것과 같다. 세상에서 의무를 다했기에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누구이며, 진정 ‘참나’는 누구인지를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고, 육체가 나인양 육체에 연연해 살아온 사람은, 육체가 어느 날 갑자기 못쓰게 되었을 때 육체를 따라 죽을 수도 없게 된, 남아 있는 나를 그제야 본다. 즉 마음이 아뿔싸! 하고 어이할꼬! 어이할꼬! 아무리 땅을 치며 소리쳐 울어도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영혼이 있음을 부정하고 살았으니 영의 세계(마음의 고향)에서도 받아 주지 않고, 신앙 세계(천국·극락 등)에 들어가자니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갈 곳 없는 이 내 마음, 인간계에서 자기와 가장 가까운 인연을 가진 자(파장이 일치하는 자)를 찾아갈 수밖에······.
세상에서의 한평생, 길다면 길지만 돌아서 보면 금방이다. 그 삶에서 우리는 지금 당장 죽음이 찾아오더라도 한 점 두려움, 공포심도 없어야겠다.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고향에서 환영받고 새 삶을 축복받기 위한 평소 마음의 준비가 어떠했느냐에 따라 그 결과도 다를 것이다. 평소 삶의 일부를 선업에 투자했더라면, 노후에서부터 다음 세대에까지 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선한 업을 지었으면 부귀 쌍전의 영화가 자손의 ‘사주인자(四柱因子)’ 주머니에 넣어지게 되며, 악업을 많이 쌓았으면 자손의 사주팔자에 고통과 악연이 넣어질 것이다. 가끔 나는 사주의 그 여덟 자 흐름에서, 그 부모와 조상이 지금 어떻게 되었으며 그가 지금 어떤 환경에 있는지 등을 볼 때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음을 실감한다.
빛(VIIT)의 세계, 한없는 평화와 충만이 깃들인 님의 고향, 살아서 복되게 살고, 죽어서 영원한 행복 찾는 이 깨침을 겸손하게 받아들이자. 비록 초광력과 우주의 존재를, 천지신명이 있음을 거부해도 좋다. 다만 육체를 벗어버린 진정한 나를 한 번쯤 생각해 보길 간곡히 바란다.
마음의 영원한 집을 눈앞에 두고, 우수수 늦가을 낙엽 지듯 떨어져 내리는 마음들, 살아서 숨쉴 때 단 5분간만이라도 ‘참나’를 생각했더라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남은 삶, 착하고 선하게 이끌어 보자. 사람이 죽으면 남는 것은 업적이고, 그 업적은 선이든 악이든 유전한다. 그래서 ‘닮았다’라는 것이다.
출처 : 빛(VIIT)으로 오는 우주의 힘 초광력超光力
1996.07.10. 1판 1쇄 P. 245~246 중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살아서 착하고 복을 지으며 살다 죽음 앞에서 한점 두려움 없이 영원한 행복의 빛으로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지금 제 모습을 돌아보며 행동을 삼가하겠습니다.
살아서 빛과 함께 할 수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우주마음과 학회장님께 공경과 감사의 마음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살았서 빛만남을 ... 행복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
빛을 모르고 가신 선조님들을 위해 선조마음 정화식을 열어주셨어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
현존의 빛(VIIT)의 말씀, 영혼 깊숙히 씨앗으로 담고
살며 제 삶에 양분으로 삼아 빛VIIT과 함께 하며,
부디 자손들에게 건강하고 행복하며 좋은 인연들과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제 영혼의 양식을 키워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마음에 새깁니다.
마음에 담을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