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몇 시간 동안 서태지를 들었다.
마음에 든다.
짧게 들어간 연주곡들을 빼고 나머지 곡들은 거의 내 취향이다.
거친 연주와 랩.
물론 랩보다는 연주가 더 마음에 든다.
전에 1집이 나왔을 때도 테이크 1 이나 2 보다도
조금 과격한 테이크 3 이 더 마음에 들었다.
뭐 그리 특이하거나 새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건 방송에 나오는 것처럼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미국 어느 누구누구들에 익숙하기 때문이 아니다.
전에도 이미 '수시아' "교실 이데아" '제킬 박사와 하이드'
'1996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 등에서 이와 비슷한,
또는 이를 짐작할 수 있는 노래들을 불러 왔기 때문이다.
1996년의 은퇴는 내가 생각할 때는
혼자 활동하기 위한 당연한 수순이었다.
처음 그들이 나왔을 때 나는
얘네들은 완전 '현진영과 와와'의 재판이라고 생각했었고,
아이들이라는 이름도 그 전에 와서 노래했던
'뒷골목의 새로운 아이들(뉴키즈온더블럭)'을
모방한 게 틀림없다고 생각해서 기분이 나빴었다.
결국 여기서 남는 이름은 서태지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주노나 양현석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의 핵심은 역시 서태지다.
아마 4년 여를 함께 활동하는 동안 처음에는
'난 알아요'나 '하여가' 같은 곡으로도 충분했겠지만
3집에 들어서서
"발해를 꿈꾸며"나 "교실 이데아"를 만들면서는
분명한 한계를 느꼈을 것이다.
헤비메틀 곡을 틀어 놓고 춤을 추는 데는 한계가 있으니까.
결국 4집을 마지막으로 춤꾼 음악을 접기로 하고
과감하게 은퇴를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굳이 은퇴를 선택한 것은 그동안 함께 고생해 온
이주노와 양현석에 대한 예의라고나 할까?
98년에 나온 서태지의 1집은 지난 서태지와 아이들 활동과
자기 활동의 중간 지점에 놓여 있는 곡들이다.
어느 것은 여전히 대중적인 가락과 노랫말을 담고 있고
(테이크 4,5,6)
어느 것은 꽤나 파격적이고 과격한 가락과 노랫말을 담고 있으며,
(테이크 3)
어느 것은 그 가운데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테이크 1, 2)
그러나 이번 2집은 그런 지점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색깔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런 음악을 하기 위해서는 이주노나 양현석은
적절하지 않은 동료들이었겠지.
어제 방송에 소개된 태지의 모습은
빨간 머리에 레게 파마.
울트라 매니아('울트라맨이야'가 아니다)를 부르는 모습은
멋있었다.
특별히 약간의 안무가 곁들여지기는 했어도
언제나 똑같은 틀에 박힌 춤만 보여 주는 붕어들에 비하면
자유로운 춤들이고,
특히 나처럼 춤에는 젬병인 사람들에게는
그저 머리를 세차게 흔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분위기를 탈 수 있는 춤과 노래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역시 그의 춤이 아니라 음악이다.
미친 듯이 흘러나오는 연주와
그저 중얼거리기만 하는 랩이 아니라 거침없이 내뱉는 랩.
이것이 이번 2집의 특징이다.
개인적으로 느끼는 서태지의 매력은
단순하지 않다는 점에 있는데,
특히 노랫말을 그냥 되는 대로 쓰지 않는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참고로 나는 국어 교사 ^^;)
다 분석하지는 않았지만 노랫말에 대해 이야기하면
"탱크" 는 절대적(그러나 결코 절대적이지도 않은) 가치에
절대 복종하기만을 강요하다가 결국 자신을 내몰았던
학교와 사회에 대한 저항과 빈정거림이다.
맨몸으로는 상대하기 벅찬 단단한 구조물인 너 = 탱크
라는 은유가 담겨 있다.
자기는 그에 대해 '괴기한 춤을 남겼'던 것이다.
'오렌지'에서 '대경성' '레고'로 이어지는 노래들은
태지들이 처음 등장했던 때인 90년대를 지배했던 담론인
오렌지족(신세대)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오렌지)
현대 사회의 지배 담론인 인터넷 문제(인터넷 전쟁),
대중문화의 표절 문제(표절),
비대할 대로 비대해진 대도시 서울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고(대경성)
결국 그런 것들을 실제가 아닌 장난감 천국인 '레고'로 규정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 모두 가짜라는 얘기다.
마지막에 붙어 있는 '울트라 매니아'는
이 가짜 세상을 구원할 것은 오직
울트라 매니아일 뿐이라는 게 결론이다.
'울트라맨이야'라고 적혀 있는 것은
절묘한 중의적 표현인데,
장난감 세상을 구하는 것은 '울트라맨'이라는 의미와 함께
세상을 구하는 것은 '완전히 미친 놈들(=울트라 매니아)'이라는 뜻이다.
무엇엔가 완전히 미친 사람들은 언제나 제도권 밖에 있으되
언제나 세상을 한 발 앞서 나가서
새로운 문화 담론을 형성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고 있다.
그럼 'ㄱ나니?'는?
이건 그동안 자신의 활동에 대해 관심을 보여 왔던
팬들과 대중매체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들이 은퇴하면서 말했던 창작의 고통이나 뭐 그런 것들을
말하는 것이다.
'서태지와 아이들'로 활동하면서 힘들어 했던,
그리고 결국 은퇴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에 대한 해명이라고나 할까?
맨 마지막에 나오는 '너에게'가 원곡과 달리
헤비메틀 판으로 편곡되어 있는데
달라진 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제 나는 부드럽고 달콤한 오빠가 아니라
미친 듯이 거칠게 토해 내는 '울트라 매니아'임을
확실히 드러내는 자기 선언이다.
이렇게 이 태지 2집 앨범은 뚜렷하게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가지고 있는 앨범이다.
뭐 이런 분석은 노래들을 들으면서 생각나는 것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한 것이므로
태지의 원래 의도와 다를 수도 있겠다.
철저하게 내 느낌이니까.
그냥, 태지를 감상하는 데 참고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썼다.
======= 'ㄱ나니'의 시간에서 총 러닝 타임 8분 11초-서태지가 인터넷으로 편지 보낸 날짜
죠~~ ^^
그중 '너에게' 나오는 시간이 1분 31초-서태지 은퇴한 날짜죠~ ^^
게다가 태지노래에 전체 컨셉이 있었다는것 처음 알았어요~
서태지는 천재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군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