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숲 외 1편
배진우
숲이 숲을 향해 갔다
의자에 앉아 숲을 고르고
계절과 상관없이 낮은 짧았고 밤은 그랬다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할 때면 발은
스테이플러와 같은 활력을 가지고 지면을 눌렀다
상상의 숲과 고심 끝에 고른 숲이 다르지 않았다
이 싸움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완전한 침묵만이 승전보를 대신할 수 있다
붙행이 배경이 된 탓에 불감증 환자처럼 입고
생각해 온 물건을 구하기 위해 밖으로 나온다
잘 서있다가도 중심을 잡으라는 말에 휘청인다
유통기한이 긴 우유는 뒤에 있듯 숲을 기다린다
끝날 기미가 보일 때까지
사람이 몇 가지 색을 품고 살았을지 고민하고
색의 두께를 궁금해했을 색맹이
손톱이 물들도록 색을 굵는다
카디건 첫 번째 단추를 세 번째 구멍에 넣으면
손가락이 몇 개 들어갈 공간이 생긴다
폐허라 불러도 좋았다
숲의 슬픔인 마음으로 먼 곳에서 관측을 하고
숲 과 숲이 대립한다
고른 숲이 선택된 숲은 아니듯
나무들에게 무인가를 놓고 올 수 있었다면
숲이 숲을 향해 가지 않았다면
숲이 숲을 향해 오지 않았다면
숲 과 숲은 까맣게 인사를 주고받고
스스로 화법을 익힌 계절이 숲을 스친다
숲이 숲이 되고 싶었다
아직도 다 말하지 못한 숲이 있다
아래로 가는 시간과 위로 가는 시간이 다르지 않았다
코너
아이는 버스가 아프다고 한다
버스에서는 파스 냄새가 난다
기사는 정면을 보고
나는 노래를 듣는다
할 수 있는 걸 한다
파스를 붙이고 있던 노인이 잠을 잔다
정류장에서는 멈추었고
일부 정류장은 지나쳤다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
거리는 더욱 거리 같았지만
아이는 손잡이를
버스 일부를
버스의 뼈라 생각하고 있다
아이는 계속 버스가 아프다고 한다
손잡이는 때때로 출렁거리지만
손은 딱딱하다
이번 여름은 너무 더웠다
버스 옆으로 앰뷸런스 한 대가 지나간다
앰뷸런스 같은 속도로
내가 듣던 소리가 사이렌 소리와 겹친다
아이는 아픈 버스를 위해 앰뷸런스가 왔다고 말한다
지금은 도래하지 않았던 것이 그때는 있었을까
모르는 사람이 모르던 정류장에서 버스를 탄다
아이가 잠들 것 같다
나는 당신과 마무리 짓지 못했던 전화를 하고 있다
휴대폰 너머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버스 옆을 지나쳐 간 앰뷸런스가 당신 근처로 갔을까
아픈 사람을 향해 갈 때와 아픈 사람을 싣고 갈 때
사이렌 소리가 다르지 않다
이 안에서 불안을 연습한다
당신이 당신은
소식조차 가지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당신의 발음을 듣고 당신이 살았던 곳을 순서적으로 생각한다
처음부터 폐업 정리 현수막을 두르고 이불을 파는 가게가 있다
숲이 너무 숲 같아서 움직이지 않는다
고장난 것 같다고 아이는 말한다
간단하게 생긴 놀이터를 지나친다
노인이 내릴 준비를 한다
아이는 버스가 아프다고 한다
멈출 수 없다
아이가 자기 몫의 음료를 모두 마실 때까지
눈을 깜빡이지 않는다
당신과 대화를 하는 동안 나도 그랬다
아이는 등받이보다 작다
노인이 움직인다
버스가 움직인다
― 배진우 시집, 『얼룩말 상자』 (민음사 / 2023)
배진우
경북 김천 출생.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16년 《문예중앙》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