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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천년이 되며 안티기독들의 활동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사이트(안티기독교 등)나 카페(클럽안티기독교 등) 주도권을 잡은 포털(네띠앙 등) 언론사(한겨레게시판 등) 진보 단체 게시판(민노총 게시판 등) 등에 진출하여 활발한 반기독교 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심지어 이들은 기독교 언론인 국민일보 게시판과 기독교인들이 활동하는 포털 호산나넷 등은 물론
심지어는 당시에는 기독교의 대표성을 띄고 있던 한국기독교 총연합회(한기총) 게시판까지 진출하여반기독교 게시물을 쏟아내었습니다.
이들 자료 상당수가 성경을 왜곡하거나 과장한 기독교 공격자료였고, 세계 교회사나 우리나라 교회사를 변조 날조 왜곡한 자료들도 상당수가 있었습니다.
기독교이들에게 회의를 하도록 하여 신앙을 버리게 하려는 목적이지요.
당시 필자는 이들의 자료날조와 왜곡에 대하여 사실확인을 하여 반론을 올리는 일을 하였습니다.
안티들은 대답할 말이 없으면 엉뚱한 말로 넘기거나 다른 사례를 들어 공격을 하거나 그도 안되면 욕설로 악플을 합니다.
아래는 기독교와 항일운동에 대해 안티가 날조된 자료를 올린 것에 대한 사실확인과 반론입니다.
안티들의 이러한 거짓말은 처음에는 무서운 기세로 확산되던 반기독교 활동이 위축되고 퇴조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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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0. 9. 5 Number : 1240
Name : 주님의 양
일제하 기독교의 항일 운동
나는 어느 안티기독교인이 안티기독교사이트에 이완용은 기독교인이라는 글을 쓴 것에 대한 반론을 이 글보다 몇 시간 앞서 올렸습니다.
아마 안티기독교 사이트에서 활동하시던 분 같은 데 내 말에 욕설을 퍼붓지는 말기 바랍니다.
1. 우선 기독교가 들어 온 것은 천주교회는 벌써 200년이 훨씬 넘었고 기독교도 1884년 선교사가 들어 오기 전에 백홍준, 서상륜등이 만주에 있던 선교사와 자발적으로 접촉하여 황해도 솔내에 교회를 세웠으니까 이 때는 일제의 침략이 본격화되기 전으로 일제와 합의하고 들어 왔다는 것은 당신의 억지 논리일 뿐입니다.
1910년 데라우찌 총독의 암살 미수사건을 빌미로 일어난 105인 사건에서 옥고를 치루거나 모진 고문을 당한 105인의 종교를 보면 기독교신자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물론, 일부 선교사들 중 일제의 통치를 암묵적으로 지지하거나 그들에게 협조한 사례가 있기는 합니다.
그렇다고 일제의 포교를 허락 받고 시작하였다는 것은 억지입니다.
2. 손병희선생님은 물론 존경할만한 민족 지도자입니다. 기독교와 천도교 불교가 연대하여 3.1운동을 일으킨 것은 역사가 증명합니다. 삼일운동에 천도교가 큰 역할을 한 것은 인정됩니다만 기독교 역시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만약 손병희선생님의 자금에 힘입어 소극적으로 참가하였다면 옥고를 치른 많은 기독교인들과 유관순열사나 제암리에서 희생된 분들 등은 설명이 안됩니다.
왜 종교 건물 중 교회당이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고 기독교인들이 당시 인구 비율로 볼 때 몇 배 더 많이 투옥되어 옥고를 치르었을까요?
또, 33인에 낀 기독교인이 모두 변절하였다는 것 역시 기독교를 헐뜯고 폄하시키기 위한 억지입니다.
33인 중에는 변절한 분들이 있습니다.
최린과 같은 천도교인도 있고 기독교인 중에도 정춘수목사와 같이 변절한 분이 있습니다.
이들의 변절은 대부분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일제의 강압에 의해 이루어졌는 데 길선주목사나 이승훈선생 등은
1935년 이전에 소천하여 변절할 기회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신석구 목사 등은 신사참배를 거절하고 옥살이를 하였습니다.
3. 안티기독교인들은 기독교가 친일에 앞장을 선 것처럼 오도하여 가는 데 3.1운동에서 큰 피해를 입은 기독교인들 중 현실을 외면한 내세 지향적인 신앙생활을 하거나 신비주의에 탐닉한 분들도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많은 크리스챤들이 국내외에서 독립을 위하여 싸웠습니다. 김구선생은 크리스챤입니다. 그리고, 상해의 임정요인들 중에는 크리스챤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4. 신사참배로 인해 가장 큰 탄압을 받은 종교는 기독교입니다.
같은 기독교이지만 천주교회는 신사참배를 수용했고 불교와 유림 등도 신사참배를 어쨌든 수용했기에 이 문제로 인한 탄압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개신교만 유독 탄압을 받은 것은 개신교가 가장 신사참배에 반대를 했기 때문입니다.
1938년 평양 총회에서 홍택기 목사가 사회를 한 것은 회의 형식으로 볼 때 원칙적으로 무효입니다.
찬반의견도 묻지 않고 총대들 틈틈이 형사들이 섞여서 노려보는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회의 형식을 갖추지 못한 일방적인 찬성의견만 묻고 반론을 펼 기회도 주지않고 날치기 통과를 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들의 거센 반발을 누르기 위해 친일목사들을 적극 동원했기 때문에 이들의 활동이 두드러져 보이는 면은 있습니다. 다른 종교는 미리 신사참배를 수용하였는 데 탄압할 필요도 없고 캠페인을 벌릴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교직자들의 활동이 두드러져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항일운동에는 기독교인들과 천도교, 대종교 등 타 종교인들 그리고 비종교인들까지 일치 단결하여 참가하였지만 당시 인구로 볼 때는 소수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식민 통치에 협력한 경찰과 헌병보조원 친일 관료, 자본가 등이 독립운동에 직접 참여한 분들보다 몇 배가 많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 국민이 모두 친일파라고 말하면 비약이 되는 것입니다.
님은 기독교 특히 개신교가 미우니까 어떻게 해서든 흠집을 내려고 하시는 모양인 데 이것이 안티기독교인들의 특징입니다.
반론을 할 가치도 없는 글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사실로 받아 들일까봐 반론을 폅니다. 내 글에 반론을 펴신다면 글을 올려 주십시오.
일제와 합의하고 들어온 것부터 말해 보시요 뉴스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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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항일운동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포교를 허락받고
한국에서 일제때부터 번성하기 시작한 것이 기독교요
일제가 한국의 정신말살을 하기 위해 이용한 것이 기독교입니다.
3.1운동이 기독교와 관계있다.
손병희 선생이 십여년을 준비하여
이 민족의 정신계를 합하기 위해서 기독교에 돈까지
지원하면서 불교와 연합하여 거사를 도모한
우리 단군의 홍익사상이 아니면 할수 없는
종교지도자의 단합을 이루어낸 위대한 항일운동이
기독교가 주도했다?
단군의 목을 베는 저런 독단주의자들을
포용하려니 손병희 선생 꾀나 힘들었을 것이다.
돈까지 주며 꼬시고, 불교에서는 주장하지도 않았는데
기독교만 민족대표 쪽수를 맞춰주면 하겠다고 했다나?
그래서 15명 차지하고 나중에 다 변절했지...
당신들의 사상으로는 절대 3.1운동 못해
차라리 일본한테 미국한테 나라를 넘기면 넘겼지
이교도와 단합을 해? 웃기는 역사꾸미기 하지 마시요
물론 그때 돌아가신 기독교인들까지 욕하는 것 아니요
민중의 역사를 기독교 역사로 가로채려는 바로 당신 뉴스멘을 욕하는 것이요
아브라함 설화 때문에 단군도 못세우게 하는 독단적 종교가
사탄과 손을 잡고 단군의 자손을 위해 싸운다?
기독교인을 포용하고 3.1운동 거사를 한 손병희 선생이
다시 한번 존경스럽습니다.
다른 종단을 보시요 역사를 그렇게 왜곡하는지
있지도 않은것을 만들어 자랑하는지...
한심한 뉴스멘씨
한심한 이 글의 필자님 당신이 역사 왜곡의 명수입니다.
elpidos@pastor.hosanna.net
110-738 서울시 종로구 연지동 1-1/여전도회관 407호
TEL : 02-741-2782~5 / FAX : 741-2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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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낭객님~ 반갑습니다. ^^
네이버 안티와예수의대화 카페지기 주방보조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사람들은 다양하게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안티들도 그렇고 기독교인들도 그렇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