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12월의 편지-추모시 쓰느라 바빴던 한 해, 이젠 삶 자체에 詩 쓴다는 느낌으로 삽니다”
▲ 이해인 수녀·시인
함께 깨죽을 드시던 김수환 추기경님,화가 김점선, 장영희 교수, 옛 친구 윤영순… 모두 다 저세상으로 떠난 슬픔 속에 추모시 쓰느라 바빴던 한 해였습니다
12월이 되니 벌써 크리스마스카드들이 날아옵니다. 해마다 달랑 한 장 남은 달력을 보면 늘 초조했는데 올해는 오히려 느긋하게 웃을 수 있는 나를 봅니다. 이별의 슬픔과 몸의 아픔을 견디어 내며 '아직' 살아있는 것에 대한 감동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어느 날 김수환 추기경님의 병실에서 그분과 함께 깨죽을 먹은 후 내가 기도를 부탁했을 때, 하도 말을 길게 하시어 "힘드신데 좀 짧게 하시죠" 하니 "상대가 문인이라 나름대로 신경 좀 써서 하느라 그랬지!" 웃으며 대답하셨던 그 모습이 잊히지 않습니다. 하늘나라에서도 우린 꼭 한 반 해야 한다고 말했던 화가 김점선, 고운 카드와 스티커를 즐겨 선물했던 장영희 교수, 문병 와서 덕담을 해주던 옛 친구 윤영순…. 모두 다 저세상으로 떠난 슬픔 속에 추모시 쓰느라 바빴던 한 해였습니다.
1980년대 내가 돌보던 앳된 지원자들이 이번에 서원 25주년을 지내는 모습을 눈물 어린 감동 속에 지켜보면서 이만큼 오래 살았으니 이젠 떠나도 크게 아쉬울 것 없다는 생각을 잠깐 해보기도 했습니다. 만날 적마다 "좀 어떠세요?" 하고 나의 건강 상태를 묻는 이들에겐 단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워 주춤할 때가 많습니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여도 실은 괜찮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이 암환자의 특성이기에 말입니다.
새벽에 문득 입에서 쓴맛을 느끼며 한 모금의 달콤한 주스를 그리워하고, 어느 순간엔 곁에 있는 종이 한 장 집기 싫은 무력증에 빠지고, 의사나 환자의 한마디에 필요 이상으로 민감해지고, 예측불허인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의기소침해지면서 '암환자의 고통은 설명 불가능한 것'이라는 말을 실감하곤 합니다. 항암과 방사선치료의 터널을 지나고 나면 몸의 아픔 못지않은 마음의 아픔이 우울증으로 연결되는 일도 많은 듯합니다.
'명랑 투병'한다고 자부했으나 실은 나 역시 자신의 아픔 속에 갇혀 지내느라 마음의 여유가 그리 많진 않았습니다. '잘 참아내야 한다'는 의무감과 체면 때문에 통증의 정도가 7이면 5라고 슬쩍 내려서 대답한 일도 많습니다. 병이 주는 쓸쓸함에 맛 들이던 어느 날 나는 문득 깨달았지요.
▲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오늘 이 시간은 '내 남은 생애의 첫날'이며 '어제 죽어간 어떤 사람이 그토록 살고 싶어하던 내일'임을 새롭게 기억하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지상의 여정을 다 마치는 그날까지 이왕이면 행복한 순례자가 되고 싶다고 작정하고 나니 아픈 중에도 금방 삶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마음엔 담백하고 잔잔한 기쁨과 환희가 물안개처럼 피어올라 전보다 더 웃고 다니는 내게 동료들은 무에 그리 좋으냐고 되묻곤 했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답으로 들려주던 평범하지만 새로운 행복의 작은 비결이랄까요. 어쨌든 요즘 들어 특별히 노력하는 것 중 몇 가지를 적어봅니다.
첫째, 무엇을 달라는 청원기도보다는 이미 받은 것에 대한 감사기도를 더 많이 하려 합니다. 그러면 감사할 일들이 갈수록 더 많아지고 나보다 더 아프고 힘든 사람들의 모습까지 보이기 시작합니다. 몸과 마음으로 괴로움을 겪는 이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들어주는 마음의 여유도 생겨서 가끔은 위로의 편지를 쓰고 양로원과 교도소를 방문하기도 하지요.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어 그렇게까지 큰 도움을 주진 못할지라도 마음을 읽어주는 작은 위로자가 되는 것 하나만으로도 나눔의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둘째, 늘 당연하다고 여겨지던 일들을 기적처럼 놀라워하며 감탄하는 연습을 자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일상의 삶이 매 순간마다 축제의 장으로 열리는 느낌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신발을 신는 것도, 떠오르는 태양을 다시 보는 것도,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 것도 얼마나 큰 감동인지 모릅니다. 수녀원 복도나 마당을 겨우 거닐다가 뒷산이나 바닷가 산책을 나갈 수 있을 적엔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었지요.
길에서 만나는 모르는 이웃조차 왜 다들 그리 정겹게 여겨지는지! 최근에 읽은 함민복 시인의 산문집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를 화두처럼 뇌며 만나는 이들에게마다 '반가워요. 다 저의 일가친척 되시는군요!' 하는 사랑의 인사를 마음으로 건넵니다. '사람이 풍경일 때처럼 행복한 때는 없다'고 표현한 정현종 시인의 시집에서 발견한 '꽃시간'이란 예쁜 단어도 떠올리며 '그래 나는 걸음걸음 희망의 꽃시간을 만들어야 해' 다짐합니다.
셋째, 자신의 실수나 약점을 너무 부끄러워하지 말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여유를 지니도록 애씁니다. 부탁받은 일들을 깜박 잊어버리고, 엉뚱한 방향으로 길을 가고, 다른 이의 신발을 내 것으로 착각해 한동안 신고 다니던 나를 오히려 웃음으로 이해해 준 식구들을 고마워하며 나도 다른 이의 실수를 용서하는 아량을 배웁니다.
넷째, 속상하고 화나는 일이 있을 때는 흥분하기보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어질고 순한 마음을 지니려 애씁니다. 인간관계가 힘들어질 적엔 '언젠가는 영원 속으로 사라질 순례자가 대체 이해 못 할 일은 무엇이며 용서 못 할 일은 무엇이냐'고 얼른 마음을 바꾸면 어둡던 마음에도 밝고 넓은 평화가 찾아옵니다.
'세상은 그래도 살 가치가 있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사랑은 그래도 할 가치가 있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슬픔은 그래도 힘이 된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사소한 것들이 그래도 세상을 바꾼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천양희의 시 '지나간다' 일부)
이해인 수녀 “이젠 삶 자체에 詩 쓴다는 느낌으로 삽니다”
항암치료 요양 이해인 수녀 인터뷰
지난해 여름 느닷없이 이해인 수녀(64)의 와병과 절필 소식이 전해지면서 여러 경로를 통해 한번 찾아뵙고 싶다는 청을 넣었다. 하지만 면회는 물론 전화 통화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지인들을 통해 “모처의 병원에서 힘든 항암치료를 받고 계시다”는 얘기만을 전해 들었을 뿐이다.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민들레 수녀님’은 민들레 홀씨처럼 사라져버리셨다. 그렇게 1년 반가량이 흘렀다.
얼마 전, 축복처럼 해인 수녀를 만났다. 피아니스트 노영심 씨(42)를 따라나섰다가 한 수녀원에서 요양 중인 수녀님과 마주치게 된 것이다. 20여 년간 모녀처럼 지내 온 두 사람은 정성이 가득 담긴 작고 아름다운 선물을 많이 하기로 유명하다. ‘해바라기 연가’(이해인 시낭송/노영심 피아노)라는 CD도 함께 만들었다.
“어떻게 이곳까지 찾아왔느냐”며 책망하는 수녀님께 차마 인터뷰 얘기는 꺼내지도 못한 채 “그저 수녀님이 뵙고 싶어서 왔다”고만 했다.
―건강은 어떠신가요.
“지난해 여름, 첫 서원 40주년을 맞아 엄마에 대한 원고를 넘기고 나서 속이 불편해 장 내시경 검사를 했는데 암이 발견됐어요. 순간적으로 당혹스럽고 눈물이 핑 돌았지만 담담하게 받아들였지요. 1, 2기가 지난 상태여서 수술을 했고 그동안 방사선 치료 28번, 항암치료 30번을 받았습니다. 요즘도 하루에 약을 열 알 넘게 먹으며 정기적으로 체크를 받고 있습니다. ‘오늘은 내 남은 생애의 첫날’이라고 생각하며 지냅니다.”
해인 수녀의 사모곡인 책 ‘엄마’는 지난해 8월 15일 샘터에서 출간했다. 엄마 편지의 첫말은 늘 “귀염둥이 작은 수녀 보아요”였고, 딸 편지의 마지막 말은 “엄마 딸 해인이에요…”였다고 한다. 열아홉에 이씨 집안으로 시집온 수녀님의 어머니는 1남 3녀를 두었고 이 중 두 딸이 수녀가 됐다. 열세 살 터울인 해인 수녀의 언니는 봉쇄수녀원인 가르멜수녀원에서 수도 중이다.
―남들에게 위안이 되는 시를 많이 써오셨지만 무척 힘드셨을 텐데….
“예, 정말 많이 아플 때는 기도하기도 힘들었어요. 환자들한테 함부로 고통을 참으라고 할 게 아니더라고요(웃음).”
김 추기경과 같은 층 입원 항상 남 배려하던 모습 또렷 아프니 감사할 일 더 많아져
―올 들어 김수환 추기경님, 화가 김점선 씨, 서강대 장영희 교수 등 수녀님이 존경하고 아끼고 사랑했던 분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추기경님과는 병원에서 같은 층을 썼어요. 어쩌다 제가 병실에 가서 안수기도를 청하면 ‘이 수녀가 아름다운 시로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많이 주었으니 할 만하시면 좀 더 세상에 머물러 시로써 당신 영광을 드러내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해 주셨죠.
힘든 가운데서도 늘 남을 먼저 배려하는 그분의 모습이 잊혀지질 않습니다. 항암치료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뵙고 올까 하다가 그냥 왔는데 그게 마지막이 됐어요. 교회 안팎의 신문에 추모시 몇 편을 싣는 것으로 추도의 마음을 대신했지요. 점선이 빈소에는 다녀왔는데 영희 빈소에는 치료 받느라고 못 갔어요.”
수녀님은 잠시 서가를 뒤적이더니 책과 탁상시계 등 두 점을 가져왔다.
‘기쁨이 열리는 창’(마음산책·2004)이란 수녀님의 산문집 첫 장을 넘기자 ‘인격 장애 김점선을 교화 노력 중인 이해인 닭띠 언니에게-개띠 점선’이라고 적혀 있다. 김점선답다.
수녀님의 글방 벽에는 그가 그린 그림 2점도 걸려 있다. 한 손에 들어가는 하트 모양의 시계는 장영희 교수가 수업시간에 강의실에 들고 다닌 유품으로 가족들이 보내왔다고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병과 싸우고 있는 이들에게 같은 환우로서 한 말씀….
“제 경우 아프고 나서 오히려 매사 감사할 일이 많아졌습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지금 이 순간에 더 충실하게 됩니다. 전에는 종이에 시를 썼다면 지금은 삶 자체에 시를 쓰는 느낌으로 삽니다. 내면의 행복지수가 더 높아졌다고 할까요.”
―하루 일과는….
“공동체에서 여러 가지로 배려를 해 주셔서 남보다 조금 늦게 일어나고 일찍 잠자리에 들지요. 많은 분들이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위로 편지도 보내 주셔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시간여 대화가 오간 뒤 수녀님은 저서 두 권에 아름다운 꽃 모양을 만들어 친필 사인을 해주었다. 신작시 한 편에 수녀님의 요즘 심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새로운 맛
물 한 모금 마시기/힘들어하는 나에게/어느 날/예쁜 영양사가 웃으며 말했다//물도/음식이라 생각하고/천천히 맛있게 씹어서 드세요//그 이후로 나는/바람도 햇빛도 공기도/천천히 맛있게 씹어 먹는 연습을 하네/고맙다고 고맙다고 기도하면서//때로는 삼키기 어려운 삶의 맛도/씹을수록 새로운 것임을/다시 알겠네
1. 이 해인 수녀님이 암을 통해 알게 된 사실, 그리고 '특별히 노력하는 일' 들 내용이 그대로 '보현행원'입니다. 그리고 제가 늘 말씀드리는 '병 낫는 마음 네 가지-감사, 참회, 연민, 서원'이 있음을 아시는 분은 아실 겁니다. 결국 몸은 현대 의학의 치료에 맡기지만, 몸이 나온 근원이 마음이므로 마음을 생명으로 가득 채울 때 병은 낫는 것입니다.
2.병이 있을 때 쓰지 않아야 할 말 중 하나다 '투병'입니다. 투병은 병과 '싸우는 것'인데, 싸움은 상대와의 대립을 의미합니다. 즉, '같은 편'이 아닌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투병한다!'는 말은 쓰지 마시기를. '투병'하는 분들에게는 병이 결코 물러가지 않습니다. 병은 오래된 친구로, 반갑게 맞아들이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3.수녀님이 지난 번 추기경님 돌아가셨을 때도 '투병'이란 단어를 쓰시던데, 저는 기자가 그냥 그렇게 적은 줄 알았는데 오늘 직접 쓰신 수필을 보니 그게 아니군요. 수녀님이 이런 사실을 아시면 좋을텐데... 내 마음에 이는 공경, 찬탄, 감사, 섬김, 참회가 내 몸의 병을 낫게 하는데...그저 끝없이 감사하고 찬탄만 하셨으면...
첫댓글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감사합니다,아미타불
축복속에서 오늘도...감사합니다.나무아미타불_()_
감사합니다. 아미타불! _()_
감사합니다 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