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S리포트-전세사기사건 그후] (2) 여전한 '동시 진행', 90% '미친 융자'까지
[편집자주]2022년 10월 1100채 넘는 다세대주택(빌라)과 오피스텔 등을 임대하다가 의문의 죽음을 맞은 '빌라사기꾼'(속칭 '빌라왕') 사태 이후에도 깡통전세가 버젓이 거래되고 있다.
전세 공포가 일파만파 확산되며 일부 선량한 임대인마저 신규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고 이는 다시 기존 세입자의 전세금 미반환 사고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위험이 큰 상황. 전세사기 최대 피해지역인 서울 강서구 화곡동과 인천 미추홀구에선 공인중개사 폐·휴업이 현실화됐다.
전세사기 주범인 다세대주택·오피스텔의 인·허가와 착공 수는 수년째 줄어들고 있지만 수요 대비 여전한 공급과잉이 문제로 지적된다. 정부가 전세사기 대책의 후속조치로 내놓은 '안심전세앱(App)'마저 시세보다 높은 가격 정보를 제공하면서 소비자들의 혼선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2월17일 찾은 서울 강서구 화곡동. 신축빌라를 분양한다는 홍보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사진=신유진 기자
◆기사 게재 순서
(1) [르포] 사기꾼 때문에 멀쩡한 임대인도 피해… 문 닫는 중개업소 '급증'
(2) 애물단지 '신축빌라'… 2022년 서울서만 2만채 지어져
(3) 정부 전세사기대책 '안심전세앱' 더 못믿어
전세사기 최대 피해지역으로 꼽히는 서울 강서구 화곡동. 이미 지어진 신축빌라가 즐비함에도 여전히 빌라 신축 공사가 한창이었다. 건물마다 빌라 분양을 알리는 현수막들이 걸려 있었고 세입자를 모집하는 화려한 문구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하지만 화곡동을 덮친 전세사기 사건은 세입자들의 발길을 끊기게 했다. 애타게 주인을 찾고 있는 빌라들은 골칫거리로 전락했다.
분양 홍보 현수막에 적혀있는 번호로 전화해 보니 분양 담당자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보증보험만 가입하면 문제될 게 없고 사기당하지 않도록 해드리겠다"며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정부가 지원해주니 걱정 말라"고 안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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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 진행'부터 '미친 융자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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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 화곡동. 골목마다 신축빌라 분양을 홍보하는 현수막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사진=신유진
빌라밀집지역에서 성행하는 '동시 진행' 수법도 여전하다. 이 수법은 전세 계약과 매매 계약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으로 전셋값과 매맷값 시세를 비슷하게 맞춘 뒤 세입자가 낸 전세금으로 분양대금(매맷값)을 치른다. 무자본 갭투자(전세를 끼고 주택을 매입하는투자)로 빌라의 경우 시세 정보가 정확하지 않아 이 같은 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더 높다.
동시진행은 주로 부동산 컨설팅업체가 하는 방식으로 전셋값이 높을수록 리베이트 규모도 커진다. 때문에 전셋값을 최대로 높이는 작업이 핵심이다.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분양업자들은 전셋값을 부풀려 억 단위로 차익을 남기고 세입자를 들인 뒤 집주인 명의를 넘겨받은 바지 집주인은 수백만원의 수수료를 챙긴다.
'화곡동 신축빌라'를 검색하면 전세뿐 아니라 분양매물도 나온다. 한 주택업자가 분양 중인 빌라 사이트엔 넓은 평수에 고급스런 인테리어가 소개돼 있다. 이사비까지 지원한다고 광고했다. 빌라명과 주소는 없었다. 거실과 방 내부 사진만 있었고 매물을 올린 등록자 정보만 있을 뿐이었다.
눈길을 끄는 매물이 있어 상세정보를 확인했다. 규모 정보에 109㎡만 적혀있을 뿐 공급면적인지 전용면적인지도 공개하지 않아 알 수 없었다. 이 빌라의 분양가는 2억2400만원인데 비해 입주금은 2800만원으로 게재돼 있다. 나머지 금액인 1억9600만원은 융자금이었다. '화곡역 도보 10분'의 제목으로 올라온 또 다른 매물 역시 분양가 2억9900만원에 입주금은 8000만원, 융자금이 2억1900만원이었다. 이들 매물의 공통점은 광고에 입주금은 강조하지만 융자금은 상세 정보에 들어가야 볼 수 있도록 했다. 해당 분양 사이트에는 융자금이 껴있는 매물이 화곡동뿐 아니라 장안동, 도봉동, 금오동 등 곳곳에 수두룩했다.
전세사기 사건 이후 화곡동에는 세입자들의 발길이 끊겼다. 수요보다 공급이 더 많은 화곡동에서 빌라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분양업자들도 속이 타긴 매한가지다. 수요의 발길이 끊긴 상황이지만 공급은 멈출 수 없다. 사놓은 땅을 마냥 놀릴 수는 없어서다. 화곡동의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현재 공사 중인 빌라들은 전세사기 사건 터지기 전에 준공허가가 떨어진 곳들로 분양업자들도 속이 타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 발견한 신축빌라 홍보 현수막. /사진=신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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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빌라 그만 지어야 할 때"… 지난해 서울서만 2만채 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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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업계도 신축 빌라를 두고 "이제 그만 지을 때가 됐다"고 평가했다. 사기 사건이 터진 뒤에도 버젓이 신축빌라를 분양하거나 공사 진행 중인 곳까지 공급은 계속되고 있다.
국토교통 통계누리 주택건설실적통계(준공)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서울과 인천에 지어진 다세대주택(빌라)은 각각 1만9084채, 1324채로 나타났다. 수도권 전체적으론 3만5118채가 2022년 한 해 지어졌다. 1년 전(3만8587채)에 비해선 8.9% 줄었지만 여전히 수요 대비 공급 과잉이란 지적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빌라 공급이 줄어든 데는 인·허가 등 정부의 인위적 규제가 아니라 수요 감소와 시장 상황에 따른 자연 감소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정부 통계에 반영되지 않는 소규모 건축이 분명히 있다"며 "미분양 역시 공급 주체가 영업상의 이유 등으로 신고하지 않을 경우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는 점에서 실제 물량은 더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유진 기자 yujin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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