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영화지도를 그리다] <11> 금정구
부산일보 기사 입력 : 2013-10-24 07:47:13 수정 : 2013-10-24 14:23:16
오래도록 변치 않는 대자연처럼 평온한, 부산의 또 다른 이미지
금정구는 부산의 최북단에 위치하는 육로 교통의 관문이다. 경부고속도로가 시작되고 도시철도 1호선의 시발점으로 부산시 교통의 접속 지점이자 부산의 시작이다. 지리적인 위치로의 금정구는 부산의 시작을 의미하지만 부산 영화지도 속에서의 위치는 출발점이 아닌 쉬어 가는 공간에 가깝다. 금정구는 757년 신라 경덕왕 16년에 동래군이란 이름으로 현재의 동래구와 같은 행정지역으로 묶여 있다가 1988년 분리되었다. 과거에는 동래구가 부산의 중심이자 도심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었고 금정구는 금정산을 울타리 삼아 사람들이 살아가는 평온한 마을이었다. 양산시 동면 다방리에서 부산 연제구 거제2동에 이르기까지의 총 1천300여 만 평의 넓은 면적과 더불어 금정산을 끼고 있는 금정구는 주로 산지와 주거지의 모습이다. 태백산맥의 끝자락에 해당하는 금정산을 둘러싼 금정구는 도심의 매력과 더불어 자연과 공존하는 모습으로 주민들에게 고요한 안식처을 제공한다.
동문·금강식물원·금정체육공원…
도심 속 쉼터이자 치유의 공간
가장 많이 촬영된 곳은 부산대 캠퍼스
가능성 있는 문화 활동 무대로 인기
'올드보이' 배경 온천천 그래피티
국내 최대 규모… 해외까지 명성
■금정산과 어우러진 도심 속 자연공원
영화 속 금정구의 모습은 부산의 다른 공간과 달리 부산다운 특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부산은 흔히 해안가 주변이 주된 촬영 공간으로 나타나 바다가 가지는 무한한 이미지나 다른 세계로 열려 있는 공간 등으로 그려졌다. 바다를 통한 이국적인 정취 또는 미지의 세계와의 조우 그리고 언제나 빠지지 않는 조폭 이야기 등이 부산에서 촬영된 영화의 주된 테마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한국영화 속 금정구는 오래도록 변치 않는 대자연처럼 평온한 모습으로 기록되었다.
정해진 출발점이 없이도 그 어느 자락이든 산책하듯 오르다 보면 부산을 굽어볼 수 있는 곳. 금정산은 역사적으로 나라를 지키는 호국의 산으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호국사찰인 범어사가 있고, 국내 최대 길이의 금정산성이 축성되어 있다. 금정산의 동문에 오르면 그 절경에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 든다. 웅장한 산성의 모습과 함께 부산의 경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금정산성의 동문은 '엽기적인 그녀'(2001)의 촬영지로도 알려졌다. 금정산성의 전설 중에 동래부사 정현덕(재임 1867~1874년)이 산성의 동문과 서문을 세우기 위해 이름난 석공을 찾다가 결국은 사제지간인 두 석공에게 의뢰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동문은 선생에게, 서문은 제자에게 맡겨 서로 경쟁을 시켰는데 서문을 만드는 제자의 기술이 앞서서 정교한 아름다움이 있고, 동문을 담당한 선생은 욕심을 내어 웅대하게만 세우려 하여서 두 성문은 사제의 이러한 특성이 잘 담겨져 있다. '엽기적인 그녀'에서는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인 '그녀'(전지현)가 쓴 시나리오 '비천무림애'에서 삿갓을 쓰고 칼을 등에 찬 '그녀'의 배경으로 웅장한 동문의 모습이 보인다.
금정산 산자락을 내려와 장전동에 위치한 금강식물원은 영화 속에서 식물원 특유의 고즈넉함에서 오는 치유 공간으로도 나타났었다. 금강식물원은 1960년대 금강공원이 조성되던 시기에 함께 개장한 곳으로 지금까지 주민들에게 여유로운 휴식처를 제공하고 있다. 식물원이 주는 이러한 특징을 살려 이한 감독의 영화 '청춘만화'(2006)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온 지환(권상우)과 달래(김하늘)의 추억의 장소로 나왔다. 영화 속 식물원은 소원을 빌면 이루어지는 신성함을 가진 곳으로 등장하는데 아픈 지환을 위해 달래가 그의 쾌유를 빌기도 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에서는 환자를 치료하는 공간으로 식물원의 온실이 등장했다. 자신이 싸이보그라고 믿는 영군(임수정)과 남의 특징을 훔쳐 따라 하기를 잘하는 박일순(정지훈)이 같은 정신병원에 머물면서 치료하는 공간으로 원예치료실을 찾는다. 이러한 장면들은 영화를 위해 공간을 인위적으로 연출해 순간을 포착하는 기존의 방식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 실제 금강식물원이 생길 당시의 목적이었던 도심 속의 쉼터이자 치유의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영화가 그대로 담은 것이다.
금정구의 끝자락에 위치한 두구동의 금정체육공원 역시 영화 속에서 가족처럼 따뜻한 공간으로 자리한다. 박광수 감독의 영화 '눈부신 날에'(2007)에서 금정체육공원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선물을 하는 곳으로 등장한다. 금정체육공원은 원래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을 치르기 위해 조성된 공간이었으나 대회가 끝난 후 주민에게 개방되어 지금의 공원의 형태가 됐다.
■변화하는 공간- 부산대 일대
금정구에서 영화 촬영지로 가장 빈번하게 선택되었던 곳은 부산대학교이다. 사회대 잔디밭에선 '사물의 비밀'이 촬영되었고 후문인 무지개문에선 '쏜다', 화공관 뒷건물 쪽에선 '기담', 그 밖에도 '태풍', '해부학교실', '무방비도시' 등 십여 편의 영화가 장전 캠퍼스 안에서 촬영되었다. 1946년 5월에 개교한 부산대학교 일대는 거대한 상업지구이자 가능성 있는 문화공간이다. 현재 금정구는 문화예술 활동에 대한 열기로 뜨겁다. 지난해 말 교육문화예술특구로 지정된 이래 부산대를 중심으로 한 대학문화를 통해 인근 문화공간의 활성화를 꾀하겠다는 것이다. 온천천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2003)에서 오대수(최민식)가 15년간의 감금에서 풀려나 처음으로 싸움을 하던 장소로 등장한다. 15년간의 감금생활 동안 TV를 보며 상상훈련을 했던 오대수가 동네 양아치들과 싸움을 하는 장면에서는 온천천의 그래피티가 주었던 상징성을 이용한 것이다.
1960년대 미국 갱스터들이 영역을 표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던 것이 시작이 된 그래피티는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주로 다룬다는 이유로 오랜 시간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의 여러 활발한 활동으로 그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미쉘 바스키아, 뱅크시, 키스 해링, 티에리 구에타 등의 유명한 아티스트들까지 배출해 내며 사회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들의 작품들은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뮤지엄, 미국 스미소니언 아메리카 아트미술관, 뉴욕현대미술관 등이 소장할 정도로 그 명성을 높다.
그래피티가 주던 상징성이 아닌, 변화한 그 예술적 가치를 바탕으로 현재 온천천은 금정구 문화예술 활동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990년대 말부터 그 활동이 시작된 온천천 그래피티는 부산 도시철도 온천장역에서 장전동역에 이르기까지 그려졌다. 그리고 이는 국내에서 가장 넓은 면적의 그래피티 공간으로 유명해져 해외에까지 소개되며 그 명성을 높였다.
이 공간을 중심으로 형성된 문화공간은 지난해 말 금정구가 교육문화예술특구로 지정된 이래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온천천 주위에서 소규모로 이루어지던 문화 행사가 그 범위를 부산대까지 확장하면서 2013년 부산 제로페스티벌이 부산대 주변에서 열리게 되었다. 행사는 공연, 전시, 영화, 포럼에 이르기까지 그 장르가 다양하며 한동안 뜸했던 부산대 앞 소규모 영화 상영을 축제의 일환으로 시행하면서 활동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10월 12일과 13일 양일간 오후 7~10시 부산대 앞 카페 헤세이티에서 진행된 상영회는 부산독립영화협회와 공정영화협동조합인 갈매기극장의 도움으로 지역에서 만들어진 영화를 감상한 뒤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아직은 서툰 금정구의 문화적 기지개가 어떻게 작용할지는 알 수 없다. 이 작은 움직임이 지속되어 그 미약한 처음이 될지, 혹은 뒤척임이 될지는…. 부디 뒤늦게나마 문화적 공간으로 발돋움하려는 금정구의 노력이 결실을 거두어 영화적 공간으로서도 그 의의를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글=허서연 부산대 영화연구소 연구원 readthesky2207@gmail.com
사진=이경희·박종현 사진가 mizise@naver.com
후원 : 부산영상위원회
부산 금정구 영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