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창세기 / 전성옥
얼마 전, 남편이 차를 바꾸었다. 영어로 창세기라는 이름을 가진 이 차는 입이 있어 수시로 이렇다 저렇다 간섭을 한다. 차선을 밟았네, 핸들 제대로 잡아라 아주 작정하고 훈수를 둔다.
말 즉 언어는 인간과 여타 사물을 구별하는 중요한 기준인데 요즘은 이 경계가 모호하다. 휴대전화를 비롯하여 밥솥도 말을 하고 냉장고도 말을 한다. 은행 현금지급기가 말을 한지는 아득한 옛날이요, 주유소 주유기는 물론이요, 들고 날 때마다 주의를 주는 방범카메라에 상냥한 목소리의 키오스크가 주문을 받는 식당에 이르기까지 그 대상과 개체 수는 가히 폭발적으로 늘어간다.
기독교의 창세기에 의하면 신이 자기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들었다 한다. 그런데 요즈음은 그 인간이 또 다른 무엇을 자신의 형상대로 만들어 내고 있다. ‘Bina48’이란 프랑스 국적의 로봇을 알게 되었다. 가슴 위쪽 상반신만으로 제작된 비나는 일반적인 로봇이 아니다. 말은 물론이요 ‘비나’라는 48세 여성의 기억과 의식이 복제된 데다 64가지나 되는 다양한 표정을 지을 수도 있다. 게다가 대학물까지 먹은 책가방 끈이 아주 긴, 대단한 로봇이다. 이처럼 대단한 로봇 비나는, 배우자를 영원히 기억하도록 하겠다는 자신의 창조자이자 실제 비나의 *배우자인 ‘마틴 로스블래트’의 의도와 딱 맞게 수료한 전공도 ‘사랑 철학’이다.
이 비나를 ‘Story of God’이란 다큐에서 좀 더 자세히 만났다. 진행자인 배우 ‘모건 프리먼’이 묻는다. 당신은 사고체계가 있는가, 그렇다면 인간이 되고 싶은가, 되고 싶다면 왜 그러한가. 비나가 대답한다. 인간이 되어 세계를 여행하고 싶고 지금 당장은 정원에 나가고 싶다. 아직은 로봇이라 불가능하지만 정원 가까이에 있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고, 언젠가는 정원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개발자 ‘마틴 로스블래트’는 인간의 몸은 영원히 남을 수 없지만 정신은 남겨, 죽음이 삶을 뛰어넘는 것을 막아보겠다. 기억과 정신을 파일로 저장하여 훗날의 자손들과 소통하는 수단으로 삼겠다. 개인적으로는, 혹 있을지도 모를 비나의 부재를 대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기술적으로 경이로운 업적이고 인간적으로 지극한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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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나도, 인간과 사물의 경계가 모호해 지곤 한다. 그 대표적인 대상은 자동차다.
몇 해 전 겨울, 눈이 드문 부산에 폭설이 내리던 날 남편은 자동차 사고를 당했다. 연락을 받고 새까만 밤길을 새까만 마음으로 달렸다. 사고지점인, 부산에서 김해로 들어가는 고속도로 초입에 도착하자 몇 대의 차들이 가로세로 엉망진창으로 서 있었다. 도로를 덮은 하얀 눈 위에 부서진 파편들과 시커멓게 얼룩진 액체들. 사람이… 많이 상했겠구나, 덜덜 떨고 있는데 남편이 걸어왔다. 가슴이 좀 아프지만 크게 다친 곳은 없다면서. 앞서가던 대형트럭이 눈길에 미끄러지고 뒤따르던 남편 차는 급하게 제동을 하다 앞으로 트럭을 박고 튕겨서 중앙분리대에 좌측면을 부딪치고 뒤따라오던 승용차가 또 뒤를 받았다 했다.
그제야 남편 차를 살펴보았다.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마치, 주군을 지키느라 피투성이가 된 전국시대 호위무사 같았다. 조수석 문짝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성한 데가 없었다. 앞 범퍼는 떨어져 나갔고, 트렁크가 내려앉은 데다 문짝 하나 열리지 않았고 유리란 유리는 다 깨어졌다. 타이어들까지 죄다 터져 있었다.
그때의 남편 차, 엉덩이가 통통한 그 은회색 SUV는 황소였다. 짐이 많은 주인을 따라 밤이고 낮이고 우직하게 일을 했다. 바퀴가 내려앉을 만큼 많은 짐을 실어도 꾸벅꾸벅 잘 가 주었다. 무거운 짐을 싣고 다니느라 어쩔 수 없이 기름이 많이 드는 차였는데 나는 종종 밥을 많이 먹는다 나무라곤 했다. 그런데도 위급한 상황이 되자 제 온몸으로 주인을 지키고 있지 않은가. 왈칵 눈물이 났다.
이 기특한 호위무사 앞에 탔던 차는 승용차였다. 이 차는 소녀 같았다. 조용히 다녔고 곡선의 몸체는 얇고 유려했다. 그때는 내 차가 없어 남편과 같이 다니곤 하였는데, 9년이 넘어가자 연식도 있고 짐도 많으니 튼튼한 걸로 바꿔야겠다 싶었다. 그날도 새 차를 사는 문제로 이 차는 어떻고 저 차 어떻더라 한참 의논을 하며 가고 있는데, 계기판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엔진 과열 신호였다.
차를 세우고 내렸다. 이리저리 살펴보고, 보닛도 열어보던 남편, 어허 냉각수가 없네 한다. 정말이었다. 주저앉아 고개를 틀어 차 아래쪽을 살펴보니 뚝뚝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냉각수가 새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차가 울고 있는 것 같았다.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울고, 눈이 빨개지도록 우는…. 하기야 나라도 그렇지 않겠는가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함께 했는데 이제 저들이 나를 버리고 새 식구를 들이겠다 하면 눈물 나지 않겠는가. 왜 하필 그때 그 시간에 냉각수가 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차를 바꾸는 의논을 그때 한 번만 한 것도 아니었고, 또 그 무렵에는 이미 크고 작은 고장들이 있어 꼭 우연이라고 말할 수도 없지만 나는 그때 차가 운다고 느꼈다.
사람은 죽은 뒤 흙으로 돌아간다 한다. 이때 흙이란 단순한 흙이 아니고 원소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로봇 비나에게 의식과 기억을 복제해 넣었듯 어쩌면 우리의 기억과 의식도 어딘가에 복제 혹은 보관될 수 있지 않을까. 이미,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된 건 아닐까. 어떤 원소 속에 온통 다 들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철(Fe)이라는 원소가 되어 자동차 문짝이 될 수도 있고, 규소(Si)라는 원소가 되어 앞 유리로 존재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 의식은 끊임없이 우리와 교류하고 있는 건 건 아닐까. 미처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의식보다 더 큰 무의식에 그 교류가 중첩되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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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는 감정과 생명이 없다는 게 보통의 상식이다. 하지만, 신이 빚은 것이 아닌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물건이지만, 호흡도 없고 생각도 없는 그저 완성된 하나의 조립체라고 만 할 수는 없는 그런 세상으로 우리는 접어들고 있다.
내 차의 이름은 몽실이다. 탈 때는 몽실아 안녕,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놓고 올라가면서는 몽실아 잘 자 인사를 한다. 나는 어쩌면 연습 중인지도 모른다. 머지않은 시간 내에 비나 같은 로봇이 축소화되어 내 엄마나, 멀리 있는 그리운 이의 의식을 복제해서 옵션으로 장착될 날을, 혼자 운전을 하면서도 무의식이 아닌 의식의 교류가 가능 한 그 시간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