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우연히 TV에서 키웨스트*에 있는 헤밍웨이의 집과 바다를 보고 책꽂이에서『노인과 바다』를 꺼낸다 『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의 배요 헤밍웨이의 돛대요 헤밍웨이의 항로다
첼로에 수영에 보트에 사냥에 낚시에 축구에 야구에 권투에 전투에 투우에 소설에 시에 사랑에 죽음에 이르기까지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든 겁 없는 야성을 부러워하긴 했지만 헤밍웨이 그 자신이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사노라면 누구나 행복도 있고 불행도 있는 법 그 장단이 고르지 않아 그렇지 무엇인가 있기는 있다
인생에 역시 인생은 스스로가 지켜야 한다는 지론에 이의는 없지만 약한 의지력에서 그랬나 나는 열여섯에 죽지 않고 살아남았음을 고마워 하는데 시기적으로는 열여섯보다 21세가 적합했다
그땐 눈먼 수레바퀴 밑으로 빠져 나와 이상하게 살아남아서 시(詩) 시하며 시를 쓰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그것을 헤밍웨이에게 자랑하고 싶다
헤밍웨이는 갔다 나는 그의『노인과 바다』를 읽고 있고 그가 죽은 나이에 살아서 그의 소설을 읽는 것은 기적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기적이다 그것을 제 손으로 쏴 죽인다는 거 그건 숨막히는 죄악이다
그가 전쟁에 뛰어들어 취재하는 열정과 술 마시는 쾌락과 네 번의 결혼과 세 번의 이혼 그런 속성 아니면 또 무엇으로…… 아니다 그는 이미 어쩔 수 없는 ‘살라오salao’에 이르렀던 것이다
‘살라오’란『노인과 바다』첫 장에 나오는 ‘가장 운이 없는 사람’ 나는 그것을 분석할 책임이 없다 그저 읽기만 하면 그만이다
그가 자기에게 쏜 엽총소리와 고흐의 권총소리를 감별할 의무도 없다 때로는 그들의 최후를 내가 반성해야 하기 때문에 그들의 마지막 순간처럼 어지러울 때가 있다
내가 고흐의 ‘까마귀 나는 밀밭’을 걸어놓고 헤밍웨이의『해는 또 다시 떠오른다』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노인과 바다』
이 중에 나는『노인과 바다』를 제일 좋아한다 지금도 TV에서 키웨스트의 집과 바다가 나오기에 얼른 『노인과 바다』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 첫 장부터 다시 읽는다
『노인과 바다』어쩌면 그렇게 내게 알맞은 제목인가 하고 아바나의 소년에게서 커피를 얻어 마시는 기분으로 읽는다 오늘은 이상하게 푸른 바다가 노란 밀밭과 빨간 투우장으로 보인다 그들은 갔지만 그들의 승리를 위해 ‘투우사의 노래’를 부르고 싶다
- 이생진 -
(2012. 2. 19)
* 키웨스트 Key West 미국 본토에서 최남단으로 160km 떨어져 있으며 길이 5.1km, 너비 1.6km의 모래 산호섬에 있는 도시. 인구 24,832(1990).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살았던 집이 보존되어 있음.
- 이생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