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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22일 오늘의 역사
2022년 미국 몬태나주의 일부 산악 지방 최저 영하 46도로 급강하했고, 캐나다 북서부에서는 영하 53도 기록
2021년 전북 해만금에 연간 131GWh의 전력을 생산하는 육상 태양광발전소 준공
전북도는 새만금 현지에서 그린뉴딜 중심지로 주도할 육상 태양광 1구역 준공식을 가졌다. 육상태양광 1구역은 1575억원의 사업비가 투자돼 1.15㎢ 면적에 설비용량 99MW의 발전시설로 연간 131GWh의 전력을 생산하게 된다.
이는 약 2만7000여 가구가 1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규모이다.
새만금 지역에는 태양광을 비롯해 풍력과 연료전지 등 모두 3.0GW 규모로 총 6조6000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단계별로 재생에너지 발전단지를 조성하고 있으며 우선 내년부터 1단계로 육상태양광 0.3GW 발전을 시작으로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재생에너지가 생산될 예정이다.
2021년 이스라엘 고대 카이사레아 항구의 난파선에서 예수를 상징하는 문양이 새겨진 금반지를 발견
2018년 인도네시아 순다해협에서 3m 높이의 쓰나미 사망 281명 부상 1천여명
2017년 경강선(서울-강릉) KTX 개통
2014년 중앙선관위, 헌재판결로 해산된 통진당 소속 비례대표 지방의원 6명 의원직 상실 선언
2012년 가수 싸이의 ‘강남 스타일’ 세계최초 유튜브 조회수 10억 건 돌파
2011년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12차례 연쇄 폭탄테러 57명 사망
2008년 국내 최초 이지스함 '세종대왕함' 전력화
세계최고 수준의 대함, 대공, 대잠 능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국내 최초의 이지스 구축함인 ‘세종대왕함’이 2008년 12월 22일 부산 작전기지에서 취역식을 갖고 작전 배치됐다.
1년 6개월간의 시운전과 인수 평가를 끝낸 세종대왕함은 광역 대공방어, 지상 작전지원, 항공기와 유도탄 및 탄도탄의 자동추적 등의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 해군이 운용할 기동부대의 핵심전력으로 기대된다.
꿈의 구축함으로 불리는 이지스 구축함인 세종대왕함(KDX-Ⅲ.7600t급)은 우리 해군이 2007년 1월 진수, 우리나라는 미국·일본·스페인·노르웨이에 이어 세계에서 5번째로 이지스함을 보유한 국가가 됐다.
7천600t급의 세종대왕함은 SPY-ID(V) 레이더 등으로 구성된 이지스 전투체계를 탑재, 1천여개의 표적을 동시에 탐지 추적해 그 중 20개의 표적을 동시에 공격할 수 있으며 선체에는 함정 스텔스 기능까지 적용돼 적에게 쉽게 노출되지 않으면서도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뛰어난 전투능력을 갖추고 있다.
또 5인치 주포 1문과 근접방어 무기체계인 골키퍼(Goal Keeper), 함대함, 함대공 등 120여기의 미사일과 장거리 대잠어뢰 등이 장착돼 있다.
세종대왕함은 전장 166m, 전폭 21m로 승조원은 300여명, 최대속력은 30노트(55.5㎞)를 자랑한다.
이지스 구축함 한척이 움직이는데 군수지원함, 잠수함, 호위함이 따라 붙어야 하기 때문에 해군은 세종대왕함과 대형수송함인 독도함(1만4천t급), 한국형 구축함(KDX-Ⅱ)인 충무공이순신함(4천200t급), 1천800t급 잠수함인 손원일함 등으로 기동전단을 편성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해군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동.서.남해 기동전단에 각각 2대씩 모두 6척의 이지스함이 필요하며 52%에 불과한 세종대왕함의 국산화 비율도 끌어올려야 하는 등의 과제가 남아있다.
2007년 중국 광뚱성 앞바다에서 100조원 상당의 보물 실린 송나라 때 배 820년 만에 인양
2001년 탈레반 정권 물러난 아프가니스탄에 과도정부 출범
2001년 북한공작선, 일본 순시선과 교전 침몰
북한 공작선으로 보이는 괴선박 1척이 2001년 12월 22일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침범한 뒤 도주하다가 30시간 만에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의 공격을 받고 중국 EEZ 내 동중국해에서 침몰했다.
일본의 해양 경찰에 해당하는 국토교통성 산하 해상보안청은 23일, “가고시마(鹿兒島)현 아마미 오시마(奄美大島) 서북서쪽 동중국해 해상에서 이날 침몰한 괴선박에 타고 있다가 행방불명된 승무원 15명 가운데 3명의 시체를 발견, 이 가운데 2구를 인양했다”며 “인양된 승무원의 구명조끼에 한글이 적혀 있었다”고 밝혀, 이 선박이 북한 것임을 시사했다.
일본 정보기관은 이 괴선박의 규모, 속도, 도주로 및 기타 관련 정보 등을 종합분석한 결과 이 선박이 지난 17∼18일쯤 북한 평양 인근 남포항을 출발, 중국인근 공해상을 통해 남하해 일본 남부 영해를 침범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지난 1999년 일본 영해를 침범했다가 북한 청진항으로 달아났던 공작선과 이번 침몰선박을 비교한 결과 모양이 비슷한 반면 속도가 2년 전 공작선(시속 30노트)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점 등으로 미뤄 공작원 침투 등의 목적보다는 마약밀매 업무를 수행한 공작선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2001년 아키히토 일왕, 한반도와 혈연관계 언급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2001년 12월 22일 기자회견에서 한국에 대한 생각을 질문받고 “간무(桓武)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武寧王)의 자손이라고 ‘속(續)일본기’ 에 기록돼 있는 사실에 한국과의 연(緣)을 느낀다” 며 일왕가(家)가 고대 한반도와 깊숙이 관련돼 있음을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간무’ 는 재위 기간 781∼806년의 제50대 일왕으로, 일왕 자신이 공개적으로 한반도와의 혈연적 관련성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는 매끄럽지 못한 당시의 한일 관계에 비춰 양국우호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이번 일왕 발언이 학문적으로 새로운 사실을 밝힌 것은 아니다. 7세기 후엽 백제 멸망 때 일본 왕실이 대규모 원군을 보내 함께 싸우는 등 고대 일왕가가 백제와 깊은 관계였음은 일본 역사학계에서도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통설이다.
다만 학자와 학계에서만 통용되던 ‘역사적 사실’ 이, 일왕 본인의 입을 통해 ‘일반적 사실’ 로 변해 대중적 전파력을 지니게 됐다는 점에서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당시 전문가들은 내다보았다.
2001년 KT-MS 제휴, 아르헨티나 디폴트 사태로 잠정 연기
2000년 국민은행과 주택은행 합병 발표
김상훈(김상훈) 국민은행장과 김정태(김정태) 주택은행장은 2000년 12월22일 오후 한국은행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세계적인 은행으로 거듭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면서 “두 은행의 합병은 대형 우량은행간 합병이라는 점에 큰 의미가 있으며, 합병합의서에 두 은행장이 서명했다”고 밝혔다.
두 은행장은 “합병은 새로운 은행을 설립한 다음 두 은행을 흡수하는 방식을 취할 것”이라고 설명하고, “이에 따라 국민·주택은행은 청산절차를 거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장들은 또 합병비율과 관련해 “1대1 대등(대등)합병이 될 것이며, 인력과 점포·부서 등 조직의 통합은 대등합병 원칙 아래 추진될 것”이라고 말했다.
합병 후 인력감축 등 구조조정과 관련, 두 은행장은 “한꺼번에 많은 인력을 감축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면서 “합병에 따른 직원피해를 최소화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 .
그러나 두 은행은 정부협의도 거치고 대주주 동의까지 얻었지만, 노조측이 무기한 파업을 천명하며 강하게 반발, 합병작업은 순탄치 못했다.
또 금융전문가들은 “주택·국민 두 은행간의 합병합의서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양해각서(MOU) 성격이기 때문에 실사과정에서 숨겨진 부실자산이 드러날 경우 합병비율을 둘러싸고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1999년 대한항공 항공기 영국 스탠스테드공항 이륙직후 추락(4명 사망)
1997년 전직 대통령 전두환-노태우씨, 특별사면으로 석방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구속 2년여 만에 1997년 12월 22일 오전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검은 색 코트에 회색 목도리 차림으로 안양교도소를 나온 전씨는 머리가 하얗게 세고 마른편이었으나 건강한 모습이었다. 서울구치소에서 출감한 노씨는 가느다란 목소리로 국민들에 대한 인사말과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에 대한 축하 인사만을 짤막하게 하고는 구치소 앞을 떠났다. 두 사람은 특별사면과 함께 복권까지 돼 정치활동 재개가 가능해졌다.
전-노씨는 추징금을 각각 1천8백93억원, 2천2백29억원을 미납한 상태였다. 전-노씨와 함께 12·12사태, 5·18 및 부정축재 사건 관련자 15명도 석방됐다. 그러나 전-노씨의 출감을 지켜본 사회단체와 시민들은 두 사람의 출감모습이 “개선장군이라도 되는 양 반성의 빛이 보이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1994년 이탈리아 총리 베를루스코니 사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가 1994년 12월 22일 오스카르 루이지 스칼파로 대통령을 만나 사임서를 제출했다. 집권 7개월 만에 무너진 이탈리아 우파 연립정권의 정치적 운명은 이미 출범 당시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감정적인 성격의 그는 취임기간 동안 연금제 삭감안 결정 과정이나 치안검사의 예비구금권 제한 등 앞뒤 가리지 않고 정책을 결정해 말썽을 빚어왔다. 또 취임 초기부터 꾸준히 나돌던 마피아 연루설과 11월 뇌물공여 혐의의 수사통보는 정치무대에 처음 등장 당시 최대의 무기였던 ‘깨끗한 인물’ 이란 이미지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다.
비오 베를루스코니는 자수성가형의 입지전적 인물로 유럽 제2의 언론왕국을 소유한 이탈리아 3대 재벌의 총수이다. 부친이 은행원인 밀라노의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대학시절 학비를 벌기 위해 진공청소기를 판매하거나 유람선에서 가수로 활동한 적도 있다. 1961년 법대를 졸업한 뒤 건설업계에 뛰어들어 은행융자금으로 밀라노 교외에 아파트단지를 건설해 분양하면서 한 밑천을 잡았다.
이후 1970년대 지방 TV방송국을 인수하기 시작, 1980년대 중반엔 4개의 전국 민영TV중 3개 채널(시청률 45%)과 일간지 `일 지오르날레`지, 최고 판매부수의 `파노라마`지 등을 사들였으며 최대 슈퍼마켓 체인, 보험사, 광고회사, 명문축구팀 `AC밀란`구단, 영화제작사 등 3백여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연 매출액 70억달러(5조6천억원)의 `피닌베스트`그룹을 만들었다.
1994년 북한, 영공개방 방침 발표
1993년 남아공의회, 신헌법안 승인,백인지배체제 종지부
1993년 부여 능산리고분에서 `금동용봉봉래산향로` 발굴
충남 부여군 능산리 고분군에서 1천4백여년전 백제 장인의 솜씨가 한껏 발휘된 국보급 금동제 향로인 금동용봉봉래산향로(일명 박산로)가 완벽한 모습으로 발굴됐다.
국립부여박물관이 1993년 12월 22일 공개한 이 향로는 사적 14호인 능산리 왕릉묘역에서 서쪽으로 2백m쯤 떨어진 논에서 나온 것으로 높이 64 ㎝이며, 전체적으로 뚜껑손잡이, 뚜껑, 몸체, 다리부분 등 4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뚜껑손잡이의 봉, 받침은 용의 형상으로 왕실에서 사용됐음을 보여주며 뚜껑에는 피리, 비파, 현, 금, 북 등을 연주하는 5인의 주악상이 있고, 30개의 봉우리에는 지팡이를 든 사람, 머리를 감는 사람 등 각종 인물상과 코끼리 원숭이 멧돼지 뱀 새 등 온갖 동물, 불타는 모양의 무늬, 폭포 등을 양각해놓았다.
이러한 조각은 신선사상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며 몸체 바깥은 연꽃으로 감싸 당시 백제왕실에는 도교와 불교사상이 혼재했음을 짐작케 했다. 이 향로는 국내에서 발굴된 것 가운데 가장 크면서도 조각이 화려,정교할 뿐 아니라 왕실에서 사용한 것이어서 고고-미술학사상 획기적인 발굴로 백제유물 가운데 단일출토품으로는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됐다.
1992년 한국 베트남 수교
1992년 광케이블망 국내 첫 개통
1991년 소련의 그루지아 공화국에서 정부군-반정부군 유혈 교전 70여명 사상
1988년 외무부 1989.1.1부터 해외여행 제한연령 완전철폐 발표
1989년 아일랜드 출신 프랑스 작가 사뮈엘 베케트 세상 떠남
1989년 북경아시안게임 단일팀 구성을 위한 제6차 남북체육회담 열림
1989년 루마니아 차우세스쿠 정권 붕괴
동구권의 거센 개혁열기를 완강히 거부해 온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 정권이 1989년 12월 22일 5일간의 민중봉기 끝에 마침내 붕괴됐다. 차우세스쿠는 이날 부인과 함께 해외망명을 시도했으나 루마니아군에 의해 체포됐다.
차우세스쿠 정권이 붕괴된 직후 마네스쿠 전외무장관이 이끄는 `구국전선`이 잠정적으로 통치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차우세스쿠 친위부대가 이날 부쿠레슈티로 진입, 군중들에게 총을 쏴 수백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정정불안이 계속됐다. 차우세스쿠는 이날 오전 전국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수도 부쿠레슈티 등 전국 주요 도시에서 벌어진 반정부시위를 계속 무력진압할 태세를 보였으나 군부가 시위대와 합류, 정권타도투쟁에 나서자 정권을 포기했다.
시위대와 루마니아 정규군은 공산당 중앙본부, 방송국 등 주요거점을 모두 장악했으며, 시민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우리는 승리했다"고 환호했다.
1989년 ‘고도를 기다리며’ 의 저자 사뮈엘 베케트 사망
196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아일랜드 극작가 사뮈엘 베케트는 향년 83세로, 그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 이다.
베케트는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 근교에서 태어났다. 1923~27년 더블린에 있는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로망스어를 공부했고, 이곳에서 학사학위를 받았다. 벨파스트의 한 학교에서 잠시 교편을 잡은 후 1928년 파리 고등사범학교의 강사가 됐다. 여기서 그는 논란을 불러일으킨 대표적 현대소설 ‘율리시스(Ulysses)’ 의 저자이자 스스로 망명한 아일랜드 작가 제임스 조이스를 만났다. 그는 스승이면서 친구였던 조이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으나, 그것을 독특하게 발전시켰고, 특히 소설에서는 내면세계의 허무적 심연(深淵)이 추구되었으며, 희곡에서는 인물의 움직임이 적고 대화가 없는 드라마로 형식화되어 있다.
1952년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 의 성공으로 그의 이름이 알려졌고, 3부작의 소설 ‘몰로이’(1951) ‘말론은 죽다’(1951) ‘이름 붙일 수 없는 것’(1953)은 누보 로망의 선구적 작품이며, 그 외에 희곡 ‘승부의 끝’(1957) ‘오, 아름다운 나날’(1963) ‘연극’ (1964) 등이 있다.
1983년 서사모아 북한과 단교
1983년 아라파트, 이집트 방문 무바라크와 회담
1983년 공안(公安)관련자 172명 석방, 정승화 최기식 고은 등 142명 복권
1983년 한국-기니비사우 국교 수립
1983년 레이건 미 대통령 부인 낸시 여사의 도움으로 미국 뉴욕 성프랜시스 병원에서 심장수술을 한 안지숙 양과 이진우 군 37일 만에 귀국
1982년 한국청소년축구 제23회 아시아청소년대회서 우승, 이라크에 2-1승
1982년 12월 22일 방콕국립경기장에서 벌어진 제23회 아시아청소년축구대회 최종 결선리그 3차전에서 한국청소년대표팀이 중동의 강호 이라크를 2대1로 제압,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출전권을 획득했다.
한국은 이날 초반부터 맹공격을 펼쳐 게임의 주도권을 쥐고 나가다 시작 13분 만에 첫골과 15분에 두번째골을 성공시켜 추가점을 올렸다. 후반 한국은 체력의 열세로 후반 33분에 이라크에게 첫골을 허용했다. 이후 한국은 다시 공세를 취해 두차례나 좋은 찬스를 맞았으나 더 이상의 추가 득점을 못하고 2대1로 승리했다.
이번대회에서 우승한 한국은 2년마다 열리는 아시아 청소년대회에서 1978년의 이라크와 공동우승, 1980년의 단독 우승에 이어 대망의 3연패를 기록했다.
1982년 치안본부, 신체장애자에 운전면허응시자격 허용
1980년 서울형사지법 피의자구속적부심 부활 후 첫 석방 결정
1978년 박정희 대통령, 개각 단행
1977년 수출 1백억달러 달성
1977년 12월 22일 오후 4시, 100억 달러 수출을 자축하기 위한 기념식이 서울 장충 체육관에서 열렸다.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한 7,000여 명이 참석한 자리였다.
1960~1970년대 빈약한 자원과 기술뿐이던 열악한 상황에서 박 대통령 직속의 '수출진흥 확대회의'를 신설해 수출을 독려해 1964년 11월 30일에 1억 달러 수출을 돌파한지 13년 만이었다. 100억 달러 수출은 목표보다 3년을 앞당긴 성과였고, 아시아에서는 일본(1967년)에 이어 2번째로 이뤄낸 쾌거였다.
수출역군들의 땀과 눈물로 이뤄낸 연평균 수출신장율 42.4%, 수출품목 1,200여개, 수출시장 133개국, 세계 수출액의 1%의 자랑스런 수출성적표였다.
합판은 1960년대 수출의 대명사였고 1960년 후반에는 어린 여공들의 희생으로 일군 섬유산업이 수출을 견인했다. 덕분에 10억 달러를 달성했고(1971년), 한일합섬은 처음으로 1억 달러를 돌파했다(1973년).
성공적인 수출정책은 화려한 모습으로 사회 곳곳을 장식했지만 단기간의 고도성장은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는 부작용을 피할 수는 없었다. 산업간, 지역간 격차가 벌어졌고 자원배분이 왜곡됐다. 저임금의 희생이 눈에 띄게 늘어갔지만 수출장려 정책으로 특혜를 받은 회사는 재벌로 성장해 나갔다.
1969년 미국의 영화감독 슈테른베르크 사망
1966년 민주사회당 창당(대표 서민호)
1965년 영국 BBC 방송 최초의 종군특파원 딤블비 사망
1965년 다호메이 군사쿠데타, 소글로 장군이 전권 장악
1962년 최고위, 헌법개정안 가결 선포
1961년 첫 학사자격 국가고시 실시
1958년 민속극장 개관
1947년 김구, 남한단독정부수립 반대 성명
1947년 이탈리아, 공화국헌법 제정
1944년 미국 프로 야구선수 스티브 칼턴 출생
1938년 숙명여전(현 숙명여자대학교) 개교
1921년 에디슨, `전축 캐비넷` 디자인으로 특허 취득
1911년 천태종 중창조 상월 원각 스님 태어남
1911년 미국의 천문학자 레버 출생
1909년 최초의 극장 원각사 개관
1909년 12월 22일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극장인 원각사가 개관했다. 원각사는 연극상연 전문극장으로 1902년 고종 즉위 40년을 기념하기 위해 2,000여명 정도 수용가능한 로마식 극장인 `희대`가 그 전신이었다.
1902년 8월부터 경축예식을 위한 준비로 `협률사`라는 연희를 담당하는 관청을 두었는데 희대는 협률사의 극장이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협률사에 대해 탐탁치 않게 생각하자 협률사를 폐지하고, 이 건물은 관인구락부의 건물로 사용되었다. 그 후 1908년 1월 관인구락부가 남대문근처로 이전하게 되어 이 건물은 원각사로 사용되어졌다.
초창기에는 `춘향가` `심청가` `화용도` 등의 판소리가 상연되어졌으며 한국최초의 신소설인 이인직의 `신세계`가 신극화되어 상영되어졌으나,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 후 원각사는 1910년 막을 내리게 되었으며 원각사의 뒤를 이어 어성좌, 단성사, 연흥사 등의 극장이 생겨났다.
1909년 이재명, ‘을사5적’ 의 이완용 습격
열혈 청년 이재명이 1909년 12월 22일 명동성당에서 열린 벨기에 황제 레오폴드2세 추도식에 참석한 `을사5적` 이완용을 칼로 찔렀다.
인력거를 탄 이완용을 암살하기 위해 먼저 인력거꾼의 가슴을 찔러 거꾸러뜨린 후 바로 이완용의 허리를 찔렀다. 이후 이완용에게 달려들어 수차례 어깨 등을 찔렀으나 곧 일본 경찰들에게 제지당했다. 인력거꾼은 숨지고 이완용은 복부와 어깨에 중상을 입었으나 회복해 이듬해 8월 총리대신으로 정부의 전권위원이 돼 일본과 을사늑약을 체결했다. 이재명은 현장에서 체포돼 이듬해 5월 사형을 선고 받고 9월 30일 24세의 젊은 나이에 사형당했다.
평북 선천에서 태어난 이재명은 1904년 열여덟살의 나이에 하와이로 이민을 갔으나 제1-2차 한일협약이 체결되자 항일운동을 위해 1907년 10월 조국으로 되돌아왔다. 1909년 1월 이토 히로부미의 평양 방문 소식을 듣고 그를 암살하려 평양역에 대기하고 있었으나 순종 황제가 동행한다는 소식에 순종 황제에게 피해가 갈까 우려한 안창호 선생이 만류해서 단념했다. 안중근 의사에 의해 이토가 사살되자 목표를 상실한 이재명은 매국노인 이완용의 암살로 목표를 바꿔 이날 거사하게 됐다.
1902년 최초의 하와이 이민 121명 인천항 출발
1894년 드레퓌스 종신형 선고
유태인이면서 프랑스군 장교인 드레퓌스 대위가 1894년 12월 22일 군사기밀을 독일에게 팔아넘겼다는 혐의로 프랑스 군사법원으로부터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단지 필적이 비슷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여론과 언론들은 편견과 예단에 입각한 배심원들의 이같은 평결을 환영했다. 나중에 필적의 주인공이 육군 소령 에스테라지라는 사실이 밝혀져 양심적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재심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전개됐음에도 권위가 실추될 것을 우려한 프랑스 군사법원은 계속해서 드레퓌스의 유죄를 주장해왔다. 에밀 졸라가 ‘나는 규탄한다...’는 6단자리 기고문을 파리의 ‘여명’이라는 조간신문에 게재한 것은 국면 전환의 분수령이었다.
마침내 드레퓌스는 에밀 졸라, 아나톨 프랑스, 마르셀 프루스트 등 지식인들의 도움으로 1906년 7월 12일 프랑스 최고재판소로부터 무죄를 선고받아 누명을 벗었다. 이날의 무죄판결은 그동안 유태인인 드레퓌스에 대한 군대내의 편견과 선입견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프랑스 법원의 양심을 드러낸 일대 결단이었다. 집단적 편견의 희생양이 될 뻔했던 드레퓌스를 구해낸 프랑스 지식인의 집단적 저항은, 지식인의 양심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남아있다.
1885년 일본, 내각제도 발족
1883년 미국의 작곡가 에드가 바레즈 출생
1882년 최초의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 전구 등장
1880년 영국 작가 조지 엘리엇(여 1819-1880) 사망
1876년 그레이엄 벨, 세계최초로 전화기 발명
1876년 이탈리아계 프랑스 작가 필리포 마리네티 출생
1872년 프랑스의 세균학자 게랭 출생
1858년 이탈리아 작곡가 푸치니 출생
1849년 러시아 작가 도스토예프스키 사형선고
1823년 프랑스 곤충학자 파브르 출생
1808년 베토벤의 제5,6 교향곡 초연
1768년 영국의 풍경화가 크롬 출생
1702년 스위스의 초상화가 장 리오타르 출생
1641년 프랑스 정치가 막시밀리언 쉴리 사망
1639년 프랑스 극작가 장 라신 출생
1178년 일본의 제81대 천황 안토쿠 출생
1145년 김부식 삼국사기 완성
삼국사기는 우리나라 최고의 역사책으로 김부식 등 11명이 고려 중기 인종의 명을 받아 신라·고구려·백제 3국의 정치사를 주로 편찬해 1145년 오늘 완성하였다. 판본은 고려본과 조선본으로 나누어지는데 고려본은 전부 유실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44∼50권이 발견되어 성암고서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보물 제722호). 조선본은 1393(태조2)∼94년 진의귀ㆍ김거두에 의해 간행되었으나 남아 있지 않고, 1512(중종7) 이계복에 의해 개간된 목판본이 완질본으로 남아 있고 1573년에 찍어낸 목판본은 보물 제525호로 지정되어 경상북도 경주 옥산서원에 소장되어 현존한다. 체제는 중국의 정사와 기전체의 시초인 사마천의 <사기>를 따르고 있다. 이 책은 한국 고대사를 연구하는데 있어 <삼국유사>와 함께 최고의 사료적 가치를 갖고 있다.
1095년 노르만계 시칠리아 왕국의 왕 루지에로 2세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