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애니메이션 역사 중에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그 외 나라의 작품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 그 성향에 대한 긍정이나 혹 부정의 차원을 떠나 이는 매우 가치가 있는 것이며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제패니메이션이 지니는 특징이란 무엇인가?
우선 첫째로 시나리오가 차지하는 비중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줄거리를 지닌 애니메이션이 꼭 일본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작화와 연출이 시나리오를 위주로 짜여져 있고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전달하려 하는 것은 다른 나라의 애니메이션엔 없는 제패니메이션만의 특징이다. 둘째로 캐릭터의 특이성을 들 수 있다. 제패니메이션의 캐릭터는 디즈니의 모방으로 시작했다는 것이 정설이나, 독특한 개성의 작가가 등장하는 동안 일본의 캐릭터는 변모해 있다. 인물의 대략적 생김새는 분명 만화적으로 과장․생략 되어져 있으나, 주름이나 명암 따위에 대한 세밀한 묘사는 다른 나라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즉 만화적 캐릭터 디자인을 베이스로 하고 거기에 극화 적 성향의 연출과 디테일을 추가한 형태라 하겠다.
물론 제패니메이션의 대표작이라고 하면 위와 같은 성향을 잘 살리고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데츠카 오사무의 아톰은 두말할 것도 없거니와 일본 TV 아니메 계의 혁명 마징가 시리즈, 아니메 붐을 이끌었던 야마토라던가, 이후 오타쿠 시대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는 마크로스 시리즈도 있다. 오늘 논할 기동전사 건담 SEED(이하 SEED)도 제패니메이션 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표작 중 하나, 기동전사 건담(이하 건담)의 후속작이다.
기동전사 건담은 79년도에 첫 방송을 시작했고, 이후로 많은 후속작을 내며 꾸준히 사랑받은 시리즈이다. 오늘날에도 선라이즈의 대표작이라 하면 다른 유명작을 재치고 건담이 거론된다. 물론 이 배경엔 건담이나 기동전사 Z건담(이하 Z건담)을 직접 보고 자란 세대가 많은 까닭도 있지만, 오랫동안 후속작을 내며 제패니메이션의 역사와 함께한 동반자인 까닭도 있다. 때문에 기동전사 건담 SEED는 “왕년의 명작”의 후속작 이상의 의미를 부여해 볼 수 있다. 오늘 작성하게 될 본문은 기동전사 건담 SEED의 작품 자체의 퀼리티에 대해서 고찰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건담 시리즈가 대대로 지녔던 역사성을 적용해 본다면, 오늘 쓰여질 내용에서 현 제패니메이션의 경향과 장단에 대해 간접적, 혹 직접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 거라 본다. 혹 의문을 품는 이가 있을까 해 정확히 하자면, 본문이 건담 시리즈의 “역사성”, 나아가 당대 제패니메이션과의 관계에 대해 직접적으로 서술하지 않고, SEED를 평함에 있어서도 될 수 있는 한 작품 자체에 대한 평가로 국한되는 이유는 글이 SEED에 대한 평론이란 본질에서 벗어나 지나치게 광대한 영역으로 와전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작품 자체에 대한 평가에 전념하여 다른 성질의 논란의 여지를 남기지 않으려 함이다.
2. 기동전사 건담 SEED를 비평하는 까닭
작금의 무수한 작품 중에서도 유독 SEED를 고른 까닭에 대해 명확히 하도록 하겠다. 우선 첫 번째는 서문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건담 시리즈가 지니는 역사성 때문이다. 최초의 시리즈인 건담이 등장한 것은 79년의 일이다. 마징가Z의 등장이 72년의 일인 걸 감안하면 건담은 제패니메이션 사에서도 상당히 일찍 등장했던 셈이다. (마징가Z를 기준으로 삼은 까닭은 마징가Z의 등장을 기준으로 일본 TV애니메이션의 상업적, 작품적 틀이 완성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당시 애니메이션 팬들은 제패니메이션에 “보다 차별화된 작품”을 바라고 있었다. 건담은 그 바람을 잘 포착했고, 당시 유행하던 SF적 성향과 밀리터리적 지식을 상당히 수용했던 작품이다. (단 그것은 어디까지나 로봇 애니메이션 영역 안에서의 일이었다.) 이후 건담의 후속작인 기동전사 Z건담도 역시 마크로스가 유행했던 당시 애니메이션계의 성향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던 작품이다. 이후 시리즈도 이 점에서만은 공통분모로 취한다.
즉, 건담에 있어서 작품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건담이 등장했던 시기의 유행과 경향이다. 당시의 건담이 바로 그 형태이게 했던 흐름. 그것을 건담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대중 친화적 작품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바지만, 건담은 그 중에서도 잘 된 작품으로, 표본으로 삼기 매우 적절한 작품이라 하겠다.
두 번째는 SEED에 대한 논란 때문이다. 본디 건담의 후속작은 다방면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그 중 가장 격렬한 것은 “후속작으로서의 자격” 문제와 “작품의 질” 문제였다. 본문은 전자보다 후자의 입장에 입각한 글이 될 것이다.
Z건담 때에도 이미 “Z건담은 사파다.” 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있었고 찬반양론이 뜨거웠다. 이후 후속작들이 나올 때마다 별 진전도 근거도 없는 고루한 논쟁이 이어졌을 뿐이며, 결과적으론 취향의 문제로 결론지어졌다. 말하자면 후속작으로서의 자격 논란은 건담에 대한 획기적이고 타당한 분석이 전제되지 않는 현 시점에선 생산성 없는 논쟁에 불과하다는 것이 필자의 의견이다. 만약 그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하자면 우선 기동전사 건담과 기동전사 Z건담의 연결관계에 대해서 밀도 높게 해부해야 할 것이며, 그런 후에 이후 작품으로 넘어가야 한다.
더불어 작품을 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의 질이라는 것이 필자의 철학이다. 진정 후속작으로서의 가치가 없는 작품이라 해도 작품 자체의 질이 보장된다면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해 볼 수 있다. 자격을 충족시켜도 작품의 질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어떤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단 말인가? 오히려 자격문제는 지극히 마케팅 상의, 기업 차원의 문제에 가까우며 작품 자체의 평가와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
세 번째는 현 시점에서 따로 비평문을 준비할만한 작품이 TV 애니메이션으론 없기 때문이다. 우선 너무 짧기도 하거니와 대부분 원작 코믹스나 소설을 기반으로 한 작품들이기 때문에 애니메이션만을 비평문의 소재로 하는 것은 부적절한 감이 있었다. 그런 가운데 SEED의 경우는 대대적인 투자와 마케팅이 시도된, 90년대 이후 들어 보기 힘든 대작 지향 TV 애니메이션이었다. (마케팅과 투자면 만을 보자면 대작 지향이란 얘기다.) 원피스나 빅오, 강철의 연금술사 등, 대중적 인기와 투자, 마케팅 등등에서 대작 지향의 성향이 있었던 작품도 물론 있으나 대부분 코믹스를 기반으로 하며, 비평문을 작성하기에 시기가 적절치 못한 점이 있었다.
참고로 이 사유는 2004년 3월을 기준으로 한다.
3. 비평문 차례
Ⅰ. 비평문을 쓰기에 앞서
1. 서문
2. 기동전사 건담 SEED를 비평하는 까닭
3. 비평문 차례
Ⅱ. 시나리오
1. 초반부 시나리오
2. 중반부 시나리오
3. 후반부 시나리오
4. 시나리오 총평
Ⅲ. 연출
1. 메카닉 연출
2. 캐릭터 연출
3. 총평
Ⅳ. 디자인
1. 메카닉 디자인
2. 캐릭터 디자인
3. 총평
Ⅴ. 마케팅
1. 미디어 믹스
2. 홍보
3. 선곡
4. 총평
Ⅵ. 글을 매듭지으며
Ⅱ. 시나리오
1. 초반부 시나리오
SEED는 건담의 초반부를 오마쥬하며 시작된다. 당시엔 코디네이터라는 새로운 계층과 기존의 기득권을 지니고 코디네이터 위에 군림했던 내츄럴이란 계층의 대립이 주된 골자였다. 이 부분은 오마쥬로 시작함으로 독창성의 결여가 문제시 되었다. 그러나 지금의 유행이 과거 명작의 오마쥬를 요구하는 시점이기 때문에 그 문제가 치명적이라기엔 무리가 있었다. 더불어 한 번 검증 받은 시나리오를 답습했기 때문에 일정 수준 완성도를 확보할 수 있었고, 아스란과 키라라는 두 캐릭터의 재회와 대립을 암시하며 SEED만의 드라마를 진행할 것임을 시사했다. 여기까지는 큰 하자가 없었다.
하지만 극이 진행됨에 따라 큰 문제점을 노출하게 된다. 문제란 코디네이터와 내츄럴이라는 두 계층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내츄럴이란 개념은 기존의 인류로 정의한다고 해도 코디네이터라는 존재는 명확치 않다. 인간이 우주에 진출함에 따라 보다 우수한 인재가 필요하게 되었고, 유전자 조작을 위해 탄생시킨 것이 바로 코디네이터. 이러한 설정이나, 타 작품에 존재하는 유사한 개념에서는 그런 부류가 오히려 기존의 인류를 위협하는 구도를 만들어갔다. 그러나 SEED는 이 노선을 역전시켜 사용했기 때문에 그에 따른 명확한 해명이 필요했다. 코디네이터의 개념에 대한 정의, 그리고 그들이 어째서 핍박받고 반란에 이르게 되었는가에 대한 정의. 이러한 정의가 절대로 필요했다. 그러나 SEED는 이 부분을 설명하지 않았다. 그 설명은 대단히 모호했기 때문에 많은 의문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작중 “코디네이터 이외”가 될 수밖에 없었던 내츄럴도 애매한 부류가 되어 버린다.
SEED의 초반부는 분명 대립하는 두 세력이 두드러지는 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 두 세력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안 되며, 그것이 무산되었을 때 대립의 정체성도 자연히 무산되어 버린다. (말하자면, 이 대립 자체가 무엇을 위해서, 어떤 성질을 지니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는 말이다.) 더 큰 문제는 작품의 주인공인 키라와 아스란이 이 대립에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코디네이터와 내츄럴의 대립이 키라와 아스란의 대립구도를 만드는데 큰 영향을 주고, 골이 깊어짐도 회복됨도 대립 안에서 발생하게 되기 때문에 그들의 갈등도 덩달아 정체성이 없는 모호한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아스란과 키라는 싸우게 되었다. 왜? 코디네이터와 내츄럴이 싸우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그들은 누구고 어째서 싸우는 것인가?” 이것이 설명되지 않을 때 코디네이터와 내츄럴의 대립은 너무나 작위적이고 억지로 이어 맞춘 것이 되며, 키라와 아스란의 이야기도 마찬가지가 되어 버린다. 초반에 건담을 오마쥬하면서 안정적으로 시작하는 것도 좋았지만 그보단 SEED의 차별화된 세계관에 대해서 설명하고, 두 세력의 대립, 그리고 그것의 영향을 받은 두 주인공의 대립을 보다 상세하게 설명하는 데에 주력해야 했어야 했다. 감독인 후쿠다 미츠오의 성향까지 고려한다면, 오히려 전쟁은 배경으로 규정해서 시청자의 주위를 전쟁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안의 키라와 아스란의 갈등에 초점을 맞추게 했어야 했을 것이다. (과거 보톰즈는 전쟁을 작품과는 상관없는 배경으로서만 제시하였다.)
2. 중반부 시나리오
SEED는 주연 캐릭터인 다섯 명(키라, 아스란, 라크스, 카가리, 프레이)을 제외하고도 다양한 조연급 캐릭터가 투입되었다. 이 많은 조연들이 극을 망친 주역이다. SEED는 주인공들의 심리와 성장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작 중 잘 표현되었다고 할 수 없다.
예를 들자. 프레이가 키라에게 접근해 수족으로 삼으려던 부분. 그것을 위해 몸까지 바친 프레이는 대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무슨 속셈으로 키라에게 접근하는지 농도 짙게 묘사하지 않으면 그저 외설적인 수작이 될 뿐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프레이의 내면적 고심은 얼마나 표현되었는가? 또 감정의 골이 깊어졌던 키라와 아스란의 화해는 어떤가? 필자가 볼 때 이 부분은 작품의 주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작품의 가장 하이라이트가 되었어야 한다. 대단히 부각시켜 진행할 필요가 있었으나 실제 작중에선 너무도 갑작스럽게, 대단히 간단한 대화와 사건 만으로 화해가 이루어지고 만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린 한 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왜 그들의 이야기가 이렇듯 미지근하게 묘사되었는가? 처음 단언한 바와 같이 캐릭터의 지나친 난립 때문이었다. 중반에 들어서 배경 상으론 코디네이터와 내츄럴의 기본 대립 구도에 제 3세력이 난입하고, 캐릭터 상으론 너무나 많은 캐릭터들이 자기들만의 대립이 설정되어져 있었다. 감독은 그 소소하고 주인공과 무관한 대립을 일일이 묘사하려고 욕심냈고, 그 결과 진짜 중요한 이야기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근본적으론 모로사와의 공이었다.)
SEED는 4쿨짜리 TV 애니메이션이다. 편수가 제한된 만큼 쓸 수 있는 이야기도 제한되어 있다. 보다 많은 이야기를 묘사하고 싶었던 감독의 욕심도 알겠지만 편수가 무한히 보장된 것도 아닌 TV 애니메이션에서는 완급조절을 했어야 했다. SEED를 다시 풀어 봐도, 도무지 무엇 때문에 등장했는지 모를 대립과 만남이 난무한다. (카가리와 아스란의 만남도 같은 맥락이다. 시트콤을 의식한 “커플 만들기”였달까?) 우선 크루제라는 캐릭터 자체가 무엇 때문에 필요했고, 왜 굳이 무우와 자기들만의 얘길 만들어야 했는지 의문이다. 극의 배경과도, 주인공들과도 관계가 없는 대립을 말이다. 거기에 무우가 죽기 위해서 또 한 화를 무익하게 썼어야 했을까? 나탈도 그렇다. 처음부터 나탈은 필요가 없었고, 그녀의 이탈도 쓸모없는 부분이었다.(함장으로서 마류가 있고 연륜의 고참으로 무우가 있었기 때문에 독자적 역할을 받을 수 없었다. 그녀의 이탈과 죽음은 극에 필요 없는 부분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키라와 한 배에 탔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고, 심지어 키라와는 정말 어떤 식으로도 연관이 없을 만한 캐릭터들의 얘기까지 합하면 이 보다 몇 배의 쓸모없는 이야기가 들어가 있다.
다양한 사건과 인연을 엮어서 극을 만드는 건 문학에서도 긍정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그것은 궁극적으로 주된 사건을 위해 준비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데, SEED는 다양한 인연과 사건이 하나로 묶이지 못하고 극의 혼란을 조장했을 뿐이다. 한 가지 조언을 하자면, 꼭 다양한 캐릭터와 사건이 공존해서 극을 이끌 필요는 없다. 경우에 따라 한정된 캐릭터와 한정된 사건만으로 극을 만드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SEED처럼 주인공들의 심리와 성장이 강조되었어야 하는 시나리오라면 더더욱 그렇다.
3. 후반부 시나리오
단언하자면 SEED의 후반부는 시간에 쫓겨 만든 것임에 분명하다. 난데없이 프레이가 크루제에게 갈 때도 그랬고, 마지막에 갑자기 난입했다가 개과천선하며 죽는 모습은 생각을 가지고 만든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후반부에 대해선 극히 간결하게 지적하고 넘어가겠다. SEED의 후반부가 묘사했어야 하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 초반부와 중반부에서 너무 많은 얘길 복잡하게 풀어 놓은 채로 후반부까지 왔기 때문에 후반부는 각 사건들의 연결 고리와 해결방향을 제시했어야 한다. (비극이냐 아니냐의 문제를 떠나서 말이다.) 두 번째. SEED의 후속작을 기획 중이란 것이 기정사실이나 다름없던 시점이므로, 후속작으로 가는 다리를 놓아주었어야 했다. 그런데 “살아남은 자들은 행복했다.” 로 끝내고 DVD에서는 후일담까지 그려 보여준다니?
후반부는 너무 퍼져 있었던 얘길 잘 다물리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후속작을 기대할만한 복선을 만들어 주지도 않았다. 결국 끝맺을 것은 키라, 아스란, 라크스, 카가리, 프레이 등의 드라마만이었다면 애초에 왜 다른 얘기를 풀어 놓고 세력간 대립구도를 필요이상으로 부각시켜 얘길 산만하게 했던 건가?
4. 총평
초반은 애매했으며, 중반은 너무 산만했고, 후반은 서두른 인상이 매우 강하다. 전반적으로 “이렇게 진행하면 안 될 듯한데?” 할만한 부분이 너무 많았고 감독이 강조하려던 바는 알 수 있으나, 그것이 제대로 강조되지 못한 채, 조연들 얘기에 휘말려 강조점이 사라졌다.
감독인 후쿠다가 무엇을 어떻게 묘사하려 했는지 알 수는 있다. 그러나 묘사하려던 바를 충실히 해냈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답하겠다. 우선 SEED의 시나리오는 젊은 스탭들이 흔히 범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 욕심을 절제하지 못한 것이다. 한 작품에서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는 한정적이다. 한 작품에서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하다간 중구난방의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다. SEED정도로 많은 캐릭터와 많은 대립을 가지고 이상적인 극을 만드려고 한다면 치밀하게 계산된 사건과 암시, 그리고 연결고리가 존재해야 한다. 의욕은 있었으나 그 뿐이었다고 할만하다.
필자 개인적으로 제시하고 싶은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후쿠다 감독은 다섯 명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그들의 감정과 심리가 첨예하게 대립된 드라마를 구성하고 싶었던 것 같다. (다른 캐릭터들의 대립에도 욕심을 냈었지만.) 이를 구체화하고 극대화 하려면 전쟁을 어디까지나 배경의 하나로 규정할 필요가 있었다. 전쟁의 초반부를 일일이 묘사할 필요는 없었고, 코디네이터와 내츄럴이란 개념을 제시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두 개의 나라가 있고, 이들이 서로 싸우고 있는데 적국의 병사로서 키라와 아스란이 재회하는 것만을 제시하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진행하는 내내, 그리고 끝날 때까지 전쟁의 양상이나 결과에 대해선 전혀, 혹은 아주 간접적으로만 묘사하는 것이다. 키라와 아스란의 대립이 가장 뼈대를 이루게 되므로 둘의 갈등을 심화할 인물을 등장시키고, 시기를 봐서 적절할 때 히로인들을 투입해 얘기를 엮게 했어야 한다. (사실 3명이나 되는 히로인도 너무 많다. 프레이 하나만 있는게 좋을 것 같다.)
Ⅲ. 연출
1. 메카닉 연출
“화려한 로봇 액션으로 저연령층에게 어필!” 잊혀졌을지 모르나 분명 SEED가 발표되던 당시의 컨셉이다. 방영 전까지 공개된 컷도 스트라이크 건담이 업그레이드 파츠를 이용해 화려한 포즈를 잡고 있는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마이트 가인의 동화를 가져다 쓴다는 혹평을 사기도 했으니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처음의 몇 화는 상당히 화려한 메카닉 연출을 선보였다. 하지만 화를 더할수록 메카닉 연출 면에선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주역 기체인 스트라이크 건담은 업그레이트 파츠를 바꿈으로 다양한 상황에 다양한 전술로 대응할 수 있다는 설정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을 십분 활용한 연출이 나와 줬어야 했다. 그러나 대부분 소드 스트라이크만 쓰거나 그나마도 에일 스트라이크 등장 이후엔 사용하지 않게 된다. 메카닉의 기본적 특색도 살리지 못했으므로 우선 실패한 연출인 셈이다. (말하자면 이미지를 형성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다른 기체들의 연출도 사정은 비슷하다. 상당히 특색 없이 연출되어 있다. Z건담이 심심한 전투 연출로 혹평을 들은 바도 있지만, 주역이 되는 기체들의 이미지는 확실히 다졌다. Z건담이라면 하이 메가 런쳐, 백식이라면 메가 바주카 런쳐 라던가. 실제 작중 몇 번 사용한 적은 없지만 단 몇 번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었다. 스트라이크 건담이든 다른 기체든, 혹은 꼭 특정 무기든 뭐든 이 기체라면 이것, 하고 생각날 만한 요소가 없는 SEED는 분명 연출 상 문제가 있었다고 단언할 수 밖에 없다.
SEED는 프리덤 건담의 등장을 기점으로 스트라이크 건담이 주역이었던 시기와는 기체와 연출이 또 바뀌게 된다. 그렇다면 이 후반부는 나아진 연출을 보여줄까? 그렇지 않다. 2기 기체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프리덤 건담은 처음부터 문제가 많았다. 1기 주역기가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면 후속기인 프리덤 건담이 강한 인상을 남겼어야 할 것이다. 물론 1기 주역기와 일정부분 공통된 각을 답습하여 일관된 이미지를 지닐 필요도 있다. 이 모든 부분에 프리덤 건담은 부합하지 못했다. 심지어 디자인조차 건담이라 비슷한 부분이 있을 뿐이다. 연출 자체가 “강하게 보이는 연출”에 편중되어 있고 미티어의 등장으론 그저 커다랗게 쏴서 많이 떨어뜨리는 것 말곤 보여주지 못한다. 인상의 남지 않는 건 그렇다 치고 지루하다.
차라리 연출 면에서는 이전 헤이세이 삼연작이 만족스럽다 하겠다. 전대물 구성이란 혹평을 듣기도 했지만 각 기체들이 뚜렷한 이미지를 어필했고, 조연급 기체들도 적절히 자기 역할에 맞는 연출을 보여주었다. 그에 비해 SEED는 한심할 정도다. 전대물 구성에서 벗어난 점은 헤이세이 삼연작의 전형성에서 탈피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만큼 이미지 형성에 심혈을 기울여야 했을 것을. 끝내 그렇게 하지 못하므로 SEED의 메카닉 연출은 도저히 점수를 줄 수 없게 되고 만다. 오죽하면 외전이었던 아스트레이의 기체들이 본편의 기체보다 큰 인기를 얻는 상황이 되었겠는가? 작가인 토키타가 특출나게 연출을 잘 하는 사람은 아닌 걸 보면 문제는 훨씬 심각해진다.
2. 캐릭터 연출
최근 많은 애니메이션들이 지적받는 부분이지만, 캐릭터를 멋있게 연출하기 급급한 나머지 제대로 연출하지 못했다. 망가질 때 확실히 망가져줄 필요도 있건만, 끝까지 예쁘고 멋지게 그려질 뿐이다. 캐릭터에 대한 연출은 어느 정도 호소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주인공과 그 주변인의 이야기를 보여줘야 하니까. 그들이 어떤 상상을 하고, 어떤 기분이고,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보여주려면 멋있게만 그려져서는 할 수 없다. 아예 멋있기만 한 캐릭터를 만들 생각이었다면 역할과 출연을 한정시키던가, 그게 아니라 작중 전반적으로 등장해 많은 얘기와 많은 장면을 보여줄 거라면 멋있게 보이는 부분을 한정해야 한다.
하지만 SEED는 그렇게 하지 않고 평범한 다른 애니메이션이 하는 바대로, 그저 멋있게만 그렸다. 처절하게 고뇌하다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는 캐릭터치곤 너무 안 망가지도 너무 예쁘게 고뇌했다. 아무 호소력도 가지지 못한 캐릭터들. 이것만으로도 SEED의 캐릭터 연출은 더 논할 것이 없는 듯 하다.
3. 총평
SEED의 연출팀은 무엇을 보여주는지, 또 보여줘야 할지 알고 있었는가? 난 심각하게 물어보고 싶다. SEED가 보여준 연출은 어설픈 데다 어째서 이런 장면이 있는지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였다. 예를 들어 프레이와 키라가 잤음을 암시하는 장면. 결국 그게 작 중 무슨 역할을 했는가? 그냥 잤다는 것만 암시할 뿐이다. 프레이가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어떤 심정인지 연출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물론 이런 것은 시나리오와 맞물린 부분이지만.) 니콜은 왜 토막 난 채로 무전을 쳤나? 혹시 그게 전쟁의 참혹함이나 아스란의 페닉 상태를 연출하기 위한 도구였나? 괜한 논란을 불러일으킬 장면이고, 단기간에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처방이지, 훗날 시청률과 무관해진 다음엔 혹평의 표적이 될 연출이다. 씨앗이 깨지는 연출도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어떤 각성이라고 보기엔 너무 빈번하게 등장한다. 정말 각성에 대한 연출이라면 뉴타입과 비교될만한 연출은 하지 않는 게 좋지 않았을까?
코디네이터에 대한 연출도 아쉽다. 인간보다 뛰어나다고 하나 키라가 보여준 스트라이크 건담의 시스템 오류 수정 말곤 달리 굉장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소년 파일럿들은 모두 코디네이터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코디네이터의 굉장함을 말하는 건지도 모르나, 대대로 건담이 15세 전후의 어린 파일럿들이 주류였던 걸 감안하면 코디 네이터의 특성에 대한 연출은 전혀 없는 셈이다. (이것은 코디네이터의 모호함을 한층 가중시켜 시나리오의 허점을 배가시켰다.)
종합하자면 이렇다. SEED의 캐릭터 연출은 능숙하지 못하다. 앞으로 한참 더 많이 만들어야 납득해줄 수 있는 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후쿠다 감독은 기어전사 덴도를 제작하면서, 덴도의 연출이 용두사미라는 지적을 들은 바 있다. 격투기 로봇의 이미지가 살아 있는 건 처음의 몇 화 정도이고, 데이터 웨폰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부터는 필름 되돌리기에 급급했지 터빈 도는 연출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이때의 실패가 그에겐 아무 교훈도 주지 않았던 것일까? 이번 SEED는 아직도 그가 갈 길이 멀다는 걸 시사하는 지도 모른다.
Ⅳ. 디자인
1. 메카닉 디자인
오오가와라의 미덕은 다작과 디자인화 보단 작화 시에 빛을 보는 점이다. 필자는 오오가와라는 좋게 생각하는 디자이너이며, 그의 연륜과 경험은 누가 뭐래도 선라이즈 간판 디자이너라 불러 줄만 했다. 예전엔 그랬다. 그러나 SEED에서의 그라고 하면 장담할 수 없다.
헤이세이에서의 그를 탓할 생각은 없다. 따지자면 못 봐줄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프리덤 건담은 난감하기 짝이 없다. “오오가와라 선생은 디자인화보단 작화 시에 멋있다.”는 얘기로 옹호가 안 되는 수준이다. 역대 건담 여기저기에서 때어다 맞춘 꼴이라니. 그것도 주역기를. 프리덤 건담 디자인화 공개 후엔 어느 건담에서 뭘 떼어왔는지를 가지고 토론까지 벌어졌었다. 대체 무슨 망신인가? 퀼리티 이전에 성의 문제다. 그동안 너무 많이 그려서 새로운 걸 할 수 없다는 변명은 창작자에게 허용되지 않는다. 한계는 언제나 갱신되어야만 한다. 오오가와라가 그 오랜 디자이너 생활에 오점을 남기고 은퇴할 생각이 없었다면 대체 왜 이런 것을 그렸는가?
그가 그리지 않은 아스트레이나 본편에 등장한 전함인 아크 엔젤의 디자인이 상당한 호평을 받는데 비해 그가 그린 것에 대해선 일부러 언급하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혹자의 말처럼 자쿠가 진으로 변한 것이야 말로 그의 타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단 말인가?
2. 캐릭터 디자인
간단히 말해 눈이 피곤할 지경이다. 하나같이 너무도 똑같이 생긴 얼굴들이라 설정 상의 특징을 어떻게 표현한 건지 알 수 없다. 물론 제일 문제로 삼아야 할 것은 캐릭터의 성향과 디자인이 잘 맞지 않는 부분이다. 그러나 그런 문제는 덮어두더라도 캐릭터 간에 구분할만한 특징이 없는 건 너무도 심각한 문제다. 적어도 A와 B가 어떻게 다른지는 알아 볼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머리 모양만 다를 뿐인 캐릭터로는 뭐라고 얘길 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이런 형태의 디자인을 일부 한국의 디자이너가 추구하는 것이 슬프기까지 하다.
일본에서도 그 디자인에 대해서 말이 많았고, 더불어 그 디자이너가 새로 참여하는 어떤 작품에 대해서도 무수한 혹평이 일고 있음을 알고 있다. 따라서 이 점에 대해서 크게 탓하는 건 불필요하겠다. (즉, 본문에서 다루지 않아도 공공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3. 총평
시나리오는 중구난방이고, 연출은 어설펐다면, 디자인은 성의가 보이지 않는다. 오오가와라 쯤 되는 중견 디자이너에게 할 말은 아닌 것 같지만 좀 더 프로의식을 갖췄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디자이너 개인의 사정이야 어쨌든 지불한 값만큼의 퀼리티는 내주는 것이 프로의 자세다. 다음 작품에서 보다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는 두 사람이라면 좋겠다.
Ⅴ. 마케팅
1. 미디어 믹스
선라이즈가 그렇지만 스폰서인 반다이도 결코 장사 잘 하는 기업이 아니다. 특히 미디어 믹스는 상당히 서툴러 보인다. 다이나믹이나 도에이같은 경쟁사가 미디어믹스를 적극 활용했던 것과 달리 선라이즈는 애니메이션 자체에 주력하는 스타일이다. 건담만 해도 만화나 소설 원작의 건담은 영상화 되지 않는다. 반다이도 그렇게 열성적이진 않아서, 완구와 조금의 캐릭터 게임 위주의 사업을 전개할 뿐, 특별한 시도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비해 SEED는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미디어 믹스를 지향한 작품이다. 참고로 미디어 믹스란, 한 가지 작품을 다양한 매체로 발매함으로써 보다 많은 구매층을 확보하려는 판매 전략이다. 마케팅 차원에선 무척 진보된 형태이고, 우리나라에서도 몇 번인가 미디어 믹스를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대부분 좋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미디어 믹스는 한 가지 약점이 있다. 미디어 믹스라고 해도 축이 되는 한 가지 매체가 있기 마련. 그 매체가 어필하지 못하면 자동적으로 다른 매체로 나온 관련 상품도 붕괴되고 만다. SEED도 그럴 위기에 처해있다.
축이 실패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가장 큰 이유는 재미가 없어서이다. 미디어 믹스의 요는 한 가지가 재미있어서 다음 것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한 가지만 봐서는 재미없고 전부 봐야 재미있는 구조여서는 성공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SEED는 한 가지로 재미없는 차원이 아니라, 축이 되는 애니메이션 본편에서 적당히 넘어간 곳을 다른 매체의 상품이 수습해 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예를 들건대, 키라가 어떻게 구출되어서 전선에 복귀 하냐를 토키타가 그리는 외전 아스트레이에서 그리게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식의 전술은 최악의 전술이다. 팬들을 쓸데없이 귀찮게 만들기 때문이다. 상술의 극치란 상술임을 최대한 눈치 채지 못하게 하는 데에 있는데 “어떻게 된 건지 알고 싶으면 이 책을 사세요.” 라니?
과거 국내 최초 미디어 믹스 상품이라고 홍보했던 제로 프로젝트도 비슷한 맥락으로 침몰했다. 하나만 봐서는 매력은커녕 무슨 얘긴지도 알 수 없었다. SEED도 사실 이렇게 됐었다. 그나마 가까스로 동인이나 일부 팬에게 어필해 실패만 면했다. 제작사 선라이즈에 스폰서는 반다이. 애니메이션 업계에선 큰 축인 이 두 회사가 미디어 믹스를 시도해서 이런 아슬아슬한 상황에 직면했던 것 자체가 성공과는 거리가 먼 셈이다. 결국 SEED의 순수익을 계산해 보면 건담W와 비슷한 수준이 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 그렇게 대대적인 홍보에, 그렇게 대대적인 마케팅에도 불구하고, 성과는 기획 6개월짜리 급조품에 크게 웃돌지도 못하는 수준이란. 생각지도 못한 롱런에 OVA까지 기획했던 그때완 달리 처음부터 철저하게 계산해서 준비했다는 SEED는 흥행실패만 면한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2. 선곡
선곡은 작품 자체에 관계된 개념으로 여겨지지만, 실은 마케팅 부분에서도 무척 중요한 부분이다. 특히 SEED같은 미디어 믹스 상품으로서는 오히려 작품 내에서 보단 작품 외적 영역에서 평가가 중요해진다. 우선 SEED에서 노래를 불렀던 가수들을 회상해 보자. 일본에선 일류 가수로 꼽히는 사람들이 섭외되었다. 그들 자체로 충분히 어필한 상태이기 때문에 꼭 SEED의 곡인 줄 몰라도 그 가수의 팬들은 전부 구입하게 된다. 그 가수가 TV에 나오거나 콘서트 장에서 SEED의 오프닝 곡이라도 부르게 되면 그만한 홍보는 있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SEED의 선곡은 흠잡을 데 없다. 섭외에도 잘 됐고 곡 자체도 상당히 괜찮은 수준이니까 말이다. 굳이 흠이라면 SEED 자체가 크게 어필하지 못하는 바람에 곡의 명성이 묻혀졌고, 그만큼 홍보효과가 극대화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홍보 매체로서의 역할은 충분히 수행했으며 작품 내에서나 외에서나 상당한 수준을 보여준 점은 자명하다. SEED에서 유일하게 만족스런 부분이 아닐까 한다.
3. 총평
반다이와 선라이즈로서는 특별할 정도로, SEED는 많은 투자와 시간을 들여 홍보에 힘을 쏟았다. [뉴타입]지를 통해서도 몇 번이나 표지 그림으로 쓰였고 몇 차례의 특집도 마련되었다. 감독인 후쿠다의 인터뷰도 빈번하다 싶을 정도로 신문에 났다. 더군다나 각종 건담 게임을 SEED에 맞춰서 후속작을 내놓고, SEED 본편에 대한 코믹스, 외전인 아스트레이에 대한 코믹스를 두 개나 찍어서 발표하는 등 정말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결코 SEED는 성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외전인 아스트레이가 크게 인기를 얻으며 본편인 SEED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일이 이렇게 된 데엔 이유가 한 둘이 아니다. 마케팅 차원에서의 실수만 짚어 보자.
첫 째. SEED는 명확한 지지기반 확보에 실패했다. 처음 SEED는 저연령층을 중심으로 대중적 지지층을 얻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론 여류 동인과 일시적으로 형성된 뜨네기 팬들만 있는 아주 불안한 상황이다. 필자가 보기엔 기획 단계에서 철저한 타깃 설정이 부족했던 듯하다. 저연령층을 노렸다면 좀 더 화려할 필요가 있었지만 프레이와 키라의 정사와 니콜의 처참한 죽음 등, 저연령층이 보기에 불편한 장면이 필요이상으로 부각되었다. 연출이나 시나리오도 그다지 그들의 취향을 연구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둘 째. 스탭들 입단속에 실패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해놨던 홍보를 무효로 만들어 버렸단 얘기다. 몇 회에 걸쳐 후쿠다 감독의 인터뷰 내용을 개제하게 한 점은 훌륭한 홍보였다. 다만 후쿠다 감독이 어떤 얘길 하는지 신경 썼어야 했다. 후쿠다 감독은 계속해서 기존 건담팬을 자극하는 발언을 서슴없이 발설했고 기존 건담 시리즈를 공공연하게 부정했다. 원래 후속작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건담팬들이다. 후쿠다 감독의 공격적 발언에 어떻게 대응할 진 뻔한 얘기였고, 될 수 있으면 민감하지 않은 얘기가 화재로 되었어야 했다. 거기에 후쿠다 감독이 다른 작품에 대한 기획을 거론한 것도 마이너스 요소. 사이버 포뮬러의 신작에 대한 언급은 화재가 그쪽으로 몰려가게 만들었다. 이부분은 SEED에 대한 홍보가 아니라 사이버 포뮬러 신작에 대한 홍보가 되어 버려서 SEED로선 역효과를 본 셈이다.
셋 째. 경험이 부족했다. 선라이즈와 반다이로선 이정도의 미디어 믹스 시도는 익숙한 일이 아니었다. 아스트레이의 필요이상의 인기몰이는 이런 요소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아스트레이가 인기를 얻자 SEED MSV가 그쪽 위주로 나가는 모습도 시청자에게 끌려가는 모습으로 보인다. 미디어 믹스는 회사가 끌려가기 시작하면 실패한 것으로 봐야 한다. 좀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행보로 시청자를 이끌어 가야했는데 그럴 힘이 부족했다.
SEED의 후속작 등장이 기정사실이라 했을 때, 선라이즈는 무척 많은 부분에서 전략의 수정을 검토해야 한다. SEED를 기점으로 21세기의 건담 전성기를 열겠단 계획은 사실상 불가능해진 얘기다. 차라리 좀 더 실험적인 자세로 건담이란 간판에 연연하기 보단 새로운 작품의 롱런을 노려보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Ⅵ. 글을 매듭지으며
건담 시리즈는 작품 자체의 가치보다도 제패니메이션의 역사를 함께한 역사성을 크게 평가할 수 있다. 79년도 건담 등장 이래로 주기적으로 후속작을 내며 흐름을 잘 반영해갔고, 각 작품의 평가가 당대 애니메이션의 흐름을 짐작할 만한 좋은 자료가 된다. SEED 역시 그런 맥락에서 유효한 작품이 될 수 있다. SEED는 현재 제패니메이션이 지닌 단점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반영한 작품이다. 미소녀․미소년 일색의 개성 없는 캐릭터. 일부 디자이너에게 편중돼 더 이상 새로운 걸 그릴 수 없게 된 메카닉. 동인․오타쿠 출신의 창작인으로서 검증받지 못한 스탭들. 그리고 마케팅으로 승부를 보려는 미디어 믹스의 진상까지.
그래도 건담은 마징가Z, 아톰 등과 함께 제패니메이션의 좋은 시대의 서막을 열었던 작품이며, 이후 80년대에 제타건담 등을 내면서 제패니메이션의 좋은 시대를 함께 했던 작품이었다. 작품 평과 무관하게 시리즈 자체가 대작반열에 올릴 수 있으며 동서양 애니메이션 역사를 논함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작품이다. 그 건담의 후속작이란 적어도 일정 수준 이상은 퀼리티를 보장해 줄 필요가 있다. 이다지도 부적합한 결과물을 미디어 믹스라는 수단으로 팔아 먹으려한 반다이와 선라이즈의 저의가 의심스럽다. 하다못해 퀼리티만 만족스러웠다면, SEED가 기존 건담들과 어떻게 차별화되든, 아예 이전 작들을 부정하든 인정받을 빌미가 됐을 것이다. 그걸 스스로 차버린 건 선라이즈․반다이 두 회사이고, 후쿠다와 모로사와같은 함량미달의 역량을 지닌 스탭들이었다.
분명 이제 와서 기존의 우주세기 건담을 옹호하고 그렇게 해라고 말하는 건 고리타분한 얘기일 것이다. 분명 건담은 언제나 전작을 무시하는 성향으로 나아갔으니까. 애초에 후속작들이 저주받은 작품 대열에 오를 소지가 크다. 그렇다곤 하나 “어차피 건담의 후속작은 욕먹으니까요.”라고 공적인 자리에서 감독이 투덜대고, 작품이 인정받지 못하자 마찬가지 불평으로 책임을 떠넘기려 함은 용납할 수 없다. 격이 떨어지는 작품을 제작한 책임은 분명 그들에게 있는 것이다. 본 문서는 스탭과 사측이 인정하지 않는 기동전사 건담 SEED의 잘못된 부분을 고발하기 위해서 작성하게 되었다.
약 10페이지 전후로 작성된 본 문서는 기동전사 건담 SEED라는 작품의 부조리한 부분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함을 목적으로 했으며 혹자가 혹시라도 발견했을지 모를 약간의 긍정적 부분에 대해서는 본 필자가 알지 못함과 더불어 문서의 작성 방향성에 맞지 않는 것으로 사료, 서술하지 않았다. 만약 그런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별도의 화재로 다루어야 할 것이며, 본 문서에 대한 반박을 위해 “좋은 점이 있으니 그런 부분을 눈감아 줘야 한다.”라는 상쇄논리를 펼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단정한다.
첫댓글 멋진 글이군요~ 공감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ㅅ=;;
뭐...이렇게 나쁜 점이 많다고 해도 건담이라는 애니를 좋아하는 사람이니 그만큼 기대를 하고, 실망해서 이런 비판을 하는 것이겠죠. 조금이라도 제대로 되기를 바라며. 제가 보기에도 그냥 갈구기를 위한 비판이 아니니, 괜찮은 글이라고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