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뭐..
존 무어 XXX야.
자, 이제 안정적으로 감상문을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가장 사랑하는 프랜차이즈 다이하드의 신작입니다.
사실 뭐.. 그냥 주인공이 나와서 얼굴 클로즈업만 멀뚱히 한시간 잡아주다 끝나도 어쩔 수 없이
봐야 하는 영화들이 있죠. 일종의 팬심인데(에바라던가..) 이건 불가항력이에요. 똥인줄 알면서 찌개를 끓이는
기분이랄까요.
그런데 사실 뚜껑을 열면 그렇게 후지진 않습니다.
아무래도 다이하드의 신작 이라는 점에서 더 신나게 털리는 경향이 있어요.
툭 짤라 말해서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두 번의 액션 시퀸스는 확실히 볼 만 합니다.
특히 물량으로 승부한 초반부의 카체이싱 장면은 정말 화끈하죠. 킬링타임용 액션영화로서의
미덕은 나름 갖추고 있단 말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어요.
아주 간단하게 생각해도 영화안에서의 논리가 뭉게지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죠.
화려한 액션 클립은 있는데 그 사건을 감싸주는 플롯이나 드라마를 떠나서 아주 그냥 당연히 있어야할 논리구조
그 자체가 붕괴되어 있어요. 마치 게임 동영상을 보는 기분이죠. 네, 이쯤되면 기시감을 느낍니다.
바로 터미네이터 살베이션이죠.
다이하드 신작에 대한 기대치는 딱 그 영화를 생각하며 가시면 되요.
캐릭터도 이어지고, 그걸 참 잘 소화하는 배우도 나오고, 핵심적인 액션 시퀸스도 빠방합니다만
기묘하게 이전 시리즈와의 위화감이 깃들어 있고, 액션을 위해 모든 것이 희생당하고 있으며
영화를 보고 나오며 '내가 본 게 그 시리즈의 신작 맞나?' 하는 거죠.
특히 이 영화가 가진 치명적인 단점은 맥클레인에 대한 해석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그는 그냥 경찰입니다. 나름 소시민이죠. 전작에선 연금 잔고가 털리는 걸로
'아 놔' 하는 표정을 짓는 사람입니다. 그는 분명 실력도 좋고, 똘똘하며 운이 억쎄게 좋지만
스파이도 아니고 살인훈련을 받은 용병도 아니고 특수능력을 가진 사람도 아니에요.
어쩐지 이 영화에서 뛰어다니는 맥클레인은 다이하드 시리즈의 브루스 윌리스가 아니라
레드에 나온 브루스 윌리스 같단 느낌이 듭니다.
소시민인 경찰이 다른 나라의 자동차들을 마구 부수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을 수 있을까요?
차를 강탈하는 건 어떨까요? 맥클레인은 미국의 애국심을 자극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방어적 논리로 테러리스트들과 상대했어요. 그가 결정적인 순간들에 벌이는 과격한 행동이 이해되었던 건
그가 테러리스트들로부터 보수적 가치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는 러시아에서 그냥 재수없는 양키처럼 굴고 있어요. 이게 과연 미국적 가치였나요?
영화는 사실 전설적인 1편을 의식한 구석이 많습니다.
유리가 박살나서 흩날릴 때, 그리고 자신을 숨기고 연기를 하는 캐릭터 등 자잘한 구석에서 말이죠.
(그러고보니 이런 자잘한 인용도 살베이션을 닮았군요.)
그런데 다이하드1편이 멋진 건 공간에 대한 이해와 그걸 적극적으로 활용한 영리한 액션의 구성에 있었죠.
(서양에 다이하드, 동양의 순류역류 라고 생각합니다. 공간활용의 마법사들)
물론 시리즈화 되면서 점차 덩치를 키워야 하는 운명에서 그걸 그대로 가져오긴 무리였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자잘한 요소들을 인용하며 시리즈임을 확인하기보다는 원조의 영리한 면을
더 고민했어야 한다고 봐요. 2편부터 블록버스터의 전형적인 외양을 따라가면서도
이 프랜차이즈의 아이덴티티를 지킬 수 있었던 게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았어야 한다는거죠.
신작에서도 맥클레인은 꾸준히 맥클레인스럽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공공의 적 1-1에 나온 설경구가 1편의 설경구를 애써 따라잡으려 노력하는 느낌이듯
신작 안에서의 브루스 윌리스는 자신의 위치에 썩 바람직하게 적응한 모습같이 안 느껴지네요.
이런 점들을 종합하면 킬링타임, 혹은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극장을 찾는 관객들에게 사실 그렇게 쓰레기같은 영화는 아니란 겁니다.
딱 휘발되는 블록버스터로서의 미덕은 갖추고 있어요.
이제 액션 시퀸스 같은 건 숙련된 B-팀이 잘 만들어내는 헐리웃 구조상 엥간히 자본이 들어간
블록버스터의 액션 시퀸스가 허접한 건 드문 일입니다. 종종 감독이 액션 시퀸스까지 다 챙겨서 찍을 경우에
그런 일들이 있곤하죠;; (인세..) 본 슈프리머시와 얼티메이텀은 액션영화가 드라마와 캐릭터를 잘 다루는
연출자 손에 들어갔을 때 뽑아낼 수 있는 상쾌한 결과물에 대해 어느정도 선을 제시했죠.
007 스카이폴 또한 드라마에 능숙한 명장 감독이 블록버스터 시스템 안에 들어가 자기 역할에
최선을 다할 때 멋진 결과물이 나온다는 걸 다시 증명했어요. 이 쯤 되면 어느정도 경향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관객의 취향과 블록버스터의 흐름이 이렇게 흐르고 있는 가운데 존 무어의 다이하드는
정확히 시류에 역행하는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드라마와 캐릭터, 적어도 영화 안에서의
논리구조의 붕괴를 참을 수 없는 관객에겐 다이하드 굿데이 투 다이는 견딜 수 없는 고문이 될 수도 있단거죠.
하지만 저는 빠돌이입니다.
다이하드의 신작이 나와주길 기대해요.
하지만 존 무어는 아니죠. 냉정하게 말하자면 존 무어는 액션 시퀸스를 전담하는 B팀 감독 정도의
재능 이상의 무언가가 없습니다. 다이하드가 영원할 거란 바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맥클레인에게 걸맞는 퇴장의 기회는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리셀웨폰의 결말이 얼마나 따뜻했나요?
실패한 남편이자 외로운 아버지인 그가 반평생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죽도록 고생한 보상이
이런 결말일 수도 있다는 공포심이, 팬들을 분노하게 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다시 나와주세요.
ㄷ
첫댓글 아 극장에서 안봐야겟네요 ㅠ 장사 속으로 명작을 망치다니... 짜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