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트롯 진의 마지막 노래가 화제의 대상이다. 이보다 앞서 여러 가수가 배신자를 불렀는데 실제 배신자도 시대와 장소에 따라 여러 다른 의미가 있다. 배신자 가운데 안두회와 김재규가 가장 쉽게 떠오르지만 이들처럼 두드러지고 배신자가 아닌 배신자도 드물다. 이번 임영웅도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역설적 노래이고 그의 어머니에게 헌정한 아버지를 지칭하는 반대어이다. 안두희가 아니었으면 순수한 독립운동가 김구선생이 육이오에 어떻게 처신하셨을까 염려스럽다. 안두희는 고향도 김구선생과 상통하고 이승만도 황해도 출신이므로 혐의를 받았으나 나는 이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안두희가 김구 선생을 영원한 독립운동의 화신으로 굳혔다고 간주한다.
다른 배신자는 김재규이다. 김재규의 법정에서 진술한 마지막 절규를 몇 번이고 다시 들었다. 김재규는 안두희보다 더 가까운 배신자였다. 김재규가 아니었으면 뒤에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을까? 사실 박근혜나 여야를 막론하고 수준미달인 미치광이 들이 참으로 많았다. 2015년 중국이 미국을 앞선다고 중국으로부터 정치공작금이나 가상화폐를 받았고, 심지어 국토까지 중국인에게 팔아먹은 지자체장이 참으로 많았다. 그리고 김정은이도 피해간 자리인 천안문 전승절사열대에 시진핑과 나란히 섰던 얼간이도 있었다. 국빈으로 혼밥을 먹으며 수행기자가 지척에서 주어터진 그런 학급반장도 있었다. 나라의 체면과 국격이 말이 아니다. 자신의 뻔뻔한 거짓말이 들통나서 자살한 교장의 상주가 교장이 되었을 정도로 우리는 참으로 부끄러운 학교의 학생으로 떨어졌다. 나라도 그런데 어느 학교의 두 교장도 구속되었고 현재 교장도 똑같은 처지가 되어야 한다고 학생은 물론 선생까지 부글거린다는 소문도 있다. 들리는 이웃 동네 학교의 선생도 학생도 교장을 인권유린으로 유엔에서 처형해야 한다고 마찬가지로 시끄럽다는 소문도 있다.
유엔이 침략자를 물리쳐 우리를 구해 주었는데 유엔의 날을 폐지한 독재자가 있었으나 그후에 어느 누구도 유엔의 날을 복구하지 않은 배신자의 천국이고 소굴이 되었다. 대학입학시험에서 부정이 심하여 수시입학으로 개악시켰다. 그리고 교수란 수시입학의 잔재미를 보면서 연구도 못하는 입시부정의 주역으로 떨어 졌을까? 오죽하면 대학교수였다가 장관으로 임명된 그것도 법무부 장관의 일족이 모두 수시입학의 주범이었음이 들어나고 곧바로 해임되지 않을 수 없는 비극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노래에도 배신자가 미스터트롯 진을 얻은 마지막 노래였을 정도로 차라리 찬미되어야 한다는 역설적인 시대상을 보였다. 나는 배신자를 처음 듣고 참으로 놀랐다. 배신자는 여러 가수가 불렀지만 이번 미스터트롯진은 참으로 적절한 시기와 자리에서 자신의 가족사에 대하여 적절하게 선곡하여 승리하였다. 노래도 잘 불렀으나 나의 생각은 이 노래를 처음 부른 1969년 가수나 다른 가수보다 선곡이 좋았다. 전혀 다른 각도에서 사회성을 가진 노래로 들렸고 방향은 다르나 같은 생각을 가진 음악을 알만한 분으로부터 어려운 세태에서 여자를 배신자로 개작한 가사를 보내 왔다. 나는 년하를 노마로 바꾸었다. 서로 사랑하고 보듬어야할 남녀가 배신자가 되지 않을 수 없는 망가진 세태를 풍자한 노래라고 보고자 한다. 배신자에게도 때로는 전화위복의 기회를 주면서 찬미해야하는 시대가 되었다. 때로는 어머니와 가족을 불행하게 만들었던 가장에 대한 원망을 찬미로 돌린 역설의 임영웅을 영웅으로 만들지 않을 수없는 세태의 자연스런 현상을 반영하였다. . 그리고 안두휘와 김재규도 배신자가 아닌 진정한 의인이라는 포용성을 가지고 희망을 놓지 않고 어려운 시기를 혜쳐나가자는 국민의 노래로 널리 불러지기를 기대해 본다. 나에게 보내온 서신은 황혼이혼자의 졸혼가가 되었고 1절은 여자의 입장에서 다음 절은 남자의 입장에서 부른 새로운 세태의 반영이다. 졸혼가 뿐 아니라 다양하게 가사를 개작하여 다양한 사회의 변화를 대응하면서 선거에 이용되기를 기대한다.
얄밉게 떠난 노마 얄밉게 떠난 노마
단발머리 첫순정에 상처를 주고 얄밉게 떠난 노마
내 젊음 내 희망을 백발로 만들고
너혼자 다처먹고 떠날수가 있을까
배신자여 배신자여 얄미운 배신자여
얄밉게 떠난 년하 얄밉게 떠난 년하
더벅머리 숫총각에 상처를 주고 얄밉게 떠난 년하
내 젊음 내 재산을 다뺏아버리고
너혼자 떠날 수가 있을까
배신자여 배신자여 얄미운 배신자여
인터넷에 뒤져보니 김호중의 고맙소가 아름다운 노래이고 영탁이 진이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명곡이란 가사가 아름다워야 하고 그런 노래를 부른 가수가 영웅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배신자는 제목도 어둡고 요즘 잘난 구석이라고는 보이지 않으면서도 착각하고 날뛰는 정치인의 모습처럼 국민의 가슴에 못질을 한다. 배신자는 1972년 7월 발표하였고 가수는 도성이었다. 도성은 걸쭉한 음색으로 잘 불렀고 제목과도 잘 어울렸다. 작곡가는 영화의 감독처럼 음색이나 이에 어울리는 가수를 선정하여 널리 유행시키려 한다. 이 노래는 이보다 3년전 처음 불렸다. 처음 불렀을 대 배신자는 본래의 배신자였을 가능성이 있다. 김무성과 유승민을 배신자라 낙인 찍으려는 버러지들이 있지만 그들의 이득을 본 패거리는 전혀 다르고 앞으로 나라를 한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조국과 다름 없는 시대를 망치려는 배신자에 속한다. 1969년과 72년까지 불과 3년이지만 변화가 많았다. 72년 유신과 도성의 노래는 국민을 배신한 유신헌법과 관련이 있다. 이 노래는 나훈아를 비롯하여 주현미 조항조 배일호 등 훌륭한 가수가 불렀다. 그러나 어쩐지 도성의 노래만 못하다는 느낌이다. 도성은 사실 이들 가수보다 알려지지 못한 다음 급의 가수지만 이 노래만큼은 도성이 훌륭하다. 도성보다 더 잘 부른 가수라면 배호가 가능하다. 배호가 불렀다는 배신자는 음원에 대한 반론이 있지만 작곡가 김광빈의 외조카이고 작곡가가 직접 지도하였으므로 이 노래를 남겼으리라는 가능성을 부정하기도 어렵다. 노래로는 임영웅보다 잘 불렀지만 선곡에서 임영웅의 가족사에 어울리는 선곡이었다. 노래란 우선 잘 불러야 하지만 시대와 상황에 맞는 선택이 때로는 새로운 시대상에 충격을 주면서 유행하는 수도 있다. 앞에 부른 다른 가수와 다른 자기 느낌의 표현으로도 훌륭하였다. 물론 임영웅의 노래는 황혼의 이혼인 졸혼가나 시대상과는 다르다. 배신자가 다양한 의미로 불린다는 시대가 참으로 마음 아프지만 그 자체가 가요의 역할이다. 가요의 잘못이 아니고 시대의 잘못이고 정치인을 비꼰 노래이고 모두의 잘못이다. 그래서 선거 때에 사탕발림에 속지 말고 제정신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