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레토의 원리 (20/80의 원리)
조회 : 14 이름 : 관리자 작성일 : 2001/10/13 오후 6:14:01
URL : 없음
파레토의 원리(Pareto Principle)
우리 교회의 20%의 충성 성도는 이른바 <최상의 헌신자>이다. <20대80원리>를 터득하라!
어느 백화점에서 매달 판매한 매출총액을 점검하던 중, 최다매출순위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독특한 원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80%의 고객이 구매한 매상보다 20%의 특별고객 즉,충성고객들이 구매한 총금액이 전체매출의 80%를 차지한것이다
경영학에서는 이러한 원리를 「파레토원리」라고 말한다. 20대80원리」라고도하는 이 원리는 우선순위에 있어서 소수 20%에게 집중하면 80%의 상승효과가 나타난다는 원리이다.
직장이나 교회에서도 20%의 리더그룹이 80%의 교인을 움직인다. 창조적 소수가 대그룹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개미의 원리에서도 알 수 있다.
‘ 열심히 일하는 20%의 일개미가 있는가하면 80%는 그냥 왔다갔다하는 보호그룹이라는 것이다. 또 20%의 군병개미가 80%의 일개미를 활용 한다고도 한다. 이러한 원리는 ‘벌’들에게도 나타나고 있다.
예수님께서도 12명의 제자가 있었지만 항상 베드로, 요한, 야고보를 리더그룹으로써 특별히 관리하신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에 대한 예수님의 관심집중도는 12명, 70명, 120명의 제자그룹들, 따르는 많은 무리들과는 그 시간적 투자에 있어서도 비교가 되지 않았다.
성공이란 미리 정해진 목표를 점진적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리더그룹들에게 우선순위를 간파할 수 있는 훈련과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리더자의 성공에 필수조건이 된다. 이것이 리더십의 열쇠이다. 왜냐하면 리더그룹들이 무엇을 해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지 분명한 우선순위을 알고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일할 수 있는 일꾼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달려있다.
가장 효과적인 활용을 위해 당신이 소유하고 있는 시간과 돈 그리고 에너지(정열)와 사람들을, 당신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할 20%의 일에 집중하여 투자하기만 한다면, 그 우선적인 20%의 일들은 당신에게 80%의 성과를 얻을 수 있게 한다. 초점을 맞추어 집중하면 돋보기는 태양빛으로 불을 붙인다. 그러나 집중하지 못하면 80%의 사람들은 전혀 아무런 역사와 기적을 체험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20%의 시간이 80%의 성과를 가져온다.
*20%의 사람이 리더자가 만나고 있는 80%의 상담시간을 줄인다.
*20%의 책내용이 80%의 전체내용을 포함한다.
*20%의 고객이 80%의 매출을 능가할 수 있다.
*20%의 생산품이 80%의 이윤을 가져온다.
*당신이 하는 우선순위의 20%의 일이 80%만족을 준다.
*당신이 하는 20%의 메시지가 80%의 영향력을 미친다.
*20%의 후원자가 80%의 기부금을 담당한다.
*20%의 리더그룹이 80%의 결정권을 가진다.
*20%의 핵심교인이 80%의 성도에게 가능성을 준다.
===============================================
국민일보 2000.10.13, 16:47
[이태형기자의 교회이야기] 창조적 소수의 기독인돼야
“북경에서 한 마리 나비가 공기를 살랑거리면 미국 뉴욕에는 폭풍이 분다”
카오스 이론 가운데 나비효과로 미세한 변화가 거대한 변화를 일으킨다는 내용이다.수많은 나비의 날갯짓이 있지만 그중 한 마리,한 번의 날갯짓이 바람을 일으켜 거대한 태풍이 될 수 있다는 이론이다.결코 쉬워보이지 않은 변화가 작은 움직임에서 시작되기도 한다는 것은 인생사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일이다.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파레토는 사회현상속에서 발견한 ‘20대 80의 원리’를 제시했다.그것은 특정한 20%의 고객이 전체 매상의 80%를 구매하며 교통사고의 80%가 20%의 운전자에 의해 저질러진다는 것으로 소수가 전체를 좌우한다는 원리다.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무덤덤한 다수보다는 창조적 소수에 의해 사회가 진보한다는 것이다.소수의 엘리트가 다수의 대중을 이끈다는 것은 파시즘과 같은 독재로 연결될 위험성이 있으나 이를 긍정적인 측면에서 살필 경우,소수가 참된 것에 헌신하면 사회 전체가 맑아질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
사실 소수가 다수를 인도한 예는 너무나 많다. 교회사적으로도 마가의 다락방 120문도의 헌신에 의해 복음전도가 시작됐다.회심한 사도 바울 한사람의 헌신을 통해 유럽이 변했다.토인비는 “바울을 태우고 간 배는 유럽을 싣고 갔다”는 말로 바울 사역의 위대성을 기록했다.역사 변동의 동인으로서 창조적 소수의 역할은 중요하다.
한국 사회와 교회에 대한 많은 말들이 나온다.일반에서는 1200만 성도의 역할을 거론하며 조금이라도 교회의 부정적인 이야기가 나오면 교회를 싸잡아 비난한다.교회와 성도들이 행한 무수한 선한 이야기 보다는 어두운 이야기가 사회에 회자된다.사실 전 세계의 오지에 나가 헌신하고 있는 자랑스런 한국인들 가운데 많은 수가 기독교인들이다.긍적적인 측면에서 바라볼 경우 우리 사회내에는 계승해야 할 자랑스런 기독유산들이 많다.그런 점에서 교회에 대한 사회의 반감은 성도 입장에서 보면 억울한 측면이 많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분노하기보다는 우리를 한번 추스려 봐야 한다.기독인들이 신앙의 선배들과 같이 사회변동의 동인으로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지를 자문해야 한다.창조적 소수로 사회의 정화를 위해 기여하고 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북경에 날고 있는 나비의 몸짓이 뉴욕의 폭풍을 가져온 것 처럼,기독인의 움직임이 사회에 선한 충격을 줘야 한다.파레토의 ‘20대 80의 원리’에서 기독인들은 80%를 이끄는 20%가 돼야 한다.‘말못하고 쫓기는 짐승이 아니라 싸움터에 나선 영웅이 되거라’고 읊조린 롱펠로의 인생찬가와 같이 기독인들이 이 세상에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용사가 돼야 할 것이다.
작은 물고기가 거대한 바닷물 속에서 유유하게 다닐 수 있는 것은 그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생명이 다한 물고기는 비참하게 떠오를 수 밖에 없다.바로 바닷물과 같은 거대한 세상에서 기독인들이 창조적 소수로 사회를 견인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참 생명이 있어야 한다.오늘 한국교회가 부둥켜 안고 고민할 문제는 세상 속에서 유장하게 살아갈 참 생명이 있는가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