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거이(白居易)-대주(對酒)(술잔을 들며)
蝸牛角上爭何事(와우각상쟁하사) 달팽이 뿔 위에서 무엇을 다투는가?
石火光中寄此身(석화광중기차신) 부싯돌 불꽃처럼 짧은 순간 살거늘
隨富隨貧且歡樂(수부수빈차환락) 풍족한대로 부족한대로 즐겁게 살자
不開口笑是癡人(불개구소시치인) 하하 웃지 않으면 그대는 바보
*백거이[白居易, 772~ 846, 자는 낙천(樂天), 호는 취음선생(醉吟先生). 향산거사(香山居士)]는 당나라 중기의 위대한 시인이자 중국 고대문학사 전반에서도 일류에 속하는 대시인으로 대여섯 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고 아홉 살 때는 이미 음운이 복잡한 율시(律詩)를 쓸 줄 알았다고 하며, 주요 저서로는 “장한가(長恨歌)”, “비파행(琵琶行)”등이 있습니다.
*참고로 백거이는 이백(李白)이 죽은 지 10년, 두보(杜甫)가 죽은 지 2년 후에 태어났고, 같은 시대의 한유(韓愈)와 더불어 ‘이두한백(李杜韓白)’으로 병칭되었습니다.
*위 시는 유병례 교수님의 저서 ‘서리맞은 단풍잎 봄꽃보다 붉어라’와 문학비평가이신 김희보님의 “중국의 명시”에 실려 있는 것을 옮겨본 것입니다.
*유병례 교수님에 의하면 당나라 사람들은 묘시주(卯時酒, 5시~7시)라 하여 새벽에 술을 마시는 습관이 있었다 하고, 위 시는 가난한 농사꾼의 장남으로 태어나 아버지 소판돈으로 가출하여 금의환향한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님이 생전 서재에 걸어놓고 음미하였다고 합니다.
*유병례 교수님은 백거이가 우리의 삶을 미물 중의 미물인 달팽이, 그것도 그 뿔 위에서 벌이는 다툼이라고 형상화하였다 하고, 달팽이 뿔 위에서 다툰다는 이 고사는 “장자(莊子). 칙양(則陽)”에 보이고, 달팽이 왼쪽 뿔에 있는 나라가 촉씨(觸氏)이고, 오른쪽 뿔에 있는 나라가 만씨(蠻氏)인데, 두 나라는 수시로 땅을 점령하기 위해 전쟁을 벌여 죽어 나뒹구는 시체가 수만이 되었다 하고, 훗날 만촉(蠻觸)은 하찮은 것을 다툰다는 뜻으로 사용 되고 있다 합니다.
*교수님의 위 시가 명분 뒤에 숨은 부실하고 졸렬한 삶의 본모습을 풍자하여 결국 한계에 직면하는 인간의 운명을 조롱하는 것 같기도 하다고 하였고, 달팽이 뿔 위에서 무엇을 다투는가?라는 이 멋진 비유가 인간 삶의 속성을 공간적으로 묘사한 것이라면 뒤이은 구절 “부싯돌 불꽃”이라는 낯익은 비유는 짧고도 순간적인 삶의 속성을 시간적으로 형상화한 것이고, 그래서 시인은 빈부에 구애받지 말고 즐겁게 살자, 가난하면 가난한대로 부유하면 부유한대로 즐겁게 살자, 빈부에 매여 괴로워하거나 무리하지 말고 그것은 그것대로 내버려두고 즐겁게 살자고 권유한 것이라 합니다.
*이러한 백거이의 태도를 유병례 교수님은 빈부를 초월한 낙천의 자세로 보셨고, ‘코스모스’의 저자인 천체 물리학자 칼 세이건이 “공간의 광막함과 시간의 영겁에서 행성 하나와 찰나의 순간”이 인생이라고 한 표현을 인용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