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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오해와 이해
2003. 3. 6. 지구촌교회 이동원 목사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어떤 사람의 형이 자식이 없이 아내를 두고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아내를 취하였다가 상속자가 없이 죽고 둘째도 그 여자를 취하였다가 상속자가 없이 죽고 셋째도 그렇게 하여
일곱이 다 상속자가 없었고 최후에 여자도 죽었나이다 일곱 사람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 때 곧 그들이 살아날 때에 그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을 말할진대 너희가 모세의 책 중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 (마가복음 12장 18-27절)
미국 대통령이었던 조지 부시의 전기를 읽다가 이런 글을 대했습니다. 그가 부통령 시절에 소련 브레즈네프 수상이 죽었을 때 미국을 대표해서 장례식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장례는 아주 완전한 공산당식으로 치뤄졌습니다. 모든 것은 죽음을 상징하는 회색과 붉음의 색깔들이었습니다. 그 식의 마지막 순서에 그 관에 누워있는 고인을 향한 인사 경의를 표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미망인 고인 순서가 되었을 때 미세스 브레즈네프는 자기가 품에서 준비해 온 갑자기 백합 하나를 꺼내 들었습니다. 이 백합은 러시아 정교회에서 부활을 상징하는 꽃이었습니다. 백합을 케스킷의 관 옆에다 놓으면서 갑자기 이 부인은 남편의 시신 앞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잠시 그는 기도를 드린 후에 일어섭니다. 공산당에서 기도가 금지 됐던 그 시절에 그녀가 무릎을 꿇은 광경은 놀라운 순간이었습니다. 그가 무릎을 꿇고 일어나더니 그는 성호를 그었습니다.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성호를 긋고 있을 때 여기저기서 몇 사람씩 동시에 함께 성호를 긋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 인상 깊은 장면을 조지 부시는 술회하면서 그의 글에다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 동토의 땅 기독교 신앙이 완전히 죽은 줄 알았던 이 땅에서 나는 부활의 신앙이 부활하는 모습을 나는 볼 수가 있었다.
오늘 이 시대의 삶을 살고 있는 기독교인 가운데는 교회를 드나들면서도 부활의 신앙을 갖지 못하고 그 신앙이 죽어있는 모습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그런 유형의 예수님 당시의 한 종교인들의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들은 사두개인들이라고 불리워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대표적인 세 개의 종교 그룹이 존재했는데 하나는 바리새인, 하나는 엣세네파, 하나는 사두개인들이었습니다. 사두개인 이름도 괴상하죠? 이름자체도 기분이 나쁩니다. 머리가 네 개가 아닌가.. 사두개인 이런 생각이 드는 군요. 사두개인들은 본래 제사장 가문 출신들입니다. 아주 종교적 가문 출신들이고, 물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또 상류계층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로마하고 결탁해서 친 로마적인 경향을 갖고 그들은 기득권을 행사하고 있었던 아주 부유계층에 속한 소수 계급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세속적 마인드에 취해 있었고 현실주의적인 사고방식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그들의 삶을 살다 보니까 그들은 점차 초자연적인 것들을 부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오늘 본문 마가복음 12장 18절은 부활이 없다 하는,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와서 물어 가로되 그들은 예수를 향해서 그들이 부활을 부인하는 그들의 입장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어느 날 예수님 앞에 아주 희한한 질문 하나를 했습니다.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사람의 형이 자식이 없이 아내를 두고 죽거든 그 동생이 아내를 위하여 형을 위하여 후사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옛날 모세의 율법 가운데는 형수가 이제 미망인이 되면 형이 죽게 되면 동생이 그 형수를 데리고 사는 일이 있었습니다. 두 가지 이유에서. 하나는 자손을 계승시키기 위해서였고 또 하나는 그 당시 여인들에게는 사회보장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미망인이 되면 완전한 절망적인 삶의 처지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동생들이 대신 돌보는 그러한 습관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뭐 둘째가 죽고, 셋째가 죽고, 넷째가 죽고, 다섯째가 죽고, 여섯째가 죽고. 그래서 칠 형제와 더불어 이 여인이 살았다고 가정을 하십시다. 부활의 때 도대체 이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어야 합니까? 이런 질문을 위한 질문. 매우 괴변 같은 질문을 이 사두개인들이 예수님 앞에 던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이 말도 안 되는 질문이라고 일축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의 기회를 통해서 부활의 오해를 풀고 진정한 부활의 정체성을 가르치는 기회로 삼아 주셨습니다. 저는 오늘 이 시대에도 수많은 사두개인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드나들면서도 부활 신앙이 없어요. 네, 그 증거가 있습니다. 부활신앙을 얘기 하는데 초장부터 졸아요. 이런 사람들은 부활신앙이 없는 사람일 가능성이 아주 많습니다. 부활을 얘기 하는데도 죽어있습니다. 그냥. 계속해서. 네, 이 시대의 사두개인들 교회는 드나들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부활에 대한 신앙의 고백이 없는 사람들, 왜 그럴까요? 도대체. 왜 사두개인들은 하나님 믿고 그리고 종교적인 그런 계율 앞에 익숙하고 심지어는 모세의 토라를 공부하면서도 그들이 부활을 부인하고 부활에 대한 오해를 하고 있었던 원인은 어디 있을까요?
그들의 부활 불신의 이유, 부활 오해의 이유를 예수님은 두 가지로 말씀하십니다. 24절에 그들의 부활의 오해에 대한 원인들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우리 24절 다같이 한 번 읽겠어요. 다같이 시작!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 첫째는, 너희가 성경을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무지 때문이다. 사두개인들은요, 토라 소위 모세오경을 존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밖의 성경들은 인정하지 않았어요. 그러면서 그들은 말하기를 모세오경에 보면 부활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지 않습니까? 무엇을 근거로 부활을 믿어야 합니까? 그 당시 사두개인들의 항변이었습니다. 모세오경에 부활신앙에 대한 언급이 없다니. 예수님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26절과 27절이 예수님의 대답이었습니다. 같이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26절 27절 다같이 시작! 죽은 자의 살아난다는 것을 의논할진대 너희가 모세의 책 중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 모세를 통해서 계시된 하나님, 가시 떨기나무 가운데 계시되신 하나님, 스스로 말씀하시길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그러면서 나는 산 자의 하나님이라 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죽었잖아요. 죽음으로 끝났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죽은 자의 하나님이지, 산 자의 하나님이라고 주장할 수가 있느냐?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어서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 이것은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그들의 부활을 전제로 한 것을. 여기서 우리는 그들이 살아계신 자들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이 지금도 가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활을 전제로 하지 않을 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산 자의 하나님, 이것은 말도 안 되는 고백입니다. 성경은 이 말씀 속에서도 부활을 전제하고 있다.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신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생애의 행적들을 들춰보면 첫 믿음의 사람이었던 아브라함에게서 부터 우리는 부활 신앙에 대한 고백들로 넘쳐 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컨대 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약속했어요. 그런데 자식을 얻을 수 있는 인간적인 한계가 지나갔습니다. 사라의 태는 이미 생산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나이가 백 살이 가까웠잖아요. 아브라함. 이제 불가능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나는 아직도 너에게 아들을 줄 계획이 있다. 처음에 아브라함이 웃었어요. 사라도 웃었구요. 그러나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전능한 나에게 능치 못할 일이 있겠느냐. 이때 비로소 그의 신앙이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 하나님이 아들을 주시리라는 그 신앙이 회복되었습니다. 이미 사라의 태는 자기 아내의 태는 죽었습니다. 자식의 생산 능력에 관한한 육체는 죽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시자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했어요. 네, 이 놀라운 장면! 이 놀라운 장면. 그랬더니 드디어, 드디어 하나님께서 사라의 태를 열어 주셨고 하나님의 때에 그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부활 신앙의 승리라고 할 수가 있어요. 그런데 이것을 신약성경의 기자가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가를 로마서 4장에서 한 번 찾아보세요. 로마서 4장 다 펼쳐 보시길 바랍니다. 로마서 4장 17절부터 보시면 로마서 4장 17절에서 바울은 이 아브라함의 사건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은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라고 했어요?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19절 다같이 읽어요.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절,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아니 하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무슨 신앙이에요? 부활신앙이요. 자, 이 사실을 얘기 하면서 바로 이 아브라함의 부활신앙이 오늘 우리의 부활신앙의 근거가 되었는가를 어떻게 설명합니까? 조금 더 내려가 보시면 이제 24절에서 어떻게 선포합니까? 자, 로마서 계속 4장 24절 다같이 읽습니다.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믿습니까, 여러분? 바로 아브라함의 이 부활신앙이 바로 우리들의 부활 신앙의 근거가 되었다는 사실을 여기서 우리는 볼 수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생애 속에서 또 하나 부활신앙을 볼 수가 있어요. 자, 이 기적으로 얻은 아들, 이삭. 얼마나 귀한 아들이였겠어요.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려 하고 그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요구하십니다. 아브라함이 딜레마에 걸렸어요. 자, 하나님이 주신 아들, 또 이 아들을 통해서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수많은 모래알처럼 그리고 이 많은 자손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 그 동일하신 하나님이 그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거예요. 죽음의 제단에. 그러면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되요? 자, 아주 딜레마에 걸렸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드디어 많은 고난과 그리고 많은 주저함과 그리고 많은 딜레마 끝에 마침내 하나님이 명령하신대로 자기 아들을 죽음의 제단에다 올려놓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었을까. 자, 이것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여러분 히브리서 11장을 찾아보세요. 아주 놀라운 말씀이 있어요. 놀라운 말씀. 이 놀라운 말씀을 보고도 놀라지 않는 사람들이 부활신앙이 없는 증겁니다.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11장 18절. 히브리서 11장 18절입니다. 한 번 다같이 읽어봐요. 히브리서 11장 18절 다같이 시작!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9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자, 아브라함이 그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했느냐? 자, 하나님이 약속한 아들이다, 이삭은. 그리고 이 아들을 통해서 계속 자손이 번성하고 하늘의 별같이 바닷가의 모래알 같이 축복된 자손들이 번성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그런데 지금 그 하나님이 내 아들을 죽음의 제단 위에 올려놓으라고 하신다. 이걸 어떻게 해결 했습니까? 자, 하나님이 일단 명령하셨으니까 이 아들을 죽음의 제단 위에 놓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약속이 계속 유효하고 그 많은 자손들이 계속 번성하기 위해서는 내 아들을 죽음의 제단 위에 바치지만 그 아들이 어떻게 돼야 한다구요? 다시 살아나야 돼요. 그걸 믿었다 이 말이예요. 그걸 믿었다. 여기 구약성경에 나타난 부활신앙! 아브라함은 바로 이 부활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눈이 열린 사람들, 창세기 1장부터 계시록 까지 부활에 관한 증언, 부활신앙이 넘쳐 나고 있습니다. 내가 성경을 읽으면서도 나는 부활의 신앙을 가지지 못한다. 원인은 딱 하나에요. 성경을 제대로 읽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성경에 대해서 무지하구나. 그래서 부활신앙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두 번째는 두 번째는 뭐라고 그랬어요? 너희가 성경도 또한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기 때문에 오해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무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불신. 그것이 부활신앙을 갖지 못하는 원인입니다. 자,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 궁극적으로 하나님 못 믿는 사람이에요. 이 사두개인들은 하나님 믿는다고 주장하고 또 제사장도 있었고 종교의식을 집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부활신앙이 없었단 말이죠. 성경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결국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어떤 능력입니까? 여러분, 창세기 1장 1절. 외울 수 있습니까? 창세기 1장 1절. 다같이 시작!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 이 말씀 믿으십니까, 여러분? 저는 창세기 1장 1절 믿는 사람이라면 부활신앙도 믿는다고 생각을 해요, 부활도 믿는 다고 생각해요. 여기 창세기 1장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 창조란 말이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Exnihilo, out of nothing! 아무 것도 없는 절대의 무에서부터 유를 창조했다. 하나님이 이 절대의 무 가운데서 유를 창조하시고 만물을 창조하셨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이 죽은 사람, 하나님이 뭐에 못 살려요. 창세기 1장 1절 믿으면 다 믿을 수 있어요.
제가 전에도 소개 했습니다만, 일본의 유명한 과학자요, 신앙인이었던 무교회주의자이긴 했습니다만은 우찌무라 간죠라는 내천 선생에게 어느 날 캠퍼스의 어떤 대학생이 접근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성경 믿고 싶은데요, 근데 성경에서 예수가 물 위를 걸어 갔다든지 또 죽었다가 살았다든지 그런 거만 빼놓고 믿으면 안됩니까? 왜 비이성적이고 비상식적인 것을 믿도록 강요하십니까? 그때 내천 선생은 빙그레 웃으면서 이 학생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해요. 학생! 창세기 1장 1절 아나? 성경에 첫 장 첫째 줄을 알고 있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 하는 말 아닙니까? 맞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그 기적 아닌가? 기적? 무에서부터 유를 창조했다. 그것 기적이야. 성경은 기적으로 시작된다네. 그리고 자네, 성경에 마지막 장 마지막 줄을 아나? 마지막 장 마지막 절 혹시 아십니까? 마지막 장 마지막 절 혹시 알아요? 마지막 장 마지막 절 혹시 알아요?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첫째와 마지막은 알아야지. 알파와 오메가. 중간은 몰라도 마지막이라도 알아야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예수께서는 영광 가운데 구름타고 다시 오신다.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는 예수님. 그것이 예수의 드라마, 예수의 생애의 마지막이 아니다. 그는 역사 속에 다시 귀환 하시고 돌아오신다. 그리고 만물을 심판하신다. 그 기적 아니에요? 초자연적인 사건 아니에요? 내천 선생이 말하기를 그래 성경에서 기적을 다 빼고서 믿는 다면 성경에 뭐가 남는 줄 아는가? 요쪽 뚜껑하고, 요쪽 뚜껑이 남는다네. 성경은 기적의 책입니다. 기적의 책. 성경은 기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초자연적이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행적을 증언하고 있는 책인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이것을 받을 수 있다면 부활의 신앙을 고백할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그 분이 바로 부활의 하나님인 것을 믿으십시오.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기 때문에 오해 하였도다.
그렇다면 부활이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부활한다는 것은 어떤 몸으로 살아나는 것을 말할까요? 오늘 본문에서 주께서는 부활체의 정체성. 우리가 부활 한다는 것은 어떤 몸을 가지고 부활한다는 것을 의미하느냐? 그것을 이해 시켜 주었습니다. 그는 사두개인들의 오해를 불식하면서 진정한 부활체의 문제를 지적해 주셨습니다. 그 대답이 25절에 있어요. 25절 한 번 같이 읽어봐요. 25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네, 거기서 열쇠는 뭐냐 하면 우리가 부활할 때 입는 몸이 어떤 몸이 될 것이냐.
그 중요한 열쇠가 이 말이에요. 천사들과 같으니라. 다같이 천사들과 같으니라. 자, 이 말의 뜻이 뭘까? 첫째로 저는 부활의 몸, 부활체라는 것은 우리의 개인성이 보존된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개인성이 보존된다. 이 말을 잘못 오해해서 천사들과 같으니라 이 말을 천사가 된다는 말로 오해하진 마세요. 천사가 된다는 말이 아니예요. 천사들과 같이 된다 그랬지 우리가 천사가 된다고 그러진 않았어요. 천사는 천사고 사람은 사람이예요. 천사와 사람을 혼동하진 마십시오. 그것은 각기 다른 유형의 피조물이에요. 사람이 죽으면 천사가 된다. 이것은 성경에 무식해서 그래요. 안 그렇습니다. 천사는 영적인 피조물 별도의 피조물이고 인간은 또 다른 피조물입니다. 인간은 인간이고 천사는 천사지 인간이 천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기서 천사들과 같이 된다 천사들과 비슷하게 된다고 그랬지 천사가 된다는 말은 아니예요. 천사는 천사의 특성이 있고 인간은 인간의 특성이 있습니다. 부활체는 인간의 인격성과 특성을 그대로 보존합니다. 가끔씩 성경공부 자리에서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목사님! 부활할 때 우리 마누라가 나를 알아 볼까요? 이런 질문 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구요. 제가 장담해 드릴께요. 저는 아주 그거 100% 틀리지 않는다고 확신해요. 분명히 알아볼 겁니다. 분명히 알아봐요. 어떻게 알 수가 있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 제자들이 알아봤어요? 못 알아봤어요? 알아봤어요. 분명히 알아봤어요. 그러나 다른 점도 있었어요.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미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문이 닫혀 있는데도 나타나시고 하셨어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어떤 차별성이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개인성이 보존되고 분명히 알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개인성은 분명히 보존됩니다.
그러나 이 부활체는 두 번째로 영원성을 갖게 됩니다. 영원성을 갖는다. 다시 말하면 순간적인 육체가 아니예요. 죄로 말미암아 부패한 인간의 육체는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우린 순간적인 육체를 갖고 있어요. 결국은 썩을 것 결국은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부활할 때 입는 몸은 입게 될 그 부활의 체는 영원한 것입니다. 영원성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천사와 같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천사와 같다. 자, 여기 보면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그랬습니다.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어떤 분은 이 말씀 보고 말이죠, 장가도 안 가고 시집도 안 가니까 그거 재미 없어서 천국 못 가겠다는 사람도 있어요. 사랑도 하고 결혼도 하고 로맨스도 있고 그래야 할 텐데, 그거 심심해서 더군다나 여성도 없고 남자도 없고 그거 저도 동의해요. 동의하고 싶더라구요. 전 너무너무 여자가 좋은데. 바라보는 게 너무너무 좋은데 여성들도 없다면 그 얼마나 천국이 심심할까? 그러나 이 말의 뜻을 여러분이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제도로서의 결혼제도, 결혼제도가 전제하는 중요한 사건 하나가 있습니다. 결혼제도를 하나님이 왜 만드셨을까요? 종족을 보존하고 종족을 계승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부활체를 얻게 되면 우린 죽지 않습니다. 죽지 않아요. 죽지 않아요. 그러니까 결혼의 중요한 목적 하나가 없어지는 거예요. 그렇죠? 자, 죽기 때문에 그것을 계속해서 계승하기 위해서 우리가 결혼하고 자식을 낳는데 부활체를 갖게 되면 그 몸은 죽지 않는 몸이예요. 천사들은 죽지 않습니다. 천사들은 인구가 증가되지 않습니다. 처음 창조할 때와 천사들은 그대로예요. 그게 성경의 가르침이예요. 우리가 천사론을 깊이 연구해 보면 그렇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린 천사와 같아져요. 다시 말하면 우리는 영원한 육체를 소유한다 이 말입니다. 영원성을 갖는다. 영원성. 멸하지 아니하는 육체. 영원성을 갖는다. 그런 의미에서 천사들과 같다, 이 말이고,
그 다음에 세 번째로 인격성의 완성체를 말합니다. 인격성의 완성체. 자, 아까 결혼의 제도는 그 우리가 부활할 때는 없어질 것입니다. 천국에서는. 그러나 결혼의 제도가 없다고 해서 천국이 무미건조한 세계일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저는 천국에도 로맨스가 있다고 믿습니다. 사랑이 있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인격성이 보존되는 한 그것은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인격성을 행사할 수가 있어요. 인격성이라는 것은 뭘 말합니까? 지식과, 감정과 의지에요. 자, 하나님이 인격적 존재지요? 지식과 감정과 의지를 갖고 계십니다. 천사도 인격적인 존재에요. 지식과 감정과 의지가 있어요. 천사도 알 수 있고 감정적인 느낌이 있고 또 판단할 수가 있습니다. 또 우리가 부활해서 새로운 몸을 입어도 우리는 인격체를 갖게 됩니다. 지식과 감정과 의지가 있어요. 그러나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정의의 인격이라는 것은 죄로 말미암아 상당히 오염되어 있어요.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타락한 감정도 갖고 제대로 우리는 결단하지 못하고 그러나 그 날. 부활체를 입을 때 우린 완성된 인격체 여러분 완성된 인격체를 가지고 사랑을 한다, 결혼에는 로맨스도 있고 아름다움도 있고 또 결혼에 축복도 있고 위로도 있지만 또 결혼이 주는 상처는 얼마나 많아요. 부부 사이에도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하고 아파하기도 하고 그러나 여러분 천국에는 완전한 사랑이 있는 곳, 사람들이 완전한 사랑을 나눌 수가 있는 곳. 그 부활의 완전한 인격체를 입고 영원한 사랑 가운데 들어갈 수가 있는 곳. 그렇기 때문에 심심할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여러분 상상해 보세요. 죄가 없는 숭고한 사랑, 타락이 없는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그 부활체, 저는 그래서 부활을 이렇게 정의하고 싶어요. 한마디로 부활이란 뭐냐? 인간이 추구하는 존재의 완성체다. 이렇게 정의하고 싶어요. 인간이 추구하는 그 존재의 완전한 상태. 그것이 바로 부활의 상태 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만약에 이 부활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사랑하시는 여러분, 이 땅에서 아무리 불완전한 일을 많이 경험해도 갈등과 상처와 번민과 시련을 경험해도 그 어느 날 우리가 부활의 몸을 입고 그 완전하신 부활의 임재,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을 경험하며 사람 사이에도 온전한 사랑을 나누게 될 것이다. 이 사실을 참으로 믿는다면 견딜 수 있잖아요? 내일의 완전한 사랑. 내일의 완전한 하나님의 ideal! 하나님의 그 놀라운 세계를 우리가 약속 받고 그것이 부활신앙의 정체인데 이 부활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지금은 좀 괴로워도 지금은 좀 아파도 여러분 힘있게 살 수 있는 근거가 있잖아요.그런데 사랑하시는 여러분 왜 이 부활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기독교인들 조차도 왜 이렇게 무력하게 살까요? 옆에 있는 사람들 보세요. 다 지쳐있고 짜증나고 졸고, 다 왜 그래요?
전 늘 얘기 할 때마다 생각나는 얘기가 있는데, 제가 처음 예수 믿고 나서 어떤 선교사님 하고 같이 일을 했는데, 그 선교사님이 어느 날 그러더라구요. 왜 한국 교인들은 교회만 오면 갑자기 우거지상이 돼 가지고 이러고 있느냐고. 그러니 제가 할 말이 있어야죠. 그래서 그랬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 중이라고 그랬어요. 그런데 제가 잊어 버릴 수가 없는 것이 그 분이 그러더라구요. 그런데 그 예수님 부활하신 것은 잊어버렸나요? 그러더라구요. 부활하신 것은 잊어버렸나요? 부활신앙. 제가 인터넷 유머 사이트에 들어 갔다가 재미나는 유머, 최신 유머 하나를 읽었는데 구기자의 전설을 아십니까? 한국 남자들이 지금 다 그냥, 무력해져 있고 다 죽어 있어요, 그냥. 그게 왜 그러냐면 한약 한 첩을 다 잘 못 먹었어요. 그게 뭐냐면 그 이름이 구기자, 구기자 먹고 다 구겨있단 말이예요. 구기자. 아직도 몰라요? 구기자. 그래서 아내가 너무너무 근심이 돼 가지고선 남편에게 뭘 하나를 선물로 줬어요. 그걸 탁 먹고 나자 남편이 그냥 다시 살아났습니다. 뭘 먹었을 까요? 피자. 아직도 깨닫지 못하시는 분이 계시는군요. 따라서 한 번 하십시다. 피자. 좀 피자 이 말이 예요. 인제 깨달은 사람도 있어요. 인제. 옆에 있는 사람 처다 보시고 우리 피자 한 번 해보세요. 좀 피고 살아요. 뭐 그렇게 우거지상을 해요. 온 세상의 고뇌와 번민을 다 짊어 지고 사는 사람 처럼 말이죠.
네, 제가 미국 교회 나갈 때 미국 목사님이 들려준 감동적인 부활절의 스토리를 소개하고 마칠까 합니다. 주일학교 Sunday school class에서 일어난 일이예요. 3학년생들. 초등학교 3학년생들이 교회 주일학교에서 이렇게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정서 장애자가 한 사람 있어요. 정서장애자. 필립 이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정서 장애자인데도 항상 밝아요. 표정이 밝고 천진난만하고 그렇잖아요. 정서 장애자들이 오히려 밝은 표정을 하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 면에서 장애를 겪고 있는데 그런데 성경 말씀 만큼은 이 필립이 그렇게도 좋아합니다, 예수님 좋아하고 성경 말씀 좋아하고. 예수님 얘기만 나오면 환하게 웃고 어느 Easter 아침에 주일학교를 하면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부활절을 상징하는 계란 모양의 계란으로 만든 플라스틱으로 만든 계란. 근데 반이 열릴 수 있는 거, 열릴 수 있는 콘테이너 처럼 열릴 수 있는 계란 박스 같은 것을 아이들에게 하나씩 다 나눠 줬습니다. 플라스틱으로 된 것을. 그래서 부활에 대한 설명을 한 다음에 너희들 이 부활의 생명을 상징하는 것을 교회 가든에 나가서 뜨락에 나가서 15분 시간을 줄 테니까 생명을 상징하는 것들을 집어넣고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밖에 나가서 막 15분, 20분 후에 다 교실로 돌아왔어요. 아이들에게 하나씩 하나씩 설명을 시켰습니다. 한 아이가 와서 자기 계란 그 플라스틱 계란 박스를 열면서 보니깐 거기에는 꽃이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꽃이, 예쁜 꽃. 이 아름다운 꽃이 생명을 상징합니다. 살아있는 꽃. 선생님과 아이들이 박수를 막 쳤어요. 두 번째 아이가 또 박스를 딱 열었어요. Butterfly! 나비! 아주 아름다운 나비 이 살아있는 나비는 생명을 상징합니다. 세 번 째 아이가 와서 또 박스를 탁 열었습니다. 거기서 뭐가 나왔냐면 잎사귀 돋아나는 파릇파릇한 잎사귀. 그 다음 네 번째로 필립 차례가 됐어요. 정서 장애를 겪고 있었던 이 필립이 앞에 나왔습니다. 학생들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저 바보 같은 필립이 뭘 가져 왔을까? 필립이 한참을 주저 거리고 가만히 있어요. 그러니까 선생님이 괜찮아 필립. 그냥 뭐 가지고 왔니? 한 번 열어봐. 그러니까 필립이 탁 열었어요.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었어요. 학생들이 막 웃으면서 손가락질 하면서 그렇지 필립은 아무것도 못 가지고 왔어. 그런데 필립이 갑자기 이렇게 말하더래요. 쉬! 그런데 필립이 말하기를 예수님의 무덤은 비었잖아요. 순간적인 정적과 감동이 그들을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은 비었잖아요. 그 분은 살아나셨습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그 분의 부활이 우리의 소망인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 부활이 구원과 능력 있는 사람의 기초인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가 사셨기에 우리도 살 것입니다. 절망과 어둠을 박차고 새롭게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이 부활의 신앙을 선포 하시길 바랍니다. 부활의 승리를 찬양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우리 다 일어나시겠습니다. 우리 조용히 기도하시면서 조용히 기도하시면서 내 안에 사는 이 아까 부른 찬송, 부활하신 주님이 여러분 안에 살고 계신지 한 번 확인 하면서 불러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