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인구에 비례해 약국이 세계에서 가장 많다는 통계가 있다. 그런데도 야간이나 공휴일에는 문을 닫는 곳이 많아 막상 응급 상황이 되면 약을 구입하기가 쉽지 않다. 보건복지부는 이 같은 의약품 구입에 따른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인정되는 액상소화제, 정장제, 외용제 중 일부 품목을 의약외품으로 전환하는 내용을 담은 ‘의약외품 범위 지정 고시 개정안’을 공포, 시행했다. 그동안 약국에서만 판매됐던 48개 일반의약품이 의약외품으로 전환되어 약국뿐 아니라 슈퍼, 편의점, 대형마트 등 소매점에서도 판매되기 시작한 것이다.
판매 장소는 24시간 운영되고 부작용 발생 시 약품 회수 등 관리가 쉬운 곳으로 편의점이 대표적이다. 판매할 때 임산부나 취객에게는 복용 시 유의사항을 확인시켜주고 포장 단위를 적절한 수량으로 제한하며 연령에도 제한을 둔다. 하지만 효능이 비슷한 제품이라도 판매 가능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연고류 중 ‘마데카솔’은 일반 슈퍼 판매가 가능해진 반면 유사한 역할을 하는 ‘후시딘’ 등은 허가가 되지 않아 소비자의 혼돈이 있을 수 있다. 이밖에 ‘훼스탈’, ‘베아제’, ‘쌍화탕’, ‘원비디’ 등도 의약외품에서는 제외돼 기존과 같이 약국에서만 구입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르면 내년 상반기부터는 현재 판매되는 48개 의약외품 외에 ‘타이레놀’, ‘화이투벤’ 등 감기약과 해열진통제, 소화제도 슈퍼에서 판매될 전망이다.
국민의 편의를 위한 개정이지만 안전성에 대한 우려도 있다. 대한약사협회 소속의 한 약사는 “우리나라는 약국 하나당 인구수가 2,300명 수준인데, 이런 경우 국가가 슈퍼에서의 의약품 판매를 허용하는 나라는 우리 밖에 없다”며 “특히 일반약의 약국 외 판매는 접근성뿐 아니라 안전성까지 고려되어야 하므로 이번 약사법 개정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아세트아미노펜과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가 문제다. 아세트아미노펜을 허가 용량보다 많이 복용하거나 아세트아미노펜이 포함된 약을 동시에 여러 개 복용하면 과다 복용으로 간 손상의 위험이 높아진다. 아세트아미노펜 복용 중에 술을 마셔도 간 손상이 위험수위에 달할 수 있으므로 오남용에 주의해야 한다. 더불어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를 항응혈제나 스테로이드와 함께 복용할 경우 심각한 위장 출혈의 위험이 있으므로 역시 함부로 복용해서는 안 된다.
꼭 필요할 때 슈퍼나 편의점에서 쉽게 약을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이 반갑기도 하지만, 편리한 만큼 약물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복용법을 꼼꼼하게 살피는 등 안전성에 각별히 유의해야 할 것이다.
/ 여성조선
취재 강부연 기자 | 사진 강현욱
정부가 7월 21일자로 일부 일반의약품을 의약외품으로 전환하는 내용의 ‘의약외품 범위지정’을 시행함에 따라 안전성에 특별히 문제가 없는 의약외품 48개 품목을 대형마트에서도 구입할 수 있게 됐다.
7월 22일 대형마트 가운데 처음으로 의약외품을 판매하기 시작한 홈플러스는 현재 ‘가정 상비품’ 코너를 마련해 생록천, 타우스, 알프스디, 까스명수, 안티푸라민 등의 의약외품을 판매하고 있다. 23일부터 성수점에서 의약외품을 판매하기 시작한 이마트는 현재 그 범위를 서울, 인천, 성남 등 수도권 30개 매장으로 확대했으며, 롯데마트 또한 7월 28일부터 서울역점 등 30개 점포에서 의약외품을 판매하고 나섰다. 농협은 7월 27일부터 자양강장 드링크류의 대명사인 박카스를 하나로클럽 양재점에 시범 입점시켜 10개들이 한 상자당 4,500원에 판매하고 있다. 박카스 외 나머지 제품에 대해서도 해당 제약업체와 협의 중이라고 하니 조만간 농협에서도 다양한 종류의 의약외품을 만날 수 있을 듯하다. 대형마트와 편의점에 이어 백화점도 의약외품 판매에 동참했다. 신세계백화점은 강남점과 명동점에서 박카스, 위청수, 안티푸라민 등을 진열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의약외품 슈퍼 판매 시행에 대해 대한약사회 등 여러 약사단체에서는 국민의 건강을 해할 염려가 있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대체로 호의적이었다. 홈플러스 영등포점에서 만난 정순자 씨(72)는 “박카스를 약으로 알고 마시는 사람이 몇이나 되느냐”며 “일반 약국보다 가격이 저렴해 앞으로 드링크제가 필요하면 마트에서 구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마트에서 판매하는 의약외품은 약국과 약간의 가격차이가 있었다. 롯데마트와 홈플러스에서 판매하는 박카스의 개당 판매가는 450원으로 이는 한 병당 500원에 판매하고 있는 일반 약국보다 50원 저렴했다. 박카스 10개들이 한 상자당 4,500원에 판매하고 있는 영등포 홈플러스의 경우 마트 내에 입점한 약국과 비교해 상자당 가격이 200원 더 저렴했다. 롯데마트에서 판매하고 있는 위생수, 생록천 등 드링크류도 한 병당 400원 꼴로 인근 약국에 비해 최대 20% 낮은 가격이었다. 이에 대해 대형마트의 한 관계자는 “판매마진을 최대한 줄여 약국보다 싸게 팔고 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착한 가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전체 의약외품 슈퍼 판매의 70% 이상을 차지한 박카스의 경우, 홈플러스는 3개 매장에서만 2주 만에 2만 6천 병이 팔려나갔다. 그러나 제약사가 아닌 도매상을 통해 물건을 들여오는 실정이라 늘 물건이 모자란다. 박카스를 생산하는 동아제약은 현재 약국 수요량에 맞춰 생산라인을 가동하고 있고, 물량의 대부분을 전국 약국으로 직접 공급하고 있기 때문에 동아제약과 공식계약을 맺지 못한 대형 유통업체들은 도매상을 통해 알음알음으로 물건을 공급받아야 하는 실정인 것이다. 대형마트 관계자들은 “없어서 못 팔 지경”이라며 “매장마다 박카스 공급 물량 확보에 혈안이 돼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소비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에 힘입어 보건복지부는 일반 약국이 문을 닫은 심야나 공휴일에도 의약품 구입에 불편을 겪지 않도록 가정상비약의 약국 외 판매를 허용하는 내용의 약사법 개정안을 7월 29일에 입법 예고했다. 이에 9월 중으로 국회에 법안을 제출해 내년 상반기 중에는 감기약과 해열진통제 등 가정상비약의 약국 외 판매가 이뤄지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 여성조선
취재 장혜정 기자 | 사진 이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