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주 예수님과 함께 이 땅에 생생히 임해 있는 하나님 나라의 실체가 무엇인지, 또한 어떻게 풍성하게 누릴 수 있는 것인지, 더 나아가 어떤 식으로 확장케 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은데..
사실상 근원적으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에 대해 어느 정도라도 통찰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나라나 그와 함께 하는 역사와 누림과 확장들에 있어 구체적이면서 명료하게 알기가 심히 어렵거나 심지어는 이상하게 알게 될 위험도 큰 것입니다..
무엇보다 아래 본문의 앞부분인 6~8절에서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라고 증거되고 비유되며 계시되어 있는 이 땅에서도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는..
본질적인 면에서는 절대 진리이자 하나님의 법인 말씀이 중심이고, 오직 말씀으로 통치하는 나라인 것이며, 그렇기에 아래 본문에서도 구주 예수님과 함께 이 땅에 임하게 되는 하나님 나라의 강렬하고 충만하며 풍성한 역사에 대해 여호와를 아는 지식, 곧 말씀이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세상에 충만할 것이라고 증거하며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부연하면 이 세상에서의 모든 인생들은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가 깨어졌고 단절케 된 것이며, 그로 인해 본질적으로는 말씀을 잃어 버렸고 말씀의 동산인 에덴도 박탈당하게 된 것이며, 영적으로는 진노와 저주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노예 상태에 빠지게 된 것인데..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인도 가운데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곧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했든지, 또는 오늘날의 우리들과 같이 오신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고 있든지 간에 어쨌든 반드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구원에 참예케 될 수 있는 것이고,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하나님의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며, 실제로 그 구주 예수님께서는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우리 인생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의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필요한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분인 것이기에 그와 같은 믿음으로 인한 값없는 구원이 정말 가능할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그와 함께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 정말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하시는 것이고, 본질적으로는 말씀이신 하나님의 것, 말씀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백성, 곧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뀌게 하시는 것으로..
반드시 그렇게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자들만이 이 땅에 임해 있는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을 온전하고 생생하며 강렬하게 누릴 수 있는 것일 뿐 아니라 세상 끝 날에도 신령한 몸을 입고 영원하고 완전한 말씀의 나라에서, 진정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에서 영원한 생명과 기쁨을 말씀 그대로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악한 세력들이 가득한 이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살아가는 동안 이 땅 가운데 임해 있는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을 온전히 누리고 뜨겁게 경험케 됨에 있어 그렇게 처음의 사랑, 처음의 믿음이 전부일 수는 없는 것이고, 그렇게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이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옛 사람과 같이 자신의 힘과 의, 세상적인 능력과 방법들을 우선으로 하면서 죄악과 세속과 정욕들 등으로 잠자고 미지근해 지며 병들고 죽은듯한 신앙이 되어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들 등과 같은 징계들에 허덕이고 마치 광야 40년과 같이 돌고 방황케 될 수도 있는 것이며, 실제로 적지 않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러한 실정과 현실에 빠져 있기도 한 것이기에..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마다 그 누구라도, 아무리 대단해 보이는 위치와 직분과 역량과 소유와 달란트를 가진 자라고 하더라도 실상 단 한 사람까지도 예외 없이 반드시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어떤 식으로든 구주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고, 특히 사도 바울과 같이 순간순간 그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곧 더 이상 옛 사람과 같이 내 힘과 의, 세상적인 능력과 방법들이 아닌 바로 그러한 구주 예수님으로 인해, 직접적으로는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로 인해 죄악들, 악한 세력들과 싸울 수 있는 것이고 이길 수도 있는 것이며, 게다가 혹 범하게 된 죄악들에서는 자복하고 돌이킬 수도 있는 것이고 그로 인해 실제로 사함과 나음들, 회복과 역전들도 누릴 수 있는 것이며,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최우선으로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도 가능한 것이고 그와 함께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더욱 충만케 되며 근원적으로는 가면 갈수록 더욱 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과 풍성하심이 됨으로 인해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특히 온갖 응답과 승리와 이적과 복과 열매들 등으로 차고 넘치게 될 수 있는 것인데 바로 그것이 이 땅 가운데 임해 있는 하나님 나라 역사의 실체와 실제들, 누림과 생생함들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바로 그러한 하나님 나라의 확장도 결코 복잡할 수 없는 것으로 진정 나 자신이 이전에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어둠과 사망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서 그렇게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말씀의 백성으로 완전히 뒤바뀌게 된 것일 뿐 아니라 삶의 자리와 인류 역사의 현장들에서도 순간순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힘을 얻어 갈수록 더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 되어 말씀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을 생생하고 강렬하게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듯이..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바로 나 자신이 그러했던 대로 나로 인해, 또한 온 땅 구석구석의 하나님의 백성들로 인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있던 자들이, 참으로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 가운데 있던 자들이 그 구주 예수님을 새롭게 믿게 되고 영접케 되는 일들이 더욱 더 많아지는 것, 뿐만 아니라 삶의 자리들, 사역의 현장들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가면 갈수록 더더욱 치열하고 뜨거운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 되는 믿음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고 점점 더 많아지며 온 천지에 가득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실질적인 확장의 과정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본질적으로는 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온 세상에 충만케 되는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이사야11:9)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6월 21일(금)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