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살의 지문
최 병 창
이가 부실하여 치과에
자주 들락 인다는 말을 들은 큰아들이
48개가 한 박스라는 치약꾸러미를 보내왔네
얼핏 계산해 보니 1년에 한 개씩 사용한다면 앞으로 48년을 더 살아야 하고
한 달에 한 개씩 쓴다 치면 4년을 더 살아야 한다니 생각하면 무지무지하게
행복한 것도 같은데
그런데 그런데 말이네
누가 말했듯 골골 80이라고 갈길이 막바지인 것만은 사실인 것 같은데
남은 시간 쓰고 남길 글줄이 문제 긴 문제였네
쓰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고 써야 만이 당연하다는 아찔한 돌개바람
한 번도 내 것 같은 글줄하나 써보지 못한 부끄러움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었지만 그래도 그 글줄 붙잡고 놓지 못한 부실한 잇몸과 이빨사이
꽤나 모질게도 더듬으며 헤매었으니
앞으로는 칫솔질이나 실컷 하면서 궁상이나 떨어야겠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글줄 열심 하라는 큰아들은 내 마지막으로 주민등록증에 찍어놓은 맨살의
지문이었네
안경을 바꿔 써야겠는데
안경은 보이지 않고
푸른 숲 사이로
하이얀 치약들이 제 몸을 쥐어짜고 있네
모처럼 파르르 한
하늘과 땅 사이
부서지고 있는 알알한 기억을 쥐어 짜내듯.
< 2023. 09.>
물망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