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破戒-Hakai)
島崎藤村(시마자키도오손/Shimazaki Toson)
“설령 어떤 경우를 당하더라도,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결코 백정(白丁)이라고 고백하지 마라, 한때의 분노나 비애로 이 훈계를 잊으면 그때는 사회에서 버려지는 것이라 생각하라”
여기서 계율(戒律)이란 종교적인 율법이 아니다. 당 시대상황에서 살아남는 무언의 구원 전파(電波)였으며 절망의 전염병 상속신분 카스터 제도였다.
아버지는, 세상에 나가 출세하려는 백정 자식의 비결- 유일한 희망, 유일한 방법, 그것은 오직 자신의 신분을 감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깊은 산속에서 방목장 소를 돌보며 스스로 유폐된 이산(離散)가족으로 존재한다.
메이지 유신으로 신분이 철폐되었음에도 차별과 편견이 존재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백정 출신의 초등학교교사 ‘우시마스’가 일생의 계율(戒律)로 머리속에 깊게 입력하여 지키게 한 아버지의 삶의 진리 같은 속성에 갈등은 갈대 없는 화두 그 자체였다.
“신분을 절대로 밝히지 마라”-
그러나 - 백정의 출신 성분이라는 내적의식에 나포된 ‘우시마스’의 방황은 역시 신평민(新平民-백정 해방령으로 새롭게 평민으로 편입된 사람)으로 사범학교 심리학 강사 였던 ‘이노코 렌타로’가 학교로부터 퇴출당한 후 당당히 신분을 밝히고 차별의 시선에 저항하며 기층 사회 밑바닥의 모순된 삶을 변화시켜 나가는 힘을 발휘하는 사상가, 저술가로 변신하여 쓴 “참회록”기타 서적을 숨어서 읽어야 했다.
그의 삶의 방식을 동경하며 심한 내적갈등과 고뇌를 해체하는 심리적 과정을 밀도 있게 그려낸다. 그리고 초등학교에서의 근무환경 동료직원과의 인간관계-생활환경- 마침내 아버지의 죽음으로 3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간다.
치쿠마 강의 물은 연두색으로 흐려진 채 소리도 없이 먼 바다 쪽으로 흐르고- 그 기슭에 웅크리듯 나지막이 서있는 마른 버드나무의 모습-
아, 옛날 그대로인 산하의 조망이 한층 우시마쓰의 눈을 아프게 했다. 그리고 가련한 고향의 하늘을 향해 서둘렀다. 아버지의 죽은 얼굴은 차갑고 창백했으며 핏기 하나 없이 변해 있었다.
백정은 보통 사람과 같은 묘지에 묻힐 권리가 없다는 슬픈 관습- 그것을 아버지는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큰 소에게 받혀 목숨을 잃었고 목장의 흙속에 깊이 파묻혀 버렸다. 들국화도 흙발에 밟혀 버렸다.
아버지는 이 에보시가다케 기슭에 숨어 살기는 했지만, 공명을 꿈꾸는 마음만은 일생동안 불같이 타오른 사람 이었다. 그 욕망을 이룰 수 없다면 차라리 산속에 들어가 버리겠다. 그리고 자식만은 뜻대로 살 수 있게 해 주고 싶었다.
- 변하지 마라, 나가라, 싸워라, 입신해라, 이것이 아버지의 정신이었다. - 자연의 변화와 아름다움, 추억의 사과밭, 어릴 때의 작은 추억 연정, 리얼한 주변 환경의 서사적 표현-나는 이글을 쓰면서도 잠시 여기서 인간 삶의 그 분위기에 들어가 가슴에 흐르는 기류에 실려 심호흡을 가눌 수 없다.
소설의 구도가 그리 복잡하지는 않다. 후반부- 우시마스의 하숙생활과 연관된 인과관계 어쩔 수 없이 자연스레 피는 사랑의 필링교환이 얽혀있지만 클라이막스는 우시마스가 학교를 연결고리로 한 지역사회의 분위기를 벗어나고자 하는 고뇌-
백정이란 신분을 숨기고 여기까지 온 사정을 ‘고백’하는 상황은 인간주의 의 백미에 속한다. 장황하나마 여기 그 고백을 써 보고자 한다.
아이들 앞에서
“여러분도 벌써 15, 16살, 전혀 세상 물정을 모를 나이도 아닙니다. 부디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 주세요”
라고 우시마스는 안타까운 듯이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 앞으로 5년 10년 지나서 여러분이 가끔 초등학교 시대를 생각해 볼 때, 아, 그 고등과 4학년 교실에서 세가와라는 선생한테 배운 일이 있었지, 그 백정 선생이 신분을 밝히고 작별을 고할 때, 정월이 되면 자신들과 함께 도소(屠蘇)주를 마시고 천장절이 오면 마찬가지로 애국가를 부르며 남몰래 우리들의 행복과 출세를 빈다고 했었지, 이렇게 생각 해 주세요,
내가 지금 이런 말을 고백하면 분명히 여러분은 더럽다는 느낌을 일으키겠지요. 자, 가령 나는 천한 신분이라도 적어도 여러분이 훌륭한 생각을 가지도록 매일 그것을 공들여 가르쳤든 것입니다. 적어도 그 고생을 보아서 이제까지의 일은 이해해 주세요.”
이렇게 말하며 학생 책상에 손을 짚고 용서를 빌듯이 머리를 숙였다.
“여러분이 집에 가서는 아버님과 어머님께 부디 제 이야기를 해 주세요. 이제까지 숨기고 있던 것은 참으로 죄송했다고 전해 드리고, 여러분 앞에 이렇게 손을 짚고 이렇게 고백했던 일을 이야기 해 주세요. 정말로 나는 백정입니다. 조리(調理)입니다. 더러운 인간입니다.”
그리고 우시마스는 두세 걸음 뒤로 물러가서
‘용서 해 주세요.’
하면서 마루위에 무릎을 꿇었다.
그 뒤 그는 정든 학생들과 주변 인물들로부터 떠나는 아쉬움과 정의를 포용하며 느낀다.
“버리는 신이 있으면 돕는 신도 있다” 분위기가 조성된다. 이스마스는 떠났다. 새로운 장 도쿄로! -신세계로-
여기서 거듭 이야기 하지만 파계(破戒)란 종교적인 계율을 깨고 속세로 간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종교적인 계(戒)의 내용적 성격과 판이 한 것은 아니리라. 파계의 연구론 자 들의 분석은 봉건적이 가족제도로부터의 자아해방. - 사회적인 실행력을 가지지 못한 그늘의 존재로 ‘실격 아버지’-세 종류의 교사(敎師)상-이야마 초등교장류, 모든 교사들. 우시마스의 선배이면서 사범학교 교사였던 이노코 렌타로를 들고 있다.
반차별(反差別)운동을 한 렌타로가 사표(師表)로서 신생의 길을 열어주었다고 본다. “혈연의 아버지”와 "이념의 아버지"비교해 보는- 문학적 감각에서, 현실을 직시하고 사실 그대로 적나라하게 사물을 묘사함과 동시에 리얼리즘을 강조한 문학이 광범위하게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는 것과,
시마자키도오손(Simazaki Toson)자연주의 문학의 선구적인 의의 뿐 아니라, 그러한 근대화의 부작용을 그려낸 작품으로서 시대적인 가치를 무겁게 가진다는 평가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파계의 의미는 기존 개념을 깨고 도전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늙은 이 들의 가치상실 기존관념과 바늘 끝만큼도 융통성과 유연성 없이 굳어진 오만과 교만은 파괴되어야 할 고착화된 자기 계(戒) 일 뿐이다.
그것을 깨트리기 위해서는 자기 성찰과 오늘날의 교양 확대 일 것이다.
시마자키도손은 우리들의 출생연도 조금 앞서 사망 했으니 (1943년-72세) 아버지 세대의 시대상황과 비슷했으리라. 그리고 사범학교란 당시대의 범주와 우리들이 겪은 시스템에 연관성이 있다는 점에서 이해의 속도감이 있다.
‘백정(白丁)’의 사회적 통념을 우리들도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대의 인권이나 세습 인습이 얼마나 추악하고 악마적인 계급사회였는 가를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오욕의 강물에 심신을 담구고있기 때문이 아닐까? 시대상황은 먼 기억으로 존재케 되지만 생존 철학의 감동과 감명이 거기에 있다.
노영희 옮김- 문학동네 간.
End
첫댓글 감명있게 읽었습니다.
오드리 햅번이 나오는 파계는 종교이탈을 묘사한 것인데
시마자키도오손의 소설 파계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기존개념을 깨고 도전하는 것이군요.
우리 앞 세대에서 이 글을 쓴 작가의 용감한 시도가 놀랍습니다.'
[‘용서 해 주세요.’하면서 마루위에 무릎을 꿇었다.]이 장면에서 속이 부글부글거리더라구요.
일본인의 근성이 보이는 장면?......이런 모습을 가진 일본인이 싫습니다. ㅋㅋ
옛 처럼 강도가 높지는 않지만 현대에도 신분운운이 있긴 하더라구요.^^
panama님은 일본 소설을 왜 좋아할까???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오드리햅번의 '파계'도 좋지요.
아마도, 일본 취향 인가 봅니다.(친일파란 비아냥도 듣꼬)
3월가고- 잔인한 4월이 신속히 진행하내요! 요즘엔 라일락 향기도 벨로(?) 없내요!
ㅋㄷㅋㄷ
친일파는 아닌 것 같고.
^^인간 내면의 소리에 민감한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