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은 잔치를 하는 것도, 한편의 수필을 쓰는 것도, 그림을 그리는 것도, 수를 놓는 것도 아니다. 혁명은 그렇게 세련되지도, 여유 있지도 부드럽지도 않으며, 참을 만하지 않으며, 친절하지도 예절바르지도 관대한 것도 아니다. 혁명은 봉기요,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무너뜨리기 위해 행하는 폭력이다. (마오, 1927;)
개인적인 생각으로, 거상 임상옥과 추사 김정희가 홍경래(33)를 도와 민중봉기를 성공시켰더라면, 지금과는 또 다른 세상이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해본다. 홍경래가 10년만 늦게 나왔더라면...
평서 대원수 홍경래의 궐기호소문
『 평서(平西) 대원수는 급히 격문을 발한다. 우리 관서(평안도)의 부로(父老), 형제, 공사의 천민에 이르기까지 모두 우리호소에 귀를 기울이라! ......
관서지방은 지난 임진난 때에는 국토를 재조(再造)한 공로가 있으며 정묘의 변(1627년 여진족=청의 침입) 때에는 양무(여진족을 막은 공이 있는 양무공 정봉수)의 충성이 있었다. 돈암(17세기 유학자 선우협)의 학문이 있으며 월포(마찬가지로 유학자인 홍경우) 같은 인재도 서토에서 일어났다. 그런데도 조정은 서토를 버리기를 분토와 다름없이 하며 심지어는 권문세가의 노비조차도 관서의 사람을 평안도 놈이라고 없이 여긴다. 이 굴욕을 어떻게 참을 것인가?
급할 때에는 서토의 힘에 의존하고 과거시험 때에는 관서인의 문장을 빌리면서도 4백년동안 관서인은 한 사람도 보답을 받지 못하였다.
지금 어린 임금을 보라! 권세 있는 간악한 자는 날로 득세하여 김조순, 박종경의 무리가 국권을 농단하고 있다. 하늘도 재앙을 내려 땅에는 겨울 우레, 지진이 없는 해가 없다. 이 때문에 기근이 이어져 굶어죽는 자가 길에 가득 차고 노약자는 도탄에 신음하여 생민은 모두 죽기 직전에 있다......
이에 각 부(府)와 군(郡)에게 격문을 발한다. 지방관은 주저하지 말고 성문을 열어 우리 군대를 맞이하라! 만약 저항하는 자가 있으면 기병 5천으로써 모두 뭉개버릴 것이다. 반드시 명령을 따르라! 』
1811년 12월에 서북인(평안도민)에 대한 지역차별과 안동김씨 일당의 세도정치를 규탄하여 홍경래를 도원수, 김사용을 부원수로 하는 농민군이 평안도 가산에서 혁명의 깃발을 올렸다. 농민군이 북진군, 남진군으로 공격을 개시하자 평안도 각지에서는 이에 호응하는 자가 속출하여 삽시간에 청천강 이북의 지역이 농민군의 수중에 떨어졌다. 특히 이 농민투쟁에서는 만상(의주의 무역상인) 및 송상(개성상인)의 상업자본이 이에 참가하여 지엽적인 역할을 한 것은 종래의 농민투쟁에서 보이지 않던 새로운 요소이다. 그러나 농민군은 박천 송림리에서 정부군과 싸워 패한 뒤, 1812년 1월부터 정주성에서 농성하면서 완강한 공방전을 전개하였다. 이 4개월간에 걸친 공방전에서 농민군은 여러 차례 정부군의 공격을 분쇄하였지만, 끝내는 화약으로 성벽을 폭파하고 성내에 돌입한 정부군을 막아내지 못하고 패하였다. 홍경래도 여기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이어 1862년 2월에는 경상도 진주에서 농민이 봉기하여 남부 지역 각지에 파급되었다. 당시 경상우도 병마사였던 백낙신은 관리들이 환정, 진정에 의해 중간에서 횡령하였던 부분을 민중에게 전가하여 부담시켰다. 더욱이 사재를 긁어모으기 위해 약탈을 자행하고 있었다. 유계춘, 이계열의 지도아래, 나무병기를 중심으로 한 농민들은 머리띠를 두르고 괭이를 손에 들고서 진주로 진격하여 백낙신을 체포하고 그 재물을 되찾았으며 죄질이 나쁜 악질관리를 처단하였다. 민란은 삽시간에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의 삼남지방에 확산되어 봉건정부를 불안에 떨게 하였다.
무엇보다 평안도 홍경래의 난은 농민과 상인들이 봉건제도를 무너뜨리기 위한 최초의 연합전술이라 할 수 있다. 혁명을 위한 세부적인 연대와 계획들은 미비하였지만 이것 또한 민중들의 몸부림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연합전술의 결합과 농민투쟁의 의식성장이 이씨조선이라는 봉건체제의 해체를 촉진하는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첫댓글 먹고 살기 힘들면 누구나 혁명을 꿈꿉니다.....그것이 하나의 난일지언정.....
고려의 무신정변으로 새로워진 세상은 지배하는 계층이 바뀌었을 뿐....백성들은 더 혈세와 부역에 시달렸다고 하더군요.....
혁명의 당위성이 있어도, 그 혁명으로 바뀌어질 새로운 세상에대한 청사진이 없다면......그저 욕구불만으로 인한 폭력사태로 그칠 정도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