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시낭송 앨범.
그러나 그의 시에 붙인 노래도 네 곡 있다. 김현성과 혜화동 푸른섬, 성바오로딸 수도회가 불러준다. 마지막 트랙에선 시인의 육성도 들을 수 있다.
귀가 - 도종환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지쳐 있었다.
모두들 인사말처럼 바쁘다고 하였고
헤어지기 위한 악수를 더 많이 하며 총총히 돌아서 갔다.
그들은 모두 낯선 거리를 지치도록 헤매거나 볕 안 드는 사무실에서 어두워질 때까지 일을 하였다.
부는 바람 소리와 기다리는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고 지는 노을과 사람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
밤이 깊어서야 어두운 골목길을 혼자 돌아와 돌아오기가 무섭게 지쳐 쓰러지곤 하였다.
모두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라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의 몸에서 조금씩 사람의 냄새가 사라져가는 것을 알면서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터전과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라 믿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쓰지 못한 편지는 끝내 쓰지 못하고 말리라.
오늘 하지 않고 생각 속으로 미루어둔 따뜻한 말 한마디는 결국 생각과 함께 잊혀지고
내일도 우리는 어두운 골목길을 지친 걸음으로 혼자 돌아올 것이다.
믿음과 사랑의 시인선1
"진실로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자만이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다는 심정으로 시를 썼습니다. "
「접시꽃 당신」의 도종환 시인의 베스트 시가집이 나왔다. 첫 시집부터 그동안 출간된 도종환의 시집들 중에서 엄선된 16편의 시를 낭송과 노래로 담았다. 뛰어난 선곡과 쉬어갈 수 있는 노래, 우리의 정서에 잘 맞는 서정적인 배경음악과 자연의 바람소리와 목가적인 피리와 플륫연주는 바쁜 생활 중에 지친 많은 사람들에게 넉넉한 휴식과 맑은 정서를 안겨준다.
음반 사이사이에 실린 노래들은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뜨거운 감동을 선사했던 '이등병의 편지' 작사·작곡자인 김현성과 백창우의 클래식적인 포크음악, 혜화동 푸른섬이 들려주는 정갈한 노래들은 도종환의 서정적이며 인간적인 시의 맛을 한결 더해준다.
96년 대중가요음반을 처음 발매했던 성바오로딸수도회 수녀들이 들려주는 '어떤 편지'는 "진실로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자만이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라는 구절처럼 노래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이 듬뿍 배여있어 모든 사람이 함께 부르는 노래로 손색이 없다.
요즈음 같이 청소년들의 음악으로 집중된 음반시장에서「하나의 과일이 익을 때까지」는 청소년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즐겨 들으며 쉴 수 있는 쉼의 의미가 담겨 있다. 삶에 대한 깊은 애정과 생각으로 가득한 시가집 음반은 복잡한 도시탈출을 꿈꾸는 사람들과 음반샾에 잘 드나들지 않는 20대 이상의 청장년층에게 꼭 권해줄만 하다.
1954년 충북 청주 출생 충북대 대학원 국어교육과 졸업 1984 동인지 <<분단시대>>를 통해 작품활동 시작 시집 : <접시꽃 당신>, <접시꽃 당신2>,<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 등
[감상]
사는 일이 왜 그렇고 바쁘고 정신없는지 모르겠습니다. 누구를 만나든 ‘많이 바쁘시지요’로 시작하는 게 우리들의 인사법이 된 지 오래입니다. 햇볕 한 줌 제대로 들지 않는 사무실에서 밤 늦도록 시달리다가 전철이며 버스에 지친 몸을 기대며 돌아오는 날이면, 늦은 골목길을 지키고 서 있는 희미한 가로등이 왜 그렇게 서글프게 느껴지는 건지요. 이 모든 것이 사는 일이라고, 인간답게 살기 위한 거라고 자위하며 더욱 더 ‘헤어지기 위한 악수‘를 많이 하고, ‘낯선 거리를 지치도록 헤매보지만‘ 그럴수록 우리들 몸에서는 사람냄새가 아닌 외롭고 쓸쓸한 냄새가 배어나곤 했지요. 바쁘다는 핑계로 오늘 못 다한 말은, 오늘 쓰지 못한 편지는 그리고 오늘 못다한 일은 어쩌면 내일도 하지 못할 겁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바쁠지도 모르기 때문이지요. 일상에 쫒겨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소중한 말, 꼭 챙겨야 할 소중한 가치를 무심코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쯤 뒤돌아 볼 일입니다. [양현근]
하나의 과일이 익어갈 때 당신의 사랑도 익어갑니다‥‥‥‥‥‥‥‥‥‥‥‥
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날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접시꽃 당신” 중에서
암 선고를 받은 지 두 달만에 세상을 떠난 아내에 대한 못다 한 사랑과 슬픔의 절절한 심정이 걸러진 시집 「접시꽃 당신」. 86년도 시집 발간 두 달만에 100만부라는 베스트 셀러 신화를 낳은 도종환 시인이 근래에 ‘하나의 과일이 익을 때까지’라는 시낭송 음반을 냈다. 작년 12월 그가 교사로 재직중인 충북의 덕산 중학교를 찾았다. 그는 교사 본관에서 약간 떨어진 강당에서 그가 담임을 맡고 있는 아이들과 다른 반 아이들의 시합을 지켜보고 있었다. 매년 학기를 마칠 때 반 대항 운동시합을 벌이는데 우리가 찾아간 날이 바로 그날이었다.
일단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응원하는 여학생들의 틈바구니에 섰다. 창문으로 비쳐오는 조각햇살을 받으며 아이들의 함성이 공중으로 메아리치고 골인시키려는 아이, 이를 저지하려는 아이의 날랜 몸짓이 순간마다 카메라 셔터의 ‘철컥’소리 같았다. 그는 검은색 파카 차림으로 팔짱을 낀 채 아이들 시합 장면을 동요 없이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가르치는 일은 ‘지켜보는 일’임을 생각했다. 아이들이 소정의 교육과정을 마치고 학교를 떠난 후에도 계속될 지켜보는 일. 스승과 제자로서 한번 맺어진 인연을 풀지 못하고 평생 가슴에서 지켜보는 스승의 마음. 그래서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일까? 그날 시합은 도종환 선생님 반 아이들의 승리로 끝났고, 빵과 음료수를 받고 좋아하는 아이들이 삼삼오오 물러가고 정식으로 얘기를 나누었다.
“이론도 필요하지만 현장체험 학습이 참 중요해요. 수업시간에 배운 사적지를 찾거나,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흙을 반죽하고 구워보며 또 부모님의 직장에서 현장체험을 하고, 꽃을 직접 길러보면서 아이들의 심성이 변하는 걸 봅니다.”
서정성 짙은 시어로 우리를 감동시키는 시인으로서의 도종환보다 반 아이들 얘기를 하는 선생님 도종환이 훨씬 잘 어울려 보였다. 그는 시인 특유의 감수성과 관찰력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질을 읽어내고 개별적인 관심과 사랑을 쏟고 있었다. 그에게서 배어 나오는 아이들에 대한 깊은 애정은 화려한(?) 해직교사 10년이라는 경력을 붙게 했다. 그는 1989년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되어 투옥된 이후에도 교단을 떠나지 않고 전교조 충북지부장을 맡아 줄곧 교육운동에 투신해 왔다. 1998년 해직 10년만에 복직한 첫 부임지가 이곳 덕산 중학교이다.
“대학교 4학년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어요. 다른 문인에 비해 늦게 시작한 셈입니다. 왜 시인이 되었냐고요? 글쎄요, 그냥 어떻게 하다 보니까….”
소탈한 웃음으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대신했다. 시인과 교사를 병행했던 그는 좋지 않은 여건 때문에 교단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다른 동료들을 보며 교육현실에 대한 아픔을 감싸안기로 했다. 그라고 해서 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그런 마음을 도리질하고 ‘바위 위에 떨어진 소나무 씨앗’에 비유한 10년 해직 세월의 힘겨움을 견디어 낼 수 있었던 것은 투옥되기 전에 그를 인도한 신앙의 힘이었다.대학생 시절부터 실존주의 철학에 심취해 온 그가 신앙을 갖게 된 것은 암 선고를 받고 병원에 입원중이던 아내를 간호하던 무렵이다. 그날도 퇴근 후 병원에 와서 병실 문을 여는 순간 할머니 몇 분이 침대를 둘러싸고 거친 두 손을 모은 채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순간 그는 아찔해졌다. ‘나는 고통 중에 있는 누군가를 위해 저렇게 절실하게 무릎을 꿇어 본 적이 있는가? 기도하는 심정으로 시를 써 본 적이 있는가?’ 고통스런 현실을 대변하고 소위 민중을 위한 문학을 한다고 자처했던 자신에 대한 비추임을 받곤 고개가 수그러졌다. 오래지 않아 그는 ‘진길 아우구스티노’라는 세례명으로 새로 났다.
투옥중에 신앙은 유일한 힘이 되어주었고 그는 하느님의 섭리를 떠올리려 했다. 비록 암담한 현실이지만 고통의 시련 한가운데를 지나노라면 자신과 다른 사람을 위해 마련된 하느님의 어떤 계획, 예비된 의도가 있으리라. 하느님은 어떤 처지에서도 결코 나를 버리지 않으며 함께 계실 것이라 믿고 처절하게 기도했다.
지금도 생생한 투옥 시절의 기억 하나.
당시 갓 유치원에 들어간 큰아이에게 편지 한 통을 받았다. 글씨를 배운 지 얼마 안 되어 삐뚤삐뚤 쓴 편지를 받고 그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감옥의 벽을 넘어 세상에서 처음으로 자식에게 받아 본 편지. 그 가녀린 햇살은 “내가 늘 너와 함께 있겠다”는 하느님의 강한 사랑의 사인이었다. 몇 줄 안 되는 편지를 읽고 또 읽으며 엄마 없는 아이에 대한 부정(父情)이 솟구쳤다고 한다. 그래서 수감중의 암담함과 힘겨움을 기어코 견뎌낼 것을 다짐하면서 자신을 대신해 하느님이 아이를 지켜주시리라는 믿음으로 고통과 걱정과 염려를 하느님께 맡겨드릴 수 있었다.
‘가르치는 일은 또 하나의 시를 써내려 가는 일’, 아이들의 가슴에 심어진 가능성의 씨앗이 자라 열매를 맺어 익어갈 때까지 그는 스승으로서 거듭나고 새로워지기 위해 고민하리라. 아이들을 바르게 가르쳐야 할 책무를 한순간도 늦추지 않고 고삐를 당기리라. 먼 훗날 하나의 과일로 무르익어 그의 사랑 또한 무르익을 그날까지...
- 「듣봄」제49호 -
하나의 과일이 익을 때까지 (도종환 시가집 음반) 김현성(음악감독)
어느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시를 읽는 일은 도를 닦는 일과 같다고 하셨다. 그 말씀처럼 진정 시를 읽는 일은 마음의 샘을 맑게 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요즈음 같이 다양한 볼거리, 즐길거리가 많은 때에도 한 권의 시집을 읽는 것은 분명 몸에 좋은 일이다. 컴퓨터를 통한 놀이가 날로 발전하여 마치 사람과 대화를 하듯 게임을 즐기는 청소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시가 차지하고 있는 자리는 날로 좁아질 수 밖에 없으리라. 그래도 천천히 시 한 편을 읽다보면, 어느 놀이에서 느낄 수 없는 마음의 양식을 거두게 된다.
좋은 시 한 편은 여느 소설 한 권 못지 않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더욱이 도종환 시인의 시집이라면 의심 할 여지가 없다. 도종환 시가집 <하나의 과일이 익을 때까지>는 그동안 출간 된 도종환 시인의 시집들을 망라하여 그 중에서 낭송으로 적합한 작품들을 담았다. 음반의 제작자인 성바오로딸수도회의 수녀님들이 고르고 고른 작품들이다. 모두 12편의 낭송과 4곡의 시노래가 실려 있다. 낭송은 평소 도종환시인의 시를 즐겨 낭송해오던 이들의 음성으로 담겨 있다.
‘바람 한 줄기에도 살이 떨리는 / 이 하늘 아래 오직 나 혼자뿐이라고 / 내가 이 세상에 나왔을 때 / 나는 생각했습니다’(꽃다지) 로 시작되는 따뜻한 김경진의 목소리는 이 겨울을 더욱 따뜻하게 할 것이다. 그는 일산 백마역 부근에서 카페 ‘2시의 데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DJ겸 인테리어건축가로 명성이 자자하다. 물론 도종환의 시를 멋지게 낭송하는 것으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음반 후반부의 6 편은 CBS-FM에서 아나운서로 활동하고 있는 김용신의 음성으로 실려 있다. 특히 15 번 트랙에 실려 있는 ‘당신은 누구 십니까’는 ‘미사를 위한 아다지오’를 배경음악으로, 과거 낭송으로 히트를 기록했던 박인희의 ‘목마와 숙녀’의 감동을 재현하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낭송 사이사이에 쉬어가는 노래가 4 곡 담겨 있다. 나와 함께 오랫동안 활동을 같이 해온 포크그룹’혜화동푸른섬’의 하모니가 그것이다. 풀륫연주로 시작되는 백창우작곡의 ‘들길’과 클래식기타와 어코디언 간주가 돋보이는 ‘돌아가는 꽃’(김현성곡), 클라리넷의 아련함이 다시 듣고 싶게 하는 ‘담 밑에 채송화’(김현성곡)는 음반 <하나의 과일이 익을 때까지>를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
낭송에 사용된 전체음악은 성바오로딸수도회가 보유하고 있는 라이센스음원에서 모두 발췌하였다. 그동안 성바오로딸수도회 소속의 음반사업부는 미디어를 통해 문화선교활동을 펼쳐왔다. 96년 수녀님들로서는 처음으로 맑은 문화가꾸기의 일환으로 직접 노래한<사랑의 이삭줍기> 라는 포크음반을 냈던 적이 있다. 그 음반은 알음알음으로 사이에 3만장을 훌쩍 넘기게 판매되었다. 내년에 두 번째 <사랑의 이삭줍기>를 준비하고 있다.
성바오로딸수도회가 굳이 도종환 시가집을 발매한 까닭도 시를 통한 맑은 문화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비롯되었다. 종교인들의 우려를 넘어 이미 우리 사회는 문화의 오염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최근 가수 B양 비디오건을 비롯하여 많은 현상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한술 더 떠서 스포츠신문들은 제철을 만난듯이 연일 그 사건을 톱기사로 1 면에 실었다. 사건에 무심했던,모르던 사람들의 관심까지 친절하게 불러 모으게 만들었다.
과연 이 사회의 맑은 물은 어디에서 흘러오는 것일까. 하나의 과일이 익을 때까지 한 사람의 온전한 성인이 될 때까지 우리 모두가 따뜻한 시선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도종환 시가집<하나의 과일이 익을 때까지>는 바로 맑은 물을 콸콸 샘솟게 하는 음반이다. 외로운 마음을, 슬픈 마음을 진정시키는 목소리이다. 그동안 마음과 몸이 지친 사람들에게 쉬어가게 하는 작은 그늘이다. 음반 말미에 도종환의 음성으로 실린 ‘귀가’는 그런 그늘이고자 하는 시인의 손길이 지친 사람의 어께를 다독여주고 있다.
* 도종환 시가집 음반 <하나의 과일이 익을 때까지>는 바오로딸서점, 성바오로서점, 가톨릭서점에서만 구입할 수있습니다. (전화 9940-9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