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 형무소
몇 달 전,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정말 좋은 과제를 내주셨다. 아마 다들 좋아할만한 과제인 것 같다. 바로,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함께 역사탐방을 다녀오는 것이다. 나는 역사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함께 역사탐방에 가는 것은 좋아한다. 여기서! 역사탐방은 인간 사회가 거쳐 온 모습에 대한 기록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선생님의 과제 말씀을 듣고, 우리는 바로 어디에 가야지 많이 배우고 재미있는 체험과 경험을 할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때! 우리는 서대문형무소가 생각났다. 왜냐하면 서대문형무소에서 일어난 일들은 최근의 일들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렇기에 조금 더 이해가 잘 되고 흥미를 가지면서 마음에 와닿지 않을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그 시대의 고문이나 감옥, 의식주들을 조금 체험할 수 있어, 재미있다고 해서 한 번 가보고 싶었다.
서대문형무소는 1908년에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으로 개소되었다. 4년 뒤인 1912년에는 서대문감옥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1923년 5월 5일에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름, 서대문형무소로 또 바뀌었다. 1945년 8월 15일인 광복절 후, 1988년 11월 5일에 서대문형무소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개관하게 된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는 총 15개의 구역이 있는데, 우리는 전시관, 지하감옥, 중앙사, 옥사, 격벽장, 사형장 등을 다녀왔다.
먼저, 전시관에 갔는데 우리의 생각대로 서대문형무소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역사, 물건 등이 많이 전시되어있었다. 아직은 아주 정확한 내용은 모르겠지만 한 번 더 가면 아주 정확하게 알고 올 것 같다. 서대문형무소 이름의 역사, 많은 사람들의 희생 등이 적혀있었는데, 어떤 희생을 했는지 글만 봐도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우리나라를 끝까지 지켰다고한다. 민주화운동을 하신 분들,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은 정말정말 대단하신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어떤 고문들이 있을까? 어떤 고문을 당하셨는지 지하감옥 즉, 지하고문실에 가보았다. 대표적인 고문들은 물고문, 손톱 찌르기 고문, 인두 고문, 주리틀기 고문 등이 있다고한다. 서대문형무소에 가기 바로 전날에 TV프로그램에서 서대문형무소에 다녀온 것을 봤을 때 애국심이 정말 대단한 사람들인데 고문을 당하면서 얼마나 아팠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이 고문들을 당한 사람들을 다시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고문들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하자면, 물고문은 강제로 수조에 머리를 집어넣거나 코나 입에 물을 마구들이 부어 호흡을 곤란하게 했다고 한다. 손톱 찌르기 고문은 가늘고 날카로운 꼬챙이를 손톱 밑으로 찔러 고통을 주었던 고문 방법이라고 한다. 심할 경우, 손톱뿐만 아니라 입 속까지 마구 찔러 고통을 주고 기절을 하는 독립운동가들도 있었다고 한다. 다음, 상자고문은 상자 안쪽에 날카로운 못을 박아 놓고, 사람을 상자 안에 집어넣고 마구 흔들며 못에 찔리게 하며 고통을 주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벽관고문은 옴짝달싹할 수도 없이 좁은 공간에 사람을 감금하여 앉을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고통을 주었던 고문도구라고 한다. 벽에 서있는 관이라 하여 벽관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벽관고문은 벽관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체험이 있었는데 나는 무서워서 못 들어갔다. 친구들말로는 우리들에게는 아직 안 좁은데 어른들에게는 정말 좁았을 것이라고 한다. 내가 왜 체험을 안 했는지 정말 후회가 밀려온다. 와.. 정말 상상만해도 끔찍하고 징그러운 고문 방법인 것 같다. 이러한 고문들로 인해 독립운동가들께서 일제에 의해 많은 슬픔을 겪은 곳은 서대문형무소라는 것을 더욱 더 깊이 알게 되었다. 또한, 일제는 한국민의 정항의식을 억누르고 독립운동 세력을 말살하기 위해 독립운동가를 취조하면서 고문과 구타를 서슴없이 자행하였다고 하니..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다음 중앙사를 간 뒤 옥사에 갔다. 옥사는 독립운동가들께서 갇혀있었던 감옥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 같다. 독방은 겨우 누울만한 공간이였고 나라면 무서워서 죽을정도로 깜깜했다. 옥사 문 앞에 흥미로운 것이 있었는데, 패통이였다. 패통 옆에 설명을 읽어보니 감방 문 옆 ‘패통’은 감방 안 위급한 상황을 간수에게 알리기 위한 도구라고 한다. 안에서 동그란 것을 눌러보니 밖에서 봤을 때, 긴 막대기처럼 생긴 패통이 나와있었다. 어쩌면 지금보다 더 똑똑한 시대였던 것 같다. 이때, 의식주는 무엇이였을까? 먼저, 복장을 살펴보자면 수인복이였다. 미결수는 형 확정 이전의 대기자로 청색의 수인복을 입었고, 형을 확정 받은 기결수는 적색의 수인복을 입었으며, 병자는 흰색의 수인복을 입었다. 수인복은 계절별로 별도의 구분은 없었지만 겨울철에는 솜을 넣어 입기도 했다고 한다. 다음, 생활공간은 감방이다. 주로 감방과 공장에서 지냈다고 한다. 수감자는 대부분의 시간이 노역이였고, 하루 30분의 운동시간이 주어졌다고 한다. 이때, 운동은 격벽장에서 한 것 같다. 서신은 한 달에 한번 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고 한다. 얼마나 답답했을까.. 내 마음이 답답하다. 감방은 정말 작고 가장 넓은 것은 13제곱미터였다고 한다. 감방의 내부에는 별도의 화장실이 없었고 채광과 통풍이 잘 되지 않아 매우 비위생적이고 열악하였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식사는, 틀밥이였다. 가다 밥이라고도 불렸다. 대부분의 수감자는 정해진 규정 이하로 배급되어 늘 배고픔을 견뎌야만했다고 한다. 나만 배고픔을 못 견디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사람이라면 배고픔은 정말 못 견딜텐데 정말 지긋지긋하고 힘들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격벽장에 다녀왔는데 미로같이 생긴 곳이였다. 야외에 있는 곳인데 그 날 정말 추워서 격벽장에 관한 설명표지판이 얼음에 얼어있어서 읽지 못하였다. 그래서 사실 무엇을 하는 곳인지 잘 모르겠다. 겨울엔 가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추위 때문에 야외에 있는 설명표지판은 다 읽지 못하였다. 너무 궁금해서 찾아보니 운동을 하는 곳이였다고 한다. 나는 운동을 지금처럼 운동장에서 할 줄 알았는데 미로처럼 칸으로 대부분이 막혀있는 곳에서 한다고 하니 조금 놀랬다. 굳이 5분의 4를 안 막아도 되지않았을까? 격벽장을 만든 사람에게 묻고싶다.
이렇게 짧은 시간이였지만 조금은 의미있는 역사탐방이였던 것 같다. 역시 역사는 이해하기 조금 어렵고, 힘든 과목인 것 같다. 한 번으로는 아주 정확하게 알지는 못 하는 것 같고, 두세번 정도 가면 정확하게 술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서대문형무소는 한 번 가보았기에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낸 것 같지는 않지만 이것 하나는 알고 넘어가야할 것 같다. 역사를 통해 우리나라의 옛 슬픔과 행복을 함께 겪어볼 수 있다. 똑같이는 아니여도 한번씩 역사탐방을 가보면 비슷한 느낌이 들 것 같다.
첫댓글 겨울에 가면 엄청추워요!! 저는 가을에 한번 날씨가 선선할때 같는데 넘 추웠어요!!
그때 엄청 추웠는데 재미있었어요~
벽관 고문,저에게는 좁지 않았지만 그 당시의 독립운동가들껜 대단한 고문이였을 것 같아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