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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신명기 34:1-8
"1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 산에 올라가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 산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2 또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과 서해까지의 유다 온 땅과 3 네겝과 종려나무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 평지를 소알까지 보이시고 4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 5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6 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 7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8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평지에서 모세를 위하여 애곡하는 기간이 끝나도록 모세를 위하여 삼십 일을 애곡하니라"
내용분해 : A. 모세가 느보산에 올라 여호와께서 친히 보여 주신 가나안 땅 전역을 다 바라봄(1-4절)
1. 모세가 여호와의 명령대로 임종을 맞기 위해 느보산에 오름 (1a절)
2. 여호와께서 약속의 땅 가나안 전역을 모세에게 보여 주심 (1b-3절)
3. 모세에게 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바라보기는 하여도 들어가지는 못할 것이라 재차 말씀하심 (4절)
B. 모세가 일백이십세를 일기로 모압 땅에서 죽음 (5-7절)
1.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음 (5절)
2. 모세가 벧브올 맞은편 골짜기에 장사되었으나 그 묘를 아는 자가 없음 (6절)
3. 모세의 죽을 때의 나이가 일백이십 세나, 죽는 순간까지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함 (7절)
C.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평지에서 모세를 위해 삼십일 간을 애곡합 (8절)
오늘도 행복한 주일 아침입니다. 새 날을 허락해 주시고 새 아침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여전히 우리 가운데 계시며, 우리의 예배를 기뻐 받으시는 하나님이신줄 믿습니다. 이제 우리 다 같이,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리도록 합시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아멘, 아멘!!!
오늘 아침 하나님이 우리엑 주신 말씀은 신명기 34:1-8절 말씀으로 모세의 가나안 조망 및 죽음에 대한 말씀입니다. 본단락에서 부터시작하는 제 34장의 두 단락은 느보산 (Mount Nebo) 정상에서의 모세의 가나안 조망과 죽음, 그리고 이에 이어진 여호수아의 지도권 계승 및 모세에 대한 짧은 추모사 (追暴蘇) 를 연이어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모세의 사망 사건 자체 및 모세 사후의 지도자 계승 및 추모사 등을 보도한 제 34장의 일련 기사는 먼저 보다 더 넓은 제 31-34장 사이의 모세 사망 관련 기사 전체의 문맥에서 파악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 등에는 애굽으로부터의 영광의 탈출과 이스라엘이 선민으로 본격 태동되는 간접적 계기가 되었던 시내산 언약 체결, 그리고 그 이후의 40년 간의 광야 여정으로 점철된 출애굽 시대라는 격동기에, 그야말로 온몸을 던져 이스라엘 민족을 영도하였던 하나님의 종 모세의 사망이라는 중대한 사건에 대한 기사가 별다른 수사의 말이나 전, 후 상황에 대한 자세한 기록없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간략히 약술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그야말로 너무나 담담하여 오히려 더욱 장중할 정도로 간결 명료하게 기록되어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짧은 총 열두 절의 두 문단의 말씀은 묵상하면 할수록 더욱 깊은 진리의 빛을 찬연히 뿜어 내고 있기도 합니다.
본문에 기록된 모세의 죽음의 특징은 네 가지로 축약될 수 있는데, 먼저 모세의 죽음은 한 자연인으로서의 개인적 회한이나 개인적 인간 관계 등은 전혀 고려 내지 언급되지 않은 공적 죽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즉 본문 말씀은 한 시대의 지도자요, 하나님의 종 (the Leader of the Time and Servant of God) 으로서의 죽음의 측면만 강조되고 있습니다. 두번째로 모세의 죽음은 신비적 죽음이었습니다. 모세는 느보산상에 올라 하나님 앞에서 홀로 죽음을 맞고, 그의 주검마저 하나님이 가리심으로 인하여 그의 무덤을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하나님 앞에서의 신비한 생의 마침이었습니다. 특히 모세는 그 옛날 호렙산에서 불붙은 떨기나무에 강림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오직 혼자서 소명을 받았었습니다(출 3:1 -22). 그런데 이제는 느보산상에서 하나님 앞에 홀로 서서 생을 마감함으로써, 하나님의 종의 소명은 전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혼자 받는다는 사실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울러 궁극적으로는 이 땅에서는 모든 인간이 결국은 하나님 앞에 제각각 흘로이 선 단독자 (單獨者) 라는 엄숙한 사실을 극명히 상징하고 있습니다.
세번째로 그의 죽음은 성취적, 완성적 죽음이었습니다. 보통 인간은 늙고 병들어 기력이 다하여 죽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이 땅에 미련을 두고, 죽음 앞에서 후회하며 주저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늙어 쇠약해서 죽은 것이 아니며, 그의 기력은 하나님의 은혜로, 죽는 그 순간까지 왕성하였습니다. 그리고 역으로 그는 강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그의 시대, 그의 사명이 다 완수됨으로 인하여, 이제 새시대의 도래 앞에서, 옛시대의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모든 사명을 마쳤기에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아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그의 죽음은 모든 임무와 책임을 벗고 영원한 휴식과 복락에 들어가는 그야말로 성취적, 완성적 죽음이었습니다. 애굽의 압제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해방시켜, 가나안으로 인도한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자 모세의 이같은 완성적 죽음의 측면은, 온 세상의 선민을 모든 죄악에서 해방시켜 약속된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해 주시는, 온 세상의 해방자이신 우리 주 예수의 ‘다 이루시고’ 죽으신 완성적 죽음(요 19:30)과 일맥 상통하고 있는 것입니다.
끝으로 모세의 죽음은 소망적 죽음이었습니다. 그는 느보산상에서 비록 자신은 들어갈 수 없었지만, 바로 그 땅을 싸워 차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신이 40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였던 약속의 땅 가나안(Canaan, the Promised Land) 의 전경을 이적적으로 다 바라보고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즉 그는 자신의 백성들이 그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정착하여 누릴 행복과 번영을 꿈꾸는 중에 기쁘게 생을 마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같은 사실은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저 하늘의 영원한 약속의 땅, 천국을 꿈꾸며 소망 중에 죽을 수 있는 현실에 도달하기까지 필연적으로 거쳐야 했던, 역사적 과정의 하나였던 동시에, 결정적 예표로서 그 본질이 동일한 것입니다.
한편 120년 간의 파란만장했던 삶과 그 생애의 역정을 통한 모세의 신앙 인격의 성숙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우리 성도 각자의 성화(聖化, the Sanctification) 의 삶의 한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잘 알다시피 그는 학대받는 히브리 노예의 아들로 태어나 유아 학살의 위기에 노출되었다가, 갑자기 급반전하여 바로의 공주의 양자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다 장성한 40세에 다시 인생이 굴절되어 급기야 살인, 도주자로 전락하였습니다. 그후 그는 미디안 광야에서 사십년 간을, 평범한 가장이요, 성실한 목자로서 은둔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다 그의 인생이 이제 노년에 접어든 80에 이르러셔야 비로소, 민족 해방과 가나안 인도자로서의 막중한 소명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종이요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서의 그의 모습도 결코 처음부터 남보다 우월하거나 완전한 자가 아니었습니다. 40년 간의 지도자 생활 동안 수차례 우유부단하였으며, 때로 당황하였고, 때로 원망과 자조에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40년의 이스라엘 지도자 생활 동안 그는 자신의 신앙 인격 자체를 성숙시켜, 마침내 불굴의 하나님의 종이요, 이스라엘 나아가 인류 역사 전체를 조망 (跳望) 하며 택한 백성들의 장구한 역사에 대한 원대한 비전까지 갖게 되는 경지에 이른 것입니다. 따라서 모세의 삶은 본래부터 뛰어난, 또는 남보다 큰 업적을 남긴 한 영웅의 삶의 실례로서가 아니라, 도리어 평범한 우리 각자 모두가 그 누구나 하나님 안에서 그 얼마나 원대하고 심오한 경지의 삶을 살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산 증거로서, 우리 앞에 우뚝 서 있는 것입니다.
전반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애굽 탈출과 40년 간의 광야 생활 여정 및 이를 영도한 모세의 행적은 우리 성도 각자가 이 세상의 죄의 억압에서 풀려나, 천국의 축복에 이르는 과정과 이 전 과정 가운데, 우리를 이끄시는 그리스도 예수의 구약적 예표(據標)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인간 모세의 영도로 시나이 사막을 지나 이 지상의 약속의 땅 가나안에 이르렀으나, 그곳에서 영원 무궁한 구원의 축복을 즉각적으로 영구히 얻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다만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전성도의 영원한 천국 구원의 온전한 실현을 위한 구약 시대 구속사(救購史)의 전개를 위한 과정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모세도 그나마 그 자신은 가나안 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느보산 위에서 그 생을 마쳐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새 지도자 예수님은 그 자신이 먼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사, 하늘에 오르사 천국을 예비하셨으며, 우리를 영원히 그 천국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구속사의 전개에 의한 신약 시대의 축복의 우월성을 새삼 재발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마11:13 ; 13:17). 그리고 동시에 과거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시대는 물론, 그 이후 우리 구주 예수그리 스도의 초림 때에 이르기까지 겪었던 숱한 역사적 과오들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즉 모세의 죽음에 즈음하여 모세 시대 전반과 우리의 시대 사이의 역사적 연속성 내지 일관성은 물론, 그 진정한 교훈까지를 새삼 재발견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실로 모세는 위대한 삶을 살다 간 구약의 거목 (巨木)이었습니다. 그는 구약에서 가장 큰 인물로서, 그 자신과 그의 행적 전반은 앞서 밝힌 대로 신약 예수님과 그분의 구원 사역의 가장 큰 예표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그는 성경에서 최초로 하나님의 일을 직접 대행한 자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대변하여 아시던 자로서 “그후에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다" (신34:10)는 성경의 증거와 같이, 하나님의 택한 특별한 종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 태동의 결정적 기점이 된 시내산 선민 언약 체결의 중보자였으며,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자, 건국자, 출애굽 시대의 영도자였던 것입니다. 또한 한글 개역 성경상으로 1754 페이지에 달하는 신·구약 성경 중 대략 6분의1인 모세 오경 총 319페이지가 그에 의하여 직·간접적으로 집필되었고, 특히 출애굽기에서 신명기까지 성경 전체 분량의 15% 에 이르는 모든 사건과 말씀은 모두 다 직·간접적으로 그와 관련하여 발생하고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이같은 모세도 인생을 마무리하고 이제 세상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모든 인간은 이 세상을 떠나는 것입니다. 문제는 어디를 향하여 어떻게 살다가, 또다시 어디를 향하여 어떻게 죽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제 한 시대의 획을 긋는 모세의 죽음을 목격하며, 나 자신의 죽음을 예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끝으로 짧은 몇 마디 말 속에 모세에 대한 진정한 존경과 추모의 념을 담은 여호수아의 추모사(34:10-12)를 대하면서, 한번 고요히 자문 (自問)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의 사후에 세상 사람들은 진정 나를 어떻게 평할 것인가?를 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34장은 본서 전체와 모세 오경 전체를 결론짓는 부분입니다. 이러한 본장에서는 출애굽 지도자 모세가 죽고 여호수아가 그의 지도권을 계승한 사실을 보여 줌으로써 출애굽 시대가 종결되고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되었음을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그중 본문은 이러한 본장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이스라엘의 출애굽 지도자요,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었던 모세의 죽음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32:48-52)대로 느보산에 올라 약속의 땅을 바라본 뒤, 그곳에서 죽어 장사됨으로써, 120년간의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한 것입니다. 그럼 모세의 죽음을 기록하고 있는 본문이 주는 영적 교훈은 무엇일까요? 그건 바로 "인생이 가는 궁극적인 길은 모두에게 동일하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5,6절은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어 모압 땅에 장사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 뿐 아니라, 인류의 역사에서 큰 발자국을 남긴 위대한 모세였지만, 그도 역시 죽음을 피해 가지는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인생의 길이기에, 앞서 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 또한 이 길을 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죽도록 정해 두셨으므로, 남녀나 빈부 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은 이 운명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한번 죽은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히 9:27). 물론 죽음이 처음부터 인간에게 정해진 운명은 아니었습니다. 인간은 본래 영생할 수 있는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범죄로 말미암아 범죄한 자에게 정해진 죽음을 짊어지게 된 것입니다 (창2:17;3:19).
그렇습니다. 죽음은 우리가 피하려고 애쓴다 하여,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은 피한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죽음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그것을 준비하는 것 뿐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죽음을 무서워합니다. 그들이 죽음을 피하려고 하는 까닭은,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왜 죽음이 두렵게 느껴질까요? 죽음의 실체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그래서 죽음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며 준비를 잘하는 사람들은 기쁨으로 그것을 맞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죽음을 맞을 준비를 잘 하는 것입니가? 그것은 우리가 매일 매순간 하나님의 뜻을 살피면서 경건하고 거룩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산다면 죽음은 더이상 두려운 존재가 되지 않습니다. 죽음 앞에서 주님처럼 “다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도록 (요 19:30) 후회 없는 삶을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
죽음을 전혀 대비치 않고 삶을 사는 사람들은 그날에 당황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평생을 연락에 빠져 지내던 어리석은 부자처럼 혼란스럽게 되고 회한과 절망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눅16:19-31). 반대로 지혜로운 다섯 처녀처럼 준비를 잘한 사람들에게는 그날이 도리어 기쁨의 날이 됩니다. 삶의 모든 수고가 끝나고 기쁨의 잔치에 참예할 시간이 되었으니, 죽는 날이 기쁨의 날이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죽음을 맞게 될까요? 이것을 미리 생각하고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누구에게도 시간이 충분하지는 못합니다. 수명을 주관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시기에, 우리 모두는 현재 주어진 시간을 충분히 활용해야 합니다. 내일을 기약하는 것조차 인간인 우리에게는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내일은 올 수도 있지만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힘써서 준비해야 내일을 후회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함께 기도드리시겠습니다.
<참고 문헌>
"손에 잡히는 구약개론" IVP
"성경개관 구약편" 부흥과개혁사
"ESV스터디바이블" 부흥과개혁사
"위드바이블" 바이블넷
"옥스퍼드 원어 성경대전" 제자원 바이블네트
"구약개론"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구약총론" 생명의말씀사
"두란노How주석시리즈" 두란노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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