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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24일 오늘의 역사
2022년 제주도 22일부터 3일간 한라산 사제비 98.3㎝, 삼각봉 84.9㎝, 어리목 63.8㎝, 적설
전라북도에고 60cm가 넘는 폭설
2022년 미국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지역이 있는가 하면 뉴욕 버팔로 지역에선 89cm의 눈이 내려 자동차 운행마저 금지
2021년 내란 선동죄로 징역 9년이 확정돼 수감 중인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가석방
2021년 박근혜 전대통령 수감 4년9개월 만에 사면 결정
2020년 윤석열 검찰총장 2개월 정직 효력정지 결정
"주문, 대통령이 신청인에 대하여 한 정직 처분의 효력을 정지한다"
서울행정법원 제12부(홍순욱 부장판사)가 24일 윤석열 검찰총장의 정직 2개월 집행정지를 인용하며 이같이 밝혔다.
지난 16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제청으로 윤 총장의 징계를 재가한 문재인 대통령의 결정을 8일만에 뒤집은 것이다.
추미애 법무장관은 2020년 1월 취임 이후 1년간 ‘윤석열 검찰총장 찍어내기’에 몰두했다. 네 차례 인사 학살, 세 차례 지휘권 발동, 총장 직무 정지 명령, ‘2개월 정직 중징계’가 이어졌다. ‘검찰 개혁’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월성 원전 사건’ 등 정권 수사를 막기 위한 것이란 비판이 확산됐다. 이는 고검장에서 일선 평검사 전원이 비판 성명을 발표하는 사상 초유의 ‘검란(檢亂)’으로 이어졌다. 서울행정법원이 윤 총장 직무 정지에 이어 ‘2개월 정직’도 효력 정지 결정을 내림으로써 ‘윤석열 사태’는 정권에 상처만 남겼다
2019년 원자력안전위원회 경주 월성원전 1호기(2012년 설계수명 만료) 영구 폐쇄 결정
2019년 봉암사 수좌 적명 스님 입적(80세)
2018년 조규광 초대 헌법재판소장 세상 떠남(92세)
2012년 여의도 솔로대첩, 한 청년이 페이스북에 올린 짧은 글이 발단
2009년 이라크 전역에서 ‘아슈라’(마호메트의 손자 이맘 후세인의 전사를 기리는 시아파 기념일) 앞두고 폭탄테러 잇달아 최소 26명 목숨 잃음
2008년 국내 최초 이지스함 '세종대왕함' 전력화
2003년 ‘실미도’(감독 강우석) 개봉, 개봉 58일 만에 처음으로 1000만 관객 돌파
2002년 제주도 내국인면세점 개장
2002년 12월 24일부터 제주도에서 3개의 내국인용 면세점이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내국인 면세점에서는 170여개 브랜드 4000여종의 면세품이 시중가보다 20~50% 저렴하게 판매된다. 내국인 면세점은 제주공항 국내선 여객청사 2층 대합실과 제주항 연안 여객터미널, 국제 및 국내여객터미널에 설치됐다.
일반 공항면세점처럼 탑승 전에 물건을 구입할 수 있으며, 19세 이상으로 제주도 밖으로 떠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비행기·선박 탑승권을 제시해야 한다. 면세물품 구입한도는 1회 35만원 이하, 연간 4회까지 이용할 수 있다. 주류는 12만원 한도 내에서 1병, 담배는 10갑 이내에 한해 구입이 가능하다
2002년 친척초청받은 40세이상 해외동포 최장 2년간 서비스업에 취업허용
2000년 시인 서정주 타계
‘국화 옆에서’ ‘자화상’ 등 국민적 애송시와 함께 20세기 한국 시문학을 대표해온 미당 서정주 시인이 2000년 12월 24일 노환과 폐렴 증세가 악화돼 별세했다. 향년 85세였다.
‘한국시와 동의어’ 였던 미당은 20세기 우리 문학의 깊은 골짜기와 높은 봉우리를 자신의 시학 속에 가두고, 다시 미래와 세계 무대로 뻗어나가게 한 ‘큰 시인’ 이었다. 칠십년 가까이 시를 써온 그는 문학 안팎의 영욕을 넘어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한 시인이었으며, 그의 시를 한두 편 외우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벅찬 사랑을 받았다.
미당은 일제하 동인지 ‘시인부락’ 을 주재, 김광균 김동리 등과 같은 문학 세대를 형성했다. 첫 시집 ‘화사집’(1938)은 악마적이며 원색적인 시풍으로 그를 일약 ‘한국의 보들레르’ 라 불리게 했으며, 두번째 시집 ‘귀촉도’(1948)에서는 동양 사상과 민족 정조를 새로운 미학 공간에 돌올하게 세워놓았다.
그는 일제시대 일부 행적, 이승만 정권과의 관계, 1980년대 집권당 협조 등으로 “아부와 굴종” 이라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이 또한 그의 문학을 중심에 놓고 난 후에야 이뤄지는 문학 외적인 비판이 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1997년 미국 IMF 1백억$ 조기 자금지원 발표
1997년 일본의 영화배우 미후네 도시로 별세
전후 일본을 대표하는 배우 미후네 도시로가 24일 도쿄의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향년 77세.
일생동안 1백40여개 작품에 출연했던 미후네는 국제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일본배우였다.
1948년 ‘취한 천사’로 데뷔한 그는 일본을 대표하는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와 콤비를 이뤘으며 1950년엔 ‘라쇼몽’에서의 도적 연기로 베네치아 국제영화제 대상(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요진보(61년)’ ‘붉은 수염(65년)’으로 베네치아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연거푸 거머쥔 뒤 할리우드에도 진출, ‘그랑프리’ ‘레드 선’ 등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1941(80년)’에선 일본군 사령관으로, 미국의 TV시리즈 ‘쇼군’에선 장군으로 출연한 일도 있다.
1994년 프랑스 여객기, 알제리 공항서 납치
1994년 12월 24일 오전 11시15분 알제리 수도 알제의 우아리 부메디엔느 공항에서 무장괴한들이 에어프랑스 소속 여객기를 납치, 승객 4명을 살해하고 1백70여명의 승객과 승무원을 인질로 억류한 사건이 발생했다.
납치범들은 여객기내로 진입하자마자 위협용으로 탑승객 2명을 사살했다. 희생자 중 1명은 사복차림의 알제리 경찰관으로 이들의 행위를 제지하다 총격을 받았다고 풀려난 목격자들이 전했다. 납치범들은 다시 2명의 승객을 추가로 사살했으며 부녀자와 어린이 등 57명을 석방했다.
회교과격단체인 무장회교그룹(GIA) 소속으로 알려진 5명의 범인들은 25일 오전까지 가택연금 상태에 있는 알제리 회교구국전선(FIS) 지도자 2명의 석방을 요구했으나, 알제리 당국이 받아들이지 않자 계속 인질극을 벌이며 알제리 군경과 대치했다. 3일째인 26일 납치범들은 오전3시14분 승객과 승무원 1백72명을 태우고 알제리를 떠나 프랑스 마르세유의 마리냔 공항에 도착했다.
이 여객기 납치 사건은 프랑스 테러진압 특수부대인 GIGN 요원들이 피랍 여객기를 기습, 납치범들을 사살하고 승객들을 구출하면서 끝이 났다.
1993년 갈리 유엔사무총장 북한 핵문제 논의 위해 방북
1991년 김정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추대
북한은 1991년 12월 24일 당6기 19차 전원회의를 열고 김정일을 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했다. 1973년 9월 당5기 17차 비밀 전원회의에서 당비서로 선출, 김일성의 후계자로 지목된 김정일은 1980년 10월 제6차 당대회에서 당중앙위원 정치국 상무위원 비서국비서 당군사위원으로 공식 등장, 권력 전면에 나섰으며 1990년 5월 최고인민회의 9기 1차회의에서 국방위원회(위원장 김일성) 제1부위원장으로 선출됐었다.
북한체제의 가장 강력한 지주조직인 군을 김정일이 장악하게 됐다는 사실은 당-정 전반에서 실질적 권력을 행사한 김정일을 형식상으로도 최고 권좌에 앉히는 작업이 가동되었음을 뜻했다.
이로써 김정일은 노동당정치국 상무위원 겸 비서로 북한 권력의 핵심인 노동당을 장악한 데 이어 군 통수권 마저 김일성으로부터 넘겨받음으로써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하게 됐다.
1990년 알바니아 난민 대규모 탈출 시작
1990년 12월 24일 그리스 경찰이 1백명 이상의 알바니아인 난민들이 국경을 넘어 그리스로 탈출했다고 발표했다. 경제악화로 시작된 알바니아 난민은 이후에도 계속돼 1991년 8월까지 약 4만명의 난민이 주로 아드리아해를 넘어 이탈리아로 탈출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이들 난민들을 강제송환했지만 2만여명의 알바니아인이 이탈리아에 남거나 그리스로 도망했다. 알바니아 난민이 이처럼 대규모로 진행된 이유는 동구권에 불어닥친 민주화열풍이 이 나라만 피해가자 실망한 국민들이 탈출을 감행하게 된 것이다.
1987년 산악인 허영호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
허영호 산악인은 1982년 5월 20일 세계 제5위 봉인 마칼루(8,643m)에 도전하여 한국 최초의 마칼루 등정자가 되었다. 이후 마나슬루를 등정하였다 마나슬루는 김정섭 형제가 1970년대에 3차례나 도전했다가 실패하는 등 17명이 사망한 죽음의 산으로 한국에 널리 알려진 히말라야의 고봉이었다. 1983년 10월 22일 마나슬루(8,163m) 무산소 단독 등정, 1985년 3월 12일 투쿠체 등정, 1986년 1월 12일 타우체 등정, 같은 해 7∼8월 알프스 3대 북벽 등정 등 국내 산악인 중 높이 8,000m 이상의 고봉을 가장 많이 등정한 산악인이 되었다. 특히 1987년 12월 고상돈에 이어 한국인으로서는 2번째, 동계 등정으로는 3번째로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산(8,848m)의 등정에 성공했다.
1983년 폴리사리오 게릴라 한국어선 습격 선원 3명 납치
1983년 해운회사 20개로 통폐합
1983년 방글라데시, 소련 외교관 6명 추방
1982년 프랑스 시인 루이 아라공 사망
1981년 제1한강교 쌍둥이 아치교 준공
1981년 12월 24일 제1한강교 쌍둥이 아치교가 준공, 개통됐다. 제1한강교는 서울에서 남쪽 방면의 노량진으로 통하는 가장 중요한 관문이라 할 수 있었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최초의 인도교로 1917년 10월 629m의 1차선 강철트러스식 교량으로 준공됐다. 당시 한강철교를 만들고 남은 자재를 이용해 폭이 중앙차도 4m, 좌·우측 보도는 각 1m에 불과한 소교였다. 그 후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중지도에서 용산까지 구간이 유실돼 기능을 상실했다가 1929년 9월 폭 18m로 확장해 재개통됐다. 한국전쟁 발발 사흘째인 1950년 6월 27일에는 국군이 후퇴하면서 아치 구간의 일부가 폭파돼 피란 행렬이 차단됐다. 폭파된 다리는 1958년 5월 15일 복구됐다.
이후 1978년 3년 간 171억 원을 들인 확장공사로 교폭이 20m 4차선에서 40m 8차선으로 두 배 넓어졌다. 이날 동작구 본동과 상도동을 잇는 길이 570m의 상도터널도 함께 개통돼 제1한강교와 연결됐다. 이를 통해 용산구 이촌동에서 제1한강교를 지나 봉천, 사당, 신림동 및 장승백이에 이르는 거리가 3.5km에서 1.5km로 단축됐다
제1한강교가 지금의 '한강대교'로 이름이 바뀐 것은 1984년 11월 12일이다. 서울시는 길 이름 짓기의 일환으로 가장 역사가 긴 한강의 상징적인 다리임을 감안해 ‘한강대교’로 바꿨다.
1980년 국민은행, 국내 첫 야간금고제 실시
우리나라의 첫 야간은행인 `야간금고`가 1980년 12월 24일 국민은행에서 문을 열었다. 야간금고는 예금거래자가 영업시간 이후에 현금을 집에 보관하는데 따른 위험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시장 및 점포가 많은 지역에 중점적으로 마련된 것이었다.
국민은행은 이날 정상업무가 끝난 오후 5시부터 본점 영업부, 평화, 청계, 신촌, 영등포, 퇴계로지점 등 6개소의 야간금고를 개설, 밤 10시까지 영업을 했다. 공휴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로 제한했다.
야간에 취급한 예금은 당좌예금, 보통예금, 저축예금, 통지예금 등으로 야간금고 거래자는 은행영업시간 이후에 갖고 있는 현금 및 수표-어음을 입금대에 넣어 야간금고 투입구에 투입하면 컴퓨터에 의해 예치증이 자동발급되며 다음날 영업시간 개시와 동시에 거래자의 예금개정에 입금된다.
국민은행은 서울지역에 야간금고를 개설한 데 이어 부산지점 및 대구대신동지점에도 12월 30일부터 야간금고를 개설했다.
1980년 중국검찰 모택동 전처 강청에 사형 구형
1979년 정승화 조사결과 발표
1977년 페루의 대통령(1968-75) 벨라스코 알바라도 사망
1976년 일본, 후쿠다 내각 출범
1970년 비적성공산국과의 무역개방(무역거래법개정안 국회통과)
1968년 아폴로8호, 첫 우주 TV생방송
1968년 12월 24일 아폴로8호가 처음으로 달의 모습을 TV로 생중계해 지구로 보내왔다. 우주 비행사를 달에 착륙시켰다가 지구로 안전하게 귀환시키는 미국의 계획에 따라 아폴로 8호가 1968년 12월 21일부터 27일까지 달세계에 다녀왔다. 착륙은 하지 않고 달을 1회 주회하면서 F.보먼, J.A.러벨2세 및 W.A. 앤더슨의 세 우주인은 달세계 상공에서 크리스마스를 즐기고 돌아왔다.
미국의 과학자들은 우주선을 달까지 보낼 수 있는 강력한 로켓과 우주여행에 있어서의 비행사들의 안전보장에 대해서 자신을 얻었다. 1969년에 발사될 아폴로11호의 달 착륙지점을 조사하는 것도 그들의 임무중 하나였다.
1967년 중국, 제7차 핵실험(20kt 짜리)
1966년 월남 다낭서 미국수송기 추락 145명 사망
1966년 소련 우주선 루나13호 달표면 연착륙 성공
1965년 공화당 항명파동으로 7의원 징계
1964년 인도, 해일로 5백여명 사망
1963년 뉴욕국제공항, 케네디공항으로 개칭
1963년 쿠바침공 포로 공수 완료
1962년 콩고서 유엔군소속 부대와 카탕가군이 충돌
1961년 KBS-TV 시험방송
1960년 소련-북한 기술원조 및 무역협정 조인
1959년 경제개발 3개년 계획 국회통과
1958년 국가보안법 여당의원 단독으로 통과-국가보안법 파동
이승만 정권은 1958년 들어 진보당사건(1.20)과 KNA여객기납북사건(2.16) 등이 잇달아 터지자 간첩 색출과 반공체제 강화를 명분으로 국가보안법을 대폭 강화하는 개정안을 8월 11일 국회에 제출했다. 그리고 11월 18일에는 이 개정안에 언론규제조항까지 추가 삽입하는 2차 개정안, 즉 '신국가보안법'을 다시 제출했다.
간첩개념 확대, 불고지죄 엄벌, 변호사 접견 금지, 2심제 폐지, 언론보도 규제 등을 골자로 한 보안법은 헌법이 정하는 기본 인권을 침해하는 악법 요소가 많아 논란이 많았다.
민주당 소속 81명, 무소속 10명 등 야당의원 91명은 `보안법개악반대투위`를 구성하고 공청회와 옥외집회를 준비했으나 경찰의 원천봉쇄로 집회자체가 불가능했다. 신문편집인협회도 연일 모임을 갖고 반대성명을 발표했으나 자유당은 요지부동이었다.
자유당은 마침내 12월 19일 오후 3시 국회 법사위에서 자유당 국회의원 만으로 법안을 3분 만에 날치기로 가결시켰다. 야당의원들은 본회의 통과라도 저지하기 위해 본회의장 농성에 돌입했으나 12월 24일 한희석 국회 부의장은 전격적으로 경호권을 발동, 무술경위 3백여명을 국회 본회의장에 투입한 후 자유당 의원만으로 보안법 개정안과 1959년도 예산안을 전격 통과시켰다
1957년 일본 NHK방송국, FM방송 시작
1953년 뉴질랜드 웨오리 부근 철교서 열차탈선사고. 115명 사망
1951년 리비아, 영국-프랑스로부터 독립
1950년 한국전쟁 중 서울시민에 피난령
1949년 경북 문경 산북면 석봉리 석달마을에서 수색정찰중이던 국군이 민간인 86명 학살,
1946년 프랑스 제4공화국 발족
1943년 일본, 징병(徵兵)적령을 1년 인하
1942년 프랑스 비시정권 동조자 장 루이 다를랑 장군 피살
1937년 만화영화사상 처음 전신 크기로 상영된 월트 디즈니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개봉
1934년 시인 김소월 사망
1934년 12월 24일 시인 김소월이 작고했다. 향년 32세였다. 본명이 정식인 소월은 부유한 광산업자의 장손으로 태어났지만 그의 부친이 곧 실성을 하는 바람에 조부에게서 한문학을 배우며 자랐다.
15살 때 오산중학교에 들어가 안서 김억의 영향으로 시를 쓰기 시작, 1920년 `그리워` 등의 시를 `창조`에 발표하며 등단했다. 김억은 그의 스승일 뿐만 아니라 그의 시적 재능의 성장과 좌절을 진정 이해한 사람이었다.
소월은 1925년 첫 시집이자 유일한 시집인 `진달래 꽃`을 통해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배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잠시 고향에서 교편 생활을 하다가 일본의 상대에 진학했다. 틈틈이 `개벽`과 다른 문학지에 몇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그는 고향에서 동아일보 지국을 경영하다가 실패했고, 그 뒤 실의에 빠져 몇년간 술로 방탕한 생활을 보내다 이날 음독자살했다.
1925년 영화 ‘전함 포템킨’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서 개봉
찰리 채플린도 ‘최고의 영화’라고 격찬한 무성 영화 ‘전함 포템킨’이 1925년 12월 24일, ‘1905년 러시아혁명 20주년 기념식’이 열리고 있는 모스크바 볼쇼이극장에서 개봉됐다.
감독은 27세의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영화는 1905년 6월 27일 흑해 북쪽의 오데사항에서 실제로 일어난 포템킨 타브리체스키호 반란을 소재로 했다. 데뷔작 ‘파업’의 성공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에이젠슈타인은 소비에트정부로부터 혁명을 기념하는 영화 ‘1905년’ 제작을 의뢰받았으나, 각본대로 혁명의 전 과정을 담으려면 12월 개봉에 맞출 수 없어 포템킨호 반란 부분만을 영화화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 정신을 고취하려는 ‘선전 영화’로 기획된 이 영화는 에이젠슈타인이 만듦으로 해서 영화사에 길이 남을, 그리고 영화의 스타일에서 혁명적인 전기를 이룬 걸작이 됐다.
이 영화는 이듬해 베를린 공개를 시작으로 세계 각지에서 상영됐지만, 우리나라에서는 1994년에 이르러서야 개봉됐다.
1924년 독일 카메라 `라이카A` 개발
1919년 영국의 인도통치개혁법 성립
1918년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 태어남
1915년 조선광업령 공포
1907년 독립운동가 이승훈, 오산학교 설립
1906년 세계최초로 라디오 방송 성공
페센덴에 의한 최초의 라디오방송 2개월 후, 뉴욕에서 정기적인 라디오방송이 시작됐다.
1906년 12월 24일 미국인 레지널드 페센덴에 의해 라디오방송이 세계최초로 시작됐다.
음악연주와 성탄절 복음낭독 소리를 전파로 바꾼 후 내셔널 전신회사가 전보 송수신용으로 대서양 연안에 세운 1백26m 높이의 안테나를 이용해 전파를 공중으로 쏘았다.
헨델의 `라르고`연주가 처음으로 전파를 탔다.
방송이 끝난 후 8km 떨어진 바다를 항해중이던 배에서 감이 좋다는 반응이 오자 그는 동료들과 함께 환호했다
1897년 손병희, 3대 동학교주가 됨
1891년 구세군 자선냄비 미국에 첫 등장
구세군 자선냄비가 1891년 12월 2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한 거리에서 처음 등장했다. 폭풍우로 파선돼 샌프란시스코의 럭키해안에 정박하고 있는 난파선 생존자들을 위해 한 여사관이 처음으로 자선냄비를 거리에 내다 걸고 이들의 구조를 호소한 것이 시초가 됐다. 모금운동은 좋은 호응을 얻어 난파선 생존자들을 구제할 수 있었다.
그뒤 1895년부터 미국의 30개 구세군 교회에서 냄비를 거리에 걸고 본격적인 모금을 시작했고 이 방법이 전세계에 퍼져 오늘날의 구세군 자선냄비운동으로 발전해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1928년 12월 15일에 시작되어 가장 오래된 불우이웃돕기 운동의 하나로 자리를 잡았다.
1865년 반(反)흑인단체 KKK단 미국에서 결성
1865년 12월 24일 백인우월주의를 주장하는 미국의 극우비밀결사단인 KKK단이 테네시주에서 결성됐다. 창설자는 조지아주 출신의 군인 윌리엄 조세프 시몬즈였다.
KKK단은 쿠 클럭스 클란(Ku Klux Klan)의 줄임말로 ‘원(circle)’을 뜻하는 그리스어 ‘kyklos’와 영어 단어인 ‘clan(집단)’을 합성해서 만든 단어이다. 공화당 급진파가 남북전쟁 이후 흑인을 정계에 진출시킴으로써 백인의 권력을 와해시키려 하자 이들은 KKK단을 조직, 철저한 위계질서를 확립하고, 백인의 지배권을 회복하려 했다.
이들의 활동 목적은 주로 흑인들이 정치활동을 막기 위한 것이었지만 반유태인, 반볼셰비키, 반가톨릭, 반진화론 운동으로까지 활동범위를 넓혀나갔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흰색 천을 두르고 얼굴에는 흰 두건을 쓴 KKK단은 불타는 십자가를 들고 다니면서 흑인에게 위협, 공갈, 협박을 일삼았다. 심지어는 흑인해방을 주장하는 백인에게도 구타와 테러를 일삼았다.
이들의 폭력이 도를 넘어서자 미 정부는 1870년 연방법을 제정하여 KKK단을 해체시켰으나 이들은 은밀히 단체를 유지해 1925년 8월 제1회 전국대회를 열었다.
1854년 일본 안세이난카이(安政南海) 지진·쓰나미로 사상자 8만 발생
1822년 프랑스 수학자 샤를 에르미트 출생
1811년 영국 소설가 윌리엄 새커리 태어남
1598년 임진왜란 종전
1524년 탐험가 바스코다가마 사망
1488년 서거정 사망
1457년 단종, 유배지에서 사약받고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