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구(松坡區)
송파라는 지명은 고려시대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소나무가 많은 언덕이라고 해서 송파(松坡)라 불리웠다.
가락동(可樂洞)
-원래 가락골이라는 마을 이름에서 붙여진 것이다.
-또 일설에는 조선시대에 가락골을 중심으로 5, 6채씩 띄엄띄엄 마을이 있어 자연부락 이름으로 불리어 오다가
을축년(1925년) 대홍수때 한강이 범람하여 송파동 일대가 침수되자, 그 곳 사람들이 이곳으로 이주하여 [가히 살만한 땅] 즉 좋은 땅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
거여동(巨餘洞)
-거암(巨岩)이란 사람이 살았으므로 거암리라 하던 것이 변하여 [김 리], [겜리]라 하였다.
-그후 잔버드리, 개롱리, 뒷말을 병합하여 거여리라 하다가 1963년 1월 1일 서울시에 편입되어 거여동이 되었다.
마천동(馬川洞)
-이 지역에 있는 마산(馬山)의 이름을 따서 마천리라 하였던데서 비롯된다.
-또 하나는 노인들 사이에 전해오는 조선조 임경업 장군이 백마를 얻어타고 마산을 지나다가 백마물이란 곳에서 물을 먹었는데 이 곳은 아무리 가뭄이 와도 물이 계속 나온다고 하여 마천동이라 하였다 한다
문정동(文井洞)
-병자호란때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난 가다가 이곳에서 쉬면서 물을 마셨는데, 그 물맛이 매우 좋아 이 마을에 많이 사는 문씨(文氏)성을 따서 문정이라 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하며,
일설에는 이 마을 지형이 연꽃처럼 생겼다하여 연화동(蓮花洞)이라고도 하였다 한다.
-문정동은 조선시대에는 문씨들이 문중을 형성하고 거주한 곳으로 주로 문씨가 많이 살던 제집마을(기와집 마을)과 김씨.이씨가 많이 살던 큰마을로 이루어져 있었다. 되었다.
방이동(芳荑洞)
-조선조 12대 인조대왕 14년(1636년) 병자호란 당시 대왕께서는 남한산성으로 피난을 가셨고, 청나라 군인들은 이 마을을 거쳐 남한산성으로 진격해 가려고 했다.
그러나 이 마을은 남.서.북이 산으로 둘러 쌓이고 삼태기안 같이 아늑하고 평화로운 마을이였으며, 마을을 지키는 병장(방이군)들이 있었다.
그래서 산을 기여 올라오는 청병들을 산위에서 활을 쏘고 돌을 마구 던져서 청나라 병장들이 못 올라오게 막어서 결국 다른 곳으로 돌아서 남한산성으로 갔다고 한다.
결국 마을의 자체 방이군들이 오랑캐 침범을 막았다. 물론 마을에 피해는 전혀없이 오랑캐들의 침범을 피한것이다.
그래서 그후부터 오랑캐를 막았다고하여 막을 방(防) 오랑캐 이(夷) 자를 써서 방이골 이라고 불리었다.
- 그러다가 1914년경 마을 서당에 한학을 공부하신 학자분들이 모여서 마을 이름이 글자의 뜻이 아름답지 못하다고 의논끝에 고쳐진것이
막을 방(防) 자는 꽃다울 방(芳), 오랑캐 이(夷) 자는 흰비름 이(荑)로 고쳐서 방이골이 되었다.
-그 후 경기도 광주군 중대면 방이리가 되었으며, 1963년 1월 1일 자로 서울시로 편입되면서 성동구 방이동이 되었다.
삼전동(三田洞)
-이 마을에 유일하게 밭이 셋 있었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석촌동(石村洞)
-이곳에 돌이 많으므로 돌이 많은 마을 곧 [돌마리]라고 하던 것이 한자음으로 석촌동(石忖洞)이 되었다.
-현재도 송파동, 삼전동, 방이동, 가락동 일대의 주민들은 석촌동을 [돌마리]라고 흔히 부른다.
-돌이 많은 이유는 병자호란때 조선을 침입한 청군이 이곳에 돌을 옮겨다 진터를 만들었기 때문에 돌이 많게 되었다고 전한다.
송파동(松坡洞)
-송파동의 동명 유래는 세 가지로 추정된다.
1. 문종 즉위 년의 기록을 보면 삼전도보다 연파곤(淵波昆)이 물살이 빠르지 않으니 나루터로 하겠다는 경기관찰사의 요청이 있어, 이때의 연파곤이 [소파곤]으로 변음 되었다가 소파리(疎波里)로 된 것이 차츰 송파진으로 불린 것으로 볼 수 있다.
2. 옛날 한강변에 있던 이 마을의 언덕을 중심으로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차 있어, 소나무언덕 즉, 송파(松坡)라고 칭했다고 한다.
3. 옛날 이곳에 사는 어부가 매일 한강변에 나가 고기잡이를 했는데 하루는 잔잔한 물 위에서 고깃배를 타고 낮잠을 자던 중 이곳의 소나무가 서있었던 언덕 한쪽이 패어 떨어지는 바람에 잠이 깨고 난 뒤로 이곳을 송파라고 불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신천동(新川洞)
-북단에 흐르는 신천(新川)에서 전래된다. 즉, 한강의 작은 줄기가 뚝섬쪽으로 흘러감으로 한자명으로 신천이라 한데서 붙여졌다.
오금동(梧琴洞)
-이곳에 오동나무가 많았고, 가야금 만드는 사람이 살았기 때문에 전래되었다는 설1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난 가는 길에 이 지역의 백토고개에서 잠시 쉬면서 측근의 신하에게 무릎 안쪽의 오금이 아프다고 말하자
그 후부터 이곳을 오금골이라 부른 데서 오금동 동명이 유래되었다는 설2
잠실동(蠶室洞)
-잠실동은 조선초에 양잠을 장려하기 위하여 잠실도회(蠶室都會)가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잠실이라 불렸다.
-원래 잠실, 신천지역은 한강의 범람원으로 발달했던 부리도(浮里島)에 위치했었다는 설과 자양동과 이어진 반도였다는 설이 있다
장지동(長旨洞)
-마을이 길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며, 또는 잔버들이 많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풍납동(風納洞)
-이 마을에 바람드리성 즉, 풍납토성(風納土城)이 있으므로 바람드리 또는 풍납리로 불리게 되었다.
http://songpa.go.kr/user.kdf?a=songpa.menu.MenuApp&c=1001&cate_id=AG0102001000
문제시 수정~!
첫댓글 송파구 동네들 이름 특히 뭔가 이쁜거 같아!!
남한산성 근처라그런가 인조 얘기가 많네 ㅋㅋㅋ
방이동은 성동구 방이동이었다가 송파구 방이동이 된겨? 신기하네.. 방이동이 지금의 성동구랑 강을 사이에 두고있는데 옛날엔 성동구가 어마무지하게 컸나보네 싶어서 검색해봤어 방이동은 경기도 광주>성동>강남>강동>현재 송파 이렇게 소속이 바뀌어왔다고 하네 (네이버에 성동구 방이동 검색함) 나 이런 동 이름 유래 역사 너무 좋아 개재밌어..
오오오 흥미돋.... 신기하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