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과 단군을 동일시 하는 문제와 솔거가 그린 단군영정을 천진(天眞)이라고 주장하는 것의 문제에 대해 짚어봅니다. 원고중 일부를 발췌하여 몇자 수정하여 올리기에 어투가 다른 점 양해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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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제와 단군을 동일시한다면 다음의 문제가 생긴다.『삼성기전(三聖記全)』<상편(上篇)>에 나오는 고두막한은 스스로 단군이 되었는데 고두막한을 하느님인 천제라고 할 수 있을까? 이 한가지 경우만 보더라도 단군과 천제의 구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압록 사람인 고두막한이 의병을 일으켜 역시 단군이라고 했다.
西鴨綠人高豆莫汗倡義興兵赤稱檀君
서압록인고두막한창의흥병적칭단군
단군영정
단군영정이 교리에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신 또는 진리를 외부에서 찾기 좋아하여 우상도 만들고, 그림도 그리면서 눈으로 보기 좋아하지만『신사기』의 가르침은 인간은 하느님의 자식으로『천부경』에서 말하는 “일시(一始)”의 근원(本)인 알님의 씨알(子)을 가졌으니 “자신의 성품에서 알님의 씨알를 구하면 우리 머릿골 속에 내려와 함께 하신다” 하였다.
自性求子 降在爾腦.
자성구자 항재이노.
이 말은 밖에서 구하지 말라는 말이니 우상숭배하지 말라는 말과 같다. 알의 씨알은 밖에서가 아닌 내안에서 찾아야 한다. 대종교에서 천진(天眞)이라고 왜곡해서 부르는 단군영정을 모시게 된 계기는 다음과 같다.
1910년 3월 15일 자시(子時)쯤 홍암(弘巖)을 찾아온 노인이 있었다. 강원도 명주군 석병산에서 왔다는데 키는 구척 장신이요, 머리카락은 몇 오라기 안되었고 흰 눈썹은 말총 같이 억센 것이 위로 치켰고 음성은 걸걸한데 성명은 고상식이라 하고 부르기는 공공진인(空空眞人)이라고 했다.
자신이 세상에 살아야 할 천수는 아흔 아홉인데 이 옥물(玉物)을 전해 받을 사람이 나오지 않아 더 살면서 기다리다 보니 네 살을 더 살아서 백세살이라 하였다. 공공진인은 황금 보자기에 싼 아주 오래된 초상화 한 폭을 전해 주고는
“내 집에서 대대로 모셔 온 단군(檀君) 초상화는 신라의 명공 솔거가 그려서 오늘에 전해 온 유일본(唯一本)이니 잘 모시도록 하시오”하고는 일어섰다. 홍암은 “이 밤중에 어디를 가시려고 일어섭니까”붙들며 만류 하였으나 가야 한다며 기어이 나가시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홍암은 그림의 진위(眞僞)가 의심이 되어 모시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홍암의 꿈에 공공진인이 전해 준 그 초상화대로 풀 옷을 등에 걸치신 단군께서 오시어 신상(神床)에 앉으시기에 바라보니 몸에서는 눈부신 광채를 발하시고 그윽한 향기를 자욱이 풍기는데 단군께서 미소를 지으시며
“무엇을 머뭇거리느냐 나를 모시어라 그러면 마음마다 평화요 집집마다 경사요 나라마다 영광이 오리라”
하시는 것이 아닌가! 홍암은 영몽(靈夢)을 얻고 그 당시 유명한 화백 지백연에게 그대로 그리게 하여 1910년 8월 21일 천진 봉안식(天眞奉安式)을 가졌다.
『신사기』의 가르침은 기복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이고 “선복악화(善福惡禍)”이니 만선행을 하라는 것이다.
소리와 기운으로 원하는 바를 기도하면 친히 모습 뵐 수 있음이 끊어지나니
聲氣願禱 絶親見
성기원도 절친견
階萬善 門萬德
계만선 문만덕
그런데 단순히 그림을 모시는 것만으로 평화와 경사와 영광이 온다면 선행을 하여 덕을 쌓을 이유가 없다. 이러한 점이 교리에 맞지 않다는 것이고 그래서 ‘위작논란’의 근거를 무색케 한다. 그림이 전해진 것은 1910년이고『삼일신고』의 간행일도 1910년이니 나철과 김헌의 위작이라면 분명히 ‘단군영정을 모시면 경사가 온다’는 내용이 대종교 경전 어딘가에는 들어갔을 것이다.
만주 독립군들은 가슴속에 단군영정을 품고 다녔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경사가 있었을까? 독립운동하면 3대가 가시밭길이라는 말이 있듯이 독립유공자들은 대부분 가난에 허덕였다. 대종교 종단역시 해방후 독립운동이라는 명분이 사라지자 교세가 지속적으로 기울어졌고 수십 년 내분에 휩싸였다. 과연 집집마다 평화일까? 반면 친일파들은 부귀영화를 대대로 누리고 있다.
솔거는 신라시대의 화가이다.『지봉유설(芝峯類說)』에는 우리가 아는 유명한 일화가 나온다.
신라진흥왕때 솔거라는 자가 있어 황룡사벽에 노송을 그렸는데 .....
『新羅眞興王時 率居者 畵老松於皇龍寺壁 鳥雀 往往飛入云 蓋其畵入神 豈獨書有金生哉 其名不顯於後世 惜哉 或言率居乃僧名』
그림은 신라시대의 전설적 화가인 솔거가 그렸을까?『동사유고(東事類考)』에 다음과 같이 전해진다.
솔거의 신화(神畵)
신라의 솔거는 농민의 아들로서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뜻을 두었다. 나무를 하러 가면 칡뿌리로 바위에 그림을 그리고, 밭을 갈면 호미 끝으로 모래바닥에 그림을 그렸으나 궁벽한 시골에 스승이 없어 배우지 못하여 끝내 공부를 완성하지 못했다.
이에 솔거는 밤낮을 마음속으로 천신(天神)에게 빌기를,
“원컨대 신의 가르침을 받게 해 주시옵소서.”했다.
이렇게 여러 해가 되었는데, 어느 날 한 노인이 꿈속에 나타나서 말하기를,
“나는 신인(神人) 단군(檀君)인데 너의 지극한 정성에 감동하여 신호(神毫)를 주노라.”했다.
솔거는 꿈에서 깨어나자 어슴푸레하게 깨달아 마침내 명공(名工)이 되었다.
이렇게 하여 솔거는 신의 은혜에 감명을 입어 단군의 어진(御眞)을 그린 것이 거의 천 장에 가까웠으니, 이는 그 꿈속에 본 것을 상상해서 그린 것이다.
고려 이규보는 솔거가 그린 단군의 어진에 찬을 쓰기를,
“고개 밖의 집집에 모신 신조(神祖)의 화상(畵像)이, 당년에 절반은 모두 명공에게서 나왔네”했다. <동사유고(東事類考)>
新羅, 率居는 農家子라 自幼時로 志於畫하야 椎則以葛根으로 劃巖하고 耕則以鋤尖으로
신라, 솔거는 농가자라 자유시로 지어화하야 추즉이갈근으로 획암하고 경즉이서첨으로
劃沙호대 而僻鄕에 無師受하야 終無以遂工이라
획사호대 이벽향에 무사수하야 종무이수공이라
率居가 日夜心祝于天神하야 願受神敎하니 如是者 有年이라
솔거가 일야심축우천신하야 원수신교하니 여시자 유년이라
一日은 有老人이 夢臨하사 曰我는 神人檀君이라 感汝至誠하야 授以神毫하노라
일일은 유노인이 몽임하사 왈아는 신인단군이라 감여지성하야 수이신호하노라
覺乃怳然하야 卒成名工하니라 率居가 感銘神恩하야 畫檀君御眞者
각내황연하야 졸성명공하니라 솔거가 감명신은하야 화단군어진자
殆近千本하니 像想其夢中所見也리라
태근천본하니 상상기몽중소견야리라
高麗李奎報가 題率居所畫檀君御眞贊曰
고려이규보가 제솔거소화단군어진찬왈
嶺外家家神祖像 當年半是出名工이라 하니라
영외가가신조상 당년반시출명공이라 하니라
『포명본교대지서』에도 솔거가 그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단군을 대황조로 바꾸어 놓았다.
영동지방의 옛 절에 신라의 솔거가 그려서 전한 대황조어진에 대해 고려의 평장사 이규보가 제찬한 시에 이르기를 "고개 밖의 집집마다 있는 신조상은 당년에 절반이 명공으로부터 나왔네"라 하였으니, 이를 가만히 바라본즉 집집마다 받들어 모셨음을 가히 알 수 있음이로다.
嶺東古寺에 新羅率居가 畵傳 大皇祖御眞에 高麗 平章事 李奎報의 題贊 詩에 曰
영동고사에 신라솔거가 화전한 대황조어진에 고려 평장사 이규보의 제찬한 시에 왈
嶺外家家神祖像 當年半是出名工이라 얏스니 此 觀즉 家家마다 尊奉을 可知로다.
영외가가신조상 당년반시출명공이라 하였으니 차를 관한즉 가가마다 존봉함을 가지로다.
기독교의 십계명에 우상숭배하지 말라고 하는데 단군 그림에 절하는 것이 십자가를 우상으로 삼고 예수상과 마리아상을 세우는 우상숭배와 무엇인 다른가? 그림 인물의 진위여부도 문제다. 대종교에서는 천진(天眞)이라 하여 하느님의 모습이라고 주장하지만『동사유고』에 나온 바로는 단군이다. 앞서 언급했듯이『신사기』『삼일신고』에는 단군에 대한 언급이 없고 하느님에 대한 가르침뿐이다. 『삼일신고』에 하느님은 “아주 밝고 신령하시어 감히 이름지어 헤아릴 길이 없다.”고 하였다.
昭昭靈靈 不敢名量
소소령령 불감명량
그렇다면 과연 현재의 단군도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밝고 신령하게 보인는가?『옥추보경』에 나온 ‘신소조기옥청진왕(神霄祖氣玉淸眞王)’이 신인(神人)이라고 하는데 둘을 비교해보자. 단군도는 석가ㆍ예수처럼 빛이 외겹이고, 옥추보경의 신인은 빛의 밝기가 세겹으로 외겹인 다른 분들과 밝기의 차이가 있고 머리에도 상투모양의 삼화(三火)가 빛을 발하는 것을 표현하였다.



『옥추보경』에 나온 동화교주의 나뭇잎 의상이 단군영정의 나뭇잎 의상과 비슷한 것을 알 수 있다. 동화교주는 신농씨라는 설과 1천살이 넘게 살았다는 안기생(安期生)이라는 설이 있다. 안기생은 약초로 유명하였으니 나뭇잎 의상은 약초를 다루는 신의(神醫)의 상징으로 보인다.
또 하나 단군영정의 모자는 카톨릭 신부나 교황이 쓰는 모자이다. 아마도 카톨릭은 단군의 전통을 이은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여호와는 여와라는 설이 있고 여와는 단군이었다고 하므로...

단군영정의 주인공은 단군이지 하느님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대종교에서 모시는 분은 하느님이지 단군이 아니다.
경배때 단군영정에 절하는 것은 전통에 맞지 않는다. 옛 전통은 개천절 어천절때 마니산에서 하듯이하늘에 천제를 지냈다.
첫댓글 참 이상하네
여기에 댓글 달기 세번째 모두 이상하게 별 것 아닌 타자로 싹 지워지는 일이 발생하네요.
이승규 님의 이 글은
대종교의 신관에 심각한 이의 제기로 문제가 있습니다.
하느님은 맞지요.
그러나 단군은 심각하게 문제를 드러냅니다.
우선 대종교에서는 단군이라는 호칭을 안 씁니다.
물론 단군이 역사상의 인물이고 실제했으며 무려 기록 상 47분의 단군이 계셨고
조선의 단군 말고도 북부여 해모수 단군처럼
자칭 단군도 있었다는 역사상 기록이 있지만
역사와 신앙은 일치하지 않지요.
우리 조상들이 섬겨온 신으로 하느님은 하느님이시고
조상들의 원시신앙 속 단군도 영향이 있었지요.
경전상의 신관은 신, 일신, 삼일신 입니다. 경전에는 한배검도 없고, 단군도 없고, 할아버지도 없죠. 현재 대종교의 교리가 경전을 따르지 않는 것이 문제이고 그래서 문제 제기를 한 것입니다. 여러번 말했듯이 한배검은 포명본교대지서의 원본신가에 나오는 대조신을 한글로 번역한 것입니다. 대종교는 대조신을 모시는 종교가 아니죠. 물론 대조신은 환웅 또는 환검을 뜻하기는 합니다만, 경전 용어가 아닌 민간용어라는 점을 말한 것입니다. / 신을 해석한 한얼님에 대해서는 반대의견이고요. 현대용어인 하느님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신사기 관련 상고사 책을 집필중이라 많은 자료를 찾아봤는데 옛날에는 역사와 종교가 일치했습니다. 중국기록에도 많이 나오죠. 중국기록에 단군과 조선 기록이 거의 없다시피한데 다 이유가 있습니다. 다르게 표현되었는데 사람들이 그걸 모르더군요.
중국과 한국의 기록에 단군은 한참 후대인 발해이후 고려때 등장하여 이씨조선에 와서야 국조로 숭상됩니다. 광개도대왕비를 봐도 단군을 시조로 삼지 않았음을 알 수 있고, 백제와 신라 역시 조상을 단군이라고 하지 않았죠. 삼국 모두 단군과 고조선은 관심 밖이었습니다. 고구려때 노래라는 원본신가(일명 어아가)에서도 대조신이라 하였고, 민간에서는 대황조라 하였지 단군이라 하지 않았죠. 포명본교대지서에도 대황조로 많이 언급되죠.
단군이라는 통치자에서 일반적인 조상신으로 호칭되신 단군은
대종교에서는 한배검님으로 한검님으로 호칭됩니다.
즉 하느님(한님, 한얼님)이신 창조신,
이땅의 개벽과 관련되어 인간이 인간되도록 가르쳐 인간세상을 이루신 한웅(환웅)님은 교화신,
사람들의 세상에 나라를 세워 다스려 홍익인간 이화세계를 이루신 한검(역사에서 단군)님은 치화신으로 개념을 확립했지요.
여기에서 다시 중복되는 이야기입니다만 환웅도 역사상 한 분이 아니죠?
역사와 신앙을 일치시켜 조금도 논리적 어긋남이 없어야 한다면 이승규님의 논리가 적절하지만
대종교의 신관을 논리에 의해 바꾸면 대종교가 아니게 되지요.
단군영정을 천진이라고 바꾼 것은 역사적 종교적 근거가 없다는 내용의 글입니다. 그러니 단군영정을 하느님으로 또는 삼일신으로 또는 한배검으로 여길면 안된다는 취지이고요. 대종교 교리라는 것이 불과 100여년전 성립된 것이고, 그 이전 수천년 전 부터 존재했던 개념이 하느님, 삼일신 입니다. 옛 것을 복구하자는 취지의 글입니다.
저는 교화주 환웅은 역사적 인물로 봅니다. 다만 인간의 기록이 제대로 남기질 못한 것이지요. 삼일신고봉장기, 환단고기, 규원사화 등에도 환웅에 대해 언급이 있지만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이지요. 규원사화에서는 궐천년이라 하여 11000년전이라 하는데 인류역사에 1만년전 기록이 제대로 남아 있는 것이 없지요. 그러나 사실입니다.
한배검을 단군으로 여기는데 이는 심각한 오류입니다. 단군이란 말은 후대에 사용된 것으로 착오를 일으킨 용어이죠. / 대종교 교리에 나오는 조화주 환인, 교화주 환웅, 치화주 환검에 대해 중국 및 다른 나라 기록에도 유사하게 나옵니다. 그러니 대종교 교리라고만 할 수 없죠. 역사적 사실이기에 전세계적으로 비슷한 기록이 나오는 것입니다. / 연구결과 신사기의 기록이 가장 정확한 역사 기록입니다. 고고학적으로도 밝혀졌고요.
더 많은 이야기가 이곳에서 논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대조신 혹은 대황조를 한배검이라 번역했다면 그말은 한배검이 조상숭배 신앙을 뜻하죠.
그러니 하느님은 조상의 최고 끝, 창조신, 한배검은 조상들의 표상, 하느님과 부모님의 사이,
부모님은 조상의 끝, 하느님의 변화된 내 옆에 계신 마지막 조상.
그렇게 우리 하느님은 조상이 되어 우리를 있게 한 분이고
한배검은 우리 조상들의 한 모습으로 우리의 친근한 할아버지, 윗대 조상님이시고
그 끝에 우리를 무한히 실체적 사랑의 계신 분이 부모님. 즉 하느님
그리고 또 우리도 하느님이 되라는 것이 대종교의 가르침이죠.
만선계 만덕문을 지나 하느님이 되자는 것이 우리 신앙의 목표
그 목표는 결국 부모님이 되는 우리의 모습으로
여러 차례 말씀드리지만 종교에서는 경전이 최우선시 되어야 하고 대조신, 대황조 한배검 등은 경전용어가 아닙니다. 경전용어인 신, 일신 즉 하느님을 사용하자는 취지 입니다. 하느님이 주화주, 교화주, 치화주의 세 역할을 한 것이 삼일신 사상이고요. 경전용어인 하느님을 기독교에 빼앗겨서 다른 이름인 한배겸을 사용하는 듯한 느낌입니다. 왜 대종교 선배들은 하느님이라고 번역하지 못했을까요? 한얼님이라고 새롭게 만들고. 한얼님으로 번역하고 실제 사용은 한배검을 선호하고. 타종교인들이 이런 기본적인 용어의 혼동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새롭게 대종교인이 되려는 사람들은 어찌 받아들일까요?
@이승규 삼신이라는 것도 고경전에는 없죠. 고경전 용어는 삼일신입니다. 이런 아주 기본적인 용어정립이 안되어 있어 혼란스러운 겁니다. 경전에는 분명히 일신유거 라고 일신이라 가르치는데 대종교에서는 마차 다신인 것처럼 존칭이 너무 많습니다. 외부사람들이 들으면 다신교로 혼동될 요지를 버리자는 말입니다.
이승규 님의 연구는 대종교의 좋은 교재는 되겠지만
그 동안 대종교 어르신들이 만들어온 믿음을 밑둥에서부터 바꿔서
그냥 하느님이라고만 하면
그 동안의 대종교와는 너무 달라지니
자연스럽게 많은 대종교인이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거쳐야만 정당성을 얻을 것입니다.
위에서처럼
천진도 거부하고 한배검도 거부하고 하느님만 남으면 정통성을 잇기에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단군영정이 천진이라는 근거를 대종교에서 먼저 제시해야 하고(글에서 밝혔듯 역사기록에는 모두 천진이 아닌 단군영정으로 나옵니다.), 경전의 신 또는 일신이 한배검으로 번역되는 근거 역시 대종교에서 근거제시를 해야 일반인들이 납득할 수 있는 것이라 봅니다. 수천년간 하느님이라 사용하였는데 대종교에서 한배검이라 바꾼다면 정통성이 없는 것이죠. 하느님대신 한배검을 사용한다면 신흥종교가 되는 것이고 전통적 존칭인 하느님을 사용한다면 전통종교가 되는 것입니다. 대종교는 왜 전통을 거부하는지 의문입니다. 경전따로 믿음따로 하고있죠.
이승규님의 연구 결과가 주목됩니다~저도 오래전부터 왜 하느님대신 한얼님,한배검이라 하는지 의문스러웠습니다.
아마도 하느님은 천주교에서 사용하니 원본신가와 환단고기에 나오는 대조신(大祖神)을 뜻하는 한배검으로 사용하게 된 듯 합니다. 대종교의 하느님을 기독교에 빼앗기고 다른 이름을 사용하게 된 것이죠. 한얼님은 당시 한글학자들이 만든 용어입니다. 이것만 보아도 기독교에서 하느님을 사용하니까 원래 우리가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하느님'을 못 썼던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찾아야 할 때입니다.
@이승규 적극 동의합니다~
어려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