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에 단 한 편만을 올리는 경남오페라단은 2007년 공연으로 글룩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를 선택했고, 이 작품의 국내 초연이라고 합니다.
남다른 책임감을 가지고 잘 준비한 매우 좋은 공연이었습니다.
"일년 간의 시간과 역량을 총집결하여 매년 수준 높은 공연을 올리는" 경남오페라단이라고 불러줄 수 있겠지요.
국립 오페라단 출신의 이소영이 연출을 맡았고, 창원 공연에서는 카운터테너 이동규가 오르페오를 부릅니다. 에우리디체는 서활란, 아모르는 임영림이 맡았고, 크리스토퍼 리 지휘에 오래간만에 창원시향이 반주를 맡았습니다.
창원시향과 양산시립합창단 이외에는 모두 초빙해 온 인사들입니다.
창원에서 이틀, 진주에서 하루를 올렸는데 그나마 10월 26일 창원 성산아트홀의 첫공연은 한 은행이 통채로 사버려서 은행 측의 초대손님이 아닌 일반인에게는 표를 팔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걸 모른채 무심코 갔다가 잠깐 당황했었지만 거의 시작할 무렵임에도 자리가 약간 비어있었기 때문에 R석을 그냥 받을 수 있었습니다. R석 7만원 짜리를 원래는 사려고 했었지요.
호텔 이름이 커다랗게 박힌 멋드러진 테이블보 위에 양과자들이 풍부하게 깔려있고, 쥬스와 커피, 차들이 서빙되고 있었는데 어차피 오페라라는 게 돈들어가는 취미라지요.
관객들이 모두 초대손님이라고 하지만 감상매너가 매우 훌륭했다는 것이 또 좋았던 점입니다.
오르페우스의 원형은, 그리스에서 최초로 신화의 틀을 빌려 형상화되었습니다. 그리고 머나먼 일본까지 흘러들어가 창조 설화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지옥까지 내려갔다가 살아 돌아온 설화는 훗날 그리스도의 일화로도 변용이 되지요.
제 생각이지만 이 설화의 원형은 일본에서 더 잘 보존되어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즉 에우리디체의 몸이 이미 썩어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지상으로 올라오기 전까지 봐서는 안된다는 제약을 걸었던 것이고, 일본의 오르페우스는 그 모습을 보고 기절초풍해 도망쳐나왔습니다. 이 편이 설화의 원형에 더 가깝지 않을까요?
일본 신화는 내용이 잔혹합니다. 버림받은 아내는 복수를 위해 남편을 쫒아오고 끝내 놓치자 그 원한으로 매일마다 1000명 씩의 인간을 죽이겠다고 선언하고, 도망쳐나온 남편은 그러면 1500명 씩을 낳게 하겠다고 응수하지요.
그리스 버젼에서 미처 다 위생화시키지 못한 이런 부분들이 에우리디체의 행동에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남편이 돌아보지 않는 이유가 자신의 변해버린 외모 때문이라고 불안감을 느끼고 이것 때문에 지나치게 반응하고 파국으로 이끌지요. 달리 무엇으로 에우리디체의 신경증을 설명하겠습니까.
한술 더 떠서 글룩의 대본작가 칼차비지는 아예 에우리디체를 되살려내 버렸습니다. 끔찍하지요.
그런 의미에서 의상을 현대풍으로 가져간 것도 적절했다고 느꼈습니다. 무엇보다 신이 변덕스런 자비로 개입해 결말을 틀어버리는 개정판에서는 신화의 기품은 이미 상실되었다고 보이며, 차라리 믿음, 회의, 헌신, 고민 등 그런 인간적인 면를 부각시키고 평범한 사랑 이야기로 이해하는 편이 그나마 납득할만 하겠습니다.
아모르가 어린아이의 옷을 입은 장난꾸러기로 그린 것도 그래서 설득력을 얻습니다. 미션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보물을 내어주는 아모르의 행동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아니라 변덕쟁이의 모습이지요.
몬테베르디가 동일한 소재로 오페라를 만들었을 때, 다소 번잡할 수 있는 디테일까지 끌어들인 반면, 글룩과 대본작가 칼차비지는 간략화한 줄거리 라인을 따라가며 오르페오에 집중하여 큰 효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음악을 살려내는 좋은 방법입니다.
1막의 밝은 느낌의 서곡이 끝나고, 굉음과 함께 거대한 고목이 무대로 떨어집니다. 고목이 무엇을 상징하는 지는 아직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만, 여기서 꺾어드는 나뭇가지는 오르페오의 손에 들려 1,2,3막을 관통하여 중요한 소품 역할을 합니다.
오르페오의 손에 들려있던 것은 이 나뭇가지가 유일합니다. 하프가 아니라.
장례식에 찾아온 문상객으로 분한 턱시도를 입은 코러스 사이로, 역시 턱시도 차림의 오르페오가 등장합니다.
이동규의 가창도 대단했지만 연기면에서도 절제된 움직임으로 훌륭하게 슬픔을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이내 스크린이 드리워져 무대를 두 세계로 갈라놓습니다. 오르페오와 나무만 스크린 이편에 있으며, 스크린 저편에는 유령처럼 배회하는 친구들의 불투명한 움직임이 비추입니다.
비탄은 공유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오르페오의 감정은 자신이 아니라 무용수의 안무로 표현되는데 음악만 들어서는 지루하게 느껴지는 빈틈들이 시각적으로 훌륭하게 메워집니다.
2막 연출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빛이었습니다.
황천에 발을 들여놓은 오르페오 앞에 나타난 원혼들이 "no"라고 외치는 장면에서, 원혼들은 손에 든 플래쉬를 객석으로 일제히 비추는데 예전에 CD로는 들어보지 못한 과도하다 싶을만큼 강력한 합창과, 강렬한 빛이 자극적으로 시각과 청각을 때립니다. 정신을 놓을 정도로 멋있었지요.
다만 하프 대신 나뭇가지를 들고 있다보니 어색한 점은 있을 수 밖에요.
오르페오가 하계의 들판으로 내려가고 있을 때 조명은 마치 별빛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그린 듯 했습니다.
에우리디체를 기다리는 동안, 두 사람의 무용가가 연인의 애정을 담뿍 드러내는 춤을 보여줍니다.
누워버린 오르페오의 곁으로 와 함께 눕더니 세 사람은 하늘을 향해 검지손가락을 길게 뻗어 원을 그립니다.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제가 고민하고 있는 사이, 남자무용수와 나란히 누워있던 여자무용수는 오르페오의 몸을 타고 넘어가더니 다시 오르페오를 가운데 두고 같은 동작을 반복합니다.
그리고 같은 옷을 입은 여자들이 여럿이 나타나는데 그 중 한명이 앞으로 나오면서 그녀가 에우리디체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3막은 원래 어두운 숲속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 연출에서는 적절하게도 레테의 강 위의 배로 바꾸어놓았습니다. 에우리디체와 오르페오의 갈등이 심화되자 배가 빠른 속도로 빙글빙글 돌고, 오르페오가 끝내 잘못된 선택을 하자 배가 양쪽으로 갈라지며 두 사람을 떼어놓습니다. 정말 멋지지요.
배는 빠른 속도로 돌지만 오르페오는 에우리디체를 봐서는 안되니 두 가수가 무대 정면을 바라보고 있어야 합니다. 용케 그 위에서 균형을 잡고 서 있습니다.
에우리디체와의 갈등이 극에 달했을 때 오르페오는 중요한 소품인 나뭇가지를 부러뜨려 던져버립니다.
자살장면에서 목을 찌르기 위해 드는 것 또한 부러진 한 쪽의 나뭇가지입니다. 그건 너무하지요. 그러나 아모르가 나타나 만류하고 에우리디체를 돌려준다고 하자 다시 오르페오의 분신 격인 무용수가 나타나 부러진 가지를 다시 이어붙혀 줍니다. 그리고 그것이 마치 피리가 된 것처럼 부는 시늉을 하지요.
마지막에 아모르가 집어들더니 장난스럽게 오케스트라 석으로 던지는 것으로 다양한 의미를 포함한 나뭇가지의 역할은 다하게 됩니다.
이 정도 수준의 연출, 무대, 가수진이라면 세계 어느 곳에서라도 찬사를 받았을 것이고, 지방 공연으로,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창조적이고, 무대를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곳으로 만드는 기억에 남을 공연이었습니다.
성산아트홀 대극장은 객석 1700석 정도의 큰 홀이지만 대편성의 오케스트라 곡이나 대규모 합창곡을 올렸을 때 음량의 과포화가 일어나고 귀를 괴롭히는 경험을 가끔 했습니다. 대신 실내악과 오페라 연주를 할 때는 소리가 정말 아름답지요. 이렇게 바로크 음악을 소편성을 연주할 때, 음향이 놀랍도록 아름답습니다.
한동안 오페라를 멀리하고 피아노 소나타나 실내악 위주로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다시금 무대공연에 대한 사랑을 되살려내 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부끄럽게도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는 경남오페라단 공연 소식을 듣고부터 예습 차원으로 듣기 시작했고 제가 듣는 유일한 음반이 DG에서 나온 칼 리히터의 녹음입니다.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았습니다.
이 글을 읽어보시고, 이 공연에서 제가 받았을 느낌에 꼭 맞는 음반이 어떤 게 있을지 추천해주실 분이 있을까요? |
첫댓글 오오오. 좋은 공연을 만나셨군요. 정성어린 후기 잘 읽었습니다. 추천 음반을 바라셨지만, 저는 텔락에서 나온 음반 단 한 장밖에 없는지라 뭐라 말씀드릴 수가 없군요. 죄송합니다.
캬~~~ 좌진님, 왜 저는 클래식 매니아가 아닐까요? 나에게도 좌진님과 같은 작품에 대한 배경지식을 알고자 하는 열정과 더불어 좋은 공연들을 찾아다니는 열정이 있더라면 그야말로, 그야말로 참 좋을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