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하나님께 소망을
일찍이 홍자성은 그의 <채근담(菜根譚)>에서 말하기를 “하늘의 기밀(機密)과 권능(權能)은 대단히 묘한 것이니, 인간의 짧은 지혜와 기교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可見天地機權最神(가견천지기권최신), 人之智巧何益(인지지교하익).]”라고 하였다.
도의(道義)를 지키며 바르게 살려는 사람은 자신의 인격수련(人格修練)에만 힘쓰고 도를 넘는 세상의 복락(福樂)을 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의 마음과 영혼을 찾아다니시며 즐거움과 만족감을 심어주신다. 반면에 하나님은 부당한 방법으로 재앙(災殃)을 멀리하고 세상의 복락만을 추구하는 간사한 사람들에게는 그 마음을 찾아다니며 놀라운 고통과 재앙을 내리시곤 한다. 하나님의 권능과 신통함은 이루지 못할 바가 없고 세상천지에 이르지 못하는 곳이 없으니 사람의 잔꾀로 하나님의 다스림과 섭리(攝理)를 어찌 막아낼 수가 있겠는가.
이런 연고로, 백강 이경여 선생은 일찍이 인조임금에게 반드시 “하늘을 섬기는 도리(道理)”를 따라 매사에 임하여 나아갈 것을 아래와 같이 말씀하였는데, 이는 오늘날 우리들이 반드시 참조할 만하다.
“하늘은 이치이니, 한 생각이 싹틀 때 이치에 합하지 않으면 이는 하늘을 어기는 것이고, 하나의 일을 행할 때 이치를 따르지 않으면 이는 하늘을 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 정성으로 하늘을 섬기면 천명(天命)이 계속 아름답게 내려지지만 하늘을 어기고 이치를 거스르면 그 천명이 영원히 끝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늘의 마음은 인자(仁慈)하여 차마 갑자기 끊어버리지 못하니, 반드시 재이(災異)를 내려 견책(譴責)한 뒤 흐리멍덩하게 깨닫지 못하여 끝내 고치지 않은 다음에야 크게 벌을 내리는 것입니다. ··· 하늘이 멸망시키거나 사랑하여 돕는 것은 공경(恭敬)과 불경(不敬), 정성과 불성(不誠)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천명(天命)은 일정함이 없으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심술(心術)의 은미한 곳으로부터 궁정의 사람 없는 곳과 동작하고 이야기하는 사이에 이르기까지 삼가 공순(恭順)하고 공경하여 두려워하지 않음이 없게 하소서. 천명을 스스로 헤아려 천리(天理)로써 보존하고 자연의 법칙으로써 움직여, 공경하고 조심스럽게 하기를 마치 효자가 어버이를 섬길 때 힘써 성의(誠意)를 쌓아 기필코 즐겁게 되시도록 하는 것과 같이 하소서.”<조선왕조실록 1631년(인조 9년) 10월 3일 백강 이경여 선생 상차문(上箚文)에서>.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어렵고 불확실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오로지 의(義)로우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야한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이는 시편 42편 11절에 기록된 고라 자손의 고백이다.
그리고 사랑의 하나님은 그를 믿고 따르는 자녀에게 아무리 상황이 어렵더라도 반드시 피할 길을 열어주신다. “사람이 감당(堪當)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이는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 기록된 사도 바울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야 한다.
2024.10.24. 素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