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다시 만져보자
지금은 잘 불리지 않지만 과거에 학생들은 운동장에 조회하면서 광복절 노래를 자주 부르곤 했다.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
이날이 사십 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 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
노랫말은 한국의 국보(國寶)로 불린 위당 정인보(1893~1950)가 썼다. 그 노랫말에 윤용하가 곡을 붙였다. 평화와 풍요의 시대에 태어난 한국인은 이 노래를 부르며 특별한 감회에 젖기 힘들다. 그러나 베이비붐세대(1955~1964)의 부모들은 이 노래를 부르며 감격에 벅찼을 것이다. 위당 정인보는 첫 소절을 왜 '흙 다시 만져보자'라고 했을까? 한국인은 6‧25전쟁을 겪으면서 비로소 자유민주주의공화국의 국민으로 태어날 수 있었다. 한국인이 자유와 사유재산의 의미를 깨달은 것은 6‧25전쟁이었다. 우리는 얼마 전 대한민국의 영웅과 작별을 했다. 백선엽 대장(1920~2020)과 그의 유언이었다. "전사한 전우들과 함께하고 싶다." 장군은 먼저 간 전우들을 잊지 못했었구나! 최전선에서 목숨 걸고 싸워보지 않은 사람은 이 말뜻을 이해하기 힘들다. 장례위원회는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다부동, 문산 파평산, 파주 봉일천, 화천 소토고미 등 8대 격전지의 흙을 퍼서 유해와 함께 안장했다. 부산 UN기념공원에는 유엔군 2309명이 영면 중이다. 오래전 호주에서 별세한 참전용사의 유해를 봉송해 안장한 것이다. 그 참전 용사의 유언은 '부산에 묻혀 있는 전우들 곁에 묻어 달라'였다. 호주군은 6‧25전쟁에서 346명이 전사했다. 2차세계대전의 영웅 윈스턴 처칠(1874~1965)의 마지막 길은 국장(國葬)으로 치러졌다. 장례식은 런던 세인트 폴 성당에서 위엄있게 치러졌고 유해는 고향인 블랜엄 궁전 근처의 교회묘지에 안장되었다. 처칠은 국왕이나 국가영웅들이 잠들어 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아닌 고향땅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다. 흙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생을 가리켜,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한다. 문명권에 관계없이 인간은 사람의 영혼은 흙속에 스며 있다고 믿는다. 흙은 죽음과 관련된 은유로 자주 쓰인다. '눈에 흙이 들어가다'는 죽음을 은유한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지는 안된다'라는 관용어구도 있다. 얼핏 다부동의 흙이 다른 곳의 흙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라고 고개를 갸웃거릴 수 있다. 흙은 지역마다 다르다. 그래서 흙에는 고유의 빛깔이 있다. 또한 특유의 냄새가 난다. 그것을 흙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