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영화지도를 그리다] <14> 북·사상구
부산일보 기사 입력 : 2013-11-14 07:50:05 수정 : 2013-11-14 14:32:54
바다만 좇는 카메라 … 낙동강은 영화에 담기지 못했다
부산은 산, 강, 바다가 부대끼며 어우러진 도시이다. 앞의 문장에서 '부대끼며'를 빼면 부산의 풍광을 전혀 담지 못하는 표현이 된다. 부산은 산, 강, 바다가 각기 제자리를 잡고 편안하게 걸쳐 있는 여느 도시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거대한 항만 뒤로는 산이 연이어 솟아 있고 낙동강과 바다는 꽤 넓은 공간에 걸쳐 구분되지 않는다. 그리고 낙동강을 따라 낙동정맥의 산세가 비집고 들어와 있다. 부산 사람들은 자연이 허용하는 이 틈새의 공간에서 자연과 부대끼며 터전을 일구었고 그래서 꼬불꼬불한 띠 모양의 복잡하고도 독특한 시가망을 갖게 되었다.
자연의 가파른 주름을 따라 형성된 대도시 공간은 영화 촬영에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 주었다. 꾸부정하고 비뚠 도로와 이를 따라 세워진 다양한 건축물들은 카메라가 공간을 창조함에 있어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 준다. 그래서 부산의 산과 바다는 영화를 통해 널리 알려질 수 있었다.
그런데 강은 영화에 거의 담기지 못했다. 그 강이 흔히 볼 수 있는 도시 하천이 아니라 낙동강이라면 더욱 특이한 일이다. 남한에서 가장 긴 강. 강원도와 경상도의 산자락 500여 킬로미터를 굽이굽이 흘러내려와 부산에 이르러 광활한 삼각주로 펼쳐져 뭍과 물이 높낮이 없이 뒤섞인 이 독특한 풍광은 그 지리적 명성에 비해 영화에서는 그다지 인기 없는 배경이다. 낙동강은 왜 외면 받았을까?
부산은 산·강·바다가 부대끼며 어우러진 도시
서부산권을 빼고 부산을 말할 수 있을까?
낙동강변 삶의 영화적 스토리텔링은 숙제로 남아
영화가 부산을 널리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말하지만 우리가 생각해야 할 문제는 '카메라는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라는 사실이다. 카메라의 욕망은 영화자본의 욕망이다. 영화자본의 욕망은 관객의 욕망에 기댄다. 그래서 영화는 관객이 부산이라는 도시 안에서 보고 싶어 함 직한 것들만을 보여 준다. 심지어는 영화가 보여 주는 것이 부산의 본디 모습이라는 과장도 서슴지 않는다. 그리하여 '지역의 정체성은 보임으로 인해 소외된다'라는 역설이 발생한다.
오늘날의 부산은 이질적인 세 구역이 엮여 있는, 말 그대로의 '광역시'이다. 그 세 구역은 동래, 부산부, 구포를 말한다. 동래는 부산지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졌고 부락의 규모도 가장 컸다. 동래는 주변에 펼쳐진 산들이 십시일반하듯 내어놓은 구릉에 기대어 형성된 자연부락이다. 그 반면에 부산부는 왜구가 자주 출몰하고 군사적으로 충돌이 잦은 지역이라 부락이 발달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일제강점 이후 일본인 거류지였던 중구 일대가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한국전쟁으로 팔도의 인구가 빼곡히 유입된 것을 계기로 하여 오늘날 거대도시의 터전을 이루었다. 공간의 역사와 지형조건으로 인해 동래가 은근한 내향성과 단일성을 고수한다면 부산부는 폭발적인 외향성과 혼종으로 치달린다. 부산부의 이 압축적 역동성은 영화 등 대중문화의 영향으로 부산과 부산사람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구포는 강변의 경관과 정서를 이룬다. 하지만 낙동강 하류라는 자연조건은 부산의 주요한 특징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는 소외되었다. 바닷사람의 거친 이미지에 경상도의 무뚝뚝한 의리, 그리고 일본식 가옥이 들어선 골목길과 해운대 마천루의 대비는 외지인이 부산을 소비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낙동강은 설 자리가 없었다.
구포는 일찍부터 조세와 군수품을 보관하고 나르는 주요 포구였다. 그리고 뭐가 먼저냐 할 것도 없이 장터가 들어섰다. 경부선 철도가 지나고 구포다리가 놓이면서 물류 거점으로서의 기능은 더욱 확대되었다. 그러나 국제무역항인 부산항과는 다르다. 부산항이 기약 없는 이별의 공간이고 뭔지 알 수도 없는 거대한 물류덩이들이 줄 맞추어 드나드는 공간이라면, 구포는 잠시 떠났다 돌아오는 정거장이고 배를 통해 들어온 물건은 그대로 구포시장에 풀려 분배되는 유통공간이다. 즉 부산항이 숙명적이고 의미가 불확정적인 이미지로 가득하다면 구포는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장소라 할 수 있다.
구포에서 내려온 낙동강은 더욱 넓어지면서 바다와 만나 갯벌과 모래톱을 이루었다. 사람들은 제방을 쌓고 갈대를 베어 내고 곡식을 심었으나 범람이 잦아 농업이 발달하지는 못했다. 강물과 부대끼며 한 뼘씩 일궈 나간 터가 지금의 사상지역이다. 강을 따라 구포에서 이어지는 직선 제방이 완공되고 1968년 사상공단이 조성되면서 세월의 땀이 묻은 제방들은 모두 사라지고 사상은 지금의 직교도로를 갖추었다. 사상공단으로 노동자들이 대거 유입되었다. 사상은 계획공간이었지만 난개발로 몸살을 앓았다. 공단지역과 주거지역이 섞여 있어 환경이 좋지 못했다. 그 속에서 부대끼며 만들어진 이야기 역시 부산의 중요한 역사이자 특성을 이룬다. 도시 내에서 물자를 만들고 가치를 창출하는 생산지역, 다수가 밀집하여 생활하면서 공장노동을 하는 이 중요한 경제공간을 배제하고 부산을 말할 수 있을까?
부산은 횟집과 초고층빌딩이 들어찬 바다 도시라고만은 설명될 수 없다. 바다는 강으로 넘실대며 이웃하고 너른 강은 금정산, 백양산, 승학산을 끼고 퍼져 흘러 부산만의 독특한 인문지리를 만들었다. 그 공간이 지금의 서부산권역이다. 사하구와 강서구까지 합하면 인구가 100만 명에 이른다. 영화도시로서의 부산은 이 1/3을 영화적 의미로 채울 수 있을 때 완성된다. 도시의 모든 공간이 영화적 의미로 가득해야 영화도시가 된다는 것이 아니라 부산의 정체성이 산, 강, 바다와 그것들의 부대낌이며 강은 부산의 정체성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2005, 박찬욱)는 억울한 옥살이를 한 금자(이영애 분)의 출소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금자는 마중 나온 전도사가 주는 두부를 엎으며 "너나 잘하세요"라는 명대사를 남긴 후 사라진다. 금자는 복수를 끝내고 직접 만든 두부 모양의 케이크에 머리를 박는다. 복수의 완성, 그럼에도 끝내 얻지 못한 존재의 구원. 순수한 정체성으로 돌아가려는 갈망의 몸짓. 궁극에 이르지는 못했으되 금자의 삶은 케이크에 머리를 박은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그 장면에서 끝나야만 했다. 영화들이 부산의 지역성을 온전히 재현해 낼 수 있을까? 그건 금자가 추구한 존재의 구원만큼이나 난망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영화는 지금도 부산의 조각들을 모아 나가고 있다. 금자가 케이크에 머리를 묻는 그 골목길은 사상구와 부산진구의 경계를 이루는 주례여고 아래 골목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역시 금자처럼 서부산으로 들어서는 초입에 서 있다. 부산의 영화지도에서 빠져 있는 북·사상구는 부산의 지역 정체성을 영화적 스토리텔링으로 어름 하게라도 완성시킬 마지막 퍼즐 조각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이번 회차에는 지도가 없다. 공간의 정체성이 살아 있는 로케이션이 이 지역에서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더러 이곳의 영화지도를 완성하는 것을 우리 모두의 과제로 남겨 두고자 함이다.
김충국 부산대 영화연구소 전임연구원 windboy@pusan.ac.kr
사진=이경희·박종현 사진가 mizise@naver.com
후원 : 부산영상위원회
부산 영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