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 : 애월읍 하가리 연화못 서쪽
육시우영에서 27명이 집단희생당한 사건이 발생한 후 응원경찰 20여 명이 하가리 향사(연화못)에 서쪽 주둔했었다. 하가리에 경찰이 들어오고 파견소 주변에 성을 쌓고 경찰 5∼6명이 주둔했으며, 1949년 가을부터는 서북청년단 출신 경찰 1개 소대 20여 명이 주둔했다고 한다.
소대장이 악독해서 추운 겨울에도 동네 사람들이 말을 잘 안 들으면 정신훈련을 시킨다는 명목으로 연화못에 들어가라고 하는 등의 기합을 주었다. 민보단은 17세 이상 35세 이하의 남녀가 각각 1개 소대씩 편성되어 매일 훈련을 받았고, 파견소와 동네를 지키기 위해 보초를 섰다고 한다. 주민들은 경찰이 먹고 쓸 식량이나 장작을 조달해야 했고, 고된 노동 속에 간혹 보초 서다 잠을 자거나 하는 경우에는 혹독한 매질이 따르는 등이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1949년 3월 23일 파견소에서 송두진이 구타당하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사건이 나자 경찰은 마치 피해자가 도망가다 죽은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시신을 주둔소 성 밖으로 던져버렸다. 이 일로 담당 경찰을 파면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일자 한림으로 전출 보내고 사건은 끝났다. 당시 송두진은 아들이 없어지자 아들 어디 갔느냐고 취조 당하는 과정에서 고문에 의해 사망했다고 한다. 이 때 아들은 경찰이 무서워서 자기 집 마루 밑에 숨어 있었다고 한다. 한편 육시우영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였던 해병 3기생인 오창기(사망)씨는 휴가 오면 마을에 주둔해 있던 응원경찰을 복수심에 두드려 패기도 했다 한다. 연화못 건너 길 서쪽에 위치했던 향사는 없어지고, 현재 창고건물이 있었는데 그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현재는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
《작성 2026.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