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구이를 앞에 놓고
내 교직 출발은 동료들과 다른 면이 있다. 교육대학 입학이 서너 해 늦었으니 교직 입문도 당연히 늦었다. 초등교사 양성이 목적인 교대는 당시 2년제였다. 졸업 후 발령 적체가 있어 1년을 꼬박 기다렸다. 그새 나는 졸업정원제로 편입이 불가해 4년제 사립대학 야간강좌 국어국문과를 다시 입학해 4년을 꼬박 다녔다. 그 대학을 졸업한 후 중등으로 전직해 평교사로 정년을 앞두었다.
늦깎이로 교대를 갔어도 다수 동기들은 교장이 되어 중임에 들었다. 나는 중등으로 전직해 한때는 승진에 관심을 가져보았으나 중도에 마음을 접었다. 몇몇 지기가 아쉬워하더라만 나한테 그 직위는 어울리지 않고 능력도 미치지 못해 연연해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보다 먼저 학사 편입해서 중등으로 올라온 교육대학 선배들은 학교 경영에서나 교육 전문직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올봄 거제로 부임해 오니 초등에서 중등으로 전직해 교장을 역임하고 퇴직한 교육대학 선배가 전화가 와 고현 횟집으로 불려나갔다. 선배는 내가 곡차를 좋아해 횟집에는 없을 줄 알고 지역 막걸리를 두 병 들고 왔더랬다. 은퇴 후 옥포에 살며 테니스를 즐겨 치며 여가에 산책을 나가며 건강을 관리한다고 했다. 인근 고교 학교운영위원장을 맡아 교육 현장과 연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날 선배와 해후에서 헤어지면서 나는 반갑기도 하고 한편 미안한 구석이 교차했다. 반가움은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는 거제에서 나를 찾아 잔을 권한 선배가 있어서였다. 미안함은 기대를 가진 후배가 승진은커녕 정년을 앞둔 평교사로 머물면서 거제까지 밀려와서다. 그럼에도 난 선배에게 호기를 부려서가 아니라 내 직분에 맞게 최선을 다하고 마음 편히 지내겠노라고 다짐했다.
이후 여름 방학을 앞두고 봄날 선배가 자리를 마련한 갚음으로 식사를 한 끼 대접하려니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았다. 방학을 끝내고 선배와 회동을 가지려니 내가 치과 진료를 다니게 되어 술자리를 피하게 되어 차일피일 미루어졌다. 이제 한 해가 다 가고 겨울 방학을 앞둔 때다. 자리를 언제까지 미룰 수 없어 연락을 했더니 선배는 틈을 내어주었다. 그날이 십일월 넷째 화요일이다.
선배는 퇴근 시각에 맞추어 내가 근무하는 학교로 차를 몰아왔다. 부산 병원으로 사모님 건강 검진을 다녀온 이후 걸음이라고 했다. 선배가 운전한 차를 타고 옥포로 갔다. 선배는 고향이 진주인데 거제에 와 산 지가 이십여 년 되었다고 했다. 교직 중년 이후부터 은퇴하고도 거제에 사니 현지인이나 마찬가지였다. 선배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저녁을 들 자리로 갔다.
선배와 옥포 시가 골목을 지나 굴구이집으로 갔다. 거제는 겨울이면 굴구이가 향토 음식을 대표한다고 했다. 식당에 드니 맛집으로 알려져서인지 손님이 여럿이었다. 예약석도 보였다. 선배와 마주 앉으니 밑반찬에 이어 커다란 양푼에 굴이 껍질째 담겨 뚜껑이 덮어졌다. 가스불이 켜져 열이 가해지니 김이 나고 굴이 익어갔다. 뚜껑을 여니 가리비가 먼저 보이고 굴이 수북 쌓여 있었다.
선배는 약주를 들지 못해 음료수를 한 잔 권하고 나는 맑은 술을 잔에 채웠다. 익힌 굴을 까먹으면서 나는 선배에게 그간 학교 근무 상황을 전했다. 관리자와 주변 동료들의 배려로 무난히 지낸다고 했다. 지금이 전보 내신을 작성하는 시기인데 명예퇴직이나 근무지 이동을 희망하지 않는다고 했다. 주말 창원으로 오가는 불편이 있긴 해도 여기 생활에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선배는 인근 지역 노인들 문해교육 봉사도 나갔고 지인 업체서 일손을 거들면서 여가를 활용하고 있었다. 올가을 알고 지내던 원로들이 거제를 방문해 얼굴을 뵙고 인사를 나누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건강을 잘 다져감이 우선임을 강조했다. 나는 선배가 채워주는 맑은 술을 두 병 비웠다. 굴을 다 까 먹어갈 즈음 굴죽이 나와 저녁이 든든했다. 식후 선배는 나를 와실까지 태워주었다. 19.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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