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癌)보다 무서운 건 포기
※44년생 2012년 소천 3개월 전에 유언(遺言) 형식으로 작성된 글을 읽어 보고 너무 감명 받아 함께 공유합니다!
68세를 일기로 유명(幽明)을 달리한 전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 위원회 위원(차관보급) 강영우(경기 양평 출신) 박사의 삶은 한 편의 드라마다.
그는 열네 살 때 눈을 다쳐 실명(失明) 했다. 공교롭게도 그 일을 전후해 아버지와 어머니가 차례로 돌아가셨다.
그러자 열일곱 살이던 누나가 어린 세 동생을 부양하느라 학교(學校)를 그만두고 봉제공장에 취직(就職)해 일하다 16개월 만에 과로로 쓰러져 세상(世上) 을 뜨고 말았다.
결국 남은 3남매는 뿔뿔이 흩어져 강영우는 맹인재활원 으로, 열세 살 됐던 남동생 은 철물점 직원으로, 아홉 살의 여동생은 보육원(保育院)으로 가야 했다. 참으로 기구한 운명(運命)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맹인재활원에 들어간 강영우는 기를 쓰고 공부해 1968년 서울맹학교 고등부를 졸업한 뒤 연세대 교육학과에 입학(入學)했다.
입시도 힘들었지만 그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맹인이 무슨 대학?” 하는 당시 우리 사회의 편견 이었다.
마침내 72년 각고의 노력 끝에 단과대 차석으로 연세대를 졸업 한 후 그는 한미재단과 국제로타리재단의 장학금 을 받아 미국으로 유학(留學)을 떠났다.
멀쩡한 사람도 유학 가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던 시절이었지만 그는 용케도 76년 피츠버그 대에서 교육철학 박사(博士) 학위(學位)를 받았다.
그 후 강영우 박사는 77년부터 99년까지 22년 동안 미국 인디애나 주 정부의 특수교육국장과 노스이스턴 일리노이대 특수교육학 교수(敎授) 등으로 재직한 뒤 마침내 2001년 차관보급인 미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의 위원으로 임명됐다.
말 그대로 ‘Impossible(불가능한)’이란 단어에 점 하나를 찍으면 “I’m possible” (나는 할 수 있다)로 바뀌듯이 그는 삶의 숱한 고비고비마다 그냥 점이 아니라 땀방울과 핏방울 을 찍어 가며 삶의 길을 열어 갔던 것이다.
물론 강영우 박사의 뒤에는 항상 아내 석은옥 씨가 있었다. 두 사람은 강 박사가 다니던 맹학교 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강 박사는 학생(學生)이었고 석씨는 그곳에 봉사 나온 여대생(女大生)이었다.
강 박사는 누이 같은 그녀에게 프러포즈했고 결국 결혼(結婚)해서 두 아들을 뒀다.
큰아들 폴(진석)은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조지타운대 안과 교수로 일하면서 역대 미 대통령 을 진료해 온 ‘워싱턴 안과의사연합’ 8인 멤버 중의 한 사람이자 워싱턴 포스트가 선정한 2011년 최고의 의사 ‘슈퍼 닥터’에 선정됐다.
둘째 크리스토퍼(진영)는 변호사로 미 민주당 원내총무실의 최연소 수석법률비서관을 거쳐 현재는 백악관의 선임 법률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말이지 남부러울 것 없던 강영우 박사에게 지난 연말 시한부 선고가 내려졌다. 췌장암(膵臟癌)이었다.
길어야 두 달 정도밖에는 생명을 이어 갈 수 없었다. 그는 지인(知人)들에게 담담 하게 e-메일을 보냈다. 감사(感謝)편지였다.
여러분으로 인해 저의 삶이 더욱 사랑으로 충만 하였고, 은혜(恩惠)로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후 임종(臨終) 을 앞두고 두 아들에게도 편지를 썼다. “해 보기 전에는 결코 포기(抛棄)하지 말라는 나의 말을 가슴속 깊이 새긴 채로 자라 준 너희들이 고맙고, 너희들의 아버지로 반평생을 살아왔다는 게 나에게는 축복이었다.
” 언제나 ‘나의 어둠을 밝혀 주는 촛불’이라 부르던 아내에게는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고마웠습니다.”는 말로 맺은 마지막 연서를 전했다.
그리고 그는 오늘의 자신이 있게끔 지원했던 국제로터리 재단에 25만 달러를 장학금으로 기부했다.
* 강 박사는 생전에 “‘nowhere’란 단어에 스페이스바 한 번 치면 ‘now here’로 바뀐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어디에도 (돌파구가) 없다”는 말이 “지금 여기” 로 바뀌듯이 그 어떤 절망과 역경에도 포기 하지 않았다.
그에게 포기(抛棄)란 암(癌)보다 더 무섭고 나쁜 것이었기 때문이다. “제가 살아온 인생은 보통사람들보다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결과적(結果的)으론 나쁜 일 때문에 내 삶에는 더 좋은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니 포기(抛棄)하지 마세요.” 이제 두 눈 멀쩡히 뜬 채 살아 있는 우리가 삶으로 응답할 차례다.
오늘도 사랑하는 하루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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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암보다 무서운건 포기다
제이
추천 2
조회 64
22.10.09 11:4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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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동 입니다 ~
Impossible 불가능을
I'm possible " 나는 할 수 있다
로 바꾼 위대한 승리 !!
감사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