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명숙 사건 위증' 무혐의 결론, 대검회의 14명중 10명 “불기소”
조선일보
표태준 기자
조백건 기자
김아사 기자
입력 2021.03.20 00:15 | 수정 2021.03.20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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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팀의 증언 회유 의혹, 재심의 14명중 10명이 “불기소”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수사 지휘권 발동으로 ‘한명숙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 수사팀의 ‘재소자 위증(僞證) 교사’ 의혹을 재심의한 대검 부장회의에서 당초 결정대로 이 사건을 무혐의 처분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박 장관의 첫 지휘권 발동의 취지를 검찰이 거부하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에 따라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이 사건 공소시효 만료일인 23일 전에 ‘무혐의 방침’을 확정할 예정이다.
회의 참석하는 고검장 차량… 쏟아지는 플래시 -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지하주차장으로 한 고검장 차량이 진입하고 있다. 이날 대검찰청에서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 수사팀의 ‘위증 교사 의혹’ 재심의를 위한 대검 부장 및 전국 고검장 확대회의가 열렸다. /뉴시스
이날 오전 10시부터 대검청사에서 조 대행 주재로 열린 회의에는 대검 부장(검사장급) 7명과 전국 일선 고검장 6명이 참여했다. 표결에는 조 대행을 포함해 이들 14명이 모두 참여했다. ‘불기소'가 10명으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2명이 ‘기소', 2명이 ‘기권'에 투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에 참석한 조상철 서울고검장 등 일선 고검장 6명은 전원 ‘불기소’에 표를 던진 것으로 전해진다. 또 대검 간부 7명 중에서도 일부는 ‘불기소’ 의견을 낸 셈이다.
박 장관은 17일 ‘대검 부장 회의를 통해 이 사건을 재심의하라'는 수사 지휘를 내렸다. 친(親)정권 성향 검사장이 다수 포진한 현 대검 부장단만으로 회의가 열릴 경우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조 대행은 일선 고검장까지 참석자를 확대했다. 이 사건의 담당 부서인 대검 감찰부의 한동수 감찰부장과 임은정 대검 감찰정책연구관은 이날 회의에 참석해 기존처럼 기소 의견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날 회의 결과에 따라 조 대행은 박 장관에게 이 사건을 무혐의 처분하겠다고 보고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사기죄를 저질러 수감 중인 재소자들의 일방적 주장에서 시작한 이 의혹은 전·현직 법무 장관이 두 번의 수사 지휘권을 발동해 조사와 재심의를 밀어붙였으나 결론은 달라지지 않았다.
한동수까지 표결 참가했지만… 與의 ‘한명숙 구하기’ 또 무산
대검 부장회의는 ‘한명숙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 수사팀의 ‘재소자 위증(僞證) 강요’ 의혹을 재심의하라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수사 지휘에도 19일 또다시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이날 회의 참석자 14명 중 10명이 ‘불기소·무혐의’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정치권과 법조계에선 “사기 전과자들의 일방적 주장에 정부·여당이 힘을 실어 ‘한명숙 구하기’에 나섰다가 제 발등을 찍은 것”이란 지적이 나왔다.
◇대검 부장 “무기명 투표”, 고검장 “기명 투표”
이날 회의는 오전 10시에 시작해 오후 2시 30분쯤까지 3시간가량(점심 시간 제외) 사건 기록 검토가 먼저 진행됐다. 이후 대검의 허정수 감찰3과장(무혐의 처분), 임은정 감찰정책연구관(기소 의견) 순으로 사건 처리 의견을 발표했고 회의에 참석한 전국 고검장 및 대검 부장들이 이들에게 사건 관련 질문을 했다고 한다. 이번 사건을 조사했던 박찬록 전 대검 인권수사자문관, 정태원 대검 감찰3과 팀장과 ‘한명숙 불법 정치자금 사건’ 수사를 했던 엄희준 창원지검 형사3부장도 회의에 나와 무혐의 의견을 밝혔다.
사건 처리 방향에 대한 참석자들 간 토론은 밤 9시쯤 시작됐고, 밤 11시쯤 표결 절차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번 의혹 관련자들을 기소해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여 공정성 차원에서 표결엔 참여하지 않기로 했던 대검 한동수 감찰부장이 갑자기 회의 말미에 “표결을 하겠다”고 하면서 참석자들 간 고성이 오가며 설전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빠지기로 했던 한 부장과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도 표결에 참여하기로 결론났다. 이후 한 부장은 이종근 대검 형사부장과 함께 “무기명 투표를 하자”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친(親) 정권 검사로 분류된다. 그런데 회의에 참석한 고검장 6명이 ‘기명 투표’를 요구하면서 양 측이 팽팽히 대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조 권한대행이 “회의 위원장 자격으로 제가 투표 방식을 결정하겠다”고 하자, 한 부장은 조 권한대행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대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다수결에 따라 기명 투표 방식으로 표결이 진행됐다고 한다.
참석자 다수는 이날 토론에서 “재소자들의 증언을 신뢰하기 힘들다”며 무혐의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의혹은 한 전 총리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건넨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의 감방 동료였던 최모씨(수감)가 작년 4월 초 법무부에 ’2010년 검찰 수사 과정에서 수사팀의 (허위) 법정 증언 강요가 있었다'는 취지의 진정서를 내면서 시작됐다.
그러자 작년 5월 한만호 전 대표의 또 다른 감방 동료인 한모씨(수감)도 뉴스타파·MBC 서면 인터뷰에서 ‘수사팀의 위증 교사가 있었다’고 했다. 반면 한만호씨의 동료 수감자였던 김모씨는 작년 6월 KBS 인터뷰에서 “위증 강요는 없었다”고 했다.
논란이 일자 대검 감찰부와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실이 작년 6월 이 의혹 조사에 나섰다.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실은 김씨와 진정서를 낸 최씨를 불러 조사했는데 둘 다 “한만호씨가 한 전 총리에게 돈을 건넸다고 하는 걸 들었다. 검찰이 허위 진술 강요한 적 없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위증 강요’ 의혹을 제기한 최씨가 ‘위증 강요가 없었다’고 말을 바꾼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실은 작년 7월 무혐의 결론을 내려 이를 대검에 보고했었다. 나머지 한씨는 대검 감찰부의 조사를 받았는데, 감찰부 내에서도 “한씨 진술은 신빙성이 낮다”는 말이 흘러나왔었다.
◇사기범 진정 내자, 與 “재조사” 총공세
허술한 이번 의혹이 지금까지 지속될 수 있었던 건 여권이 사기 전과자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기 때문이란 관측이 많다. 작년 4월 최씨가 ‘수사팀 위증 교사’ 진정서를 내고 한 달 뒤인 5월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는 당 회의에서 “검찰은 뇌물 혐의를 씌워 한 사람(한명숙) 인생을 무참하게 짓밟았다”며 “법무부와 검찰, 법원은 명예를 걸고 진실을 밝히는 일에 즉시 착수하길 바란다”고 했다. ‘한명숙 재조사’를 노골적으로 압박한 것이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기소 의견을 강하게 내비쳤던 임 연구관을 투입하고, 수사 지휘권까지 발동해 ‘한명숙 명예 회복’ 불씨를 되살리려다 또 실패한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