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심심하게 안 해요.(웃음) 듣는 대상이 있으니까 만들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친구들에게 들려주고 "근사한데"라는 말을 들을 때의 즐거움은 참으로 큰 것이죠.
- 히데, 1996년 한 잡지와의 인터뷰 -
정말, 최선을 다해서 쓰고 싶다. 처음에는 그저 괜찮게 생각하는 한 뮤지션의 생애를 정리하면서 나름대로의 공부를 하고 싶은 목적이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자료를 모으면 모을수록, 그리고 음악을 들으면 들을수록 이 남자의 ‘인생’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의 이야기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것은 리뷰이기도 하고 한 뮤지션에 대한 정리를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나라는 사람이 이미 세상을 떠난 한 뮤지션의 팬이 되어가는 과정을 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미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사람인데, 내가 이 사람에게 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의 모든 활동에서 드러나는 결과물이 하나의 분명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어쩌면 이건 글 쓰는 사람의 집착일지도 모르겠다. 무미건조한 평가가 아니라 내가 느끼는 이 사람에 대한 감정을 전달하고 싶다는 느낌. 그러면서 부담은 그만큼 커지고, 이리저리 글을 쓰고 지워도 좀처럼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물론 다른 뮤지션의 이야기를 이런 방식으로 쓴다 해도 비슷한 경험을 할 것이다. 하지만 이 리뷰 시리즈가 특별한 이유는, 그 이야기의 끝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아무리 그가 거둔 뛰어난 성과와 모든 영광을 이야기한다 해도 그것은 결국 비극으로 종결지을 수밖에 없고, 나는 그가 공연에서 즐겁게 웃으며 노래하는 것을 보고, 아이처럼 장난스럽게 했던 관련 자료와 인터뷰를 읽어가며 글을 써도, 어차피 이 모든 것은 그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정리하는 것이다. 그렇게 눈에 잡힐 듯 내 앞에서 음악과 공연을 선사하고, 나로서는 몇 년 만에 호감을 가지게 된 뮤지션의 최후에 대해 써야 한다는 것은 그의 팬이 몇 년간 겪었던 일을 한달 사이에 겪는 것과 비슷한 경험이다. 그래서 괴롭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정말 최선을 다해 잘 쓰고 싶다. 결국 그것이 끝을 향해 가는 길이라 할지라도.
모든 것이 이루어지다
그래서 지금 듣는 < PSYENCE >에 대한 감상은 지극히 복잡하다. 이 앨범은 히데가 가장 ‘행복한’ 순간에 만들어낸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그는 평생을 재밌게 살다 어느 순간 하늘로 가버린 사람이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 PSYENCE > 시절의 히데는 가장 행복한 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 시기는 샤벨타이거에서 Zilch에 이르기까지 여러 밴드를 결성하고 (그가 결성하지 않은 유일한 밴드가 엑스저팬이었다), 끊임없이 음악적인 변신을 보여준 히데가 ‘살아있는 동안’ 대중성과 음악성 양면에서 정점에 서 있었던(< JA, ZOO >와 < 3.2.1 >은 모두 그의 사후에 발매되었다) 가장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감성과 음악적 실력을 보여준 것이 바로 이때였다. 이 시기의 그는 < HIDE YOUR FACE >의 발매로 단지 엑스저팬의 기타리스트뿐만 아니라 솔로 뮤지션으로서도 분명한 자리를 잡아나가기 시작했고, 마지막 앨범 < DAHLIA >를 발매하기 전이었던 엑스저팬은 타이지가 탈퇴한 뒤 다소 음악적 소강상태에 머무르긴 했지만 여전히 일본 NO.1 록밴드의 위상을 가지고 있었으며, 히데 자신의 경우엔 솔로 투어의 공연밴드 멤버이자 장차 엑스저팬 해체 이후 그가 결성하는 밴드인 ‘Spread Beaver’의 멤버가 되는 뮤지션들의 라인업을 이즈음 거의 완성시켰다. 모든 것이 그가 하고자하는 대로 되어가던 시기였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정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 PSYENCE >가 그의 디스코그래피 중에서도 가장 화려한 색채를 띌 수 있는 것은 이 앨범이 그의 생전에 나온 마지막 앨범이기도 하지만, 그가 솔로 뮤지션으로서 안정된 자리를 잡은 상태에서 그것을 바탕으로 시도한 여러 시도들이 이 앨범에서 결실을 맺어 그의 음악적 성숙과 안정으로 나타나 그것이 < HIDE YOUR FACE > 이상의 대중성까지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HIDE YOUR FACE > 이후 히데의 개인적인 행보를 살펴보면, 우선 가장 흥미로운 것은 그가 < HIDE YOUR FACE > 시절 앨범의 가장 아쉬운 두 가지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컴퓨터와 베이스 연주, 혹은 베이스를 통한 편곡을 보다 집중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1집 시절부터 앨범의 공동 프로듀서와 컴퓨터 작업, 믹싱 등을 했던 이나다(스프레드 비버의 컴퓨터를 담당하는 I.N.A)와 함께 컴퓨터 음악을 보다 확고하게 파고들었고, 이를 통해 여러 컴퓨터 사운드에 관한 실험을 하면서 부분적으로 홈 레코딩까지 시도하게 되었다. 또한 그는 1집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쓰거나 세션을 썼던 베이스를 자신이 직접 배우면서 본격적으로 파고들었는데, 이런 노력의 결과로 앨범 수록곡 중 총 11곡(이중 ‘BACTERIA'의 베이스 솔로는 세션 다카시 카네유치가 연주)을 자신이 직접 연주하게 될 정도가 되었다. 물론 히데정도의 기타리스트가 베이스를 배우면 어느 정도는 칠 수 있는 것이겠지만, ’LEMONed I Scream'처럼 아예 펑키한 베이스 연주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곡을 만드는 것은 물론,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베이스를 익히고 기타뿐만 아니라 베이스의 운용을 함께 생각하며 만든 곡들의 구성은 이전 앨범에서 드러난 문제들을 말끔히 해소시켜주었다.
하지만 < PSYENCE >에는 히데 개인의 노력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 PSYENCE > 시절 히데가 얻은 가장 중요한 성과는 음악보다 오히려 ‘사람’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그는 이 앨범에서 자신의 이후 작업에 필요한 많은 사람들을 얻는다. 우선 이나다와의 작업이 보다 본 궤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 JA, ZOO > 앨범의 녹음에도 참여하는 엔지니어 에릭 웨스트폴 (Eric Westfall)과 빌 케네디(Bill Kennedy)를 영입해 녹음의 완성도를 더욱 높일 수 있었다. 에릭 웨스트폴은 이미 히데의 앨범 이전 슬라이(Sly)와 어스쉐이커(Earthshaker) 등의 일본 록밴드의 엔지니어를 담당해 일본 뮤지션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했었고, 빌 케네디는 히데가 좋아하는 칩 트릭(Cheap Trick)이나 딥퍼플같은 하드록 밴드의 엔지니어를 담당해 록 사운드를 뽑아내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이 둘은 소리가 거칠게 뭉치는 감이 있었던 < HIDE YOUR FACE> 와 달리 < PSYENCE >에서 보다 선명한 믹싱을 선보일 뿐만 아니라 1집에 비해 오히려 인더스트리얼보다는 로큰롤과 하드록 등을 원천으로 삼고 있는 이 앨범의 록 사운드가 가지고 있는 질감을 보다 분명히 내주었다. 강렬한 기타 사운드 못지않게 베이스와 드럼의 리듬 운용이 중요한 ‘限界破裂’에서의 베이스와 드럼톤의 선명함은 빌 케네디의 믹싱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세션에 있어서도 지난 앨범의 세션들이 말 그대로 세션이었다면, 이 앨범에서는 이후 Spread Beaver에 참여할 인물들뿐만 아니라 그가 투어 등으로 상당한 교분을 나누게 되는 밴드들이나 세션들을 참여시키면서 < JA, ZOO >의 기반을 다듬었다. 이 앨범에서 드럼을 친 조(JOE)는 Spread Beaver의 드러머이고, 또 다른 드러머인 야나(YANA)는 히데가 발견한(물론 그전에도 미국에서 반응이 나름대로 있었다고 하지만) 밴드 제펫 스토어(ZEPPET STORE)의 멤버였다. 그리고 히데를 제외하면 가장 많은 곡에서 베이스를 친 타카시 가네유치(TAKASHI KANEUCHI)는 애초에 돈을 주고 고용한 베이시스트가 아니라 순전히 친분에 의해, 히데가 갑자기 “이 사람이 꼭 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갑자기 부탁을 해서 연주를 해준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그는 이 앨범의 발매 직전에 자신이 좋아하는 여러 인디 뮤지션들과 함께 프로젝트 앨범 ‘LEMONed'(히데는 限界破裂과 BACTERIA를 수록시켰다)를 발매하면서 레이블 ’LEMONed STORE'를 설립했다. 그는 이제 엑스저팬의 기타리스트나 성공적인 솔로 뮤지션으로서 뿐만 아니라 일본 록씬의 한 스타일을 대표할만한 인물로 자리잡을 수 있는 기반을 만든 것이다. 음악적 실력은 높아지고, 그는 쇠락하는 엑스저팬과는 별개로 또 다른 공동체를 만들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히데가 가면같은 짙은 화장에 ‘광기’를 보여주는 대신 온갖 ‘해프닝’을 일으키면서 무대를 휘저어도 당연하다는 듯이 바라볼 수 있을 만큼 히데의 변화와 발전은 뚜렷했고, 모든 것은 안정적인 자리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 PSYENCE >가 히데의 앨범 중 완성도와 별개로(개인적으로는 아예 평가기준이 달라질법한 Zilch < 3.2.1 > 앨범을 제외하면 세 장의 솔로 앨범 중 이 앨범이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가장 화려한 앨범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앨범이 이런 안정과 성숙 속에서도 불안하면서도 열정적인 상태에서 히데 자신의 가장 솔직한 감정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부터 히데는 자신의 가사가 일종의 일기 같은 것이라고 했지만, 이 앨범은 정말로 히데의 감성을 거의 그대로 풀어놓은 앨범에 가깝다. 왜냐하면, 이전에도 거론했지만 < PSYENCE >는 엑스저팬의 < DAHLIA > 앨범을 마친 뒤 불과 1개월 만에 모든 작업을 완료한 앨범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ERASE'같은 곡은 앨범의 두 번째 곡으로 넣기 위해 불과 3일 만에 작업을 완료했다고 한다(히데는 이 앨범의 제작동안 ’만들기 위해서‘ 곡을 쓰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악상이 떠오르는 순간까지 기다려 그 순간 재빠르게 곡을 만들었다고 후에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그만큼 이 앨범은 히데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감성에 충실하고, 거기서 나오는 감성의 일관성, 즉 그만의 멜로디와 전체적인 앨범의 흐름 속에 드러나는 어떤 정서가 여러 장르로 흩어져 있는 듯한 이 앨범을 일관되게 이끌어가고 있다. 히데 개인의 음악적 테크닉의 발전과 이 앨범을 통해 영입한 여러 인물들이 이 앨범의 'SIENCE'를 지탱하는 두 개의 축이라면, 이 앨범의 독특한 제작방식과 히데 자신의 솔직한 감성은 곧 앨범의 바탕을 이루는 토양인 ’PSYCHO'가 되어 충동적인 정신과 음악적, 과학적인 테크닉의 결합물 < PSYECNE >를 만들어낸 것이다.
HIDE, THE BASSIST.
그렇게 해서 드러난 < PSYENCE > 속 히데의 정서는 한마디로 ‘안정’과 ‘행복’, 그리고 ‘재미’로 가득차있다. < HIDE YOUR FACE >와 < PSYENCE >의 가장 큰 차이라면, 그것은 세세한 사운드 운용의 변화보다는 바로 이 정서적 변화에 관한 것일 것이다. < HIDE YOUR FACE >의 히데는 어떤 곡이건 자신이 ‘광기’에 차있고, 상처입었음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그게 ‘Dice'나 ’Doubt'같은 폭발성을 갖춘 곡이건, ‘A STORY'의 쓸쓸함이건, ’D.O.D'나 ‘OBLAAT'의 약간은 코믹한 부분이건 간에, 모든 곡들은 그 정서 안에서 극단을 향해 치달았다. 한번 달리기 시작한 곡은 멈추지 않았고, ’D.O.D'나 ‘OBLAAT'처럼 거친 사운드에 경쾌한 리듬을 담고 있는 곡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반드시 스피드 업을 거듭해 결국 정신없는 혼란으로 이어졌으며, ’A STORY'는 아예 나직하게 읊조리는 하나의 멜로디만으로 곡을 끌고 나갔다. 모든 곡은 극단적이었고, 그 안에는 상처받은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위악과 자학이 함께 존재했다. 그렇기에 곡은 그 원초적인 힘이 떨어지는 순간 갑자기 매력을 상실하기도 했다. 이것이 앨범에 대한 대중적인 고려와 함께 섞이면서 앨범은 어느 정도의 일관성을 가지긴 했으나 부분적으로 분열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PSYENCE'는 외적으로 다양한 스타일을 오가면서도 그 안에서 확실한 일관된 정서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우선 앨범 전체에 있는 ’가벼움‘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얄팍함이나 경박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극단으로 치달았던 < HIDE YOUR FACE >와 달리 이 앨범 전체에 퍼져있는 여유와, 그것을 즐기는 모습이 뚜렷이 드러나는 그의 곡들의 분위기라고 해야 할 것이다. 지난 앨범이 택한 것이 펑크와 인더스트리얼의 극단성이었다면, 이번 앨범이 중심에 두고 있는 것은 로큰롤/하드록이 가지고 있는 리듬감이며, 히데의 곡들은 아무리 강력한 사운드를 가진 곡에서도 그 리듬감에서 오는 즐거움을 잊지 않는다.
이를테면 ’限界破裂‘이나 ’DAMAGE', 'BACTERIA'는 < HIDE YOUR FACE >의 펑크/인더스트리얼 성향의 곡과 비슷한 사운드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 중심에는 하드록 리듬에 맞춰 거친 사운드 속에서도 흥겨움을 유지하는 훅과 탄탄한 리듬파트가 있고, 반대로 ‘LEMONed I Scream'이나 ’Good bye' 같이 소프트한 곡에서는 < HIDE YOUR FACE >의 ‘Tell Me’나 ‘EYES LOVE YOU'처럼 빠르게 수평적으로 진행되면서 조금씩 코드를 바꾸어 가면 갈수록 강해지는 구성이 아니라 최대한 여유있는 흐름을 가지고 있다. 이 곡들은 분명한 기승전결의 흐름 속에서 예전처럼 극단으로 치닫는 대신 히데의 보컬로 멜로디가 올라가는 그 순간, 그래서 여전히 뻗어나갈 수 있는 밝고 희망찬 느낌이 존재하는 그 순간을 그대로 담아둠으로서 밝고 따뜻한 느낌을 전달한다. 신나게, 밝게, 혹은 희망차게. 히데에게서 이렇게 극단으로 치닫지 않고 자기 스타일속에서 안정을 찾은 것은 이 앨범이 유일하다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그의 ‘SIENCE'적인 측면이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히데가 베이스를 배우면서 가장 크게 얻은 소득은, 사운드의 측면보다는 오히려 그가 마음대로 스케일을 조정하면서 작곡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기타로서 거의 모든 것을 해결하던 < HIDE YOUR FACE > 시절의 히데가 쓰는 멜로디라인은 어떤 방식으로 작곡을 하건 매우 단조로운 구성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기타리프의 변화에 따라 마치 계단을 올라가듯 끊어지며 한 단계씩 올라가는 멜로디라인은 스피드는 존재했지만 감성적인 면에서 어느 한 방향을 밖에 보여주지 못했고, 그것이 마무리되면 곡은 다시 그것을 반복하는 것 외에는 곡을 이끌어나갈 특별한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그가 베이스를 통해 리듬파트와 멜로디 파트의 유기적인 연결을 보다 명확히 이해하게 되면서, 그의 작곡은 전체적으로 매우 자연스러운 흐름을 보여주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곡의 완급을 확실하게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 HIDE YOUR FACE >의 곡들, 특히 ’Doubt'나 ‘HONEY BLADE' 같은 곡들은 한번 강력하게 치고 나간 다음에는 다시 후렴구를 등장시키는 부분에 이르기까지 갑자기 리듬을 죽인채로 속도를 줄여 억지스럽게 응축과 폭발을 이어가려 했지만, 이 앨범의 모든 곡들은 베이스를 중심으로 한 적당한 완급조절과 그루브한 리듬, 그리고 보다 다양해진 사운드로 리듬을 유지한 채 곡의 흐름을 조절한다. 히데의 기타연주는 연주라기보다는 오히려 ’음향‘이라는 측면에서 인정해야할 부분이 많아 보일정도로 다양한 톤으로 곡에 변화를 주고 있고, 여기에 보다 다양해진 컴퓨터 사운드는 < HIDE YOUR FACE >의 리듬프로그래밍처럼 비슷한 톤으로 곡 중심에 자리잡기 보다는 실제 연주 사이에서 적당히 맛을 내는 정도에 머무른다. 이를테면 앨범 초반을 때리는 ’ERASE'의 퍼지는 느낌의 리듬 프로그래밍이나 ‘LEMONed I Scream'에서 베이스, 기타의 밑에서 계속 잔잔하게 곡의 추진력을 덧붙여주는 실제 드럼과 비슷한 느낌을 내주는 리듬 프로그래밍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런 것들이 겉에 드러나는 성과라면 히데의 작곡 구성에 있어서의 발전은 겉에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오히려 이런 것들보다 더욱 의미있는 발전이라고 할만하다. 전작에서 히데의 곡들은 상당히 강한 훅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은 거의 그 훅 자체로, 곡의 기승전결에서 늘 절정에 해당하면서 예정된 수순으로 폭발하고, 그 뒤에 계속 반복되는 구성을 취하면서 훅의 매력을 완벽하게 살려내지 못했었다. 반면 < PSYENCE >에서 히데의 작곡은 자신이 발전한 요소들을 가장 ‘대중적’으로 짜임새 있는 방법으로 넣는다. 전작에서 훅이 훅이라기보다는 곡 뒤에 들어가는 ‘후렴구’의 역할에 충실했다면, < PSYENCE >는 훅과 훅만큼이나 강한 집중력을 갖는 또 다른 멜로디를 만들고, 이것을 순서대로 가져가거나, 역으로 뒤집거나, 혹은 교차시키면서 계속 곡의 집중력을 유지하게 된다. ‘限界破裂’에서 실질적으로 훅은 후렴구의 ‘Therapy....'이기도 하지만, 결국 곡을 이끄는 것은 초반부터 귀를 잡아끄는 로큰롤 리듬이며, 이 두 가지가 교차되고, 거기에 또 다른 후렴구의 멜로디가 끼어들면서 곡은 탄탄한 짜임새를 가지고 끝까지 갈 수 있게 된다.
균형과 긍정으로
모든 곡들은 짜임새 있는 전개를 보여주고 있고, 그것들은 다양한 장르를 오가면서도 한층 더 탄탄해진 리듬파트의 완성도를 바탕으로 일관된 흐름을 보여주고 있으며, 곡들도 보다 절묘하게 분배되어 있다. ’PSYENCE'와 ‘ODEO COWBOY', ’LEMONed I Scream' 'Cafe Le Psyence', 'ATOMIC M.O.M' 등의 곡들을 기점으로 곡들은 히데 특유의 록트랙들과 모던록, 그리고 인더스트리얼/펑크 등으로 자연스러운 흐름을 보여주고 있고, 그 사이 재즈부터 하드록, 컨트리, 펑크, 인더스트리얼, 모던록 등을 오가며 다양한 장르를 히데식으로 선보이고 있다.
보다 대중적인 임팩트가 강해진 멜로디라인에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던 < HIDE YOUR FACE >에서의 몰아치기가 빠지는 대신 훨씬 유니크한 리듬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여기서 나오는 밝고 희망적인 앨범의 분위기는 < PSYENCE >를 결코 한 가지 색깔만으로 끌고 가지 않으면서도 묘하게 안정된 느낌을 만들어내었다. 안정된 자리를 잡은 다재다능한 ‘어른’이 즐거운 마음으로 들려주는 음악이 주는 편안함과 행복함. 그것은 < PSYENCE >를 이끄는 힘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 앨범의 모든 곡을 싱글화 시켰던 이유였다. 모든 곡들에는 훅이 남아있고, 그것은 긍정적인 느낌을 주었으며, 사운드 안에는 즐길 리듬이 가득했으니 한곡 한곡이 대중의 귀를 잡아끌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음악적인 변화는 히데의 가사에도 그대로 드러났다. < HIDE YOUR FACE > 시절의 히데의 가사가 상처입은 사람의 자학과 분노를 그대로 드러내면서 다분히 위악적이고 기괴한 느낌을 주었다면, 이 앨범에서 히데의 가사는 세상에 대한 자신감과 약간의 냉소, 그리고 보다 안정된 묘사와 그 나름의 ‘삐딱한 긍정’들이 존재한다. 그것은 세상에 대한 일종의 포기일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지난 앨범 이상의, ‘어른스러운 의지’에 가까웠다. 자신의 상처를 그대로 드러내는 < HIDE YOUR FACE > 시절의 가사와 ‘사랑이라면 거리에서 살수 있어. 꿈같은 건 내일이면 변할 거야.... / 내 머리를 지워, 내 마음을 지워, 제대로 된 노래를 부를 거야’라는 ‘ERASE'의 가사를 비교해보라. 기괴함을 즐기던 히데 특유의 묘사는 많이 줄어들었고, 그 대신 보다 명확한 현실인식과 희망이 존재한다. 그것은 더러운 세상에서 자신을 감추기 위해 ’눈알'을 덮어쓴다는 ‘OBLAAT'의 가사와 하드록 리듬 안에서 세상의 ’박테리아‘같은 존재들을 신나게 비꼬는 ’BACTERIA' 에서도 그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PSYENCE'의 수록곡들에서 어떤 우열을 가린다는 것은 좀처럼 어려운 일이다. 전반적인 완성도가 매우 뛰어날 뿐만 아니라 각자 다른 스타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모두 대중적인 포인트를 가지고 있고, 각각의 곡들이 앨범에서 나름의 역할을 분명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래도 곡에 대해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있다면, 그것은 이 앨범에서 보여주는 히데의 음악적인 변화와 감성적 변화가 일으키는 그 효과, 즉 ’재미‘(그것이 신나는 쪽이든 감성적으로 풍부한 쪽이든 간에)라는 측면에서 얼마나 유니크한 모습을 보여주었냐는 데 있다.
PSYCHOMMUNITY에서 PSYENCE로
앨범의 오프닝곡 ’PSYENCE'는 < HIDE YOUR FACE >의 ‘PSYCHOMMUNITY'가 그랬듯 그런 < PSYENCE >의 특징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PSYCHOMMUNITY'는 말 그대로 ‘소년’의 감성이 어떻게 확장되는가를 히데식으로 보여준 곡이라고 할 수 있었다. 곡의 감성의 원천은 우울한 감성의 기타연주로부터 시작되었고, 곧바로 기타와 스내어 소리가 계속 쌓이는 거대한 스케일로 변화하였으며, 히데의 기타연주를 제외한 다른 파트는 대부분 컴퓨터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 곡의 흐름은 히데가 밝혔듯 라이브에서 쓰기엔 너무나 대곡 스케일이었고, 실제로 히데가 보여주는 전반부의 소박한 감성에 비해 후반부의 진행은 지나치게 거대해서 곡의 일관성을 해쳤다. 어떻게든 시작해도 끝까지 가는 극단성, 그리고 아직은 불완전하고 단선적인 편곡방법의 문제가 오프닝부터 그대로 드러났던 것이다.
그러나 ‘PSYENCE'는 그것을 사운드간의 유니크한 진행과 리듬의 부각을 통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재즈 사운드를 통해 마치 ’007‘같은 영화 스코어의 긴박한 느낌과 여유를 한꺼번에 주는 이 곡은, 리듬파트의 진행과 사운드의 효과적인 배치를 통해 자유로운 완급조절을 하면서 유니크한 곡 진행을 보여주고 있다. 이 곡은 실질적으로 하나의 리듬을 반복하는 것에 가깝지만, 그것을 매우 효과적으로 변화시키며 곡의 끝까지 긴장감을 잃지 않는다. 중간 중간마다 울리는 강한 관악세션의 사운드는 곡의 리듬을 부드럽게 변화시키고, 이렇게 나뉜 챕터 안에서 곡은 베이스로부터 시작해 관악세션, 그리고 드럼 연주 등으로 점점 박진감을 더해가면서 곡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기도 하고, 다시 관악세션의 강한 음과 함께 리듬 패턴을 그대로 유지한 채 스윙감을 전달하기도 한다. 또한 그 이후에는 원래의 리듬파트에 리듬 프로그래밍과 스크래치 등을 배열해 곡의 박진감을 더하며, 다시 스윙감을 강조하는 부분에서는 혼세션을 강조한 상태에서 화려한 터치의 재즈 피아노를 한대 더 깔아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 뒤, 그 다음에 드디어 히데의 기타연주를 등장시킴으로서 곡을 절정으로 이끌어간다.
리듬은 단 하나이기에 첫 부분부터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매우 기억하기 쉽게 만들고, 그러면서도 곡은 다채로운 변화를 보여주며, 이런 동일한 리듬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리듬 자체가 가지고 있는 펑키함과 맞물려 이 앨범의 오프닝 곡이 왜 재즈로 나오게 됐는지를 확실히 보여준다. ’PSYENCE'에서 보여주는 히데의 스타일을 알리기에, 그리고 앨범에서 보여주는 다양한 변화를 보여주기에 재즈는 의외로 어울리는 장르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곡의 급격한 변화 사이에서 언제나 중심을 잃지 않는 베이스 연주가 있다. 이 곡의 베이스가 전달하는 펑키함과 스윙의 느낌은 이 곡에 일관성을 부여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이 앨범에서 히데가 보여주는 특징들을 집약시켜놓은 것에 가깝다. 신나는 리듬, 유기적인 편곡,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운드 전체에서 나타나는 가벼운 즐거움과 여유로 가득한 분위기. 그는 테크닉적으로도 발전했지만, 동시에 정서적으로도 보다 낙관적으로, 극단이 아닌 어느 한 지점에서 자신의 모습을 풀어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의 구현이 얼마나 이루어졌느냐에 따라 앨범의 곡들은 앨범 안에서 어느 정도의 완성도의 차이를 갖는다. 물론 이것은 정확하게 말하면 앨범 곡 배치의 문제 때문에 각기 다른 스타일을 가지는 것이기는 하지만, 곡 자체로 볼 때는 그런 여유와 리듬감, 그리고 < HIDE YOUR FACE >에서 보여준 작법상의 전형적인 모습을 얼마나 없앴느냐에 따라 곡의 완성도에서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히데 특유의 펑크/하드록/인더스트리얼 성향의 곡들에서 이 차이가 보다 확실하게 드러나는 편인데, ‘限界破裂’, ‘DAMAGE', 'BEAUTY & STUPID', 'BACTERIA'등의 곡들이 보다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주는 곡들이라면, ’ERASE'나 ‘LASSIE', 'POSE'등은 ’상대적으로‘ 조금 아쉬운 곡들이다.
HIDE BACTERIA BEAT THE 'WORLD'
이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주는 것은 역시 ‘限界破裂’과 ‘BACTERIA'다. ‘限界破裂’은 히데 스스로가 자신이 만든 곡 중에 세손가락 안에 든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그 스스로도 완성도를 자부했던 곡으로, 실제로 앨범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 우선 이 곡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리프 자체가 ‘훅’이 되었다는 것이다. < HIDE YOUR FACE >에서 히데의 곡들은 어느 정도 그루브한 느낌을 가지더라도 결국 펑크스타일의 기타와 인더스트리얼 스타일의 리듬 프로그래밍으로 곡을 이끌어갔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몰아치는 것 외에는 리듬을 만들어낼 방법이 없었다. 아예 ‘BLUE SKY COMPLEX'처럼 관악세션을 앞세워 그루브한 진행을 염두에 두고 만들던지 아니면 ‘HONEY BLADE'같은 곡에서 그나마 훅부분의 그루브한 리듬감을 강조했지만 그것도 잠시였고, 그것이 곡 전체의 유연한 흐름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반면 이 앨범, 특히 ‘限界破裂’에서는 전혀 다르다. 이 곡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펑키한 베이스와 기타가 만들어낸 하나의 리프다. 전작의 리프가 리프라기보다는 대부분 몰아치다가 톤을 바꿔주거나, 멜로디를 따라 그대로 기타연주가 (혹은 기타연주를 따라 멜로디가) 바뀌는 진행을 가지고 있었던 것과 달리, ‘限界破裂’에서는 펑키한 리프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이어지면서 곡의 리듬감을 유지하고 있고, 이 리듬은 첫 부분에서 바로 스카에 가까운 기타리프와 베이스의 교차를 통해 강하게 각인되면서 이 곡의 실질적인 훅을 담당하고 있다. 이 리프 자체가 앨범의 멜로디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이것이 계속 반복되면서 곡은 확실히 기억할만한 훅을 얻게 되고, 이 탄탄한 리듬라인, 특히 베이스라인은 곡이 유연하게 완급조절을 할 수 있도록 만든다.
기타만으로 연주할 때는 곡이 변화할 때마다 급격한 변화를 보여주었지만, 이 곡에서는 베이스를 통해 그것을 보다 자연스럽게 변화시킬 수 있었다. 타케시가 중간중간 들려주는 베이스 솔로 연주는 이 곡의 그루브한 느낌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예이고, 이는 동시에 이 곡의 유니크한 멜로디 진행을 가능케 한다. 리프자체가 하나의 멜로디라인을 형성하고 있기에 곡의 멜로디는 1절과 2절의 차이에서 볼 수 있듯 멜로디 길이를 마음대로 자를 수 있고, 동시에 유연하게 변화하는 베이스는 거기서 곧바로 자연스럽게 후렴구로 넘어갈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이 곡의 장점이 설명되지는 않는다. 감각적인 리프 하나를 만들어내는 것은 어쩌면 어지간한 뮤지션들이라면 할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기반으로 어떻게 짜임새 있는 멜로디를 만들고, 그것을 질리지 않게 편곡하느냐하는 것이다. 이 곡의 멜로디라인은 매우 ‘영리’하다. 이 곡은 결코 잘 만든 리프 하나로 모든 것을 때우려하지 않는다.
리프가 곡 전반부에서 하나의 훅 역할을 해준다면, 이 곡은 그에 이어 확실하게 임팩트를 줄 수 있는 후렴구를 만들어내고, 그것도 보통 쓰이는 A-B-A-B-C 같은 진행이 아니라 A-B-A-C의 진행을 보여주며 순간적으로 곡의 페이스를 끌어올리고, 그 뒤에는 다시 곡의 정점에서 ‘Therapy...'처럼 확실히 기억할 수 있는 훅을 ’새롭게‘ 더 넣어 곡에 더욱 집중력을 불어넣는다. 신나는 리듬 속에서 곡은 분명한 고저가 있고, 그것은 리듬 속에 통합되어 아무리 강한 사운드가 등장해도 그 유쾌함을 잃지 않으며, 그렇기에 록 사운드 속에서도 ’신나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멜로디를 시종일관 제시한다. 훅으로 가득차있는, 그러나 결코 그것을 ’팝‘에서 빌려오지 않고 록의 리듬에서 가져오는 곡. 이것은 히데가 < PSYENCE > 이후 보여준 그만의 경지라고 할만한 것이었다.
또한 그의 사운드 메이킹은 더욱 정교해졌다. 물론 이것은 어떤 사운드가 들어오고 빠져도 끝까지 남아서 곡의 리듬감을 이어주는 베이스파트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겠지만(이 곡에서 히데와 콤비를 이루며 파워넘치면서도 그루브한 리듬 메이킹을 보여주는 타카시의 연주는 이 앨범 내에서도 최고의 완성도를 보여준다), 그것의 다채로운 외양을 책임지는 것은 결국 화려한 사운드의 변화다. 히데의 기타톤은 곡의 시작부터 끝까지 점점 더 거칠어지면서도 각자의 뚜렷한 질감을 주어 점점 더 강해지는 곡의 파워를 전달하고 있고(특히 2절 후렴구에서의 노이즈를 강조한 디스토션 이펙트의 사용같은 것들), 멜로디의 사이사이에는 여러 이펙트들이 들어가면서 곡의 변화를 강조하고 있다. 곡의 뼈대는 베이스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지만, 결국 곡의 추진력은 기타가 보장하는 것이며, 이 두 가지가 합쳐진 곡의 유니크한 리듬은 결국 이 곡에 무거움은 줄이면서도 거친 느낌은 존재하게 만들어 ‘대중적인 하드록 트랙’을 완성시킨다.
물론 히데의 말로는 < JA, ZOO >에 이르러서야 하고 싶은 것과 대중적인 것의 결합을 보여줬다고 하지만 < HIDE YOUR FACE >에서 대중적인 것과 히데 나름의 스타일을 상당부분 분리시킬 수 밖에 없었던 것에 비교하면 이곡은 놀라울 정도의 성장을 보여주었으며, 그 급격한 성장에 어울리지 않는 여유마저 갖추고 있다. 1집에서는 부분적으로 드러났던 ‘재미있는 소년’의 감성이 이 앨범에서는 업그레이드되어 주류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는 가사에서도 드러난다. 같은 사랑을 이야기해도 자기 파괴적이거나 공격적인 느낌을 주었던 < HIDE YOUR FACE >와 달리, 이 곡은 사랑에 대한 그리움과 히데만의 쿨한 태도를 좀더 여유있게 가져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대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아파 / 지켜줘야 해 깨져버리니까 / 그대는 알지 못한다 해도 / 그대는 나의 약이야 / 마시고 있는 것은 나뿐이겠지?’같은 부분에서 드러나는 히데의 ‘감수성’(!)은 질척거리게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으면서도 멋진 방법으로 그리움을 표현한다. 같은 내용이라 하더라도 한결 현실적인 토대에서 자신의 마음을 위악적이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하게 된 것이다. 작법, 사운드, 가사까지, 앨범의 실질적인 첫 트랙 ‘ERASE'가 오프닝인 ‘PSYENCE'에 이어 등장해 앨범에 힘을 실어주는 정도의 기능적인 역할에 그친다면, ’限界破裂‘은 < PSYENCE >라는 앨범 전체의 성과를 모두 간직하고 있는 곡이라고 할만하다.
또한 ‘BACTERIA'는 하드록적인 접근방식을 취한 ’限界破裂‘과 달리 보다 펑크/인더스트리얼쪽에 다가서면서 또 하나의 지점을 보여주는 곡이라 할만하다. 곡 초반부터 노이즈처리된 각종 이펙트와 리듬 프로그래밍 등을 등장시키며 인더스트리얼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이 곡은, ’限界破裂‘에서 보여준 작법을 더욱 극단적으로 몰고 간 것에 가깝다. 이 곡 초반부터 등장하는 코러스라인이 만들어내는 훅은 ’限界破裂‘과 마찬가지로 이 곡의 핵심적인 리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히데가 부르는 보컬의 멜로디라인이기도 하다. 즉, 이 곡은 한 개의 리프로 세 가지 역할을 하고, 리프가 연주되는 사이 보컬 멜로디라인과 코러스를 계속 섞는 방법으로 곡의 전반부를 진행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멜로디의 모든 부분은 상당한 집중력을 가지고 있고, 곡의 후반부는 여기에 ’BACTERIA...'같은 훅이 하나 더 끼어들면서 곡 전체가 훅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운드는 노이즈 가득한 기타와 각종 이펙트들로 꾸며져 있어 거칠고 정신없이 진행되는 듯하지만, 그것을 이끄는 것은 로큰롤에 가까운 가볍고 흥겨운 훅의 연속이며, 이는 인더스트리얼 사운드의 극단성속에 대중성을 정확하게 잡아낸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마구 질러대는 곡속에 ‘춤출 수 있는’ 훅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들을 때는 당연해 보이지만 듣고 나면 오히려 새로운 느낌을 주는 그런 것이라 할만하다. 거칠고 강한 모습 속에서도 드러나는 여유와 재미가 이런 강한 사운드의 곡마저 ‘싱글’이 될 수 있게 하는 힘이 되는 것이다. 히데가 펑크와 인더스트리얼을 즐겨 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 히데를 설명하는 것은 그의 사운드적인 외양만을 설명하는 것에 가깝다. 그 핵심에는 로큰롤, 하드록, 스카, 재즈 등 다양한 리듬패턴에 대한 이해가 있다.
또한 사운드 메이킹의 관점에서 이 곡은 ’限界破裂‘과는 또 다른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는데, ’限界破裂‘이 매우 화려한 변화를 하는 사운드와 그 안에서 중심을 지키는 유니크한 베이스라인으로 곡을 꾸몄다면, 이 곡은 노이즈를 극대화시킨 기타연주와 리듬 프로그래밍, 드럼 등으로 곡의 뼈대를 잡은 다음 그 앞뒤에 이어지는 극단적인 변화로 곡을 이끌어간다. 이를테면 전주에서는 어쿠스틱 기타의 사운드를 등장시켜 그 뒤의 폭발적인 변화와 이어가고, 중반에는 갑자기 튀어나오는 베이스 솔로와 기타솔로 등을 등장시켜 극단적으로 반대되는 분위기를 이끌거나, 혹은 노이즈의 파장이 가득한 사운드 안에서 날카롭게 분위기를 더욱 강하게 몰고 간다. 물론 이것들이 어색하지 않은 것은 이 모든 사운드들이 하나의 리프로부터 변용되어 탄탄한 연결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빼어난 곡 구성에 곡 전체에 노이즈를 깔면서도 분명하게 튀어나오는 각 사운드들의 믹싱까지 모든 면에서 ’限界破裂‘과 함께 앨범의 베스트로 분류할만하고, 그러면서도 전작의 ’Dice'나 ‘Doubt'같은 곡들보다도 ’여유로운‘ 리듬을 바탕으로 훨씬 대중적인 접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다만 중간중간 들어가는 급변하는 사운드를 제외하면 워낙 훅 중심으로 이루어진 곡이라 그것이 점점 반복되면서 ’限界破裂‘에 비해 중반 이후에 조금 유니크한 재미가 덜한 것이 아쉬운 점이라면 아쉬운 점이다.
그러나, 그것은 작은 흠에 불과할 뿐이다. 이 곡들은 단지 히데의 음악들 중 잘 만든 곡으로 끝나는 곡이 아니었다. 이 곡들은 일본이 1990년대 서구 록씬의 트렌드를 받아들이면서 그것을 완벽한 ‘팝’의 대중성속에 용해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는 히데의 < JA, ZOO >와 < 3.2.1 >를 통해 보다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지만, 오히려 미국에서는 그당시 흐름이 가버린 로큰롤/하드록의 본질적인 리듬 패턴을 펑크/인더스트리얼 등과 교배해 그것을 훅 위주의 팝적인 스타일로 용해해 록의 에너지와 팝의 대중성을 섞은 것은 그가 일본인이라는 인종적인 문제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서구에서도 관심을 가질법한 완성도였다고 생각된다(물론 이 역시 그 당시의 흐름과는 상관없는 것이었을지도 모르지만).
OPEN YOUR FACE
이 두곡이 작곡과 사운드 양면에서 모두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준다면, ‘BEAUTY & STUPID'는 한마디로 ’훅‘의 승리를 보여주는 곡이다. 이 곡의 전반적인 사운드 편곡은 < PSYENCE >의 기조를 따르고 있기는 하지만 ’限界破裂‘만큼 다양한 톤의 변화에 따른 오밀조밀한 변화나 ’BACTERIA'같은 기발한 변화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로큰롤 리듬을 바탕에 둔 채 그 리프역시 나름의 훅 역할을 하지만 ’限界破裂‘이나 ’BACTERIA'처럼 처음부터 완벽하게 곡의 느낌을 장악하기 보다는 ‘연주’로서 곡의 리듬 파트를 충실히 하는 쪽에 가깝다. 또한 하나의 리듬을 가지고 쉴 새 없이 변화하면서도 늘어지는 부분 하나 없었던 두 곡에 비해 이 곡은 브릿지 멜로디를 넣을 때 리듬을 바탕으로 매끄러운 흐름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조성을 바꾸는 것이 확연히 드러나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전개를 보여준다는 것을 보여줄 만큼 멜로디의 전개에서도 앞의 두곡에 비해 ‘완벽하게’ 매끄러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또한 리듬감을 유지한 채 진행되는 기타솔로로 꾸며지는 간주역시 앞의 두곡에 비해 상당히 전형적인 히데 스타일의 편곡이라 할만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곡은 두 곡에서 미처 못 가진 강점, 즉 훅의 강력함을 가지고 있다. ‘Beauty & stupid...'로 이어지는 훅은 짧은 시간 안에 강한 집중력을 주는 방법으로 이루어진 앞의 두곡의 훅과 달리 이 곡은 훅 자체가 로큰롤 리듬으로 말그대로 춤출 수 있는 리듬감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앞의 멜로디를 통해 충분한 완급조절을 하면서 한참동안 가려졌다가 중반 이후에나 등장하는 훅의 폭발성을 극대화시킨다. 물론 그것은 전작과 같은 전혀 다른 사운드나 리듬을 통한 완급조절이 아니라 하나의 리듬패턴을 중심으로 하면서도 베이스를 통해 유연하게 조절되는 것으로, 이 곡은 계속 그런 완급조절을 통해 처음부터 경쾌한 리듬파트를 등장시키면서도 곡의 리듬감을 끝까지 잃지 않는다.
또한 이미 등장한 코러스의 경쾌한 훅에 다시 ’Beauty & Stupid'같은 훅을 연결시켜 그 느낌을 배가하는 방법역시 감각적이다.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곡은 ’限界破裂‘이지만, 앨범을 통틀어서 가장 기억에 남을 훅을 가지고 있는 것은 ’BEAUTY & STUPID'이다. 그 단 한부분만 들어도 즐겁게 춤추며 노는 히데의 유쾌한 모습이 눈에 그려지는 것 같다. 히데가 1개월만에 작업해낸 이 앨범의 리듬파트들은, 그가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하나같이 자연스럽고 신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마 이 앨범의 발매이후 ‘PSYENCE GO GO'의 투어를 지켜본 그의 팬들은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 HIDE YOUR FACE > 시절의 히데는 그것이 유머러스한 것이든 공격적인 것이든 너무 극단적으로 나갈 여지가 다분했지만, < PSYENCE >의 곡들은 공연 시 관객들이 함께 마음대로 춤을 출 수 있는 흥겨움과 안정된 여유를 함께 가지고 있었다.
또한 이런 스타일의 곡 중 주목할만한 또 하나의 곡은 ‘DAMAGE'다. 이 곡은 < PSYENCE >의 테크닉을 가지고 < HIDE YOUR FACE > 스타일의 곡을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무자비하게 달려나가는 기타리프와 히데가 부를 때마다 목이 쉰다고 했을 만큼 강력한 보컬로 채워져 있는 이 곡은, 그 사운드의 진행이나 멜로디의 구성에 있어 지극히 < HIDE YOUR FACE >의 그것과 닮아있다. 각 파트의 멜로디라인은 기타리프가 바뀔 때마다 조금씩 바뀌어나가고, 이 곡에서만큼은 베이스라인 역시 인정사정없이 달려나가는 스타일로 구성되어 있다. 1절의 ’DICE'나 ‘SCANNER'같은 곡과 비슷한 흐름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곡은 이를 바탕으로 < PSYENCE >의 장점들을 흡수하여 < HIDE YOUR FACE >의 곡들보다 훨씬 더 발전한 모습을 보여준다. 우선 이 곡은 비록 멜로디가 기타리프와 함께 변한다 하더라도 곡 초반에 등장한 하드록 리프를 각 멜로디의 초반에 등장시키거나 이를 변용시키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 앨범 특유의 가볍고 즐거운 분위기를 유지한다. 초반부터 등장한 하드록을 바탕으로 한 경쾌한 리듬라인은 그대로 보컬의 멜로디라인으로 옮겨지면서 거칠면서도 춤출 수 있는 멜로디라인을 만들어내고, 여기에 한층 발전한 앨범의 믹싱은 거칠고 둔중한 기타사운드도 하나씩 섬세하게 잡아내면서 곡이 각 절에서 후렴구로 넘어가는 순간에 곡의 변화를 일으키는 이펙트를 확실하게 살려주며 자연스럽게 곡을 이끌어간다. < HIDE YOUR FACE >의 곡들이 기타리프의 감각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했다면, < PSYENCE >의 ‘DAMAGE'는 전반적으로 한결 나아진 완성도를 통해 히데가 가장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던 스타일에 확실한 안정을 가져온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것은 1집의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2집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로큰롤/하드록 등에 기반한 흥겨운 훅을 배치함으로서 곡에 보다 확실한 포인트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곡 전체의 멜로디도 신나지만, 곡 초반에 등장한 코러스의 훅이 다시 절정에 오를 때까지 오른 멜로디 뒤에 배치되면서 곡은 멜로디가 가진 이상의 파워와, 자칫 지루해질 수 도 있었던 멜로디 전개에 한번 더 추진력을 가지도록 한다. 히데가 가지고 있는 가장 원초적인 재능과 원초적인 스타일이 ‘SIENCE'를 만나면서 ’무시무시한‘ 업그레이드를 보여주었다. ’限界破裂‘과 ’BACTERIA'가 각각의 방향에서 히데 록의 정점을 보여준다면 ‘BEAUTY & STUPID'와 ’DAMAGE'는 그 바로 밑쯤에서 < HIDE YOUR FACE >와 < PSYENCE >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Three parts of machine 'Psyence'
반면 ‘ERASE'나 ’LASSIE', 'POSE'등의 곡들은 < HIDE YOUR FACE > - < PSYENCE >간의 접점을 이어가는 곡이지만 위의 네 곡에 비해서는 약간씩 모자라는 완성도를 보여준다. 물론 이 곡들에도 < PSYENCE >의 성과는 그대로 담겨있다. 감각적인 리듬 편성, 매우 부드러운 멜로디의 흐름, 그리고 무엇보다도 귀에 쏙쏙 들어오는 훅. 그러나 문제는 그런 요소를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곡들은 그 ‘여유’와 ‘즐거움’이라는 면에서 앞의 곡들에 미치지 못한다. 우선 ‘ERASE'는 거의 이 앨범의 뼈대만을 가지고 만든 것 같은 곡같다는 인상을 준다. 즉, 감각적인 리프와 그 리프에 대응하는 강한 멜로디, 그리고 그에 이어 부드럽게 연결되는 후렴구를 반복시킴으로서 곡을 마무리 짓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래도 이 곡에 담겨있는 ’SIENCE'적인 측면은 인정할만하다. 이 곡은 뚜렷한 훅이 없는 대신 리듬 프로그래밍과 기타리프가 순간적으로 만들어내는 강렬한 임팩트를 그대로 멜로디로 흡수해 그 멜로디가 반복될 때마다 귀에 쉽게 들어오는 포인트를 만들어내고 있다.
또한 곡 초반부에 사용되는 기타리프와 드럼, 리듬프로그래밍 등의 사운드 분리에서 볼 수 있듯 앨범의 뛰어난 사운드 믹싱은 여기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고, 베이스를 이용해 ‘괴상한 옷을 입고 비싸보이는 레스토랑에 가자구...’같은 후렴구에서 자연스럽게 멜로디를 변화시키는 것이나 마지막에 코러스를 통해 ‘슈비슈비다’같은 또 하나의 여음구를 등장시켜 늘어질 수 있었던 곡의 느낌을 더욱 리드미컬하게 강조하는 것 역시 인상적이다. 하지만 이 곡의 한계는 딱 그만큼이다. < PSYENCE >의 성과를 어느 정도 담아내고 있긴 하지만, 이 곡은 그것을 거의 정해진 틀에 따라 만들어 넣음으로서 힘은 있지만 다른 곡들에서 보여주는 유니크한 재미가 떨어지고 있다.
그러나, 흥미로운 부분은 이런 ‘ERASE'의 구성이 곡 자체로는 문제가 있더라도 앨범의 흐름으로 볼 때는 상당히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방향성을 유지한 채 더 좋은 곡이 들어갔다면 좋았겠지만, 이 곡은 쉴 새 없이 강하게 때려대는 그 사운드와 그것의 반복이라는 구성이 ’PSYENCE'와 정반대로 앨범의 강력한 오프닝 구실을 함으로서 앨범의 흐름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ERASE'에서 한 차례 강하게 때리고 ’限界破裂‘에서 확실한 임팩트를 가진 곡을 들려준 다음 ’DAMAGE'에서 다시 묵직한 힘을 주게 된다.
‘LASSIE' 역시 ’ERASE'와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 기능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이 곡은 ‘GOOD BYE'와 ’Cafe Le Psyence'를 통해 서정적으로 흐르던 앨범의 분위기를 한번에 다시 강렬하게 반전시키고, 이것은 1집에서 ‘D.O.D'같은 곡에서 보여준 코믹한 스타일에 펑크 사운드를 결합한 방법으로 나타난다. 개가 짖는 소리(히데 본인이 직접 연출)를 기점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정신없이 빠르게 진행되는 곡의 흐름은 이어지는 ’POSE'에서의 강렬함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곡은 딱 그만큼의 역할만을 할 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곡의 구성은 재밌기는 하지만 그이외의 유니크한 변화가 없기에 곡 중반을 지나가면 빠르다는 사실 외에 그다지 큰 재미를 주지 못하고, 그렇다고 독특한 사운드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니다. ‘D.O.D'가 < HIDE YOUR FACE >에서 이런 역할을 수행했듯 < PSYENCE >에서는 ’LASSIE'가 이런 역할을 수행했다고 하는 정도로 보면 어울릴 듯싶다. 세상에 굴종하는 인간들을 개 ’래시‘에 비유해 비꼬고 있는 이 곡은 가사의 측면에서는 보다 유머러스하게, 그리고 냉소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히데의 가사쓰기의 변화를 보여준다는 점은 인상적이긴 하지만 말이다.
또한 이어지는 ‘POSE'는 < HIDE YOUR FACE >의 ’DOUBT'와 같은 강력한 훅을 가진 인더스트리얼 곡을 좀더 발전시킨 곡이라고 할수 있을만큼 다른 곡들에 비해 보다 박력있는 기타리프와 다양한 사운드를 통해 박진감 넘치면서도 기계적인 느낌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이 곡의 사운드 메이킹은 1집에서 확연히 발전한 컴퓨터를 통한 사운드 메이킹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드럼부터가 리듬 프로그래밍으로 진행될 뿐만 아니라 곡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주체가 기타라기보다는 오히려 다양한 리듬 프로그래밍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곡의 이미지를 잡는 것은 이펙트를 집어넣은 히데의 보컬과 강력한 디스토션 기타지만 멜로디가 변화할 때마다 곡의 변화를 이끄는 것은 컴퓨터로 만들어낸 수많은 사운드들이다.
특히 마지막에 ‘POSE'를 외치는 히데의 목소리와 함께 곡의 변화를 이끌어가면서 서서히 곡을 마무리시키는 것은 순전히 컴퓨터 사운드를 통해서였다. 마치 탁구를 치는 듯한 소리를 집어넣어 스피커의 좌우 효과를 넣은 전반부에서도 이런 시도는 잘 드러난다. < HIDE YOUR FACE >가 리듬 프로그래밍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곡에 추진력을 주는 것 외에 곡을 제대로 변화시키지 못했다면, 이 곡은 기타사운드와 히데의 보컬에 가려있는 듯 하면서도 곡을 실질적으로 움직여나가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역시 히데 최고의 장기인 강력한 훅. 한층 더 발전한 기타와 컴퓨터 사운드의 완성도와 함께 한꺼번에 폭발하는 훅의 집중력은 그 자체로 곡을 다시 한번 주의해서 듣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곡은 ‘Doubt'같은 곡에 비해 한층 발전한 완성도를 가지지만 ’Doubt'가 가지고 있던 문제점을 완벽하게 해결하지는 못한다. 즉, 이렇게 사운드를 쌓아나갔다가 강렬한 훅이 터져버린 뒤 어떻게 곡을 더 강하게, 혹은 다른 방법으로 이끌어가면서 곡을 지루하지 않게 만드느냐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이 곡은 리듬 프로그래밍을 바탕으로 건반샘플을 집어넣어 극단적으로 분위기를 바꾸거나, 후반부에는 기타 사운드를 없애고 사운드를 점점 페이드아웃 시키는 방법 등으로 < HIDE YOUR FACE > 시절의 그것보다 부드러운 진행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 한번 폭발한 다음에 어떻게 그것을 계속 이끌어가는 가에 대한 명확한 해답은 보여주지 못하고 그것을 반복시키는 방법으로 곡을 마무리 짓고 있다(이에 대한 해답은 이후 Zilch의 앨범에서 ‘Doubt'와 ’POSE'의 리믹스 버전을 통해 보여주게 된다).
Do you eat Hide Ice-cream ?
하지만 이렇게 곡마다 어느 정도의 완성도의 차이가 있는 하드록/펑크/인더스트리얼 성향의 트랙들에 비해 이 앨범에서 보다 다듬어져 나타나는 히데식 모던록 트랙들은 앨범 중간중간에 등장하며 이 앨범의 감수성, 즉 여유롭고 행복하며, 즐거운 이 앨범의 느낌을 완벽하게 보충한다. 이것은 < HIDE YOUR FACE >에도, 이후의 < JA, ZOO >나 < 3, 2, 1 >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이 앨범만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곡들 중에서 히데의 ‘감수성’이라는 측면에서 제일 눈여겨볼 것은 그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된 곡 ‘LEMONed I Scream'이다. 이 곡은 사실 앨범의 정규 트랙으로 넣으려 했던 곡이 아니라 앨범 ’LEMONed'의 CF를 위해 만든 곡을 다시 늘려서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앨범에 실린 버전 역시 2분이 조금 넘어가는 짧은 시간에 간단히 멜로디를 반복한 구성으로 되어 있고, 사운드 또한 히데가 베이스와 리듬 프로그래밍을 모두 담당해서 계속 반복적인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나마 멜로디의 진행에 따라 펑키한 리듬을 기반으로 다양한 톤을 선보이는 기타연주가 눈에 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곡은 이런 것들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그것은 바로 다른 곡들보다도 훨씬 더 여유있게, 그리고 천천히 만들어내는 히데의 멜로디라인과, 그만큼이나 편안하게 부르는 히데의 보컬이 주는 매력이다. 다른 곡들이 상당부분 메인 리프에서 멜로디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곡의 집중력을 만들어내는 반면, 이 곡은 특정한 훅보다는 오히려 처음부터 끝까지 느슨하게, 천천히 고조되는 멜로디라인의 그 ‘퍼지는’ 느낌이다. 후렴구에서 히데의 곡으로서는 드물게 화성을 사용하며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것도 독특하지만, 이 곡은 후렴구에서 ‘LEMONed I Scream'을 외치는 그 순간까지 단 한번도 ’절정‘이라는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편안하게, 리듬을 따라 서서히 올라가다가 정점에 오를듯한 그 순간에 그저 부드럽고 편안하게 ’LEMONed I Scream'을 읊조리면서 끝까지 편안함을 주는 것이고, 이것은 오히려 어떤 강한 후렴구나 훅 이상의 ‘반전’을 제공한다.
이 곡의 가사는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오는 어떤 신기한 물체를 발견하거나, 혹은 귀를 사로잡은 음악을 만났을 때의 기쁨을 표현하고 있는데, 이 곡의 멜로디는 바로 그런 기쁜 순간을 맞이하는 행복감과 평화로움을 너무나 여유있게 전달하고 있다. 그렇게 놀라고 기쁜 순간이면 있는 힘껏 만세를 불러야할 것 같은데, 오히려 그런 순간이 왔다는 것을 마치 담배 피우며(혹은 마리화나 피우며?) 이야기하듯 여유있는 상태에서 부름으로서 더 강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히데는 강한 록 트랙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훅으로 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임팩트 강한 곡을 만들고, 이런 부드러운 곡에서는 아예 이렇다할 포인트를 주지 않고 정 반대로 멜로디가 주는 전체적인 느낌 하나만을 가지고 곡을 만들어낸 것이다. 꽉 짜여져 있는 앨범의 다른 곡들에 비교하면 느슨하다 못해 게으른 느낌까지 나는 멜로디와 비어있는 편곡, 그리고 날카롭게 날을 세우거나 위악적인 힘없이 그저 여유있게 부르는 히데의 보컬이 모여 그의 음악인생중 가장 특이한 곡 하나를 탄생시켰다.
조심스러운 청년의 접근
또한 ‘FLAME'은 ’LEMONed I Scream'의 특징을 살려 보다 다양한 사운드와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온전한 하나의 곡으로 다시 완성시킨 것 같은 곡이다. ’LEMONed I Scream'가 펑키한 기타와 베이스정도로만 곡을 이끈 반면, ‘FLAME'은 곡 전체를 다양한 톤의 기타가 계속 변화하면서 상승하는 멜로디의 효과를 보다 극대화시킨다. 처음에는 아르페지오 기타로 시작해 여러 개의 기타연주로 곡의 나른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곡 초반부, 다시 아르페지오 연주로부터 계속 겹겹이 다양한 톤을 쌓아가다가 간주에서 헤비한 기타연주로 일거에 곡에 강한 힘을 불어넣는 히데의 감각적인 기타연주는 매우 정석적이면서도 곡의 멜로디가 가진 효과를 정확하게 살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간주 이후 다시 도입부의 멜로디로 이어지는 순간 어색하게 끊어지지 않고 드럼연주로부터 격렬한 두 대의 기타연주를 통해 곡을 다시 정점에 올려놓는 구성역시 이런 곡들이 흔히 빠질 수 있는 진부함을 벗어난다.
그리고 이렇게 사운드가 만들어놓은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이 곡의 멜로디는 사운드를 따라 ’LEMONed I Scream'보다는 좀더 리드미컬한 멜로디를 선보이며 ’LEMONed I Scream'의 느슨함보다는 좀더 힘있는, 그러나 그 여유로움은 그대로 유지하는 멜로디라인을 선보인다. ’LEMONed I Scream'이 정상에 오르기 직전에 곡의 멜로디를 중지시키면서 그 여유로움을 한없이 선보인다면 이 곡은 바로 정점에 오르는 그 순간 다시 여유롭게 내려오면서 나직하게 시작되면서도 결국 ‘절실’함을 전달하고, 동시에 쓸쓸한 여운을 남겨준다. ‘It's a flame of sadness 쏟아지는 슬픔조차 껴안아 의지해 / Life is going on 이 몸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걸어갈 수밖에’ 같은, 나직하게 혼자 이별의 슬픔을 달래지만 감정은 점점 격렬해지고, 하지만 결국 잊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의 쓸쓸한 마음이 이 곡의 멜로디에 드러나 있다.
그리고 이 곡에서 눈여겨봐야할 것은 히데의 보컬이다. ‘LEMONed I Scream'이 매우 여유있는 상태에서 조금은 시니컬한 히데의 보컬을, 그리고 록트랙에서는 힘찬 록 보컬리스트이거나 날카로운 히데의 보컬을 들려주었다면, 이 곡에서 히데의 보컬은 딱 그 나이에 걸맞는 청년의 목소리에 가깝다. 위악적으로도, 일부러 유머러스하게 꾸미지도 않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 노래를 부르다가 결국 어느 한순간 정점에 선후, 다시 씁쓸하게 사라지는 그의 목소리는 최대한 자신의 모습을 감추려했던 < HIDE YOUR FACE >에서는 볼 수 없었던 보다 솔직하고 안정된 자신의 모습이다. < HIDE YOUR FACE >에서의 히데가 자신의 상처마저 인정하지 않고 위악적이거나 지극히 관조적인 입장을 보이곤 했다면, 이 앨범에서의 히데는 자신의 상처도 다 인정하겠다는 듯한, 그래도 어쩔수 없다는 듯한 여유와 성숙을 보여준다.
사운드로 쌓은 예쁜 집
이런 감수성은 ‘GOOD-BYE'에서도 이어진다. ’LEMONed I Scream'과 함께 이 앨범의 대표적인 모던 록 트랙 중 하나라 할 만한 이 곡은 ’LEMONed I Scream'과 ‘FLAME'같은 곡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멜로디를 들려주고 있는데, 앞의 두 곡이 훅을 강조하기보다는 하나로 연결되어있는 곡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내세우는 반면, 이 곡은 보다 팝적인 구성을 갖추고 있다. ’Say good bye..'같은 훅이 있을 뿐만 아니라 곡은 각절 - 브릿지 - 후렴구로 보다 뚜렷한 구성을 갖추고 있고, 무엇보다도 후렴구에서 앞의 두 곡과 달리 확실히 절정에 달하면서 약간의 강렬함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것은 보통의 팝적인 멜로디가 가지는 구성과 동일하지만, 중요한 것은 역시 그 안에 들어있는 히데 특유의 정서다. 히데는 팝 멜로디의 구성을 그대로 따라가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정서는 그렇게 달콤하다거나 강렬하지 않다. 그보다는 오히려 절실함이 결국 ‘하늘’에 살짝 닿은 것 같은 느낌에 가깝다. ‘FLAME’에서도 선보였던 ‘청년’으로서 히데의 보컬이 자연스럽게 풀려나오면서 진행되는 멜로디의 흐름은 일반 팝음악에서는 쉽게 잡아낼 수 없는 애잔함과 절실한 느낌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곡의 이런 독특한 분위기, 즉 갈수록 절정으로 흐르는 팝 음악의 구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곡이 잔잔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이 앨범 중 가장 독특한 모습을 보이는 이 곡의 사운드 메이킹에 의해서다. 이 곡의 사운드는 기타를 중심으로 이어지는 이 앨범의 사운드와 달리 오히려 최근의 인디팝에 좀더 가깝다고 해야할만한 사운드를 보여주고 있다. 즉, 기타사운드는 최대한 배제한 상태에서 계속 다양한 이펙트를 집어넣으면서 곡에 신비한 느낌을 불어넣고, 그것들이 곡의 흐름을 조절하는 것이다. 히데의 잔잔한 보컬에도 불구하고 이 곡이 계속 후렴구를 향해 서서히 높아질 수 있는 것은 그 사이에 이 곡 안에 다양한 이펙트가 깔리면서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때문이고, 후렴구 직후에 곧바로 다시 처음의 멜로디로 돌아가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것은 그런 이펙트가 남기는 파장이 곡의 흐름을 이어주기 때문이다.
특히 이 곡이 결국 멜로디가 반복된 뒤에 다시 ‘Say good bye..'를 외치며 평이하게 끝나는 멜로디 구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지루하게 반복되기보다는 나직한 히데의 보컬 속에서 강한 클라이막스를 만들어내는 것은 피아노와 드럼을 중심으로 점점 강렬해지는 후반부의 사운드 메이킹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히데의 컴퓨터 작업의 결실이 보다 강한 록트랙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것이 ’POSE'라면, 모던록/팝 트랙에서 그것이 가장 훌륭하게 쓰인 곡이 ‘GOOD - BYE'이다. 그리고 이것은 히데/이나다의 컴퓨터 사운드 메이킹이 이제 인더스트리얼 뿐만 아니라 보다 넓은 영역에서 쓰일 정도로 완숙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감성과 기술의 좋은 결합을 적절하게 보여준 곡.
반면 ‘Hi-Ho'는 뛰어난 훅 센스를 가지고 있지만 앞에서 거론한 모던록 트랙에 비해 다소 아쉬운 느낌을 준다. 물론 이 곡에서도 이 앨범에서 히데가 보여주는 장점들은 그대로 발휘된다. 앨범에서 드물게 여성 코러스까지 밑에 깔면서 더욱 곡을 꽉 채우는 곡 초반의 코러스라인과 ’Hi-Ho!' 한마디로 곡에 분명한 포인트를 부여하는 히데 특유의 감각, 그리고 ‘BEAUTY & STUPID'가 그러하듯 그 뒤에 다시 곧바로 흥겨운 멜로디라인을 집어넣어 곡의 경쾌함을 이어가는 구성과 초반에 제시된 코러스라인을 다시 곳곳에 등장시켜 곡에 다른 느낌을 주는 구성 등은 < PSYENCE >의 장점들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곡의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Hi-Ho!'라는 훅 외에는 그 이상의 강력한 임팩트를 주지 못한 채 곡 후반으로 갈수록 훅만을 반복하며 곡을 마무리한다는 데 있다. 앞의 곡들 중 ’LEMONed I Scream'과 ‘FLAME'이 멜로디라인의 독특한 감수성으로, ’GOOD - BYE'가 독특한 사운드 메이킹으로 이를 해결했다면, ‘Hi-Ho'의 경우는 후반부로 갈수록 드럼과 코러스라인, 기타솔로 등을 등장시키면서 곡을 강하게 이끌고 가지만 지나칠 정도로 훅이 계속 반복되고, ’GOOD - BYE' 처럼 독특한 사운드들을 계속 배치하는 것도 아니기에 단조로운 느낌을 준다. 간주 뒤에 곧바로 기타솔로를 이어받아 같은 멜로디인데도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곡 진행에서 보듯 편곡적인 면에서도 능숙하고, 확실한 훅도 가지고 있지만 딱 ‘신난다’는 것 이상으로 어떤 독특함을 주지 못하는, 조금은 전형적인 곡이라 할 수있다.
할렐루야 !
하지만 사실 ‘Hi-Ho'의 완성도도 크게 떨어지는 것은 아니고, 이 곡은 앨범 중간에 ’LEMONed I Scream'과 ‘FLAME' 사이에 들어가면서 곡의 분위기를 서서히 강하게 이끌어가는 앨범 곡 배치상의 역할은 상당히 충실히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식의 기능적인 측면과 곡의 완성도가 일치하며 마지막을 장식하는 곡이 바로 ’MISERY'다. 이 곡은 마지막 곡으로서 지금까지 아주 유쾌하게, 혹은 서정적인 멜로디를 들려줬던 히데의 다른 곡들과 달리 ‘할렐루야 레미제라블....’로 시작하는 곡의 훅이 처음부터 아주 시원하게 터져나가고, 이 멜로디의 매력을 처음부터 끝까지 살려나가면서 진행되는 곡이다. 즉, 훅이 한번 터진 다음에 그 훅의 활기찬 에너지를 그대로 이어받아 스피디하게 그 다음 가사가 진행되고, 또다시 훅이 나오면서 분위기를 띄우는 구성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보통 이런 곡들은 그 훅에 질려버리기 십상이지만, 이 곡은 묘하게도 그런 함정을 벗어나 끝까지 경쾌한 가스펠을 부르는 듯한, 어쩌면 성스럽다고 해야 할 정도로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끝까지 발산한다. 이는 우선 이 앨범 전체와 이 곡의 관계 때문이다. 곡들이 각각 다른 스타일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이 앨범의 곡들은 멜로디라인을 쓰는 방법에서 보다 거친 록트랙과 모던록 트랙 각각이 일관된 흐름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이 곡에서의 멜로디라인은 이 앞의 곡들 중 어느 쪽도 아니다. 사실 히데는 엑스저팬 시절부터 코러스라인을 통한 훅을 만들어내는 데 뛰어난 감각을 보였는데, 이 곡에서는 그 재능을 다시 한번 살려 매우 강력한 코러스를 가진, 그리고 전혀 절제되지 않은 힘을 가진 멜로디를 만들어내었다.
멜로디의 사용자체가 매우 다르니 앨범 전체를 듣다보면 이 곡의 멜로디에 귀가 안갈 수 없다. 또한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이 곡의 멜로디라인이 가진 매력이다. 이 곡은 앞서 말 한대로 훅을 먼저 내세우고 그 뒤에 그것을 이어받는 멜로디라인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이것이 하나의 흐름을 가지고서 훅에서 한번 강하게 치고 들어간 후 다시 뒷부분으로 갈수록 강해지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똑같이 신나게 폭발하는 구성을 가지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쉼없이 활기찬 에너지 하나로 가득차 있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덧붙는 사운드는 이런 곡의 느낌을 기술적으로 다듬기보다는 오히려 그 힘을 더욱 강하게 덧붙인다. 다른 곡에서 유니크한 진행을 보여주었던 베이스라인은 이 곡에서 리듬프로그래밍과 함께 거의 쉴 새 없이 달려나가고, 이는 기타역시 마찬가지다. 멜로디의 진행에 따라 톤은 조금씩 바뀌지만, 기타연주는 펑크를 바탕으로 역시 쉴 새 없이 달려나가다가 결국 속도감 넘치는 기타솔로로까지 이어진다. 심지어 이 앨범의 브릿지곡 중 하나인 ‘ODEO COWBOY'와 유사한 느낌의 빠른 컨트리 기타 연주도 들어가면서 경쾌한 속도감을 강조한다. 그래서 곡 중간에 갑자기 기타를 없애고 순간적으로 리듬프로그래밍으로 만든 레게 리듬으로 돌아서며 곡이 늦어지는 부분은 마치 화려한 브레이크댄스 사이의 유쾌한 프리즈 동작을 보는 것처럼 곡을 더욱 경쾌하게 만들어낸다. 게다가 곡의 마지막에는 멜로디를 조금씩 바꿔 거기서 ’더 터지는‘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완성도를 떠나 그 활기찬 에너지 하나만큼은 이 곡이 최고다.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긍정적이고 밝은 힘으로 가득차있는 곡이 주는 희망의 힘. 이것은 이 곡의 가사가 던지는 희망의 메시지와 일치하면서 앨범의 실질적인 마지막을 힘찬 에너지로 멋지게 마무리한다.
이 곡의 가사는 희귀골수병에 걸린 소녀가 자신의 팬이며 죽기 전에 한번 만나보는 것이 소원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히데가 이 소녀를 직접 찾아갔다가, 결국에는 그 소녀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만든 곡인데, 그런 실재하는 희망의 에너지가 히데의 감성에 영향을 미치면서 히데의 곡으로서는 정말 보기 드문 ’순진무구한‘ 곡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 곡의 세세한 완성도를 따진다면 이 앨범에는 이 곡보다 좋은 곡이 몇 곡 있다고 해야겠지만, 몇 번 듣다보면 계속 ’할렐루야‘를 외치며 마음이 들뜨게 만드는 힘을 가진 곡은 이 곡 밖에 없을 것이다(그리고 실제로 히데는 이후 직접 자신의 골수를 뱅크에 등록하는 등 이 병을 가진 환자의 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그에 관련된 활동을 하였으며, 이 소녀는 히데의 죽음이후 엑스저팬과 히데의 가족들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죽은 히데의 얼굴을 실제로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끝이 예정된 행복
그리고 이것은 이 앨범의 진정한 ‘힘’이 어디서 나왔는지 보여준다. 히데가 이 앨범에서 얻은 것은 음악적 기술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에게 솔직한 히데 자신의 분명한 자아였다. 그는 이 앨범을 기점으로 더 이상 위악과 자학, 세상에 대한 거친 분노를 보여주지 않고, 그 대신 모든 것에 솔직한 자기 자신을 드러냄으로서 자신이 들려줄 수 있는 감수성의 폭을 극대화시킬 수 있었다. 엄청나게 헤비한 사운드에서도 춤추고 놀 수 있는 리듬과 멜로디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밝은 성격, 그리고 자신의 여린 감성을 그대로 솔직하게 드러내고, 소녀를 위한 희망 가득찬 노래를 만들어낼 수 있는 따뜻함. 그는 자신이 느끼는 것에 훨씬 더 솔직하게, 너무 아이처럼 연약하지도 않고, 너무 나이든 어른처럼 세상에 닳고 닳지도 않은 바로 그 자신의 훌륭한 성년기로의 성숙을 그대로 담아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히데의 역사상 가장 감성적으로 풍부하고, 이 앨범의 발표와 함께 아직은 화려한 색깔을 칠하는 게 좋다던 그의 말대로 가장 화려한 색채의 사운드에 ‘히데팝’과 ‘히데록’이 가장 조화롭게 공존하는 그의 음악 역사상 가장 재미있는, 혹은 앨범의 모든 곡들의 멜로디를 따라부르게 만드는 앨범으로 나타났다. 그가 이 앨범의 활동과 더불어 머리를 자르고 엑스저팬의 히데와 솔로 히데의 중간에서 오직 ‘히데만의’ 스타일을 보여주며 매우 현실적인 감각의 스타일리스트로 변화했듯, 그의 음악역시 보다 솔직하게, 감성적으로, 그리고 훨씬 더 성숙한 마음과 능력을 가진 상태로 나타났었던 것이다.
이 앨범의 마지막 곡 ‘ATOMIC M.O.M'이 리듬 프로그래밍과 ’PSYENCE'의 샘플로 이루어진 것처럼, 그는 자신의 감각과 기술을 동시에 조화시킬 줄 알았고,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자신의 마음에 대한 솔직함이었다. 자신의 약함도, 벅찬 마음도, 사랑도, 그리고 속절없이 가벼운 그 마음도 모두 인정할 때, 진정한 변화와 발전이 시작됐던 것이다. 모든 것은 자기 자신을 인정할 때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히데는 그것을 자신의 재능과 능력, 그리고 주위 환경이 최고조에 있을때 거의 기적처럼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이미 록의 본고장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팝과 록의 거의 완벽한 결합으로 나타났다. < HIDE YOUR FACE >의 하늘에 닿을 듯 말듯한 불안과 가능성은 < PSYENCE >에서 완벽하게 하늘에, 혹은 미국의 ‘푸른 하늘’에 완전히 닿을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그래서 < PSYENCE > 시절의 히데와 그들의 팬은 행복했다. 앨범은 불티나듯 팔렸고, 모든 곡은 싱글화 되었으며, 이제 완전히 자신의 ‘FACE'를 보여주기 시작한 히데는 엑스저팬 시절의 ’가오‘는 다 무시하고 자기 하고싶은 대로 하면서도 재미를 이끌어내는 방법을 터득하여 진짜 ’가오‘가 뭔지 보여주며 ’PSYENCE GO GO' 투어를 엄청난 성황리에 끝내게 되었다. 모든 것은 안정되고 행복했으되 정체되지 않았고, 그가 벌리는 모든 일들은 순조롭게 이어졌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