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과 관련한 글을 써야겠다 생각을 한 것은 23년 7월 세상을 떠난 故안정효 선생의 부고 소식을 듣고서다. 선생과는 일면식도 없지만 개인적으로 은사처럼 생각하는 분이 곁을 떠났다는 생각에 한동안 마음을 추스르기 어려울 정도였다. 현재 활동하는 전문 번역가들 가운데 중년 이상이라면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은 이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 감히 짐작 해본다. <번역의 공격과 수비>라는 저서로 선생 스스로 굵직한 그만의 번역론을 집필하기도 했고, 이름난 번역가들의 통찰이 빛나는 번역 관련서들이 이미 많은 지금, 무엇보다 전문 번역가이기는커녕 변변한 번역 하나 정식으로 제대로 해본 적도 없으면서 무슨 자격으로 번역에 대한 글을 쓰냐 한다면 할말은 없지만, 번역 자체가 사실 특정한 자격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게 아니기도 한만큼, 번역을 좋아하고 관심이 깊은 1인으로서 번역에 대한 그동안의 단상들을 정리해 써볼 생각이다. 그것들이 말 그대로 짧은 생각으로만 그치지 않도록 깜냥껏 애쓰면서.
다소 무거운 마음과 분위기로 글을 열었는데 한국어 번역의 시작도 밝고 가벼운 모양새는 전혀 아니었다. 제대로 된 ‘번역’이라기보다는 ‘번안’에 가까웠다. 그나마도 정식 허가받은 작품들도 거의 없었다. 어떤 외국 문학 작품을 번역하는데 줄거리만 그대로 살리고 등장인물이나 표현 양식, 배경 등은 마음대로 우리식으로 바꾸어 쓰는 식이었다. ‘제2의 창작’이라는 그럴듯한 이름난 수식어를 붙일 수도 있겠으나 비겁한 변명일 뿐, 노골적이라고까지 볼 수 있을 표절이었다.
1960년대 들어서야 여러 출판사에서 이른바 세계 문학 전집과 같은 책들을 출간하면서 비로소 번역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볼 수 있는데, 시작이 좋지를 못했으니 실력 있는 번역가들이 갑자기 등장할 리 만무했고 외국 문학을 전공한 대학교수들이 자리를 대신했다.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임한 분들도 물론 있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들도 번역이 주요 업무가 아닌 만큼 조교나 일반 학생들을 시켜 출판만 자신들 이름으로 하는 일들이 횡행했고 따라서 번역의 수준 문제는 이때부터 이미 예견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제대로 보자면 ‘저술’ 못지않게 그 공로를 마땅히 인정 받아야 할 ‘번역’이 90년대까지도 교수의 업적으로 포함되지 못한 것은 심하게 말하면 자업자득이었던 셈이다.
첫댓글 커버 그림은 과연 돈 주고 사용하는 건지...
AI 그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