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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을 만나다
지승호 지음
북라인 / 2005년 6월 / 272쪽 / 10,000원
1부 유시민이라는 코드
아픔과 노여움이 많은, 소셜 리버럴리스트 - 지승호
유시민은 분파주의자에 분열적이고 독선적인 개혁론자다?
요즘 열린우리당 내에서는 이른바 난닝구(합당을 주장하는 실용파)와 빽바지(개혁파) 간의 감정 대립이 극에 달해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노무현의 정치적 경호실장이자, 노빠 주식회사의 대표이며, 노무현의 영혼의 샴쌍둥이’라는 평가를 듣는 유시민 의원이 있다. 비난하는 쪽에서는 그를 ‘분파주의자에 분열적이고 독선적인 개혁론자’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여당의 개혁적인 모습을 기대했던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실망한 나머지 정치에 냉소적인 반응마저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이 집권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지금 하는 것보다 못하려고’ 하는 반응들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알몸 박정희』의 저자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장 최상천은 “보수는 웃기고, 진보는 낡았다”고 정의한다. 최상천 소장은 ‘올드 레프트는 뉴 라이트를 이길 수 없다“고 진단한다. 그런 의미에서 뉴 레프트의 이미지라도 심어 줄 수 있는 인물은 열린우리당에서 유 의원이 거의 유일한 것으로 보인다.
유시민은 잘 나가는 칼럼니스트에서 돌연 “바리케이트 앞에 화염병을 든 심정으로” 절필 선언을 하고, 개혁국민정당을 만들어 외연을 확대했으며, 정몽준이 지지 철회 선언을 하자 비판적 지지를 호소하며 쓴 글을 밤새 퍼 나르면서 노무현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물론 그 글로 인해 그는 진보 진영에서는 가장 싫어하는 정치인이 되고 말았다. 그는 토론의 달인, 정치 천재로 불리기도 하면서 노무현 정권 창출의 특등 공신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런 한편 노무현을 공격하던 때와 똑같이 사람들의 ‘말을 막 한다, 가볍다, 싸가지가 없다’는 비난을 받는다. 유 의원은 정치적 효과 이전에 자신이 상처를 받더라도 해야 할 말은 하는, 몇 안 되는 정치인 중의 하나다. 그가 더러는 남들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하기도 했으나, 이번 당의장 선거 과정만 보더라도 상대는 그에게 훨씬 더 심한 말을 내뱉었다.
유 의원은 나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다른 사람들한테 상처 준 부분이 많은 것 같다. 반성한다”고 했는데, 정작 사과해야 할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 것 같다. 실제 이지메에 가까운 공격을 받으면서도 유 의원은 공세적인 대응을 자제했다. 그리고 유 의원의 누나이자 민주화 운동의 동지이기도 한 유시춘 선생은 가슴 아파하는 동생에게 ‘너도 뭔가 잘못한 게 있을 것이다. 이제 정치인이 됐으니 좋은 이야기를 아프지 않게 전달하는 방법을 익히도록 하라’는 충고를 했다고 한다.
유시민과의 여섯 번의 만남
어쩌다 전문 인터뷰어가 된 나는 <100분 토론>을 진행하던 시절의 유시민부터 국민 경선을 통해 국민이 뽑은 후보를 지키기 위해 절필 선언을 하고 나선 유시민, 국회의원이 된 후의 유시민, 당의장 선거에 출마할 때의 유시민 등 이렇게 여섯 번을 만났다. 그런데 그 여섯 번의 만남에도 불구하고 유 의원과 나는 사적인 친분 관계가 전혀 없다. 나도 참 드라이한 인간이지만, 그래도 그 정도 만났으니 조금은 반가운 척이라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질 때도 있는데, 그 바람은 매번 무너지고 만다. 유 의원은 “노무현 후보처럼 ‘스킨십이 약하다’는 평도 받는 것 같은데요. 정치를 하면서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시지는 않으십니까?”라는 우문에 “그런 것 안 하고도 정치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죠”라는 현답을 하기도 했다. 끼리끼리 밀어 주고 댕겨 주는 정치인들의 스킨십 때문에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아 왔던가. 의리 없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지나친 것보다는 못한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친구도, 적도 많은 당대의 돌쇠
유 의원에 대한 평은 극단적이다. 이번 당의장 선거 과정에서 당내에서도 엄청난 지지와 비판을 동시에 받았고, 한나라당이나 민주당․민주노동당 지지자들은 열린우리당 지지자들이 전여옥 의원이나 정형근 의원을 혐오하는 만큼이나 그를 혐오한다. 딴지일보의 김어준 총수는 “내가 현재 어디에 와 있고 내 역할은 무엇인지, 자신을 객관화하여 스스로를 역사 속에서 통시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놀랍도록 자연스러워 그에 따른 전술 전략을 자신의 이익보다 먼저 따져 내는 것이 거의 비인간적인 수준에 도달한 그는, 당대의 돌쇠다”라고 평했다. 이런 평가에 대해 유시민은 ‘상처야 입겠지만, 지금 꼭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제때 해야 한다. 내가 나중에 더 큰일을 하고 안하고가 중요한 게 아니고, 우리 당이 대한민국의 미래나 우리 민주주의의 발전이나 사회 발전을 생각할 때 지금 시점에서 꼭 해야만 하는 일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말한다.
최근 유 의원의 행보에 대해 비판적인 강준만 교수도 『유시민 : 항소이유서』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유시민 비판자들이 한 가지 분명히 이해해야 할 것은 유시민은 지금 내키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출세나 권력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은 ’지방대 교수‘다. 유시민이 열린우리당 의장이 된다 해도, 설사 그가 대통령이 된다 해도 그건 조국을 위한 희생이지 그가 원해서 하는 일은 아니다. 그가 다른 정치인들에게 독설을 퍼부을 수 있는 힘도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유 의원은 또한 최선을 다한 결과에 대해서는 크게 연연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번에 선거 나가셨다가 떨어지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안되면 어때요? 열심히 해보고 안 되면 그 나름대로 분석을 해보고, 또 다른 부분에서 제가 할 일을 찾으면 되죠.” 그에게서는 늘 이런 식의 대답이 돌아온다.
그는 『유시민의 경제학 까페』,『거꾸로 읽는 세계사』 등 많은 베스트셀러를 내고 <100분 토론> 같은 TV 토론 프로그램을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재산이 1억이 넘지 않는다는 발표가 나와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의 이런 면이 젊은 네티즌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요소인 것 같다. 유 의원은 대학 신입생 시절 구로공단 봉제공장의 열여섯 꽃 같은 처녀가 매주 60시간 이상을 일해서 버는 한 달치 월급이 대학촌의 하숙비보다 적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 뒤로는 밥을 남긴다든가, 미팅을 한다든가, 첫 시간 강의에 지각을 하게 되면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아이 마냥 얼굴이 화끈거렸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행동과 말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깜이 아니다. 철이 들지 않았다’고 말하는데, 오히려 그의 친구이자 진보역사학자인 한홍구 교수는 ‘유시민처럼 철들지 맙시다’라고 그를 옹호하고 나선다.
유 의원은 지극히 상식적인 사람이다. 그는 자칫 실수로 보이는 행동으로 인해 그 이상의 과도한 매를 맞고 있으며, 그러면서도 상당한 관용과 포용력을 보여 주고 있다. 나는 유 의원이 어느 개인이 미워서 독설을 퍼부은 적은 없다고 생각한다. 공적으로 ‘싸가지 없다’는 말까지 내뱉은 후 ‘그래도 동지라고 생각한다. 경선 끝나고 소주 한 잔 하기로 했다’고 그는 말하곤 했다. 역겹게 말하는 이들을 향해 그는 한 번도 쓴 소리를 내뱉지 않고 감내해 왔다. 더구나 그는 ‘내가 옳다고 생각해서 한 일이고 말이지만, 많은 사람들한테 상처를 줬던 것 같다’고 끊임없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슬픔과 노여움이 많은, 소셜 리버럴리스트
유 의원은 자신의 정치 참여의 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내부 부패가 없는 깨끗한 정당, 지역으로 분열된 국민을 통합하는 정책 정당, 당원들이 책임을 다하고 권한을 행사하는 참여민주주의 정당, 인터넷을 기반으로 저비용 고효율 정치를 실현하는 미래형 정당, 저는 이런 정당이 있어야 정치를 개혁하고 권력 부패를 청산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이 일을 해주었다면, 저는 당원으로 참여하고 열심히 돈을 보내는데 그쳤을 것입니다.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던 유신시대 민주화 운동에 나섰던 학창 시절 그랬던 것처럼, 저는 이것을 역사가 제 앞에 놓아 둔 쓴잔으로 받아들입니다. 피할 수 없는 잔이라면 비록 쓰다고 해도 기쁜 마음으로 마시자. 이런 심정으로 하루하루 정치인 생활을 겪어 나가는 중입니다. 스스로 옳다고 확신하는 일을 위해서라면 실패할 위험을 무릅쓰고 시도해 보는 것, 이런 것이 삶의 묘미가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렇게 살아 왔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입니다.”
유 의원은 자유주의자다. ‘영원한 자유주의자’ 유시민은 항소이유서에서 인용한, 러시아 시인 네그라소프의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말처럼 슬픔과 노여움이 많은 사람이다. 그리고 언젠가부터는 부끄러움이 더 많아졌다고 하는 사람이다. 나는 이런 그를 자신이 열린우리당의 노선에 대해 이야기한 바대로 ‘소셜 리버럴리스트’라 부르고 싶다. 또한 누나 유시춘은 그가 ‘슈퍼 울트라 리버럴리스트’라고 말한다.
의심을 동반한 믿음, 햄릿형 소신 - 정혜신 (정혜신M연구소 대표)
부끄러움이 많은 남자
유시민은 1959년생이다. 대학에 들어간 이후에는 주로 수도권에서 살았지만, 경북 경주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란 ‘토종 TK'다. 1978년 서울대 사회계열에 입학했는데,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으로 서울역 시위를 주도해 그 해 5월 17일 계엄포고령과 집시법 위반 혐의로 구속 제적된 뒤 3개월만에 풀려나 같은 해 9월 군에 강제 징집되었다. 1984년 9월 복학한 그는 복학생협의회 회장으로 활동한다. 그러나 서울대에 들어온 외부인을 프락치로 알고 집단 구타한, 이른바 ’서울대 학원 프락치 사건‘에 연루돼 구속되면서 두 번째로 제적되었다. 그는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는데, 이때 옥중에서 작성한 ’항소이유서‘는 서슬 퍼런 기개와 논리 정연한 문장, 진솔한 내용으로 유시민이란 이름을 하나의 전설로 만들었다. 1985년 10월 만기 출소한 유시민은 민주화운동청년연합 등 재야단체에서 활동하다가 1988년 여름에 재복학하여 약 2년 동안 당시 평화민주당 이해찬 의원의 보좌관으로 5공 청문회 광주특위 등에서 활약했고, 1991년에야 13년 만에 대학 졸업장을 받았다.
이후 그는 계약직 공무원으로 7개월 정도 한국학술진흥재단이란 정부 산하 단체의 기획실장으로 근무했고, “역사 발전에 의미 있게 참여하기 위해서는 좀더 정확하고 깊이 있는 지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고” 독일 유학을 떠난다. 독일 마인츠의 요하네스구텐베르크대학에서 경제학 석사, 박사 과정을 밟다가 ‘IMF 귀국 유학생’이 된 1998년 이후에는 시사평론가라는 타이틀과 자유기고가라는 직업으로 살아갔다. 그는 자신의 직업을 ‘지식소매상’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규정한다. 지식소매상이란 유통업의 일종인데, 어떤 사람이 창조한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널리 퍼뜨려 많은 사람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지식을 대중화하는 직업이란다.
새로운 사상치고 불온하지 않는 것은 없다
그는 무엇이든 맹목적으로 신봉하고 주장하지 않는다. 일종의 ‘햄릿형 소신’이라고 할까. 인간이 하는 일 가운데 절대적으로 옳거나 틀린 것은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새로운 사상치고 처음에 불온하지 않았던 것은 없다. 세상을 보는 눈 가운데 어느 것이 옳은지는 상이한 여러 사상 사이에서 대립과 경쟁을 거쳐야 알 수 있다.”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행동은, 자기가 반대하는 사상과 견해를 가진 이가 그것을 표현했다는 이유로 박해받을 때 거기에 대항해서 함께 투쟁하는 것인데, 그것은 용감하고 의미있는 행동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행동이라는 게 유시민의 신념이다. 그러니까 그의 ‘소신’이나 ‘주의’는 단순히 햄릿처럼 사색하고 회의하며 우유부단한 것이 아니라 강력한 실천력을 동반한다. 그렇게 본다면 유시민의 신념을 ‘햄릿형 소신’이라고 표현한 나의 표현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셈이다.
나의 동생, 유시민 - 유시춘 (작가, 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뜻을 나눈 동지
유시민과 나는 혈육으로는 오누이 사이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진한 동지애가 있었지 싶다. 1985년 5월, 항소심 법정에서 만난 이돈명 변호사가 내게 지나가는 말처럼 “시민이 항소이유서 읽어 봤소?“ 하시기에, 이튿날 사무실로 가서 어눌하게 그걸 좀 보고 싶다고 했다. 줄이 그어진 구식 편지지 30여 장에 쓴 꽤 두툼한 분량이었다. 26세의 청년이 영어의 몸이 된 처지에서 참고 문헌 하나 없이 써내려간 글이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돈된 미문이었다. 나는 친지 몇 사람이라도 함께 읽어 봐야겠다 싶어서 그것을 들고 을지로3가 인쇄소 한 곳으로 들어가 500부를 찍었다. 민주화추진협의회(약칭 민추협) 사무실, 법원 기자실, 서울대 총학생회 등 몇 곳에 갖다 놓은 그 항소이유서는 전국으로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그런 일이 있은 직후에 나는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약칭 민가협)의 모태가 된 구속학생학부모협의회의 결성을 주도하고, 여러 대학교를 돌며 대학생들을 선동한 죄로 재직하고 있던 고등학교에서 강제 해직을 당했다.
유시민으로 인해 가슴 베이는 아픔이 많이 있었다. 1980년 5월 18일 새벽, 계엄군이 서울대를 덮친 후, 누군가는 유시민이 권총을 이마에 들이댄 군인에 의해 끌려갔다고 했고, 혹자는 이미 죽었다고도 했다. 1984년 복학 이후, 유시민이 폭력 과격 학생의 대명사처럼 되어 관제 언론에 의해 난도질당할 때에도 그랬다. 그렇게 온유한 성격의 천태적 페미니스트가 마치 악당처럼 매도당하는데도 속수무책인 것이 서럽고 슬펐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우리 오누이만의 설움이겠는가. 그것은 당시 군사정권에 저항한 숱한 양심이 함께 겪은 고난의 행군이었다.
2부 유시민과의 만남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며 절필 선언을 하다
2002년 9월, 노무현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국민 경선의 원칙이 지켜지는 것을 보기 위해 절필 선언과 함께 국민 후보 지키기에 나서는 한편, 8월 29일에는 ‘정치 혁명과 국민 통합을 위한 개혁적 국민 정당(가칭)’에 참여해 대변인을 맡고 있는 유시민을 만나 정당 추진 상황과 더불어 현 정국에 관한 여러 가지 의견을 들어 보았다.
지승호 : 절필 선언까지 하고 노 후보 지지를 선언하지 않으셨습니까?
유시민 : 제가 노 후보를 지지하기 때문에 글쓰기를 그만두고 여기에 뛰어든 것이 아니에요. 저는 기본적으로 국민 경선이라는 민주적 절차, 이것을 살리는 것이 우리의 정치 발전과 미래 사회를 위해 너무나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뛰어든 것입니다.
지승호 : 어느 강연에서 노 후보에 대해 “가치관과 인생관의 면에서 놀라운 사람이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 그렇게 느끼십니까?
유시민 : 그는 1981년 이후 약 20년 간 부산 민주화 운동 진영의 선두에 서서 일을 했고, 노동자들의 권익과 관련한 활동을 많이 했어요. 그것도 30대 중반에 시작한 것 아닙니까? 보통 서른 다섯에 돈 잘 버는 변호사에서 재야 운동가로 변신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놀라운 일이에요.
지승호 : 20대의 정치 무관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유시민 : 저는 젊은 유권자들이 무관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일을 안 하고 있는 거죠. ‘너 아직도 정치에 기대하냐?’는 식으로 바보 취급하는 분위기에서 누가 정치에 관심을 표명하겠어요. 현상적으로 나타나는 냉소와 무관심은 좌절된 기대의 반영이라고 봅니다. 좌절된 기대를 살릴 수 있는 어떤 희망을 제시한다면 젊은이들도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리라고 봐요.
지승호 : 최근 『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우는가』라는 책을 내셨죠?
유시민 : 제가 볼 때 언론은 특정 후보나 정당을 지지하거나 반대하거나 칭찬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 방법은 정당해야 합니다.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공격하고 폄하하고 모욕을 주는 상황을 입 다물고 참는다면 정치 지도자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봅니다. 노 후보의 싸움은 이 앙시앙 레짐(구체제)의 해체를 겨냥한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정당한 싸움이며, 싸움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해야만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승호 : 정경희 선생님은 “언론의 구조가 평등하지 않고 공정한 경쟁 체제를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언론사가 드러내고 후보를 지지하게 되면 과점 신문이 여론을 호도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유시민 : 단기적으로는 그런 부작용이 우려됩니다. 하지만 한때 신문․방송이 통틀어 독재 정권의 하수인이자 노예이자 나팔수가 되었지만 국민들은 그것을 극복하잖아요. 저는 국민들을 믿고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승호 : 선생님은 사회적인 발언을 하기에 행복한 조건을 가진 사람이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네티즌들은 선생님을 강준만 교수와 비교하기도 하는데요. 강 교수가 서울대 망국론을 제기하면 콤플렉스라 하고, 호남 차별을 이야기하면 ‘지역감정’이라고 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볼 때 선생님은 자유로운 것 같습니다.
유시민 : 저야 운이 좋죠. TK 출신에 서울대 나왔으니 말이에요. 말을 막 해도 서울대 콤플렉스 때문에 그런다는 말은 안 하죠. 하지만 출신을 따지기보다는 메시지 자체를 봐야죠.
지승호 : 정신과 의사 정혜신 씨는 박종웅 의원은 ‘돈키호테형 소신’으로, 선생님은 ‘햄릿형 소신’으로 평가했더군요. 동의하십니까?
유시민 : 정혜신 박사가 저를 좋게 봤어요. 그 말은 맞아요. 고민을 비교적 많이 하지요. ‘이것이 옳다’라는 것보다는 ‘이것은 확실히 아니다’라는 판단을 내릴 때가 훨씬 많아요.
지승호 : 어떻게 보면 지금 생업을 팽개치고 계시는 거잖아요.(웃음) 평소에 정치는 안 하겠다는 말씀을 많이 하셔서 주위에서 의심에 찬 눈초리를 보낼 것 같기도 한데요.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것처럼 국회의원이라도 출마하실 거냐는 겁니다.
유시민 : 정치는 국회의원만 하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가 만드는 정당에 당원으로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정치 행위를 하는 겁니다. 한 사람의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만드는 데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의 정치 행위가 따라야만 합니다. 국회의원 출마 여부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봐요. 저는 다분히 실용주의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는데, 좋은 절차를 가진 정당을 만듦으로서 각자가 그 위치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는 그러한 결정을 해야 할 시점에서 각자가 가진 강점이 무엇인지, 각자의 여건이 어떠한지, 각자의 희망이 무엇인지에 따라 결정해야 할 문제이지요. 우리 당에 참여하시는 분들에게 누가 출마하느냐, 안 하느냐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지승호 : 그럼 필요하면 출마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까?
유시민 : 필요하면 당연히 출마할 수도 있지요. 제가 없어도 이 당이 잘될 것 같으면 저는 정치보다 더 하고 싶은 일이 많기 때문에 다른 일을 할 확률이 높죠. 하지만 잘 안 되면 오래갈 것 같아요. 불 질러 놨으니까 책임은 져야 할 것 아닙니까.(웃음)
지승호 : 여성계의 박근혜 지지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유시민 : 여성 후보라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는 가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인정합니다. 그러나 어떤 정치인이나 정당 세력을 지지할 때 하나의 이유만으로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지승호 : “위대한 유권자라는 말 믿지 마라.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고, 사실이 그렇다.”라고 하셨는데요.
유시민 : ‘위대한 국민 여러분’이라고 아부하는 정치인들은, 사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지 맘대로 주무른다고 생각하지. 그렇다고 국민들이 마음대로 주물러지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에요. 국민들은 때로는 위대한 것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일 수도 있어요. 정치인들과의 상호 관계 속에서 어떤 대목에서는 우중(愚衆)적인 성격이 두드러질 때도 있고, 어떤 때에는 위대한 국민이라는 성격이 나타날 때도 있는 그런 존재예요.
개혁국민정당을 창당하다
2002년 10월 25일, 개혁국민정당이 대변인 격인 유시민을 만나 앞으로의 선거 계획과 전망 등에 대해 들어 보았다.
지승호 : 강준만 교수가 사석에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 같은 놈 욕하는 건 이해가 간다. 생각해 보면 감옥 한 번 안 갔다 온 놈이 너무 설쳤다. 하지만 유시민 같은 사람을 욕하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 그냥 ‘저 나이에도 20대의 열정을 간직하고 있구나’ 하고 봐주면 안 되나”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요, 그 나이에도 그런 열정을 유지하는 비결이 무엇입니까?(웃음)
유시민 : 열정이라기보다는 성질이 좀 못된 거죠.(웃음) 살다 보면 웬만한 사람들은 참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을 못 참는 거예요. 열정이라고 표현하면 고상하고, 그저 ‘성질이 좀 있다’라고 말하면 될 것 같아요.
지승호 : 이번 창당 과정에서 절차로 승부하는 모습을 많이 보이신 것 같은데요. 이런 평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유시민 : 저는 민주주의는 절차라고 봅니다. 어떤 좋은 결과가 나와야 민주주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를 보는 게 민주주의라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취소할 수 없는, 뒤집을 수 없는 결정을 하지 않는 거예요. 한번 정부를 뽑았더라도 5년 후에는 그 정부를 엎을 수 있어야 해요. 뒤집을 수 없는 결정을 내리는 그 순간 민주주의는 끝입니다. 민주주의라는 것은 이념 체계가 아니에요. 이 때문에 민주주의의 원리를 따르고 그 정신을 지키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따를 수 있는 것은 절차예요. 따라서 ‘절차가 공정하고 투명하고 떳떳한가, 그렇지 않은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는 겁니다.
지승호 : 헌법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하시는데요, “헌법이 사회를 지배하도록 만드는 것이 이 시대 진보 진영의 역할”이라고 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입니까?
유시민 : 헌법은 개인의 자유, 인간의 존엄성, 인권, 행복추구권 등 우리 사회는 물론 모든 문명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를 다 담고 있는 것이에요. 진보란 진보적 가치, 새로운 가치를 찾는 것이라기보다는 그 동안 실천하지 않았던 사회적 합의로서의 헌법의 내용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국가보안법은 명백히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헌법의 기본 정신대로라면 자신의 생각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같지 않더라도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있어요. 이것을 없애거나 개정하는 데 반대하는 국민들이 대다수라는 것은,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이기는 하나 국민들 중에는 민주주의자가 아닌 사람들이 많다는 걸 뜻하죠. 저에게 애국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헌법이 가진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핵무기를 갖는 것, 고구려 영토를 되찾는 것이 애국이 아니라 헌법의 가치를 실현해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것이 애국이라고 봅니다.
국회의원에 당선되다
2003년 8월 27일, 노무현 지킴이로서 ‘유일한 여당 의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개혁국민정당의 유시민 의원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승호 : 진중권 씨는 유 의원님의 복장 파문 등에 대해 “조선일보와 조사에 따르면 진보성 면에서 개혁당은 5.4, 민주노동당(이하 ‘민노당’으로 약칭)은 5.6으로 별 차이가 없거든요. 그런데 민주당은 1.4예요. 엄청난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유시민이 억지로 끌고 가고 있는 거거든요. 그러다 보니 쇼가 필요한 거예요”라고 평했습니다. 개혁당원들과 민주당 지지자들의 성향이 사실은 더 비슷한데도 유 의원님이 당의 진보적인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그런 행동을 한다는 거죠.
유시민 : 저는 저 개인을 포함하여 개혁당 당원들이나 지도부의 성향을 ‘소셜 리버럴’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진중권씨처럼 제대로 철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들으면 웃긴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게 가능하다고 봐요. 즉 ‘리버럴’한 기초 위에 ‘소셜’한 해법을 추구하는 일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보는 거죠. 유럽의 제3의 길도 그런 거고요. 그런데 민노당은 리버럴한 부분이 거의 없어요. 오직 소셜이라고 얘기해야 할 거예요. 그건 단순히 이론적으로 정립될 수 있는 차이가 아니라, 민노당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과 개혁당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집단적 문화간의 차이에요.
민노당과는 사실 협력해야 할 일이 많아요. 함께 개혁과 관련한 시위를 할 수도 있고, 우리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독일식 1인2표제를 당론으로 정하고 있고, 정치 자금 제도 같은 사항에 대해서도 그들과 주장이 일치하고, 그밖에 다른 정책 부문에서도 얼마든지 겹치는 부분이 있어요. 그런데 비난 분위기 때문에 지금은 서로 협력하기가 어려워요. 저는 민노당을 우호적인 경쟁자로 보는데, 민노당 쪽에서는 우리를 적대적인 경쟁자로 보는 것 같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요. 우리가 민노당에 지은 죄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지승호 : 지금 일부 민노당 지지자들뿐만 아니라 김대중 전 대통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의원님의 노무현 지킴이로서의 행보에 대해 노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전혀 없고 옹호하는 데만 급급하다고 비판하기도 하는데요.
유시민 : 비판은 자기들이 열심히 했으면 됐잖아요. 나까지 하라는 말이에요?(웃음) 사령관이 진두지휘를 하다 보면 잘하는 일도 있고 못하는 일도 있겠죠. 그럴 때 같은 편이라면 전투가 끝난 후에 얘기 해야죠. 한참 전투를 벌이는데 뒤에서 ‘그렇게 하면 안 돼’하고 말하는 게 올바른 거예요? 일단 사령관이 ‘돌격 앞으로’ 하면 이 산이 아닌 것 같아도 가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돌격 앞으로’ 하는데도 뒤에서 일일이 딴지를 거는 게 지지자의 태도냐는 거죠. 지금은 어려운 일이 많아요. 북핵 문제도 그렇고, 유니버시아드 대회도 그렇고, 사회적 갈등도 표출되고 있는 상황이잖아요. 나라와 사회도 걱정되고 대통령도 걱정돼요. 그래도 대통령은 우리가 믿고 따르는 사람이니까 어떻게 길을 찾아가는지 지켜보면서 성공할 수 있도록 전후좌우에서 지원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에요? 선거 때 죽기 살기로 지지해 놓고 그 다음에는 심판자처럼 앉아 비난이나 하는 게 책임 있는 태도인가요?
지승호 : 현재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이 많이 떨어지지 않았습니까? 지지율이 떨어진 데는 노 대통령이 잘못도 있을 텐데요. 어떤 부분에 문제가 있는 걸까요?
유시민 : 일을 잘 못하니까 지지율도 떨어지는 거겠지요.(웃음) 게다가 큰 성과도 없고, 여기에다 언론은 날마다 씹어 대잖아요. 메이저 신문이 그러니 마이너 신문도 따라가고요. 그런데 여론 조사를 보면 경제가 제일 불만이라는데, 취임한 지 6개월 된 대통령더러 경제를 책임지라고요? 경제라는 건 대통령이 단시간 안에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에요.
지승호 : 취임 6개월 동안 잘해 나가고 있는 부분은 어떤 건가요?
유시민 : 무엇보다도 본래 자신이 주장하던 대로 하고 있잖아요. 권력기관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고 하더니, 정말 그렇게 하고 있잖아요. 또 언론에서 정보기관이 국내 정치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얘기하는 대로 해놓았잖아요. 왜 이에 대해서는 평가해 주지 않는 거죠? 강금실 장관, 검찰 인사 잘했잖아요. 하지만 어느 언론사가 그걸 제대로 다뤄 줬나요? 점수 딸 수 있는 것은 하나도 보도하지 않고 오로지 씹을 것만 매일 찾잖아요.
지승호 : 지난번 홈페이지에 “날마다 불행해지는 느낌이 든다”라고 하실 정도로 정치 활동이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데요.
유시민 : 불행하잖아요. 이런 인터뷰도 만날 해야 하고(웃음) 관심도 없는 구주류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말을 해야 하니 괴롭잖아요.
지승호 : 반면 초선 의원임에도 베스트 정치인과 워스트 정치인 1위에 동시에 뽑힐 정도로 주목받고 있는데, 앞으로 계속 정치를 하실 겁니까?
유시민 : 임기가 끝날 때까지는 계속해야죠.
지승호 : 일부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의원님을 미래의 대통령 후보로 꼽는 이들도 있고, 원하지 않더라도 정치 상황에 떠밀려 그렇게 될 수도 있다고 전망하는 이들도 있는데요.
유시민 : 그래요?(웃음) 시켜 줘도 안 한다고 전해 주세요. 국회의원만 해도 골치 아픈데 그보다 더한 대통령을 왜 해요? 애국심이 부족해서 그것까지는 못 합니다.(웃음)
지승호 : 특별히 계획 중인 일이 있으십니까?
유시민 : 의정 활동을 열심히 해야죠. 국정 감사도 다가오고. 저도 밥값은 해야 할 것 아닙니까. 만날 신주류니 구주류니 하는 얘기는 접고 다음에 오실 때에는 건강보험 제도를 정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국민연금 제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런 문제를 한번 심층적으로 다루었으면 합니다.
열린우리당 당의장 선거에 출마하다
2005년 2월 23일, 열린우리당 당의장 선거에 출마한 유시민 의원을 만나 출마의 변과 개혁에 대한 생각, 진보 진영과 열린우리당 내에서의 자신에 대한 평가, 성격과 정치 스타일 등에 대해 들어 보았다.
지승호 : 이번에 당의장 출마를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입니까? 2004년 11월 말 인터뷰에서는 “김두관 전 장관이 출마할 것이고 그를 도울 것”이라고 하셨는데요.
유시민 : 김두관 전 장관은 이번 출마 후보 중 유일한 영남권 후보예요.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으로 약칭)이 이른바 서고동저로 영남에서 계속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그래서 영남의 유권자들에게 좀더 성의를 다해 진심을 가지고 접근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김 전 장관은 원외라서 활동 무대가 없는데, 중앙당 지도부로 들어오면 당으로서도 좋고 그분에게도 좋은 일이지요. 그래서 좀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겁니다.
지승호 : 김 전 장관을 신뢰한다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이번에 출마하면서 서로 불편한 관계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우려하는 이들도 있는데요.
유시민 : 아뇨. 둘이 잘 상의해서 한 건데요. 김 전 장관이 먼저 저에게 동반 출마를 하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어요. 물론 둘이 같이 뛰면 표의 분산효과가 일부 나타나겠지요. 하지만 제가 뛰어들게 되면 당의장 선거판 자체가 굉장히 활력적일 수 있어요.
지승호 : 대선 때 정몽준 후보와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 합계가 이회창 후보보다 높지 않았는데, 실제로 합치고 나니까 단일화 효과가 나타났었죠. 그때의 상황과 비슷한 결과를 생각하고 계시는 겁니까?
유시민 : 그것과는 전혀 달라요. 이번은 1인2표제의 당내의 선거이고, 누가 1등을 하고 누가 당선이 되든 우리 당원들끼리 하는 거잖아요. 반면 대선이라는 것은 정치 권력을 놓고 적대적인 당끼리 다투는 것이기 때문에, 정몽준 씨와의 단일화는 일종의 플레이오프인 거죠.
지승호 : 예비 선거에서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공략하실 겁니까?
유시민 : 제가 주장하는 건 당원들이 ‘내가 열린우리당 당원이다. 당비까지 내고 참여하는 당원이다’라고 주변에 자랑할 수 있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그렇게 못 하잖아요. 그래서 당원들의 자부심을 살려 줄 수 있는 전망과 비전․정책․원칙․공약을 대의원들에게 이야기하려는 거죠.
지승호 : 그렇다면 그 동안 당원들이 자부심을 느끼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유시민 : 당원들의 자부심이 떨어진 데는 대통령과 정부가 국민들에게 큰 지지와 신뢰를 못 받고 있는 이유가 가장 크다고 봅니다. 이렇게 된 데는 대통령과 정부의 책임도 있지만, 당의 책임도 있어요. 대통령은 자꾸 싸우다가 많은 지지를 잃은 거예요. 그러다 보니 참여정부가 하는 다른 좋은 정책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거죠. 그렇다면 대통령이 그런 말을 하기 전에 당에서 먼저 말할 수 있잖아요.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도 어영부영하지 말고, 중앙위원회에서는 대통령이 말씀하시기 전에 이미 폐지 결의를 했다고요. 그러면 원내에서 빨리 받아서 당의 공식 태도를 분명히 하고, 다소 상처를 입더라도 대통령이 국민의 대통령으로서 행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했어요. 이런 것이 지금까지 잘 안 보였던 거죠.
당 내부로 눈을 돌려 봐도, 많은 사람들이 과거 민주당에 있다가 오셨잖아요. 그렇다면 정당 문화에서 좀 새로운 게 나와야 하는데 총선에서 과반수를 획득하고 며칠 좋아하다가는 그 뒤 본래 약속했던 기간당원 중심의 참여민주주의 정당 건설이라는 목표를 손에서 거의 놓아 버렸어요. 당헌 개정 문제를 놓고 지지고 볶는 동안 넉 달 넘게 시간을 허비하고 만 거죠. 겨우 지난 가을에서야 그 일을 했어요. 한편 지난 연말에 보였던 원내의 당 지도부의 지리멸렬함도 원인으로 지적할 수 있어요. 지금 당장 당원들이 원하는 바를 하지 못하더라도, 한나라당이 억지로 막고 있어서 그렇다는 것은 다 알잖아요. 그렇다면 발걸음은 아직 떼지 못했지만 눈은 가고자 하는 곳을 분명히 보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줘야 당원들이 이해할 거 아닙니까? 이런 서너 가지 이유로 인해 당과 대통령의 지지도도 떨어지고 좋아질 기미도 안 보이는 거예요. 덩달아 당원들의 사기와 자부심도 죽고.
지승호 : 문희상 의원은 “유시민 의원은 그를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도 있어서 안 된다”라고 했잖아요. 과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습니다.
유시민 : 문 의원님의 말씀은 사실이잖아요. 한나라당의 당원과 국회의원과 지지자들은 저를 싫어해요. 국민들의 30%가 저를 싫어하는 겁니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이하 ‘민노당’으로 약칭) 지지자들 중에서도 저를 싫어하는 이들이 많잖아요. 그건 제가 압니다. 우리당 내에서는 제가 정당 개혁 문제와 관련해서 좀 과격한 말을 많이 했지요. “국회의원이 당원을 지배하는 정당이 아니라 당원이 국회의원을 지배하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는 식의 말을 엄청했단 말이에요. 말이 틀려서 미운 게 아니라 옳은 말을 해도 그렇게 못되게 하니까 정이 붙을 리가 없죠. 제가 생각해도 너무 심한 말을 많이 했거든요. 그렇게 하다 보니 당내에서도 저를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특히 당헌을 기간당원제를 사실상 폐기하려는 움직임이 광범위하게 진행될 때 과격한 말을 많이 했어요. 저로서는 불안해서 그런 거예요. 이 당이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드니까 과격한 말을 굉장히 많이 한 거예요. 그러니까 주변에서 그런 말을 듣는 것도 제 업보죠. 좀더 책임 있는 직책을 갖고 당을 위해서 봉사하려면 그 문제에 대해 이해를 구하거나 제가 해결해야죠. 제가 극복해야할 문제예요.
누나 유시춘과의 만남
2005년 5월 11일, 작가이자 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이며, 지금은 <데일리서프라이즈>에서 인기리에 고정 칼럼을 쓰고 있는 유시춘 선생을 마포에 있는 그녀의 오피스텔에서 만났다.
지승호 : 이번 우리당 당의장 경선 과정을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유시춘 : 우선 우리당이 참 진화했어요. 기간당원제에 의해서 전당 대회를 치르는 모습은 몇 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바닥에 완강히 온존하고 있는 구시대의 문화를 봤죠. 해결 과제가 드러났다는 점에서는 전당 대회의 성과라고 볼 수 있겠죠. 그리고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386의 집단 공격과 유시민, 제 동생이라서 옹호하는 게 아니고요.(웃음) 상대방이 먼저 동기 유발을 한 거거든요. 정상적인 방법이 아닌 방식으로요. 차라리 토론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나 이번 전당 대회를 보면서 우리 사회의 희망을 봤어요. 인터넷 언론이 있어서 그 모든 과정이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유리관 속에 있는 것처럼 다 들여다보였어요. 앞으로는 정치 과정이 굉장히 투명해지고, 이런 현상이 사회의 진화에 엄청나게 기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승호 : 노 대통령과 유 의원은 비슷한 코드가 있지 않습니까? 당내에 지지하는 위원들도 적고, 말을 막 한다는 비판도 받고, 열렬한 지지자를 가지고 있고… 참 견디기 쉽지 않았을 텐데. 노 대통령은 오랜 기간 동안 단련된 바가 있겠지만, 유 의원은 최근 들어 그런 일들을 겪어서 고통스러울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유시춘 : 아마도 이번 일이 그의 생애에서 처음 겪는 지독한 상처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맞으면 누구나 아프죠. 맞고 가만히 있었기 때문에 더 아팠을 거고요. 집단 공격한 386의원들을 보면서, ‘뭔가 상처를 줬기 때문에 그들도 그럴 거다. 저 사람들을 미워하고 상처를 줬기 때문에 그들도 그럴 거다’하는 생각도 들었고.
지승호 : 마지막으로 해주실 말씀은 없으십니까?
유시춘 : 노 대통령이 인터넷 없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요? 불가능했다고 봐요. 비록 옥석을 가려야 하는 문제가 있지만, 인터넷이 세상을 바꿀 겁니다. 그리고 20대가 탈정치화 ․ 몰역사성으로 흐르고 있거든요. 이런 인터넷 포털 문화의 비정치성 ․ 몰역사성을 어떻게 건강하게 견인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