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독립운동을 할 수 있다고요?
‘민족의 노래, 혁명의 음악’을 작곡한 위대한 예술가, 한형석
1910년 8월 29일, 일본은 한일합병조약을 발표하여 대한제국을 일본의 식민지로 만들었습니다. 일본은 우리 민족을 갖은 방법으로 탄압하고 우리 땅에서 나는 많은 것들을 빼앗아갔습니다. 이때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독립을 위해 싸웠던 분들을 꼽으라 하면 김구, 안중근, 윤봉길, 유관순 등과 같은 독립운동가들을 먼저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 당시에 음악을 만들고, 시와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려 조국 독립에 대한 의지를 불태운 분들도 있습니다.
한형석은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음악가입니다. <압록강 행진곡>과 같은 여러 군가를 작곡해서 조국 독립을 위해 싸우는 광복군의 사기를 높여 주었고, 오페라 <아리랑>을 무대에 올려 길고 긴 항일 운동으로 지친 사람들을 달래고 애국심을 드높였습니다. 이러한 예술 활동으로 한형석은 민족의 자주 독립을 꿈꿨습니다. 하지만 조국이 독립할 때까지 33년간 낯선 중국 땅을 떠돌며 지냈습니다. 비록 우리의 무관심으로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국기가>, <광복군 제2지대가>, <조국 행진곡> 등 주옥 같은 독립군가를 작곡한 위대한 예술가입니다. 《음악 혁명가 한형석》은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한형석의 삶을 그린 책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조국을 위해 자신의 음악을 꿋꿋이 지켜 나가는 강한 의지와 열정을 배울 수 있습니다.
다양한 예술 활동으로 민족의 자존심을 일깨운 음악가이자
한국전쟁으로 상처받은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던 교육자
1910년에 태어난 한형석은 다섯 살 때 아버지를 만나러 어머니, 형, 삼촌과 함께 중국에 갑니다. 이때 아버지 한흥교는 중국에서 의사로 일하면서 독립운동 자금을 보태는 한편 독립투사들의 든든한 보호막이 되어 주었습니다. 곁에서 아버지를 보고 자란 한형석은 아버지처럼 나라를 위해 일하겠다고 다짐합니다.
한형석이 열일곱 살이 되던 해,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가족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홀로 중국에 남은 한형석은 노하고급중학교를 졸업하고, 신화예술대학 예술교육과에 입학합니다. 신화예술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무훈중학교에 예술과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로 일하게 됩니다. 당시 훈련소 교관으로 일하던 한형석은 지인의 부탁으로 중국인을 위한 군가 <신혁명군가>를 작곡하여 큰 반향을 일으킵니다. 이후 한형석은 조국 독립을 위해 희망을 노래하는 음악가가 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렇게 한형석은 조국 독립을 위해 싸우는 광복군을 위한 <압록강 행진곡>, <국기가>, <광복군 제2지대가>, <조국 행진곡> 등의 독립군가를 작곡했습니다. 또한 1940년 우리나라 최초의 오페라인 <아리랑>을 무대에 올려, 중국 땅에서 독립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 주고, 나라를 잃은 슬픔에 잠겨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광복 후 고향에 다시 돌아온 한형석은 이범석 장군의 부탁으로 일제 강점기에 영화관으로 사용되던 보래관을 국립부산문화극장으로 만드는 일을 맡게 됩니다. 하지만 개관한 지 일주일 만에 6·25전쟁이 일어나 문화극장은 무기한 휴관에 들어갔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한형석은 전쟁으로 고아가 된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사비를 털어 자유아동극장을 세웠습니다. 이때 만든 자유아동극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아동 예술 공간으로, 아이들은 무료로 공연을 보면서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운영에 어려움이 많았던 자유아동극장은 2년 만에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문을 닫기 전까지 자유아동극장은 무려 500여 회의 공연을 하였고, 그 공연을 보러 온 관객이 12만 명에 달했습니다. 그 후 한형석은 부산에서 다양한 예술 활동을 하다가 1996년 6월 14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현재 부산시 서구에서는 한형석이 평생 매진했던 예술 활동 작업을 기리기 위해 생가 및 자유아동극장 복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유한 씨! 어디에 계십니까?”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간 예술가
중국 최고의 음악사학자인 량마오춘 교수는 중국 근현대 음악사를 연구하던 중 1940년대 음악 잡지에 소개된 한유한이라는 이름의 작곡가와 100여 곡에 이르는 그의 뛰어난 음악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1997년 베이징 음악 잡지에 <한유한 씨! 어디에 계십니까?>라는 글을 발표했고, 한유한이 한형석이라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이때까지 한형석의 업적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일제 강점기 시절, 한형석은 나라를 그리워한다는 의미로 생각할 유(惟), 나라 한(韓) 자를 써서, ‘한유한’이라는 이름을 지어 활동했기 때문입니다. 또 광복 후에는 함께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한 이범석 장군이 주요 요직을 제안했지만 이를 거절하고 묵묵히 음악 활동에 전념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하지도 않은 일을 부풀려서 말하기도 하지만 한형석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에야 그의 업적이 하나둘 알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사는 세상에서는 전쟁이나 독립이라는 말이 다소 멀게만 느껴집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이렇게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건, 그 당시 나라를 위해 애쓴 독립운동가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지는 않았지만 조국이 독립할 때까지 총칼 대신에 음악으로 일제에 맞서 싸운 한형석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아이들은 책을 읽는 동안,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와 함께 조국을 위해 다양한 예술 활동을 했던 한형석의 삶을 가까운 곳에서 지켜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꿈에 대해 생각해 보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용기와 자신감을 얻게 될 것입니다.
▶ 차례
작가의 말 … 4
<압록강 행진곡>을 배우다 … 8
가족 모두 독립운동가 … 24
총칼로만 독립운동을 하는 게 아니다 … 40
음악으로 표현한 나라 사랑 … 59
한국 최초의 오페라 <아리랑>이 울려 퍼지다 … 79
자유아동극장을 세우다 … 95
먼 구름 … 112
동화와 함께 역사 바로 알기 … 127
한형석의 삶 … 134